욥과 욥의 세 친구들의 3차례의 대논쟁이 무위로 끝나고 이들보다 어린 엘리후가 등장합니다.
엘리후가 욥과 욥의 세 친구들에게 첫 번째 연설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욥의 세 친구들도 대답이 없고 욥도 어떤 대답이 없습니다.
욥이 왜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을까요? 욥의 세 친구들에게는 적극적으로 답변을 하여 그들로 하여금 입을 닫게 하였습니다. 물론 욥의 세 친구들은 욥과 더 이상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말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욥이 엘리후의 말에 대하여 답변을 하지 않은 것은 ‘이미 욥의 세 친구들의 말과 같다’는 의미로 더 이상의 논쟁이 무의미하다고 보고 말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시각은 ‘엘리후의 말이 맞는 말이기에’ 욥이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도 볼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보든지 간에 욥의 친구와 욥이 아무런 대답이 없자 엘리후는 두 번째 연설을 합니다.
엘리후가 네 번에 걸쳐 한 말에 대한 요약적은 주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처럼 고난은 ‘하나님의 교육적인 조치’로 이해할 수 있다(첫 번째 말). 다음으로 고난은 하나님이 자신의 교육 목표에 이르실 때까지 ‘오래 계속해서’ 사람을 시험하는 것일 수 있다(두 번째 말). 하나님은 그의 숭고하심 가운데서 스스로 목적을 정하시기 때문에, 사람은 참으면서 기다리는 것이 마땅하고(세 번째 말), 겸손히 굴복하여 숭고하신 하나님께 경배 및 찬양을 드리는 것이 마땅하다(네 번째 말).
오늘 본문은 두 번째 말의 본문입니다.
욥의 세 친구들은 욥의 재앙을 보고 욥이 지은 죄가 있어서 이런 재앙이 왔다고 하였지만 엘리후는 욥이 까닭모를 고난 중에서 ‘욥이 한 말’을 가지고 욥을 책망합니다.
엘리후는 욥의 고난이 단지 죄로 인하여 인과응보로만 오는 것이 아님을 말합니다. 고난의 이해도가 넓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하시는 것을 이루시기 위하여 고난을 주신다’는 말을 합니다. 우리는 이 말에서 더 연장하여 ‘자녀를 징계하시는 것’과 ‘그리스도의 대속의 고난’과 ‘성도가 복음으로 인한 고난’까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엘리후는 욥을 책망하기를 ‘욥이 한 말’ 곧 자신이 의로우나 하나님께서 자신의 의를 부인하셨고, 자신이 정당하며 허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화살을 쏘았다고 한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엘리후가 보기에 하나님을 비방하며 악한 일을 하는 자들과 한 패로 보는 것입니다.
욥을 엘리후가 책망하는 이유는 욥이 세상의 그런 악행을 저질렀다기보다는 ‘하나님이 공의롭지 못하다’는 말에 대하여 책망을 하고 있습니다.
욥의 고난은 욥의 세 친구들이 책망한 것처럼 인과율적인 고난이 임한 것이 아닙니다. 욥이 당한 고난은 정말 까닭모를 고난입니다.
그런데 그 고난이 깊어지고 길어지면서 하나님에 대하여 원망을 합니다. 하나님이 과연 공의로우신 분이시며 전능하신 분이시냐는 원망들이 나옵니다. 물론 이러한 부분까지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나오는 표현입니다.
그러나 욥이 고난을 받으면서 이렇게 말한 부분은 ‘욥 자신도 인과율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기도 합니다. 내가 이런 재앙을 당할 일을 하지 않았는데도 이런 재앙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 편에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욥은 엘리후의 말에 항복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끼리 정의와 선함에 대하여 알아보자고 한 그 말에 설득 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자 자신은 손으로 입을 가릴 뿐이라고 합니다. 대답할 말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면 그 말씀 앞에 두렵고 떨게 됩니다. 그 말씀 앞에 떤다는 것은 십자가 앞에서 자신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어 십자가를 지신 그분 앞에서 사람들의 주의와 주장들은 배설물과 해로운 것들 뿐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 십자가 앞에서 입을 가리는 은혜가 임하기를 소원합니다.
욥의 세 친구도 엘리후도 어느 누구도 욥을 굴복시킬 수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직접 나타나 말씀하실 때에 비로서 욥은 자신의 입을 가리고 회개합니다.
오늘도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 내가 옳다고 박박 우기던 내 입을 막고 그분의 사랑과 희생 앞에 무릎 꿇고 회개하는 내 중심의 삶에서 그분 중심의 삶으로 방향을 돌리는 오늘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