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내장으로 슬픈 어머니가 포기하지 못한 한 가지!
며칠 전 저녁에 지인의 집에 차를 마시러 갔다.
지인은 평상시에 보고 싶은 분들을 초대하여 차를 마시며 다담(茶談)을 즐기는 분이어서 항상 두세 분이 자리를 같이하게 되고 분위기는 고향의 사랑방처럼 따스하고 정감이 흐른다.
그날은 처음 보는 분이 참석하였는데 나이 가늠이 어려웠다.
그는 저녁 늦게 사람들과 어울려서 차를 마신 것이 아득한 옛날의 일이라고 하였다.
그의 머리는 귀여운 소녀처럼 단발머리이고 피부가 하얗고 체격이 호리호리한데다 말소리도 가늘고 맑아서 나이가 삼십대인지 사십대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입술 주변에 잔주름이 많아서 묘하게 할머니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그는 인사를 나눌 때를 제하고 줄곧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보지 않고 큼직한 눈을 내리깔고 말을 해서 신비한 느낌을 주었다. 하얀 피부에 드러난 긴 속눈썹이 매력적이었고 차분하게 앉아 있는 모습이 한 송이 목련처럼 우아하게 보였으나 속세를 등진 수도사의 침착함과 무심이 엿보였다.
계속 낯가림을 하는 그는 지인의 선배 언니였고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와서 지인인 동생의 초청을 받아서 왔다고 하였다. 그는 후배 동생이 교육 전문가로 일하면서 다인(茶人)으로 활동하는 것과 기타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에 놀라워하였다. 그리고 거실에 가득한 다구(茶具)와 여러 종류의 차에 대하여 연신 감탄하였다.
그는 멋진 차 주전자에서 우려내는 홍차나 보이차나 우롱차를 처음 마신다고 하였다. 그는 홍차 맛에 감탄을 하였고 보이차와 우롱차를 맛에 대해서는 말을 하였지만 투명한 브라운 칼라와 마호가니 칼라 그리고 영롱한 연두빛 색깔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차 맛을 중시하는 사람은 차 색깔에 관심이 없을 수 있으므로 그러려니 했는데 그가 앉은 자리 건너 벽면에 진열되어 있는 하얀 그릇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티팟세트”라고 대답을 하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 자리에는 차 주전자가 여러 개 있는데 주전자마다 화사한 꽃문양이어서 전체적으로 분홍색으로 보일 뿐만 아니라 누가 봐도 차 주전자인데 그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조금 후에 그가 골동품 전화기를 가리키며 무엇이냐고 물었다. “전화기”라는 대답을 듣고 그가 전화기처럼 보여서 물어 보았다고 하였다. 그의 아리송한 질문이 계속 이어져서 시력이 상당히 나쁜가보다 라고 생각을 하며 거실 안에 있는 아름다운 그림과 소품들에 대하여 설명을 해주었다. 그랬더니 그가 물건도 색채도 다 흐릿하게 보인다고 하였다.
왜 그러냐고 묻는 우리에게 그는 자신이 녹내장 중기에서 후기로 향하고 있는 환자라고 하였다. 그 순간 우리는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자신의 눈이 멀어가고 있는 사실을 알고 몸부림치고 있는 환자의 슬픔과 아픔 앞에서 우리는 할 말이 없었다. 하얗고 아름다운 얼굴에 서린 우수와 신비, 침묵과 고요의 정체를 깨달으면서 우리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우리들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인다고 하였다. 방안의 있는 것들의 형체도 색깔도 애매모호하게 보인다고 하였다. 익숙한 사람들과 사물은 기억으로 바라본다고 하였다. 사람들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 않는 것도 제대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눈물이 나서라고 하였다. 때로는 사람들이 자기가 눈이 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는 것이 겁이 나서 고개를 숙인다고 하였다.
그는 찬란한 햇살이 너무 보고 싶다고 하였다.
속살거리며 흐르는 시냇물, 수평선 아래 파도가 춤추는 바다, 황금물결 출렁거리는 들판과 그윽한 국화꽃과 시끌벅적한 장터가 삶의 기쁨이고 축복인 것을 시력을 잃으면서 깨달았다고 하였다. 국수와 만두, 온갖 전들과 푸짐하고 맜있는 떡들, 심지어는 불량식품까지도 그리움의 대상이라고 하였다.
예쁜 엽서와 책들, 영화와 연극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인지를 예전에는 몰랐다고 하였다. 꽃피는 봄의 정경, 푸르른 숲, 낙엽 떨어지는 가을 날, 쏟아지는 함박눈과 눈 덮인 시골 들판을 거닐고 싶고, 시장에 가서 물건을 사고 싶고 친구들과 여행을 가며 왁자지껄 떠들고 싶다고 하였다. 사람들이 친구들과 커피숍에 앉아서 한담을 즐기는 것이 너무 너무 부럽다고 하였다. 가족들과 함께 TV 드라마를 웃으며 떠들며 보고 싶고 가까운 공원을 가볍게 산책하고 싶은데 현실적으로 어려워서 이제는 상상으로만 즐긴다고 하였다.
그는 20여 년 전에 녹내장 진단을 받고 큰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그는 녹내장에 걸린 사람의 10% 정도만 실명에 이른다는 말을 듣고 설마 자기에게 실명의 불행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나 10여 년 전에 실명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해서 그 때부터 날마다 조금씩 조금씩 어둠에 갇히게 되었다 고 하였다. 그는 내일이면 더 나빠질 것이기 때문에 가능하면 오늘 더 많이 보고 즐기려고 한다고 하였다. 오늘 희미하게 나무를 보고 꽃을 보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서 앞으로 완전히 실명할 날을 생각하며 마음으로 보는 법을 터득하려고 노력한다고 하였다.
그의 독백을 들으면서 마음이 녹아 내렸다. 우리 모두가 죽어가고 있으면서 그날 그 시를 모르기 때문에 태평하게 살지만 날마다 시력이 나빠져서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지 못하게 되면 얼마나 슬플 것인가! 결코 제 정신으로 살지 못할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보는 것의 기쁨, 희망, 평화, 행복에 대하여 말하였다.
보지 못하는 것의 고통, 고뇌, 고독 그리고 사람들과 문화가 주는 소외에 대하여 말하였다.
그리고 혼자 어둠에 잠기게 되었을 때 처음에는 하나님과 씨름하며 진저리치게 싸웠는데 이제 는 생명의 주인이신 그분과 데이트하게 되었노라고 고백하였다.
우리는 시각 상실의 고뇌와 고독, 고통 속에서 우러나온 현자의 말을 들으며 감동에 빠졌다.
우리는 침묵 속에서 차를 홀짝이며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간간히 감탄하거나 신음을 토할 수 있을 뿐이었다.
우리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의 감정을 추슬렀다.
그가 마지막으로 ‘다 포기하였는데 포기하지 못한 한 가지가 있다’고 하였다.
그가 희미한 눈이 시리도록 보고 싶은 얼굴, 그리운 얼굴이 있다고 고백했을 때 순간 긴장하였다.
그가 물기 촉촉한 음성으로 눈이 완전히 실명이 되기 전에 그리운 손자와 손녀의 얼굴을 보고 싶다고 말하였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는 세상에 언제 올지 모르는 어여뿐 아기 ‘손자’와 ‘손녀’가 보고 싶어 가슴이 아리다고 하였다. 가끔 ‘며느리’와 ‘사위’의 얼굴을 그려 보며 아기들의 얼굴을 바라본다고 하였다.
그는 세 자녀를 두었는데 모두가 30대라고 하였다. 그런데 아무도 결혼을 하지 않았고 자녀들이 ‘결혼’ 할 생각도 없이 모두들 자신들의 삶에 만족하고 있으며 일에 취해서 산다고 하였다. 그가 자녀들에게 결혼을 권하면 자녀들은 자신들은 충분히 행복하며 굳이 결혼해야할 필요를 못 느낀다고 대답을 한다고 하였다.
그의 히스토리에 취해서 자정 가까이 되어서야 헤어지게 되었는데 딱히 위로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그 슬픈 어머니가 희미하게 웃으며 말하였다. “그 것 마저도 포기해야 되겠지요. 손자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한 사랑마저 도요. 차라리 실명이 오는 날 당황하지 않도록 마음을 비우고 희미한 얼굴과 꽃과 세상을 더 바라보아야 겠지요."
나는 너무 슬퍼서 밤새도록 그의 이야기를 음미하며 그가 무지개 타고 오는 손자 손녀들을 볼 수 있게 되길 빌었다.
그가 ‘포기하지 못하는 한 가지’ 때문에 흐릿한 눈의 시력을 그나마 유지하고 있을 것인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눈을 감아 보았다. 그리고 실눈을 뜨고 방안을 둘러보았다. 희미한 방안에 흐릿한 물체들이 어지러웠다.
나 자신도 모르게 소리 질렀다. ‘하나님! 저는 안 됩니다. 마지막 날까지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게 해주시고 하나님께서 창조한 우주 만물들과 사계절의 풍경과 하늘의 별과 달을 보며 살게 해주십시오!’
글을 쓰면서 간절히 간절히 얼굴이 창백한 어머니의 ‘포기하지 못한 한 가지’ 꿈이 성취되길 간절히 비었다.
2022.7.25.월
우담초라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