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다녀왔습니다.
지난 수요일 임우택 권사의 소개와 대접(점심)으로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을 방문하면서 깊은 울림이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5킬로도 안 되는 곳을 향하여 차 두 대에 12명이 나누어 타고 15분여 만에 도착하여 안내자의 인도로 2층 영상 실에 도착하였습니다. 영상 실에는 환영이라는 글과 함께“이곳은 한국교회의 성지입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참배해 주십시오”라는 글이 띠워져 있었고, 다른 4-5곳의 교회에서도 10여명 안팎의 인원과 외국인 한 팀도 눈에 보였습니다. 10시부터 시작한 영상은 20여 분간 성지 화하는 작업과 묘원을 세우게 된 이유와 안장된 선교사들에 대한 설명이었습니다. 이어 다른 안내하시는 분을 따라 40여 분간 안장된 묘지를 다니면서 설명을 들었으며, 홀에서의 시간 등 1시간 20여분 동안이 큰 감동으로 다가 왔습니다.
선교사 묘원에는 구한말 일제 강점기에 우리 민족을 위해 일생을 바친 외국인 선교사와 그의 가족 145명이 다른 이들 217명과 함께 안장 되어 있었고, 또 다른 분의 안내로 들어간 양화진 홀은 우리나라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선교사들의 삶을 기리고 재조명하는 공간으로 그들은 어떤 이었으며, 왜 조선을 찾아 왔는지, 그리고 양화진은 어떻게 변해왔는지 등을 주제별로 소개해 주고 있었습니다. 이 지면에 묘지에 안장된 분들을 몇 몇 분 소개해 봅니다.
J.W.헤론 – 양화진에 최초로 안장된 의료 선교사.
H.G.아펜젤라 – 감리교 최초로 내한한 선교사로 한국근대교육과 감리교회의 초석을 놓은 선교사. 아들 내외와 딸이 안장됨.
H.G.언더우드 – 한국 개신교 선교의 개척자인 장로교 선교사. 자신과 아내를 비롯 4대 7명이 안장.
E.T.베델 – 구한말‘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하여 억눌린 한국인들의 대변인 역할. 37세에 별세.
R.A.하디 – 의료 선교사로 25세에 도착. 대부흥운동의 주역. 두 딸도 안장됨.
J.E.P.캠벨 –한국 여성들을 위한 선교사. 배화학당과 종교교회, 자교교회 등을 세움.
H.B.헐버트 – 한국 사람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외국인으로 칭송받은 선교사. 웨스트민스터 성당보다 한국에 붇히고 싶다는 뜻대로 안장됨.
M.위더슨 – 한국 고아들을 위해 일생을 헌신한 구세군 선교사.
S.F.무어 – 백정 전도자의 개척자, 백정 해방 운동의 조력자로 불리는 인물.
W.D.레이놀즈 – 성경번역에 헌신. 42년 동안 성경을 한글로 번역하는 일에 헌신한 선교사.
O.R.에비슨 – 우리나라 근대의학 발전에 크게 공헌. 세브란스병원과 의학교를 설립. 42년간 선교.
소다 가이치 – 일본인으로 1921년부터 해방 될 때까지 천명 이상의 고아들을 돌보며 복음전함.
조용히 둘러보면서 대한민국은 큰 축복을 받은 나라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묘원이 서울중심에 세워진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성경이 선교사들이 들어오기 전부터 밖에서 번역이 되어 들어왔고, 이 땅의 불쌍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복음을 들고 의사, 교육자 등의 높은 신분으로 자신이나 가정, 자녀도 돌보지 않고 당시 가장 생소한 가난하고 어렵게 사는 낯 설은 곳에 찾아와 헌신과 순교적 삶을 통하여 우리에게 복음으로 큰 복을 받고 누리게 하였으니 우리나라는 복 받은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땅에서 기독교인으로 사는 것에 자부심을 갖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