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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산악회 오지 전문 대장을 따라 설악산의 오지 '둔전리 진전사지 → 임도 삼거리 → 헬기장 → 송암산 → 864봉 → 둔전골 삼거리 → 화채봉 → 둔전골 삼거리 → 절터 → 둔전골 → 설악 저수지 → 진전사지'의 원점회귀 코스를 7시간 30분 동안 탐험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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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국립공원
1970년 우리나라에서 다섯 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1965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국제적으로도 그 보존 가치가 인정되어 1982년 유네스코로부터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관리되고 있는 지역이다. 설악산국립공원의 총면적은 398.237㎢에 이르며 행정구역으로는 인제군과 고성군, 양양군과 속초시에 걸쳐 있는데 인제 방면은 내설악, 한계령~오색방면은 남설악, 그리고 속초시와 양양군 일부, 고성군으로 이루어진 동쪽은 외설악이라고 부른다. 설악산은 주봉인 대청봉을 비롯하여 소청봉, 중청봉, 화채봉 등 30여 개의 높은 산봉우리가 웅장하게 펼쳐져 있다. – 국립공원공단
8월 3일 목요일에는 한 안내산악회 오지 전문 인솔 대장이 계획한 설악산의 잘 알려지지 않은 봉우리인 송암산과 둔전골 산행에 동행하기로 했다. 이번 산행은 산악회 게시판에 6월 6일 공지되자마자, 송암산? 이런 산도 있었나? 일단 신청하고 보자는 생각으로 예약한 산행이다. 그리고 검색을 통해 확인한 결과, 일반 등산객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설악산 국립공원의 주요 산 중 하나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산악회 계획의 B 코스의 알파가 화채봉이라는 것도! 화채봉? 화채봉은 이미 봉 감독과 다녀온 봉우리라, 산행기를 찾아봤다. 5년 전인 2018년 1박 2일 설악산행 때 2일 차인 8월 3일이 화채봉 능선이었다. 이번 산행으로 정확히 5년 만에 다시 화채봉에 간다. 물론 그 '알파'가 화채봉이 맞는다면! 그런데, 2018년 당시 화채봉 산행은 더워서 죽다 살아난 기억밖에 없다!
2023년 8월 3일은 더 심하다! 기상청 설악산 산악날씨 예보에 따르면 기온은 21~22도에 불과하나, 구름 한 점 없이 햇살이 내리쬐는 더운 날씨다. 그나마 다행은 바람이 4m/s로 불어, 산행 중 바람 덕은 볼 수 있을 거 같다. 문제는 전국에 내려진 폭염특보다. 설악산 구역은 다른 지역과 같은 폭염 경보가 아니라, 폭염 주의보 수준이라 좀 나으려나? 일요일에는 토요 무박으로 그보다 더한 속리산 종주도 한 산꾼들이라 문제는 없을 거로 생각한다. 그리고 하산이 둔전골이라, 계곡에 열기를 식힐 수 있을 거다. 송암산에 오른 후 '안 되겠다!'라고 생각되면, 화채봉은 버릴 수도 있다. 다른 산꾼은 모르나, 2018년 같은 날짜 이미 오른 봉우리라 큰 미련은 없다. 그럼에도, 화채봉에 오르는 걸 전제로 산행을 준비한다. 그래봐야 얼음물을 많이 가져가는 거지만. 물론 아큐아슈즈도 따로 들고 간다.
놀라운 건 이런 최악을 넘어 지옥이 될 가능성이 높은 산행임에도, 출발 하루 전 28인승 버스 좌석을 모두 채우고도, 대기자가 2명이나 있다는 거다. 신청 초기에 정원을 채우고, 산행 일주일 전까지 대기자 10명 넘었으니, 그 열기를 짐작할 만하다. 그럼, 그들은 이미 쉽게 갈 수 없는 화채봉 산행이라는 걸 알고 있었나? 그런데, 다른 인솔 대장은 대기자에게도 기회를 주기 위해 28인승에서 36인승 또는 40인승으로 차량을 변경하는데, 이 대장은 절대 차량을 변경하는 일이 없는데, 스스로 편안함을 추구하는 건가? 아니면, 버스를 한 대에서 두 대로 늘리는 대장도 많은데… 그런 결정을 대장이 하는지, 산악회에서 하는지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고, 개인적으로는 신청이 빠른 덕에, 편안한 28인승에서도 단독 석을 차지할 수 있어 옆 승객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게 다행인 산행이다.
최악의 환경이 아니면 당연히 화채봉이 포함된 B 코스로 간다. 그런데, 아무리 머리를 굴려, 인솔 대장이 세운 A, B, C 코스 계획을 분석해 봐도 B 코스의 '알파' 구간을 알 수 알 수 없다. 해서, 앞선 산꾼의 산행기를 토대로 검토해 본바, 붉은 라인의 환 종주, 아니면 녹색 라인의 둔전골 삼거리를 기준으로 화채봉을 왕복하는 둘 중 하나로 생각된다. 물론 왕복은 죽어라 싫어하는 인간이라, 환 종주이기를 바란다. 아니라면, 단독으로 환 종주 산행을 할 수도 있다. 그럼, 산꾼 몇이 같이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하긴 신청자 명단에 오히려 나보다 앞서 환 종주할 산꾼도 몇 보이는 게 그 뒤만 따라다녀도 될 거 같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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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에 기상해 하루를 시작하는 의식을 치르며, 혹시 밤새 변한 게 있나, 산악날씨를 확인했다. 없다! 그저 바람만 끊임없이 강하게 불어주기만 바라야 하는 상황이다. 이후 누룽지를 끓여 아침을 먹고, 5시 50분경 준비해 둔 숄더힙색을 둘러메고, 집을 나서, 6시 43분경 사당역에 도착했다. 그리고 김밥을 사기 위해 승차장을 따라가며 보니, 문이 닫혔다. 이런 낭패가! 예상대로 휴가인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늘까지다. 다행히 위층의 역 구내에도 틈새 상품으로 김밥을 파는 집이 있어, 거기는 휴가가 아니기를 빌며 올라갔다. 다행히 휴가가 아니라, 김밥 한 줄을 사서 힙색에 넣고, 1번 출구로 나갔다.
사당역 1번 출구에서 나와 공영주차장으로 가는데, 산악회 버스가 대기하는 구석에서 빨간 버스 하나가 나오는 게 보이다. 응? 7시 출발인데, 벌써? 혹시 6시 50분 차를 7시로 착각하고 있나 해서, 태블릿으로 산악회 게시판을 확인했다. 7시가 맞다. 다른 산으로 가는 버스라 생각하고 계속 가며 보니, 산악회 버스가 아니라, 어딘지는 모르나 통근 버스다! 착각하지 않아 안심하며 우회전하니, 3대의 버스가 주차해 있어 재빨리, 목적지를 확인했다. '아침가리골', '곰배령', '장안산 & 영취산' 행으로 내가 타야 할 송암산행 버스가 안 보여 다시 가슴이 철렁했다. 해서 누군가에게 물어볼 생각으로 가까이 다가가니, 곰배령행 뒤에 송암산행, 장안산행 뒤에 운탄고도행 버스가 숨어 있다. 평일에도 다섯 대의 버스를 산으로 출발시킬 수 있는 안내산악회에 감탄할 뿐이다. 거의 독점이라 그런가?
버스에 타 자리를 잡고 앉아, 출발 기다리며, 각지로 떠나는 등산객이 도착하는 걸 구경했다. 그런데, 등산복이 아니라, 해수욕을 떠난 복장의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아침가리골로 계곡 피서를 가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7시가 되자, 인원 확인도 없이 버스는 출발한다. 말인즉 정시 출발이라 인원 확인 따위는 필요 없다는 정신이다. 그에 반해 같은 7시 출발인 아침가리골행 버스는 움직일 생각을 안 한다. 버스로 주차장을 빠져나가며 보니, 계곡 피서 복장의 사람들이 정신없이 뛰어오는 게 보인다. 피서가 등산보다 준비할 게 많기는 하다! 사당을 출발한 버스가 양재에서 승객을 태우는 동안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구경했는데, 아침가리골로 향하는 사람들은 한눈에 목적지를 알 수 있다. 난 계곡 산행이라고, 다른 게 없는데, 아니다. 등산화 대신 아큐아슈즈를 신는구나. 오늘도, 코스 중 계곡이 있어 아큐아슈즈!
마지막 정차지인 복정역에서 나머지 승객을 태운 버스가 서울을 벗어나 조금 달리자, 의외로 속도가 안 나, 앞창으로 고속도도를 확인하자, 자가용으로 가득 찼다. 피서객이다! 그 모습을 보자, 평일이 이러며, 휴일은 장난이 아닐 터라는 생각이 들며, 자가용 카풀로 토요일 아침가리골로 계곡 물놀이를 가겠다는 친구가 떠올랐다. 보나 마나, 물속에 있는 시간보다 고속도로에 있는 시간이 더 많은 피서가 될 확률이 높다. 거기에 더해, 그나마 영업 중인 안내산악회를 다 합쳐 28인승 버스 5대, 44인승 버스 한 대가 같은 날 아침가리골로 출발해 목욕탕이 될 확률이 높다. 물론 외부로 노출되지 않는, 관광회사나, 폐쇄산악회도 꽤 있을 거다.
아침을 먹지 않은 등산객을 위해 홍천 휴게소로 들어갔는데, 소형차가 대형차량 주차구역을 침범해야 할 정도로 주차 전쟁이다. 폭염특보 아래 내리쬐는 햇살도 짜증 나는데, 휴게소 주자까지 말썽이다. 휴식과 식사가 끝나고, 버스가 출발하자, 인솔 대장이 지도를 나눠준다. 별 필요는 없으나, 코스의 알파가 어딘지 궁금해 지도를 받았다. 예상대로, 화채봉이고, 원점회귀다. 그리고 관모봉에 가고 싶다는 산꾼의 부탁으로 C 코스를 만들었는데, 그가 불참하는 바람에 C 코스는 폐기됐다. 이후 코스와 주의 사항에 관한 설명이 끝나고, 인원 확인을 위해 화채봉이 있는 B 코스로 갈 산꾼은 손을 들어보라고 했는데, 뒤에서 벌어지는 일은 보이지 않아 확인이 안 되지만 대장이 놀라는 거로 봐서, 계곡 물놀이를 선택한 노년의 산꾼 몇을 뺀 거의 모두가 손을 든 거 같다.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손을 드는 바람에 놀랐는지, 인솔 대장이 들머리인 진전사지에서부터 화채봉까지 구간을 자세히 설명했다. 철탑, 봉우리, 암릉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길을 찾기 어려운 오지라, 쉽지 않은 산이라고 계속 강조한다. 그리고 내 생각을 읽었는지, 화채봉에서 계곡으로 바로 내려오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과거 몇 사람이 그렇게 내려오다가 고생을 많이 했다는 경험담도 얘기하며! 계곡 방향은 화채봉에 도착해 비법정 등산로에 특화된 등산 앱의 지도를 보고 판단할 예정이다. 이번 산행에 얼마나 고심했는지 인솔 대장이 정글도까지 들고 와, 산꾼으로 참여한 젊은 여성 인솔 대장에게 넘겨줬을 정도다. 폭염경보를 알리는 문자가 계속 오는 가운데, 예정보다 늦은 10시 37분 버스는 들머리인 진전사지 주차장에 도착했다. 이번 산행의 마감은 18시 즉 오후 6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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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모든 준비가 끝나, 따로 준비할 게 없어, 버스에서 내려 다른 산꾼이 산행 준비를 하는 동안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보고, 등산 앱을 기동하고, 고도를 확인했다. 183m! 최소 300m는 넘을 거로 생각했는데, 예상을 완전히 뛰어넘는다. 오차를 고려하면, 160m 내외다! 화채봉이 1,320m, 고로 표고차는 1,100m가 넘는다. 오랜만의 제대로 된 천고지 산행이다. 먼저, 진전사지의 삼층석탑을 구경하러 계단을 올라가는데, 위에서 등산객 서너 명이 내려온다. 처음 눈에 띄었을 때는 자가용으로 막 도착해 우리와 함께 산에 오르는 사람들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산행을 마치고 하산하는 중이다. 물론 근교에 살겠지만, 대단히 부지런한 산꾼들이다.
계단 정상에 올라서자, 예상하지 못한 석탑이 나타났다. 먼저 눈에 띄는 건 기단의 조각이다. 대충 쌓은 석탑일 거로 생각했는데, 아니다. 해서 가까이 다가가 조각을 살폈다. 옛 절터에서 흔히 보는 석탑이 아니라. 적어도 보물이다. 해서 옆에 있는 문화재 안내문을 확인했다. 국보 제122호! 문화재에는 관심 없는 산꾼은 벌써 절터를 가로질러 산행을 시작하고 있는 걸 보며, 석탑의 이모저모를 기록으로 남긴 후, 계단 입구 쪽에도 안내문이 있어, 그건 또 뭔지 확인했다. 진전사의 유래와 터에 관한 소개문이다. 역시 그것도 기록으로 남기고, 절터를 가로질러, 등산로로 접어들어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하려는 데, 일행 중 여성이 임도로 내려가는 걸 보고, 인솔 대장이 '왜 내려가냐?'고 묻자, 절 구경 간다는 거다. 그러자 대장이 등산로를 따라가는 게 더 빠르다고 했으나, 포장도로로 가겠단다. 어차피 절에서 만나니, 그러시라고 하고 끝냈다.
응? 절에서 만난다고? 그럼, 포장도로로 가는 게 맞지! 왜 쓸데없는 고생을 사서 하나? 그런데, 그러기에는 너무 높이 올라와, 산꾼이든 등산객이든 많이 다지지 않아, 희미한 등산로를 따라 현대의 진전사를 향해 가자, 급경사 갑판 계단도 나타난다. 그런데, 작은 계곡을 몇 개 지났으나, 물이 없다! 이래서야 둔전골에서 알탕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 가, 10시 51분 현대의 진전사에 도착했다. 등산로는 진전사로 들어가지 않고, 바로 위로 올라가나, 코앞에 절을 두고 그냥 갈 수 없어, 본존불에게 신고하기 위해 구내로 들어가자, 대웅전 뒤로 저 멀리 최근에 조성한 거로 보이는 마애불이 있다. 당연히 확인을 위해 마애불로 향해, 점점 가까워져 정체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가 되자, 깜짝 놀랐다. 부처(佛)가 아니라, 산신(山神)이다. 마애신! 바위의 한 면을 깎아 산신을 새긴 건 처음 본다.
산신에게 무사 산행을 부탁하고, 대웅전으로 가며 보니, 애들이 놀고 있어 자세히 보니, 신자 가족이다. 피서 온 건가? 그들을 보며, 대웅전으로 돌아가니, 문이 활짝 열려있고, 돌부처 앞에서 스님이 독경 중이다. 투박하기 그지없는 돌부처를 보고 또 놀랐다. 최근 절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에 감탄하며, 본존불에게 신고한 후 그 모습을 기록으로 남겼다. 이후 다시 등산로로 돌아가기 위해 대웅전 앞을 가로지르는데, 감로수가 보여, 당연히 물맛을 보기 위해 거기로 갔다. 그리고 수건을 꺼내 감로수를 받는 곳에 던져 넣고, 그 물속에 있던 스테인리스 바가지를 꺼내 물맛을 봤다. 그런데, 원천이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수량은 넘쳐나는데, 미지근한 게 물맛은 영 아니다. 폭염이 감로수마저 변화시켰다. 반 정도 마신 후 바가지를 깨끗이 씻어 잘 둔 다음, 수건을 꺼내 물을 찐 후 머리에 뒤집어썼다. 아니면 죽을 거 같아!
등산로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 풀이 우거진 좁은 길을 따라 100여 미터를 올라가자,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 과거 임도다. 오늘은 날이 날인만큼, 숨이 가쁘지 않도록 최대한 호흡을 조절하며, 그 임도로 송암산으로 향했다. 그렇게 페이스 유지에 최선을 다하며 오르는데, 울창한 숲이라, 보이는 게 없고, 시작부터 땀으로 뒤집어써, 다른 곳에 신경 쓸 여유도 없었다. 와중에 4m/s로 분다던 바람은 소식도 없다. 그렇다고 그냥 갈 인간이 아니라, 숲 사이로 봉우리가 보여, 혹시 화채봉인가 해서 유심 살폈다. 그런데, 산사태로 조성된 바위너설의 모습과 골프공이 있는 그 뒤 봉우리를 보고, 대청이라는 걸 알았다. 골프공은 기상 관측 레이더 돔이다. 대청은 먼 나라 얘기라 생각했는데, 너무 가깝다. 그러면 화채는 더 가깝다는 얘긴데, 산행 전 지도에서 본 것과는 다르다. 물론 도상이 더 멀어 보이기는 하지만. 특히, 완만한 경사의 능선은 더욱!
숨이 가쁘지 않게 최대한 호흡을 조절하며, 계속 올라, 11시 29분 인솔 대장이 길을 혼동하지 말라고 했던 안부에 도착했다. 정확히는 능선에 올라선 거다. 당연히 길은 왼쪽! 여기서 길을 헷갈리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사거리다. 물론 이정표 따위는 없고, 대장의 특명을 받은 정글도를 든 산꾼으로 참여한 젊은 여성 인솔 대장과 2명의 산꾼이 바닥에 방향을 지시하는 종이를 깔아 놓았다. 안부에서 좌회전해 다시 길을 재촉하니, 이번에는 철탑이다. 역시 대장이 코스 소개 때 언급한 거다. 그런데, 대장이 언제 여기를 지났는지 모르나, 그사이 수많은 등산객이나 산꾼이 다녔는지, 길이 너무 뚜렷하다. 말인즉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는 거다. 그리고 주요 길목에는 산악회 리본이 안내하고 있는 길을 따라, 11시 59분 역시 대장이 언급한 헬기장에 도착했다.
정작 헬기장에 올라서자, 울창한 관목에 가려 길이 안 보인다. 그리고 표지도 없다. 선두의 방향 지시도! 그저 감으로 진행 방향으로 관목을 뚫고 들어가자, 길을 잃을 염려가 없는 등산로가 다시 나타나 그걸 따라가, 헬기장에서 5분가량 가자, 등산 앱이 고지 반경 50m 내라고 알려준다. 벌써? 놀라서 어딘지 확인했다. 송암산이다! 여기까지 오며 가끔 고도를 확인했지만, 800m가 되려면 아직 멀었다. 그런데 송암산이라니? 어쨌든 동영상을 찍으며 올라가, 12시 6분 정상에 도착했다. 숲으로 둘러싸인 정상에는 등산로 전면의 나무에 'Seoul Mountain'이 매단 표지가 정상석을 대신하고 있다. 그 표지에는 706m라고 높이도 표기했다. 왜? 800m가 넘는다고 기억하고 있었을까? 그래서 생각보다 빨리, 그리고 힘들이지 않고 도착할 수 있었다. 정상 표지와 삼각점을 기록으로 남기고, 인증을 찍기 위해 삼각대를 꺼내려는 데, 위로 올라오는 인기척이 들려, 다시 집어넣고, 그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헬기장 직전에서 추월한 부부다. 먼저 도착한 남편이 부탁도 하기 전 인증을 찍어줄까 물어봐, 핸드폰을 넘겨줬다. 그렇게 인증을 남기고 있는데, 부인이 도착해, 부부의 인증을 찍어주겠다고 하자, 거절한다. 해서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그들에게 정상을 넘겨주고 화채봉으로 향했다. 역시 보이는 게 없고, 호흡이 흐트러지지 않게 집중하며, 생각보다 완만한 능선 위로 난 등산로로 화채봉으로 향했다. 다만, 864봉에 오르는 막바지 깔딱은 다른 봉우리 깔딱과 다름없이 많은 체력을 요구한다. 이 역시 호흡이 거칠어지지 않게 조절하며, 힘겹게 깔딱을 오르는 중, 핸드폰이 알람을 울려 확인했다. 산행 중 늘 말썽을 일으키는 만보기다. '(주)비글' 선생님들! 몇 걸음 걸었는지 관심이 없다니까! 그런데, 산행 때마다 보다 보니, 이제는 짜증이 아니라 반가울 정도다. 이게 미운 정인가? 하긴 알람 소리만 들어도 만 보를 걸었다는 걸 아는 지경에 도달했다.
국립공원 지도에는 없는 864봉이라, 그런지 정상석이야 당연하고, 산악회에서 만든 표지 하나 없어, 인증이고 뭐고 정상이라는 걸 확인할 방법도 없다. 여기서 내려가면 A 코스와 B 코스를 나누는 둔전골 갈림길이다. 둔전골로 내려가면 A, 화채봉으로 직진하면 B다. 현재 시각 12시 49분! 마감까지는 5시간 이상 남았다. 그런데 화채봉까지의 거리를 몰라, 시간이 충분한지, 부족한지 가늠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어쨌든 점심시간이 끝 나가, 사당역표 김밥을 꺼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페이스 조절과 체력 유지를 위해 자리를 잡고 앉아서 먹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게 체력 유지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생각이고, 앉아 쉴 정도로 체력이 소모된 것도 아니라, 늘 그랬듯이 계속 가면서 먹기로 했다. 김밥을 먹으며 고개를 향해 내려가, 12시 57분경 둔전골 갈림길에 도착했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선두가 둔전골 방향과 화채봉 방향 양쪽에 방향 지시를 깔았다. 친절하게도 화살표 위에 A, B까지 써서!
864봉에서 내려오며, 갈림길 고개가 800m 이하로 내려가지 않기를 빌었으나, 기대를 저버리고 그 밑이다. 화채봉이 1,300m가 넘으니, 500m 이상 올라가야 한다. 말인즉 진전사지 주차장에서 송암산 올라간 거보다 더 올라가야 한다는 얘기다. 인솔 대장이 화채봉 쉽지 않다고 한 말을 깨닫는 순간이다. 그리고 더워도 너무 덥다. 해서 일단 앞에 있는 봉우리에 오른 다음 향후 거취를 결정하기로 하고, 숨이 가쁘지 않게 페이스를 조절하며 올랐다. 와중에 목도 마르고 밥 먹은 후 입가심도 필요해, 오이 한 조각을 꺼냈다. 그걸 먹으며 위로 오르는데, 오른쪽 숲 사이로 칠형제봉과 울산바위가 보여 오이와 같이 기록으로 남겼다. 역시 고도가 높아지니,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팍팍 꽂히는 햇살만 제외하면, 탁월한 조망을 보장하는 날씨라, 외설악의 모든 걸 감상할 수 있는 좋은 위치고, 최고의 기회다. 하지만, 아무런 방해물이 없는 전망대로 올라가 감상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과정이 자살 행위로 느껴지는 폭염이다.
기상청 예보와는 달리 바람도 없는 폭염에 지쳐, 무명봉에 오르다 말고, 등산로 바로 옆 그늘진 바위에 기대어 체력을 보충하며, 계속 전진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그런데 갑자기 거대한 뱀이 내는 소리처럼 들리는 휘파람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보니, 그 부부 중 남편이 내는 거친 숨소리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암릉을 올라오던 그도 등산로 옆 바위에 기대어 쉬고 있는 나를 보더니, 이해한다는 표정을 짓고 바로 위의 무명봉으로 올라가더니, ‘바람이 시원하다!’라고 외친다. 응? 바람. 그러면 여기 누워 있으면 안 되지! 해서 뒤따라오는 부인을 앞장세우고 정상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없다! 부인을 독려하기 위한 사기다. 덕분에 정상에 올라왔으면 됐다. 그들을 뒤로하고 길을 재촉하는데, ‘2시까지 한 시간가량 그늘에서 쉬다가 둔전골로 내려가겠다!’라는 부부의 대화가 들린다. 화채봉까지 얼마나 남았나, 예측이 안 되는 상황이라, 중간에 계곡으로 내려가기로 하고 비탐 전문 등산 앱의 지도를 확인했다. 벌써, 계곡 갈림길을 지나쳐, 다음 갈림길에서 내려가기로 했다.
화채봉 방향으로 가며, 왼쪽의 계곡 갈림길을 놓치지 않도록 주의했다. 그런데, 어느 지점을 지나자, 암릉이라, 그걸 즐기며 가다 보니, 바위가 앞을 가로막고 있다. 무명의 바위 정상이다. 국립공원 지도에는 없으나, 등산 앱 지도에는 바위라고 표기한다. 그 바위에 올라서자, 오른쪽으로 동해와 양양이다! 그리고 바로 아래 진전사지 조금 위에 있는 설악저수지도 보인다. 하지만, 물이 별로 없는 게, 과연 씻을 수 있을지 걱정된다. 그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고, 왼쪽으로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는지 확인하며 계속 가, 어느 순간 너무 많이 왔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지도를 확인했다. 예상이 맞았다. 너무 많이 왔다. 화채봉이 멀지 않게 느껴질 정도로. 현재 시각 1시 58분, 마감인 6시까지 4시간 정도 남았다. 지도상의 위치로 보면 대장이 주의를 준 화채봉 직전의 위험한 암릉이 어떤지 모르나, 1시간이 안 걸리는 거리다. 이렇게 된 마당에 화채봉까지 간다!
다시 화채봉을 목표로 암릉을 따라가자, 앞에 암봉이 가로막고 있고, 등산로는 그 암봉을 우회하고 있다. 분위기로 봐서는 그 봉우리를 넘는 길도 있을 거 같으나, 오늘은 그럴 상황이 아니라, 우회로로 갔다. 그런데, 그 우회로가 장난이 아니다. 왼쪽이 급경사 지역이라, 약간은 위험한 등산로를 따라, 여러 차례 미끄러지기도 하고, 너덜도 지나며, 이번 산행에서 가장 힘든 우회로를 통과해 고개에 올라서자, 쉬고 있는 산꾼이다. 당연히 화채봉을 찍고 돌아온 산꾼이라 생각했는데, 그가 나를 보고 더 놀란다. 그리고 '좋은'이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하자, 뒤에 누가 있냐고 물어, 없다고 하니, 앞서간 선두가 지금부터가 정말 위험한 암릉이라고 해 자기는 가지 않고, 선두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하며, '위험한데, 갈 거냐?'고 묻는 표정이다. 이거 때문에 왔는데, 당연히 그 방향으로 가자, 그럼, 선두에게 간다고 연락하겠다며, 별명을 물어 가르쳐 줬다. 그리고 50여 미터를 가자, 전망대, 정상으로 눈앞에 신세계가 펼쳐진다. 이걸 보기 위해 여기 왔다!
인솔 대장과 직전에 만난 일행의 말대로 혼자 즐기기 아까운 아래로 떨어지는 암릉이라, 뜨거워 죽겠지만, 동영상을 찍으며 내려갔다. 그리고 중간에 동영상을 중단하고 바위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기도 했다. 그렇게 화채봉으로 향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마지막 깔딱을 오르자, 위에서 일행 한 명이 내려오다가 나를 보고, '화채봉이 멀지 않다'라는 말을 남기고 갔다. 그리고 조금 더 가자, 네 명이 한꺼번에 내려온다. 인솔 대장이 임명한 선두 그룹이다. 그중 산꾼으로 참여한 젊은 여성 인솔 대장이 나를 보고 놀라더니, 지금 3시라, 서둘러야 한다고 경고한다. 사실 나도 그녀를 보고 놀랐다. 중간에서 포기한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라, 선두 그룹에 있었다. 그런데, 그들과 나 사이의 거리가 5분 정도밖에 안 된다. 고로 누구는 시간이 남고, 누구는 부족한 상황이 아니다. 그리고 선두와의 거리가 언제든 추월할 수 있는 5분 정도에 불과하다는 걸 확인한 순간 안심이 됐다. 어쨌든 알았다고 답하자, 별명을 물어 알려줬다. 그들과 헤어져 마지막 힘을 내, 깔딱을 올라, 등산 앱이 화채봉 반경 50m 내라고 음성으로 알려준 시각이 2시 54분이고, 2시 56분에 2018년 8월 3일 이후 5년 만에 화채봉에 도착했다.
온몸을 관통하는 듯한 내리쬐는 햇살 아래, 먼저 화채봉 정상의 상징인 두 삼각 바위를 기록으로 남겼다. 5년 전에는 누군가 쓴 '화채봉'이라 글이 있는 앞 삼각바위가 정상석 역할을 했는데, 지금은 아무리 찾아봐도 풍화에 사라져 그 글의 찾을 수 없다. 대신 2022년 5월 '서락비'라는 산꾼이 만들어 앞 삼각바위에 기대 놓은 철판이 화채봉임을 알려주고 있다. 처음 '서락비'라는 이름을 보고, 비슷한 별명을 쓰는 봉으로 착각하기도 했다. 이후 정상에서 주변을 둘러보고, 더위 먹을 걸 각오하고 여기까지 온 이유를 알았다. 이 절경을 보고 싶었다. 외설악의 전경! 해서 뜨거운 햇살을 온몸으로 버티며, 눈으로 보이는 걸 기록으로 남겼다. 당연히 보는 것과는 결과물이 다르나, 내가 여기 있다는 걸로 충분하다. 순서대로 우서락이 아니라 서락비의 화채봉 정상 표지, 대청에서 뻗어 나온 화채능선, 전문 암벽꾼만 갈 수 있다는 외설악 만경대부터 마등봉까지, 끝으로 속초와 동해다.
더는 못 견딜 정도로 햇살이 따갑고, 5년 만에 화채봉에 오른 목적도 달성했고, 직전에 만난 여성 대장의 마감 시간에 늦을 수도 있다는 경고도 있고 해, 바로 화채봉에서 떠나려다가, 그래도 인증은 남겨야 할 거 같아 숄더힙색에서 삼각대를 꺼내 설치하고, 5년 전과는 다르게 앞 삼각바위에 기댄 자세로 인증을 찍었다. 처음 사진은 카메라 시각이 너무 낮아 머리 위가 잘리는 바람에 위치를 조절해 다시 찍었다. 서두르면 시간이 더 걸린다는 법칙의 증명이다. 어쨌든 그렇게 인증을 남기고, 왔던 길을 되돌아, 하산을 시작했다. 물론 왕복하는 걸 죽도록 싫어하는 인간이라, 갈림길 표지도 없는 계곡 길을 찾아 내려가고자 하는 유혹이 강하게 일었으나, 정상을 떠난 시각이 2시 59분으로 마감까지 남은 시각이 3시간에 불과하고, 낙오 후 귀경과정이 만만치 않아, 어쩔 수 없이 왔던 길을 되짚어 빠르게 하산했다. 와중에 갈림길 표지로 리본이 하나라도 보였으면, 계곡으로 내려갔을 거다.
지난 온 길이라, 기억에 남아, 돌아가는 속도는 생각보다 많이 빨라, 화채봉을 떠난 지 20여 분이 지나, 일행 중 한 명을 추월하고, 3시 57분경 둔전골 삼거리에 도착했다. 여기서 화채봉까지 2시간 정도 걸렸는데, 반대로 화채봉에서 여기까지는 1시간가량 걸렸다. 고로 1시간을 단축했다. 여기서야 당연히 둔전골로 내려가야 해 직진이 아니라 우회전했다. 그리고 갈림길 정보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등산 앱의 지도를 캡처했으나, 조금 늦는 바람에 20여 미터 아래에서 캡처됐다. 그리고 급경사 하산길을 300여 미터를 내려가, 선두 그룹에 합류하자, 날 보고 다들 놀라는 눈치다. 어쨌든 마감까지 남은 시간은 알고 있으나, 남은 거리는 오리무중이라, 그저 선두 그룹과 함께 둔전골로 향했다. 정확히는 나를 포함 이들 일곱 명 중 여섯이 화채봉을 다녀왔고, 한 명은 위험한 암릉 때문에 직전에서 선두를 기다렸으니, 갔다 온 거나 다름없어, 28명 중 7명이 화채봉 동지다!
이제 선두 그룹이라는 운명 공동체와 움직이니, 여유가 생겨, 하산 중 절터와 이것저것을 기록으로 남기며 내려가, 4시 8분에 작은 계곡을 통과했다. 혹시 물을 마실 수 있을까 살폈으나. 마시기에는 수량이 너무 적어, 조금 더 내려가 큰 계곡에서 마시기로 하고 계속 갔다. 와중에 잠깐 길을 잃기도 했으나, 산꾼으로 참여한 인솔 대장의 기지로 길을 찾아, 다시 빠르게 내려갈 수 있었다. 그리고 4시 23분경 둔전골이라 생각되는 계곡에 도착해 보니, 둔전골이 아니라, 한참 위의 지류다. 그렇다고 그냥 갈 수는 없어, 시간이 늦었으니 빨리 가자는 여성 대장을 먼저 보내고, 우리는 작은 계곡에서 땀을 씻었다. 그리고 더는 물을 걱정할 필요가 없어, 아꼈던 물을 다 마셨다. 물론 머리에 두르고 있던 수건도 빨았다.
그렇게 1차로 땀을 씻은 후 다시 길을 재촉해 4시 37분경 물이 없을 거라는 기우와는 달리 물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는 둔전골 위에 도착했다. 이제는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 물론 버스가 기다리는 주차장까지의 거리를 모르니, 여유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른다. 그나마 그걸 알고 있는 여성 대장이 먼저 가게 둔 것이 아쉬울 뿐이다. 기록을 위해 동영상을 찍으며 계곡으로 내려가 보니, 여성 대장도 땀을 씻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다 우리가 다 도착하자 다시 내려가자고 재촉하는데, 다들 알탕하고 가자는 분위기라, 산꾼으로 참여한 대장만 먼저 출발하고, 우리는 각자 흩어져, 알탕 하거나, 알탕 후 준비한 하산주를 마셨다. 물론 나도 다른 산행과 같이 둔전골에서 대략 7분 정도 씻고, 윗도리를 빨아 입은 후 계곡을 따라 먼저, 주차장을 향해갔다.
왼쪽으로 계곡을 빠져나갈 길을 찾으며, 씻은 곳에서 100여 미터를 내려가자, 한 무리의 산꾼이 자리를 잡고 앉아, 무언가를 먹고 있다가, 나를 부른다. 해서 자세히 보니, 우리 일행이다. 그중에는 산행은 하지 않고, 계곡 트레킹을 하겠다고 얘기한 인솔 대장도 있다. 그리고 먼저 내려가겠다고 했던, 산꾼으로 참여한 여성 인솔 대장은 당연히 옷을 입은 채 물속에 있다. 공식 인솔 대장이 여기에 있으니, 서두를 이유가 없어, 물에 들어간 거다. 나 또한 서두를 이유가 없어, 앉으라는 곳에 앉아, 따라주는 대로 빨갱이와 백주를 마셨다. 그리고 막 도착한 화채봉 멤버를 위해 다시 라면을 끓여 준다. 그렇지 않아도 배가 고팠는데, 감사히 먹었다. 예상하지 못한 호의로 배를 채우고, 한 번 더 알탕하고 오겠다는 노년의 일행을 뒤로하고, 먼저 주차장으로 향했다.
계곡을 따라 난 임도로 하류로 내려가며 둔전골의 모습을 계속 관찰했는데, 위에서 본 바짝 마른 설악 저수지의 모습과는 달리, 그나마 물놀이는 가능한 수량이다. 더 풍부했으면 좋겠지만, 더운밥 찬밥 가릴 때가 아니다. 계곡 중간에는 구명복까지 차려입은 예닐곱의 여성이 물에 들어가 노래를 부르며 노는 모습도 보인다. 그 모든 걸 관찰하며 내려가는데, 다시 갈증이 심해진다. 그때 생각난 게 인솔 대장이 얘기한 석간수다. 주차장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고 했었다. 그걸 기대하며 내려가, 5시 25분경 설악 저수지 상류를 지나며 저수지를 보니, 저수량이 부족한 정도가 아니라 바짝 말랐다. 그 모습에 폭우가 내리던 시절 다른 국립공원은 다 통제됐음에도, 설악산만 통제를 안 했던 이유를 알 수 있다. 이 동네는 비가 안 온 거다. 마른 저수지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고 조금 더 내려가자, 왼쪽으로 작은 폭포다. 이걸 석간수라 부르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물이라, 그 물을 생수병에 받아 마음껏 들이켰다.
임도로 떨어지는 작은 계곡의 폭포수로 갈증을 해소하고 다시 길을 재촉해, 5시 42분 현재의 진전사 진입로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는 포장도로다. 그리고 생각보다 경사가 심하다. 오전에 진전사로 가며, 굳이 경사가 심하고 험한 등산로로 가는 이유가 뭔지 궁금했는데, 경사는 여기도 만만치 않다. 그런데, 석간수를 못 봤다. 좀 전의 그 작은 폭포가 석간수? 그리고 진전사 이정표에 '대한불교조계종 종찰'이라는 글이 눈에 띈다. 종가(宗家)처럼, 종찰(宗刹)이라는 뜻인 거 같아, 검색해 보니, 역사성은 인정하나, 현재의 진전사를 종찰로 인정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어쨌든 그것도 기록으로 남기고 급경사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주차장으로 향해 마감 9분 전인 5시 51분에 버스가 주차 중인 진전사지 주차장에 도착하는 거로 산행을 종료했다. 처음 인솔 대장이 얘기대로, 비록 폭염 상황이었으나, 6시간 30분이면, 다녀올 수 있는 화채봉이다. 그럼, 대청까지 달려, 소청에서 자거나, 오색으로 하산해도 된다는 얘기다. 한번 시도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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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에 도착해 오전에는 보지 못한 계단 아래에서 보이는 국보 제122호 양양 전진사지 삼층석탑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고 버스로 가, 차에 타기 전 등산 앱을 종료했다. 그리고 버스에 타자, 승객으로 참여해 많은 도움을 준 여성 대장이 하이 파이브를 청해 손바닥을 마주쳤다. 화채봉 직전에서 만났을 때, 마감 시간 전까지 도착하지 못할 거로 생각했던 인간이 막상 하산은 같이해, 놀란 듯하다. 하긴 나도 지난 설악산 종주 때 팔뚝 부상이라 산행에는 참여하지 않는다는 대장의 말을 반신반의했으나, 이번에 달리는 걸 보고 감탄했다. 그리고 인솔 대장과 노년의 산꾼들이 도착해 하나둘 버스에 타는 과정에 최고령의 산꾼과 버스 기사와 말다툼이 벌어지며, 일촉즉발의 순간도 있었으나, 인솔 대장이 현명하게 대처해 별문제 없이, 6시 5분경 서울을 향해 출발했다.
물이 더럽고 깨끗한 걸 떠나, 씻었던 계곡물을 배불리 마시고, 주차장으로 가는 길목에 있던 작은 폭포에서도 마찬가지로 마셨으나, 계속 목이 말라, 빨리 휴게소에 도착하기 만을 바라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보니, 계속되는 터널이다. 뭔 놈의 터널이 이렇게 많은지! 어쨌든 그렇게 터널을 통과하다가, 휴게소로 들어간다는 신호로 갑자기 실내등이 들어온다. 그러자 졸고 있던 인솔 대장이 깨어 10분간 휴식을 선언했다. 7시 10분경으로 올 때와 같은 홍천 휴게소다. 버스가 휴게소에 자리를 잡자마자, 바로 내려, 일단 볼일을 보고, 편의점으로 달려가 주린 배도 채울 겸 식혜를 들고나와 밖의 식탁에 앉아, 그대로 다 마셨다. 그리고 버스로 돌아가, 조금 있으니, 휴식이 끝나고 다시 서울로 출발한다.
서울로 향하는 고속도로는 올 때와는 달리, 거의 막힘없이 달려, 정신 차려보니, 가평휴게소를 지나고 있다. 당연히 평일 휴가를 떠난 피서객이 당일 돌아올 일은 없으니, 돌아가는 고속도로가 한가할 거라는 건 예상됐던 거다. 물론, 서울 직전은 평·휴일, 피서철 따지지 않고 막히는 구간이야! 여전하지만. 그나마 평소보다 일찍 서울로 들어온 버스는 복정에서 대부분 승객을 내려주고, 9시 2분에 양재역에 도착했다. 양재역에서 내려, 지하철 구내로 들어가 먼저, 편의점으로 가 생수 한 통을 사, 반을 그 자리에서 마셨다. 그리고 집으로 가 씻고, 밥과 함께 삼겹살, 빨갱이로 저녁을 겸해 하산주를 마셨다. 그리고 아큐아슈즈를 신고 돌아다닌 덕에 만신창이가 된 발을 치료했다.
중간에 중도 탈출도 고려했지만, 어쩌다 보니, 처음 계획대로 설악산의 오지 '둔전리 진전사지 → 임도 삼거리 → 헬기장 → 송암산 → 864봉 → 둔전골 삼거리 → 화채봉 → 둔전골 삼거리 → 절터 → 둔전골 → 설악 저수지 → 진전사지'의 15.5km(트랭글) 원점 회귀 코스를 7시간 15분 동안 탐험했다. 이동 6시간 52분, 휴식 23분!
5년 전과 같은 날 같은 화채봉에 오른 것도 대단한 인연이나, 폭염 아래 거의 죽을 거 같은 날씨도 같다는 게 더 놀라운 산행이었다.
5년 전에는 화채봉에서 피골서능선으로 하산했고, 이번에는 피골동능선으로 화채봉으로 올라간 산행으로, 각각 피골을 사이에 두고 내려오고, 오른 산행이나, 정작 피골은 가보지 못해, 언젠가 시도해 볼 예정이다.
중간에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으나, 화채동능 정상에 올라서자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대청에서 화채봉으로 이어지는 화채능선의 전경과 화채봉에서 조망한 외설악 전경만으로도 충분히 보상된 산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