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같은 시간 / 정선례
미용실에서 머리를 손질하고 와인색으로 염색까지 했다.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이 낯설다. 그곳에서 한나절을 보내고 밖으로 나왔다. 간간이 뿌려지던 빗방울도 그쳤다. 개운한 마음으로 나와의 약속을 떠올린다. 만 보 걷기이다. 힘들면서도 묘한 희열을 느끼게 하는 것이 걷기운동이다. 인근 커피숍에서 챙겨간 보온병에 뜨거운 레몬차를 담았다. 활짝 갠 날씨까지 발걸음에 바람을 불어넣는다. 나잇살로 자꾸 불어나는 체중을 줄여볼 요량으로 최근 걷기를 시도했다. 맘 먹고 걷기 앱 워크온을 깐 것도 그런 이유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오랫동안 가지 않았던 동대문 뒤편 낙산공원 성곽길을 걸어보기로 한다.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동대문역에서 내려 1번 출구로 나왔다. 흥인지문을 휘돌아 차들이 사방으로 꼬리를 물고 질주한다. 사대문의 하나인 보물 제1호 앞에 마음의 목례를 보냈다. 동쪽에 있는 정문으로 어진 마음을 북돋운다는 뜻을 가진 문을 대하노라니 한껏 마음이 정돈되는 기분이다. 역사 앞에 서면 숙연해진다. 역사는 잊혀진 과거가 아니다. 우리의 뿌리이자 오늘과 내일을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동대문에서 낙산으로 오르는 성곽길을 들어선다. 가벼운 운동화 차림이어서 발이 편하다. 예전에는 판잣집이 즐비하고 흙길에는 잡풀도 무성했는데 깔끔하게 단장되어 있다. 사뭇 달라진 풍경은 격세지감을 맛보게 한다. 언덕길이 펼쳐있지만 그렇게 가파르지 않다. 누구나 걷기에 무리가 없을 만큼. 오랜 풍상을 겪은 역사의 부침의 흔적에도 불구하고 성곽길에서 내려다본 도시는 씨줄과 날줄처럼 튼튼하게 짜여 결곡하게 연결되어 있다. 서울 도심에 이렇듯 시민 건강에 도움을 주고 젊은이들의 데이트코스로도 사랑을 받는 걷기 좋은 길이 있다니 흐뭇하다. 도심 풍경이 정겹게 클로즈업되어 다가오는 까닭일 것이다. 수십 년을 한 번에 통과한 기분이다.
저 멀리 광장시장, 평화시장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아버지 직장이었던 통일상가도 보인다. 예전 동대문야구장에서는 프로축구 경기를 가끔 했고 고교, 대학 아마추어 야구 경기를 했다. 주로 야간에 경기가 열렸다. 그때마다 야간조명의 거대한 불빛이 대낮을 방불케 했다. 야구공이 담장을 넘기라도 하면 응원석에서 울려 퍼지던 환호성이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어렸을 때부터 멀미가 있었던 나는 어지간한 거리는 걸어 다녔다. 경기가 있는 날이면 운동장 일대 노점상에서 주로 팔았던 인형이나 머리핀 등 액세서리를 구경하는 걸 좋아했다. 이른 저녁을 먹고 동생 손을 잡고 놀다 오곤 했다.
그 무렵 어머니가 창신동 골목에 춘천닭갈비 식당을 하셨다. 일 년에 설날과 추석날 두 번만 문을 닫았다. 창신동 일대에서 맛있다고 소문이 자자해서 퇴근 시간이면 자리가 없을 정도로 식당 안이 북적였다. 저녁 늦게 일을 마치고 파김치가 되어 신설동까지 20여 분 남짓 되는 거리를 걸어 다니셨다. 어느 날 나와 동생은 저녁 시간에 식당에 들렀다. 어머니는 이화여대 부속병원에 막국수를 배달하러 가시고 안 계셨다. 가게 안의 손님도 많은데 배달까지 다니느라 얼마나 힘드실까? 집으로 돌아오는 어머니 발걸음이 왜 자꾸 뒤처져 밀렸는지, 모래주머니를 종아리에 매단 듯 무거워 보였는지, 나는 그때의 어머니 나이가 되고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왜 빨리 걷지 못하는 거야?”
뒤에서 밀며 핀잔을 주고 답답해했으니 한참 철이 없었다. 그때 어머니는
“힘드니까 내일부터는 오지 마라.”
나직한 목소리로 대응하셨다.
육중한 무쇠 철판의 무게를 온몸으로 들고 날랐던 두 어깨가 얼마나 무거우셨을까 그때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수년 후에 어깨 수술과 허리 수술 다리 수술을 연거푸 하게 되었으니, 그때 일독이 원인이었을 것이다. 고단한 세월을 지나오는 동안 도대체 어머니는 숨을 쉬고나 사셨을까? 숨구멍이나 있으셨을까?
어머니는 말로서가 아닌 행동으로 우리를 가르쳤다. 삶의 힘든 오르막길을 어떻게 견디며 오르셨는지 놀랍다. 바쁜 와중에도 주방 창문 쪽에는 우리들 간식이 마련되어 있었다. 작은 화단에는 해마다 어머니가 가꾼 봉숭아꽃이 피었고, 친구들을 우리 집에 모이게 했다. 친구들이 놀러 와 봉숭아꽃을 따서 손톱에 물을 들였다. 백반을 넣고 찧어 손톱에 올리고 비닐로 감아 꽃물이 예쁘게 들기를 가슴에 두 손을 얹고 잠든 기억이 어제인 듯싶다. 내가 지금껏 어려운 고비와 맞닥뜨려 꿋꿋이 이겨내고 오늘에 이른 것은 치열한 삶의 자세를 부모님으로부터 배웠기에 가능했다. 산다는 것은 참고 견디는 일이라는 걸.
세월은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 이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나도 어머니처럼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살아가겠다고 다짐한다. 팔순을 넘긴 나이에도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면 선뜻 봉사활동을 하시는 어머니는 내 가슴의 반짝이는 윤슬이다. 창신동에서 충신동까지 걸어 다녔던 그때의 젊음은 사라졌지만, 아직도 두 다리 짱짱하고 정정하신 편이라 마음 놓인다.
또다시 주말이다. 오늘은 국립산림과학원 홍릉 숲을 가자고 며칠 전부터 어머니와 딸에게 말해놓았다. 당뇨 관리를 위해 평소 하천을 매일 걷는 어머니는 달뜬 목소리로 반긴다. 나와 달리 정적인 성격인 딸은 움직이는 걸 싫어해서인지 시큰둥하니 반응이 없다. 주말이면 종일 잠만 자고 텔레비전 보는 것으로 하루에 백 보도 걷지 않은 막내딸의 팔을 잡아끌다시피 해서 밖으로 나오는 데 성공했다. 어머니와는 고려대역 3번 출구에서 만나기로 이미 약속을 해두었다. 딸을 데리고 나오는데 성공하지 못하면 어머니와 둘이 숲길을 걸을 요량이었다. 어머니가 반색하며 외손녀의 두 손을 잡자 여전히 뾰로통한 표정이던 딸이 억지웃음을 짓는다.
국립산림과학원 편백숲에 당도하니 시간은 벌써 점심때가 되었다. 늠름하게 서서 오가는 사람들을 지켜주는 오래된 반송 나무에 눈길이 간다. 처음에는 뒤에서 밀어야 걸음을 떼던 딸아이의 발걸음이 가벼워져 어느 지점에서는 앞장서기도 했다. 어머니와 나는 딸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흡족한 미소를 보내며 응원했다. 계단 산책길에서 만난 청설모 한 마리 우리를 빤히 쳐다보더니 자라 등가죽 닮은 소나무 뿌리를 타고 재빠르게 우듬지에 닿아 내려다본다. 딸아이는 그 모습이 마냥 신기했는지 휴대전화를 꺼내 든다.
지난가을에 어머니와 이곳을 찾았을 때 귀한 노랑 상사화를 보고 감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신우대나무 군락지 앞에서 우리는 어머니를 모시고 사진을 남겼다. 한 바퀴 휘리릭 돌아 나와 쭉쭉 뻗은 편백 숲에서 새소리까지 듣고 나니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롭다. 모처럼 우리 세 모녀가 함께해서 선물 같은 시간이었는데 딸의 기억 창고에는 손을 맞잡고 걸었던 오늘의 시간이 어떤 추억으로 보관될까? 먼 훗날 할머니와 엄마와 함께 일상에 찌든 마음을 말끔히 날려 버렸던 소중한 시간으로 기억되길 소망한다. 이런 시간을 반강제적으로라도 자주 가져서 딸에게 걷는 즐거움을 유산으로 물려줘야겠다. 도심 속에 이런 힐링 숲이 잘 관리되고 있다는 건 축복이다.
첫댓글 서울 여자셨네요. 와인색으로 염색하신 모습 내일 보나요?하하.
어쩜 문장이 다 예뻐요. 감성적인 글을 정말 잘 쓰시는 것 같아요.
선생님 글 읽으며 많이 배웠습니다. 고맙습니다. 글쓰기를 사랑하는 선생님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하하.
서울 멋쟁이셨군요.
그 숲이 어디쯤에 있는지 감도 안 잡히네요.
3대가 함께하는 모습, 보기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