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이진화 | 날짜 : 09-09-16 03:27 조회 : 1605 |
| | | 달빛 영화관
이진화
가끔 친구들에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인지’ 묻는다. 그 질문을 받으면 누구라도 한동안 생각에 잠긴다. 머릿속에서 영화 상영되듯 수많은 장면이 재생되다가 어느 한순간 얼굴이 환해진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모두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나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저절로 웃음이 나오고 행복해진다. 1974년 1월, 나는 대학교 합격통지서를 받아들고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자카르타로 향했다. 당시 아버지는 인도네시아 공관에 근무하고 계셨다. 고등학교 시절 내내 혼자 떨어져 살다가 부모님을 만나러 가는 길은 기대와 설렘이 가득했다. 당시만 해도 자카르타로 가는 직항로가 없어서 홍콩에서 하룻밤을 자고 가루다 항공으로 바꿔 타야 했다. 1970년대는 동서 냉전 시대라 반공 드라마나 영화가 많았다. 열아홉 살의 여자아이가 범죄와 첩보 드라마의 주 무대로 나오는 홍콩의 호텔에 혼자 머문다는 것은 말할 수 없이 무섭고 두려운 일이었다. 나는 유사시에 도움을 청하라며 써주신 아버지의 메모를 손에 쥔 채 밤을 새다시피 했다.
다음 날 비행기 옆좌석에 앉았던 한국인 건설회사 직원은 왜 학생 혼자서 인도네시아에 가느냐고 물었다. 아버지의 메모를 보여주자 그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인도네시아에 대해 여러가지 이야기를 해주고 세심한 친절을 베풀었다. 아버지의 메모지에는 " 저는 인도네시아 공관에 근무하는 ㅇㅇㅇ입니다. 제 딸이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하오니 도움을 청하면 부디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전화번호 ******"라고 영어로 적혀 있었다.
자카르타 공항에 내리니 후끈한 날씨에 특유의 향료 냄새가 코를 찔렀다. 대사관 직원인 아버지는 보세구역 안까지 마중을 나오셨고, 어머니와 세 남동생은 환호성을 지르며 달려와서 나를 포옹했다. 그 때 느꼈던 안도감과 푸근함, 가족들의 전폭적인 환영과 지지를 받을 때의 충만함이 곧 행복이 아니었을까. 혼자서 늘 외롭고 불안하다가 아무 염려 없이 안전하고 풍요로운 환경에 옮겨 앉은 나는 마치 소공녀라도 된 듯 의기충천했다. 지금도 그 순간을 이야기하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뛰고 온몸에 힘이 생긴다. 젊고 능력있는 아버지와 정다운 어머니, 든든한 세 동생이 환하게 웃으며 나를 맞이하는 장면이 자동 재생될 수 있도록 설정을 해놓았다. 그곳은 내 서재가 있는 다락방의 하늘창이다. 밀어 올리면 바로 하늘이 보이는 천창은 항상 행복한 영화가 상영되는 스크린이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머리를 짓누를 때, 왜 그런지 쓸쓸하고 소외감을 느낄 때, 울적하고 비참한 마음이 뜰 때, 고개를 들어 천창을 바라본다.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릴 때도 있지만 맑게 갠 하늘이 환하게 내다보이는 날이 많다. 그것이 그냥 창이든, 문이든, 벽이든 ‘가장 행복한 순간’을 떠올릴 수 있으면 그곳이 자신만의 스크린이 된다. 그리고 나만의 영화가 상영되는 그 순간을 재경험 하며 힘을 얻을 수 있다. 그 힘은 의외로 강력하며 긴 수형 생활이나 억압되고 격리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목숨을 지탱할 용기를 준다. '죽음의 수용소에서-삶의 의미요법'를 쓴 빅터 프랭클 박사나, 소말리아 사막에서 태어나 수퍼모델을 거쳐 세계인권대사가 된 '사막의 꽃' 와리스 디리 역시 어떤 환경에서도 주관적인 몰입의 순간을 끌어낼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세상은 점점 살기 좋아진다고 하는데 사람들은 사는 게 더 힘들다고 한다. 그래도 누구나 생각만 하면 미소가 떠오르는 순간은 있을 터이니 그들에게 거듭거듭 말을 걸어야겠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입니까? 어느 단추를 눌러 영화의 멋진 장면을 펼치실래요?’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자원들이 내 안에서 차오를 때, 무기력하고 자신감 없던 내가 '할 수있는 나'로 변화된다. 활력과 아이디어가 넘치고 몸도 가쁜해진다. 그런 상태를 리소스풀(Resourceful)한 상태라고 한다. 내면에 자원이 그득하다는 뜻이다. 만약에 내가 일찌감치 행복한 영화관을 열었더라면 우울하고 힘겨웠던 25년 간의 시집살이를 좀 더 수월하게 하지 않았을까 싶다.
날씨가 선선해지면서 다락방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다. 한낮의 복사열이 지붕을 데우는 여름을 보내고 나서 가끔 천창으로 머리를 내밀어 여명과 노을을 보고 밤하늘을 구경한다. 천창을 들어 올리면 나는 언제든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만날 수 있고 간절히 원하는 미래에 대해 예고편을 만들 수도 있다. 내 삶의 작가이며 나레이터인 나는 남은 이야기를 낭만적인 음조로 낭독해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오늘은 보자기만한 하늘창 밖에 가을 달이 환하다. 밝아진 나의 귓가에 달빛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
| 임재문 | 09-09-16 06:29 | | 이진화 전 회장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그렇게 가장 행복한 때가 언제였습니까? 하고 묻는다면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궁금합니다. 아마도 노총각시대를 마감하고 결혼에 골인해서 미녀 아내를 맞이한 때가 아닌가 그렇게 생각이 듭니다. 저는 천창을 보지 않아도, 옆에 제 아내만 보면 아마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지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 |
| | 임병식 | 09-09-16 06:44 | | 하늘로 열린 창을 통해서 저도 덩달아 높아진 하늘을 느끼는 기분입니다. 가을이 성큼 닥아왔습니다. 어린 나이에 혼자서 하룻밤을 자야하는 비행기를 타면서 얼마나 설레고 떨렸을까, 짐작이 됩니다. 그리고 자랑스럽게 부모님 앞에 합격소식을 전하는 모습도 그려지는군요. 선생님께서 하시는 일과도 사유가 닿아있어 공감을 일으킵니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 |
| | 일만성철용 | 09-09-16 11:00 | | 글을 읽다 보니 가난했던 대학 합격 시절이 주마등 같이 떠오릅니다. 등록금 못내서 원서를 못쓰다가 겨우 써 받은 것이 마감3시간 전, 그때 인천에 살던 저는 서울갈 차비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인천역에 가서 접수하러 가는 모르는 사람에게 부탁했던 일. 합격을 하고도 등록금이 없어 내가 크면 자식에게 이런 고생은 시키지 않으리라 울면서 결심하던 일. 고학으로 4년을 마치던 일.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이 작가님의 당시 가정이 부럽고 부럽네요. ilman의 가장 행복한 순간은 홀로 무거운 배낭을 지고, 덕유산, 설악산, 지리산을 종주할 때였습니다. | |
| | 이예원 | 09-09-16 18:11 | | 이진화 선생님
인생의 기쁨은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이 나에게 늘 refreshment 하게 하지요. 나이가 들어 갈 수록 즐거웠던 좋은 추억으로 살아 갑니다. 가족을 잘 알고 있는 나에게 더욱 실감을 느낌니다. | |
| | 이진화 | 09-09-17 01:01 | | 임재문 선생님, 임병식 선생님, 일만 선생님, 이예원 선생님 감사합니다. 작가회 동인으로 함께 나눴던 시간들도 행복한 추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내일부터 대만에서 개최되는 세미나에 다녀오겠습니다. | |
| | 최복희 | 09-09-17 09:18 | | 상쾌한 9월의 아침! '행복의 영화관'을 감상하며 하루의 행복을 맞봅니다. 문학은 문자로 인간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이라고 했는데 바로 그 순간을 맞이한 기분입니다.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저로서는 이진화 선생님의 삶이 제가 꿈꾸던 아름다운 동화 속의 이야기로 다가옵니다. 내게도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있을텐데 빨리 떠오르질 않는군요. 행복을 찾는 동기부여를 해주셔서 고마워요. 좋은 여행 되십시오. | |
| | 이희순 | 09-09-17 13:29 | | 아무나 보지 못하는 달빛 세상과 아무나 듣지 못하는 달빛 흐르는 소리를 들으신 선생님은 참 행복하신 분인 듯합니다. 오는 날들에 선생님께서 그 달빛 영화와 신비의 소리를 누군가에게도 보여주시고 들려 주신다면 행복은 두 배가 되리라 생각해봅니다. | |
| | 정진철 | 09-09-18 10:17 | | 이진화 전회장님 글도 어쩜 고렇게 예쁘게 쓰시나요. 특히 어떤 순간에도 주관적인 몰입을 끌어낼수 있는 사람들이란 말에 공감합니다.-죽음의 수용소에서 삶의 의미 요법 그책은 저는 아직 보지 못했지만 한번 읽어 봐야 겠어요 예전에 그런일에 관여하고 있을때 나는 취조관이었고 상대방이 처음 들어오는 사람이라면 숨막힐듯한 좁은 공간에서도 여유롭게 설렁탕을 먹는 피의자의 모습을 보고 어쩌면 저렇게 여유를 부릴수 있을까 한적이 있답니다.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 |
| | 김종선 | 09-09-18 14:20 | | 대학합격 소식을 안고 부모님 곁으로 가는 여행길 , 상상만으로도 그 충만한 행복감이 느껴집니다. 행,불행의 인생길! 외롭고 고독하고 슬퍼도 그래도 내일의 행복을 맞으러 지금 이순간 살고 있는지도 모르죠. 희망이 없다면 오늘하루도 살기 힘들기에 ..... 자기 최면을 걸면서 힘차게 달리자구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
| | 박영보 | 09-09-18 17:40 | | 미루나무 사잇길을 내 달리다가 소똥을 밟고 넘어지면서도 깔깔 거리던 시절. 백로들이 어우러져 군무를 추던 장항선 철로 저편의 선산. 그 아래로 흐르는 냇가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라며 쌓아 두었던 지난날의 기억이 없다면 오늘 나는 무슨 추억을 더듬어 가며 행복이라는 걸 만지작 거릴 수 있을까. 이선생님의 글을 읽어가다보니 지난 날들이 떠 오릅니다. | |
| | 김창식 | 09-09-19 15:54 | | 저도 '하늘로 열리는 조그만 창'이 있었으면' 하고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달이 지나가고, 별이 쏟아지고, 이따금 나무 그림자가 초대받지 않은 손님처럼 '불쑥' 찾아들고, 비오는 날이면 빗방울 소리가 구슬처럼 부딪는 창이 하나 있었으면...! | |
| | 이진화 | 09-09-23 23:03 | | 대만 세미나 잘 다녀왔습니다. 대만대학에서의 세미나는 진지하고 열정적이었습니다. 세미나를 통해 배운 것이 많습니다. 아름다운 자연 풍광과 무궁무진한 문화유산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것 같습습니다. | |
| | 정희승 | 09-09-24 12:52 | | 스크린은 드러내면서 가린다고 하더군요. 괴롭고 힘들 때 스위치만 누르면 그런 것을 가리고 행복했던 순간이 자동으로 펼쳐지는 그런 스크린이 저에게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버님이 참 자상하신 분이셨군요. 저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 |
| | 박원명화 | 09-09-26 11:51 | | 세상에!!! 그 바쁜 와중에도 이런 좋은 글을 써서 읽는 사람의 마음을 포근하게 해주시니, 정말 놀랍습니다. 이진화 선생님! 그 작은 몸 어디에 그런 에너지가 숨어 있는지요. 정말 궁금해 미칠 것 같은데...알려주세요. 휼륭하신 부모님 밑에서 많은 것을 배웠으니 오늘의 선생님의 삶의 수질이 높은 것은 아닐까요. 남을 배려하는 마음도 그렇고,,, | |
| | 민문자 | 09-09-28 13:37 | | 이진화 선생님의 추억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이제 비로소 평소의 그 단아한 아름다움의 진원지를 알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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