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간판 모두 '초운곡(初云谷)'이라는 하나의 커피 전문점을 나타낸다. 리장고성은 문화유산 보존을 위해 상점 간판 규정이 엄격한 편인데, 보통 가게 입구 위쪽에 동파문자로 꾸민 디자인 간판과 한자·영문이 적힌 실제 상호 간판을 나란히 걸어두거나 앞뒷면으로 배치하곤 한다.
리장 고성과 운남성 일대의 간판들은 단순히 가게 이름과 연락처를 크게 노출해 눈길을 끌려는 목적을 넘어선다. 그 지역의 고유한 동파문자 문화, 목조 건축의 아날로그적 질감, 그리고 주변 경관과의 조화를 깊이 고민하고 디자인한 결과물이이다. 우리나라 상권의 간판들이 시인성과 정보 전달(전화번호, 큰 글씨)만을 최우선으로 두다 보니 시각적 피로감을 줄 때가 많은 반면, 운남에서 보는 간판들은 독특한 미학을 지니고 있다.
간판이 무조건 크고 화려해지면 서로의 빛과 글자에 묻혀 결국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시각적 공해'가 된다. 이는 여행자에게 피로감을 주고 거리의 정체성을 파괴하여 장기적으로는 상권의 매력을 떨어뜨린다. 자기 지역의 역사와 유산에 대한 자부심이 바탕에 깔려 있을 때 비로소 작고 정갈하지만 속 깊은 디자인이 나올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황리단길, 행궁동, 혹은 전통 한옥마을처럼 간판의 크기를 제한하고 거리의 역사적 맥락에 어우러지도록 목재나 기와, 절제된 폰트를 활용하는 시도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효율성과 시인성만을 좇는 천편일률적인 플라스틱 간판이 많아 아쉬움이 남는다.
황리단길을 비롯한 국내 여러 감성 상권에서 일본어, 영어 등 외국어로만 표기된 간판이 늘어나면서 실제로 법적·문화적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현행 법률상 불법에 해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지자체의 단속이나 정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한글 없이 일본어나 영어로만 가득 찬 간판'은 상당수 법적 기준을 벗어난 상태이다.
지역 고유의 역사와 전통(경주 황남동의 한옥)이라는 공간적 맥락 속에서, 거리의 정체성과 상관없는 외국어 간판이 늘어나는 것은 거리 전체의 매력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많다. 한글 표기가 전혀 없으면 연령대가 높은 방문객이나 한글/한국 문화를 즐기러 온 외국인 관광객 모두에게 오히려 불편을 주기도 한다.
도시재생과 상권 분석에서 자주 다루는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the Commons)’과 ‘젠트리피케이션의 역설’인 것이다. 개별 상인 입장에서는 "나 하나쯤이야 이국적인 일본어/영어 간판을 걸어서 당장 SNS 눈길을 끌고 매출을 올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행위가 모여 거리 전체의 정체성을 파괴하고 결국 상권 전체의 매력을 떨어뜨리게 되는 것이다.
대체 불가능한 정체성의 상실로 이어진다. 사람들이 경주 황리단길이나 전주 한옥마을을 찾는 이유는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한옥과 한국적 고즈넉함’이라는 대체 불가능한 가치 때문이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일식당 거리, 힙스터풍 외국어 간판 거리로 변하는 순간, 그곳은 더 이상 ‘경주’일 이유가 사라지며 방문 목적을 잃게 된다.
이는 결국단기 트렌드 소모와 상권의 수명 단축으로 이어진다.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mable)한 사진용 인테리어와 외래어 간판은 반짝 유행을 탈 수는 있지만 유통기한이 매우 짧다. 리장고성처럼 수백 년을 이어온 문화와 역사를 기반으로 한 디자인은 시간이 흐를수록 깊이를 더하지만, 단기 상업성에 기대어 흉내 낸 공간은 유행이 지나면 금세 외면받고 폐허가 된다.
고객층의 분열과 방문객 피로도가 증가한다. 한글 표기가 완전히 배제된 외국어 간판은 중장년층이나 가족 단위 관광객, 혹은 ‘한국의 진짜 멋’을 보러 온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심리적 거부감과 거리를 준다. 시각적 혼란과 맥락 없는 가게들이 밀집되면 거리 전체가 피로한 공간으로 변하게 된다.
리장고성은 지자체와 지역 공동체가 "우리의 나시족 문화와 동파문자가 사라지면 고성 전체의 상업적 가치도 끝난다"는 것을 명확히 인지하고, 상호와 간판에 동파문자 병기를 의무화하는 엄격한 가이드라인을 적용했다. 그 결과 상업성과 문화 보존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반대로 국내 주요 상권에서는 눈앞의 임대료 상승과 단기 수익에 치중하다 보니, 공동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행정적 규제나 상인들 간의 자율적 협의체가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공유의 자산(거리의 풍경과 역사성)을 공짜로 끌어다 쓰기만 하고 아무도 정성껏 가꾸지 않는다"는 것은 당장의 유행에 휩쓸려 자신들의 가장 강력한 무기(고유의 문화와 정체성)를 버리는 현상으로 이어지고 결국 상권 전체의 자멸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괴테의 말에서 유래해 널리 쓰이는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명언을 그대로 증명해 주는 비교이다. 리장고성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는 과정에서 나시족의 동파문자, 고유 목조 건축, 수로(水路) 시스템이라는 '리장다움'을 철저히 지켜내는 것이 곧 자신들의 생존 전략이자 최고의 마케팅임을 파악했다. 규제를 '영업의 방해'가 아니라 '브랜드 가치를 지키는 보루'로 보았기에, 오늘날 세계적인 관광지로서의 상업적 성공까지 함께 거둘 수 있었다.
반면 경주 황리단길을 비롯한 국내 수많은 명소들은 여전히 안타까운 지점에 머물러 있다. 경주라는 공간이 가진 수천 년의 서사와 한옥이 주는 고즈넉함이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데, 지금은 단지 이국적인 가게나 인스타용 외래어 간판을 돋보이게 해주는 '배경 병풍'으로 전락해 버렸다.
당장 젊은 층의 눈길을 끌기 위해 일본어·영어 간판과 현지 흉내를 낸 인테리어를 끌어오지만, 이는 어디서나 대체 가능한 '소모성 유행'일 뿐 경주만의 가치가 되지 못한다. 리장이 엄격한 문화적 규제로 거리 전체의 톤앤매너를 유지한 반면, 경주는 행정적 가이드라인이나 지역 상인들의 공동체 의식이 정체성을 지켜주지 못하고 상업적 자율성이라는 이름 아래 방치되고 있다.
진정한 세계화는 남의 것을 베껴 이국적인 척을 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만의 고유한 문화를 얼마나 정갈하고 깊이 있게 현대적으로 해석해 내는가'에서 시작된다. 가장 한국적인 역사와 유산을 품은 도시 경주가 단기 유행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들이 가진 문화적 자산의 가치를 하루빨리 깨달아 리장처럼 깊이 있는 도시로 거듭나기를 기대해본다.
첫댓글 리장고성 상점가에 위치한 '초운곡(初云谷, CHUYUNGU)'이라는 운남 소립 커피(云南小粒咖啡) 전문점의 동파문자 버전 간판과 한자·영문 버전 간판이다.
리장고성 내 상점들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규정에 따라 상호명을 한자뿐만 아니라 나시족 고유의 동파문자 상형기호로 함께 표기해야 한다. 두 간판을 대조해 보면 상호명이 그대로 1:1 대응되는 아주 흥미로운 구조이다.
한자 및 영문 표기 간판인
初云谷 (초운곡, CHUYUNGU)은 상점의 브랜드 이름이다.
云南小粒咖啡 (운남소립커피)는 운남성 특산인 소립(Small-granule) 아라비카 원두 커피를 뜻한다.
하단 작은 동파문자는 "리장 고성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또는 "즐거운 쇼핑이 되세요"와 같은 문구이다. (우측 하단에 쇼핑백 아이콘과 함께 '购物 shopping'이 표기되어 있다.)
동파문자 상형 표기
가운데 큼직하게 돋각된 5개의 황금색 상형기호는 한자 브랜드명 '初云谷 云南小粒咖啡(초운곡 운남소립커피)'를 그림문자로 풀어서 나타낸 것이다.
설산 위로 해가 떠오르는 모습으로, '첫/처음' 또는 아침의 시작을 의미한다.(初)
구름과 기상 현상을 나타내어 '구름 云' 자를 직접 상형화했다.(云)
산 사이의 골짜기와 흐르는 기운을 형상화했다.(谷)
합치면 브랜드명인 '초운곡(初云谷)'이 된다.
원두(커피콩) 두 알과 가루/알갱이를 형상화하여 운남의 특산품인 '소립커피小粒咖啡'를 나타낸다.
운남의 고원 지대나 물길·지형을 형상화한 '云南' 기호이다.
결국 첫 번째 간판은 상호명을 글자(한자·알파벳)로 풀어쓴 매장의 것이고 두번째 간판은 순수 동파문자 아트 디자인으로 표현한 것이다.
두 간판 모두 '초운곡(初云谷)'이라는 하나의 커피 전문점을 나타낸다.
리장고성은 문화유산 보존을 위해 상점 간판 규정이 엄격한 편인데, 보통 가게 입구 위쪽에 동파문자로 꾸민 디자인 간판과 한자·영문이 적힌 실제 상호 간판을 나란히 걸어두거나 앞뒷면으로 배치하곤 한다.
글자로만 적어두면 자칫 심심할 수 있는 상호명을 동파문자 특유의 상형 기호로 아기자기하게 표현해 둔 덕분에, 나시족의 문화적 색채도 살리고 여행객들에게 시각적인 재미도 주는 매력적인 간판이다.
리장 고성과 운남성 일대의 간판들은 단순히 가게 이름과 연락처를 크게 노출해 눈길을 끌려는 목적을 넘어선다. 그 지역의 고유한 동파문자 문화, 목조 건축의 아날로그적 질감, 그리고 주변 경관과의 조화를 깊이 고민하고 디자인한 결과물이이다.
우리나라 상권의 간판들이 시인성과 정보 전달(전화번호, 큰 글씨)만을 최우선으로 두다 보니 시각적 피로감을 줄 때가 많은 반면, 운남에서 보는 간판들은 독특한 미학을 지니고 있다.
운남의 간판들은 이야기를 담은 도상성이 있다.초운곡 간판처럼 한자 상호에 맞춰 동파문자 아이콘을 1:1로 재미있게 구성하는 등, 글자 이전에 '그림과 이야기'로 손님에게 다가간다.
자연 소재와의 조화를 이루어 화려한 원색 플라스틱이나 LED 판 대신 따뜻한 목재, 석재, 기와 등 옛 건축과 어우러지는 소재를 사용하여 거리 전체의 풍경을 해치지 않는다.
절제된 크기와 여백미가 있다. 무조건 크게 만들기보다는 나시족의 역사와 정체성을 드러내는 소소한 문구나 문양을 하단에 단정하게 배치하여 속 깊은 멋을 자아낸다.
상업적 효율성보다 지역의 문화유산과 스토리를 정성껏 녹여낸 디테일이다.
문화와 역사가 자연스럽게 녹아든 디자인이야말로 도시 전체의 매력을 올리고, 결국 더 큰 상업적 가치(관광 자원,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운남의 간판들이 잘 보여주고 있다.
단순히 "여기 무슨 가게가 있다"고 소리치는 간판과, "우리는 이런 문화적 맥락 속에서 이런 이야기를 파는 곳이다"를 은은하게 보여주는 간판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운남의 간판은 상품을 파는 데 그치지 않고 나시족의 상형문자, 전통 목조 건축의 질감, 고유의 신화적 도상이라는 문화적 경험을 함께 판매한다. 여행자가 간판을 카메라에 담고 싶어 하는 순간, 그 상점은 단순한 매장이 아니라 '방문하고 싶은 공간'이 되는 것이다.
간판이 무조건 크고 화려해지면 서로의 빛과 글자에 묻혀 결국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시각적 공해'가 된다. 이는 여행자에게 피로감을 주고 거리의 정체성을 파괴하여 장기적으로는 상권의 매력을 떨어뜨린다.
자기 지역의 역사와 유산에 대한 자부심이 바탕에 깔려 있을 때 비로소 작고 정갈하지만 속 깊은 디자인이 나올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황리단길, 행궁동, 혹은 전통 한옥마을처럼 간판의 크기를 제한하고 거리의 역사적 맥락에 어우러지도록 목재나 기와, 절제된 폰트를 활용하는 시도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효율성과 시인성만을 좇는 천편일률적인 플라스틱 간판이 많아 아쉬움이 남는다.
지역의 역사와 정체성을 담아낸 간판 하나가 거리 전체를 가치 있게 만든다.
황리단길을 비롯한 국내 여러 감성 상권에서 일본어, 영어 등 외국어로만 표기된 간판이 늘어나면서 실제로 법적·문화적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현행 법률상 불법에 해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지자체의 단속이나 정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한글 없이 일본어나 영어로만 가득 찬 간판'은 상당수 법적 기준을 벗어난 상태이다.
지역 고유의 역사와 전통(경주 황남동의 한옥)이라는 공간적 맥락 속에서, 거리의 정체성과 상관없는 외국어 간판이 늘어나는 것은 거리 전체의 매력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많다.
한글 표기가 전혀 없으면 연령대가 높은 방문객이나 한글/한국 문화를 즐기러 온 외국인 관광객 모두에게 오히려 불편을 주기도 한다.
리장고성처럼 지역의 전통 가치와 한글이라는 고유의 문화를 조화롭게 녹여낸 간판 가이드라인이 잘 갖춰진다면, 상권의 고유한 브랜드 가치와 상업적 성과를 모두 지킬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도시재생과 상권 분석에서 자주 다루는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the Commons)’과 ‘젠트리피케이션의 역설’인 것이다.
개별 상인 입장에서는 "나 하나쯤이야 이국적인 일본어/영어 간판을 걸어서 당장 SNS 눈길을 끌고 매출을 올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행위가 모여 거리 전체의 정체성을 파괴하고 결국 상권 전체의 매력을 떨어뜨리게 되는 것이다.
대체 불가능한 정체성의 상실로 이어진다. 사람들이 경주 황리단길이나 전주 한옥마을을 찾는 이유는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한옥과 한국적 고즈넉함’이라는 대체 불가능한 가치 때문이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일식당 거리, 힙스터풍 외국어 간판 거리로 변하는 순간, 그곳은 더 이상 ‘경주’일 이유가 사라지며 방문 목적을 잃게 된다.
이는 결국단기 트렌드 소모와 상권의 수명 단축으로 이어진다.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mable)한 사진용 인테리어와 외래어 간판은 반짝 유행을 탈 수는 있지만 유통기한이 매우 짧다.
리장고성처럼 수백 년을 이어온 문화와 역사를 기반으로 한 디자인은 시간이 흐를수록 깊이를 더하지만, 단기 상업성에 기대어 흉내 낸 공간은 유행이 지나면 금세 외면받고 폐허가 된다.
고객층의 분열과 방문객 피로도가 증가한다.
한글 표기가 완전히 배제된 외국어 간판은 중장년층이나 가족 단위 관광객, 혹은 ‘한국의 진짜 멋’을 보러 온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심리적 거부감과 거리를 준다.
시각적 혼란과 맥락 없는 가게들이 밀집되면 거리 전체가 피로한 공간으로 변하게 된다.
리장고성은 지자체와 지역 공동체가 "우리의 나시족 문화와 동파문자가 사라지면 고성 전체의 상업적 가치도 끝난다"는 것을 명확히 인지하고, 상호와 간판에 동파문자 병기를 의무화하는 엄격한 가이드라인을 적용했다. 그 결과 상업성과 문화 보존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반대로 국내 주요 상권에서는 눈앞의 임대료 상승과 단기 수익에 치중하다 보니, 공동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행정적 규제나 상인들 간의 자율적 협의체가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공유의 자산(거리의 풍경과 역사성)을 공짜로 끌어다 쓰기만 하고 아무도 정성껏 가꾸지 않는다"는 것은 당장의 유행에 휩쓸려 자신들의 가장 강력한 무기(고유의 문화와 정체성)를 버리는 현상으로 이어지고 결국 상권 전체의 자멸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괴테의 말에서 유래해 널리 쓰이는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명언을 그대로 증명해 주는 비교이다.
리장고성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는 과정에서 나시족의 동파문자, 고유 목조 건축, 수로(水路) 시스템이라는 '리장다움'을 철저히 지켜내는 것이 곧 자신들의 생존 전략이자 최고의 마케팅임을 파악했다. 규제를 '영업의 방해'가 아니라 '브랜드 가치를 지키는 보루'로 보았기에, 오늘날 세계적인 관광지로서의 상업적 성공까지 함께 거둘 수 있었다.
반면 경주 황리단길을 비롯한 국내 수많은 명소들은 여전히 안타까운 지점에 머물러 있다.
경주라는 공간이 가진 수천 년의 서사와 한옥이 주는 고즈넉함이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데, 지금은 단지 이국적인 가게나 인스타용 외래어 간판을 돋보이게 해주는 '배경 병풍'으로 전락해 버렸다.
당장 젊은 층의 눈길을 끌기 위해 일본어·영어 간판과 현지 흉내를 낸 인테리어를 끌어오지만, 이는 어디서나 대체 가능한 '소모성 유행'일 뿐 경주만의 가치가 되지 못한다.
리장이 엄격한 문화적 규제로 거리 전체의 톤앤매너를 유지한 반면, 경주는 행정적 가이드라인이나 지역 상인들의 공동체 의식이 정체성을 지켜주지 못하고 상업적 자율성이라는 이름 아래 방치되고 있다.
진정한 세계화는 남의 것을 베껴 이국적인 척을 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만의 고유한 문화를 얼마나 정갈하고 깊이 있게 현대적으로 해석해 내는가'에서 시작된다.
가장 한국적인 역사와 유산을 품은 도시 경주가 단기 유행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들이 가진 문화적 자산의 가치를 하루빨리 깨달아 리장처럼 깊이 있는 도시로 거듭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