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회수형 환기장치(Heat Recovery Ventilator) 없는 패시브하우스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그만큼 패시브주택에서 열회수형 환기장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주택의 에너지효율에서부터 거주자의 열적 쾌적감, 그리고 실내공기질에 이르기까지, 오히려 상관없는 곳을 찾는 것이 더 어려울 정도다.
마치 패시브하우스를 살아 숨 쉬게 만드는 심장과도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 그런데 그저 단순해 보이는 이 작은 환기장치 하나가 정말 그렇게나 중요한 것일까? 아니, 환기를 굳이 기계장치에 의존할 필요는 있는 것일까?
환기를 기계에 의존해야만 하는 이유
사실 패시브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것 중 하나도 바로 이 환기에 대한 부분이다. 두꺼운 단열재와 좋은 창호를 쓰는 것까지는 알겠는데, 왜 집을 애써 밀폐시키고 다시 기계의 힘을 빌려 환기를 하냐는 것이다. 이를테면 왜 병주고 약주냐는 식인데, 여기에는 '숨 쉬는 집'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함께 수십 년간 직접 해왔던 환기를 '기계'에 맡기는 것에 대한 정서적인 거부감도 큰 몫을 한다.
'숨 쉬는 집'의 허구에 대해서는 앞서 이미 살펴본 바 있다. 집이 숨을 쉰다는 것은 집 안팎으로 공기가 드나들 수 있는 다수의 틈새가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이것은 에너지가 새나가지 않도록 모든 틈새를 막아야만 하는 패시브하우스의 기본원칙과 완벽하게 모순된다. 더구나 얼기설기 허술하게 지은 옛날 집이라면 모를까, 자재와 공법이 정교해진 지금의 집들은 굳이 패시브하우스가 아니어도 대부분 '숨을 쉬기' 어려운 구조다. 그러므로 별도의 환기는 반드시 필요하다.
건축법규에서 제시하는 환기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대략 두 시간에 한 번씩 실내공기 전체를 교체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 생각보다 귀찮은 일이라는 데 있다. 단독주택은 물론 아파트조차도 두 시간 마다 모든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킨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겨울철만 아니라면 문을 항시 열어둘 수도 있겠으나 이 역시 안전문제와 사생활 노출에 대한 부담이 있고, 소음과 공해가 심한 도시에서는 이마저도 쉽지 않다.
우리 집의 환기담당인 필자도 이 일이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그래서 가끔은 스위치 하나로 모든 창문을 열고 닫는 즐거운 상상도 해본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생각이지만, 적어도 환기를 자동으로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만큼은 기계의 힘을 빌려 충분히 실현될 수 있다.
집의 크기와 가족의 숫자를 감안하여 적정 환기량을 설정해두면, 우리의 부지런한 환기장치는 오염된 공기를 내보내고 신선한 공기를 들여오는 일을 단 하루도 쉬지 않는다. 게다가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는 미세먼지와 꽃가루까지 걸러주니, 매번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편리함과 깨끗함을 선사한다.
이러한 기계환기의 진가는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일반적인 수면시간을 8시간으로 잡으면 두 시간에 한 번씩 중간에 모두 세 번의 환기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잠을 자다가 일어날 수는 없는 일이니, 기상 직후 실내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건강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치솟기 일쑤다. 많은 사람들이 아침에 일어날 때 심한 피로감과 무기력증을 느끼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그렇지만 밤낮없이 일하는 환기장치가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실제로 패시브를 지어 입주한 건축주들을 만나보면 하나같이 먼저 꺼내는 이야기가 신선한 실내공기에 대한 만족감이다. 특히 아침에 일어났을 때 코끝이 상쾌해지는 기분은 뭐라 표현하기 힘들 정도다. 이쯤 되면 환기는 무조건 기계에 의존해야 하는 것 아닐까?
환기장치가 열회수형이어야 하는 이유
기계에 의한 환기도 겨울철에는 바깥의 차가운 공기를 들여오는 데 따르는 열손실이 큰 문제로 대두된다. 사실 사람이 하는 환기는 창문을 열고 실내가 식기 전에 집안의 공기를 재빨리 교체하는 '짧고 굵은' 방식이라 에너지손실 자체는 그리 큰 편이 아니다. 반면 기계를 통한 환기는 실내공기가 지속적으로 교체되는 '가늘고 긴' 방식으로, 끊임없이 유입되는 냉기가 실내의 온기를 모조리 빼앗아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결국 주택의 에너지효율은 크게 떨어지고 패시브가 자랑하는 기밀성은 거의 무장해제 될 지경에까지 이른다.
이러한 문제는 환기 시 버려지는 열을 회수하는 방식으로 아주 간단하게 해결될 수 있다. 즉, 따뜻하지만 오염된 실내공기와 신선하지만 차가운 외부공기를 섞이지 않게 접촉시켜 서로의 온도를 주고받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실내로 들여오는 바깥공기의 온도를 높여 환기로 인한 열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 아울러 환기과정에서 실내온도가 요동칠 일도 없어 열적으로도 쾌적한 상태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열회수형 환기장치의 종류
▶ 판형(Plate Type)
열회수형 환기장치의 핵심은 버려지는 폐열을 어떻게 회수하는가에 있다. 가장 일반적인 방식은 판상형의 열교환 소자를 서로 엇갈리게 접촉시켜 실내공기와 실외공기를 교차시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공기의 이동경로가 분리되어 실내외 공기가 섞일 위험이 적을 뿐 아니라, 열교환 소자의 소재에 따라 열기는 물론 습기의 회수까지도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오랜 기간 관련 기술도 많이 발전해서 국산의 경우 온도교환효율이 80% 수준까지 올라갔고, 일부 수입제품 경우에는 90% 이상의 수치를 자랑하기도 한다.
국내에서도 실내공기질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2006년부터 100세대 이상 공동주택에 대한 기계환기설비의 설치가 의무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보급된 제품들도 대부분 이와 같은 판형 방식이었는데, 아쉽게도 이를 제대로 사용하는 가정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환기장치에 대한 거주자들의 이해가 부족한 것도 문제이지만, 실제로는 시공사가 법적인 기준을 맞추는 데에만 급급한 나머지 성능이 크게 떨어지는 저가의 설비를 주로 설치해왔기 때문이다.
우선 설비 자체의 전력효율이 크게 떨어져서 24시간 가동되는 모터에 들어가는 전기만 해도 월 100kWh를 넘기 일쑤였다. 100kWh면 무려 양문형 냉장고 세 대의 전력소비량과도 맞먹는 수준이다. 더 큰 문제는 겨울철 전기사용량이었다. 판상형은 외부온도가 영하로 떨어지면 열교환효율도 반감되면서 설비 내부에 결로가 발생하는 약점이 있다.
그래서 프리히터로 외부의 차가운 공기를 예열해줄 필요가 있는데, 이 때 가장 손쉬운 방법이 바로 전기를 이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소모되는 전력 또한 상당한 수준이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환기장치의 흡입구에 작은 전기난로를 한 대 틀어 놓았다고 보면 된다. 누진제가 적용되는 일반 가정에서는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부분이다.
소음 또한 아파트에 설치된 환기설비를 외면케 해온 주된 이유다. 실내를 기준으로 보면 소음을 거의 느낄 수 없는 25데시벨(dB) 수준은 되어야 하는데, 대부분의 제품은 이를 만족하지 못했다. 이 외에도 필터류의 유지보수가 쉽지 않은 점도 문제였다.
의자를 밟고 올라가서 천장의 점검구를 힘들게 열고 꾸준하게 필터를 관리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아니, 우리 집에 환기설비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알고는 있을까? 매년 설치되는 엄청난 숫자의 환기장치가 더 이상 거대한 사회적 낭비가 되지 않도록 관련 규정의 정비가 시급해 보인다.
▶ 로터리형(Rotary Type)
말 그대로 원형의 열교환 소자가 회전하면서 한쪽 절반구간에서 실내공기가 통과되어 나갈 때 열기와 습기를 저장해 두었다가, 다른 쪽 절반구간에서 외부공기가 그 원판을 통과해 들어올 때 이를 다시 전달해주는 방식이다.
이는 마치 겨울철에 마스크를 쓰고 숨을 쉬면 따뜻한 공기를 마실 수 있는 원리와 같다. 이 방식은 온도교환효율이 95% 이상에 달해 실내로 공급되는 외부공기의 온도를 크게 높일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또한 엄청난 한파가 몰아치는 경우만 아니라면 영하의 날씨에도 결로나 성에가 거의 생기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다.
다만, 실내외 공기가 일부 섞이는 누기율이 판형보다 다소 높은 탓에 전열효율이 온도교환효율보다 다소 떨어지는 것은 단점으로 지적된다. 여기서 '전열효율'이란 '유효전열효율(Effective Enthalpy Efficiency)'의 줄임말로 온도(현열, Sensible Heat)는 물론 습도(잠열, Latent Heat)까지 고려한 효율에 누기율을 반영한 환기장치의 '실제효율'로 이해해도 좋다. 전열효율과 온도교환효율의 차이는 판형의 경우에는 5~10% 수준에 그치지만, 로터리형은 10% 이상으로 벌어질 수도 있어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열회수형 환기장치의 선택
다음은 판형과 로터리형의 특징과 가격동향을 정리한 표다. 열회수형 환기장치는 투자의 효과를 가장 크게 체감할 수 있는 설비이므로 사전에 많은 검토가 필요하다. 특히 난방 전열효율 75% 이상, 열교환 없이 환기만 할 수 있는 바이패스 여부, 필터류 유지관리의 편의성, 낮은 소비전력, 그리고 실내 기준 25dB 이하의 소음도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제품을 선택하도록 한다.
최근 시공사례를 보면 결로 문제와 가격을 이유로 국산 로터리형 제품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고, 신뢰도가 높은 독일산 판형 제품을 선택하는 현장도 조금씩 늘고 있다. 한편, 제품이 결정되면 환기배관의 설계와 시공은 해당 제품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제조사나 전문업체에게 맡기는 편이 좋다
참고로, 현재 독일 등지에서 수입되고 있는 판형 방식의 제품은 열교환효율이 뛰어나고 만듦새가 정교할 뿐 아니라 기기 자체의 전력효율도 상당히 높은 편이다. 예열방식으로는 지열을 이용한 브라인 시스템을 선택할 수도 있으며, 전기예열기를 사용하는 경우에도 독특한 제어방식으로 전력소모를 크게 줄였다.
필터의 성능 또한 매우 뛰어나다. 유럽에서는 필터의 등급을 용도에 따라 기본필터(G1~G4) 중간필터(M5~M6) 미세필터(F7~F9)로 구분하고 있다. 환기장치에는 기본적으로 F7 미세필터와 G4 기본필터를 적용하고 교체주기를 명시토록 함으로써 필터링의 신뢰성을 보증하고 있다. 특히 미세필터는 호흡기 질환의 원인이자 1급 발암물질로 알려진 10㎛ 이하의 미세먼지를 완벽하게 걸러낼 수 있어 실내공기질 확보에 큰 도움이 된다.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국산의 서너 배에 이르는 비용은 여전히 걸림돌이다.
적정 환기량과 설비용량
적당한 환기장치를 선택했다면, 이제는 우리 집에 필요한 환기량과 설비용량을 결정할 차례다. 적정 환기량을 계산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한 사람에게 요구되는 신선한 공기량은 시간당 30m3, 즉 30CMH(Cubic Meter per Hour)이므로, 여기에 거주자의 숫자를 곱해주기만 하면 된다. 따라서 4인 가족에게 필요한 환기량은 시간당 120m3, 즉 120CMH가 된다.
환기설비의 용량은 여기에 추가풍량과 배관손실 등을 감안한 여유치를 두면 된다. 보통은 1.5배 정도를 곱해주면 무난하다. 여기에 주택의 실내체적에 법정 환기율인 0.5/h를 곱한 값과 비교해서 더 큰 값을 선택하면 좀 더 안전하다. 4인 가족이 거주하는 바닥면적 200m2, 층고 2.5m인 주택을 예로 들면, 180CMH(=120CMH×1.5)와 250CMH(=500m3×0.5/h) 중 후자가 개략적인 설비용량이 되는 식이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법정 환기율인 0.5/h는 패시브의 표준 환기율인 0.3~0.4/h보다는 다소 높은 편이라 설비용량을 계산할 때 별도의 보정계수를 적용하지는 않았다. 물론 정확한 설비용량을 산정하기 위해서는 배관과 기기의 특성을 고려해야 하므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건축주의 입장에서는 우리 집의 적정 환기량은 얼마인지, 그리고 해당 설비를 기준으로는 어느 정도의 풍량에 해당되는지를 확실히 알아둘 필요가 있다. 풍량을 필요 이상으로 높일 경우 전기요금은 물론 소음과 습도관리 측면에서도 큰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아울러 환기장치를 설치한 후에는 급기량과 배기량의 밸런스가 맞는지를 검증하고 조정하는 TAB(Test, Adjustment, and Balancing) 작업도 빠뜨려서는 안 된다. 급·배기량의 차이가 벌어질수록 환기장치의 열교환효율도 급격히 떨어지므로 반드시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다.
주방과 욕실의 환기는 어떻게?(전열교환기와 연동이 필수적이다)
패시브하우스의 기계환기는 거실과 방의 급기구로 공급된 신선한 공기가 기류를 형성해 주방과 욕실의 배기구까지 이어지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하지만 주방과 욕실에서는 일시에 다량의 습기나 오염물질이 배출될 수 있으므로 환기장치의 배기용량만으로는 대응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특히 로터리형은 작동구조상 냄새가 역류할 수도 있으며, 판형의 경우에도 조리과정에서 발생한 기름 성분(유분)이 배관과 설비를 막히게 할 수도 있어 별도의 대책이 필요하다.
먼저, 주방의 경우에는 오염된 공기를 필터링해서 다시 내부로 순환시키는 형태의 레인지 후드를 둘 수 있다. 무엇보다 환기로 인한 에너지손실의 우려가 전혀 없어 유럽의 패시브하우스에서 널리 사용되는 방식이다. 그러나 냄새와 유분 배출이 많은 우리나라의 조리 환경에서는 필터링의 수준이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고, 내부 순환형이다 보니 필터를 자주 관리해주어야 하는 문제도 있다. 게다가 아직까지는 쓸 만한 국산 제품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은 형편이다.
결국 대량의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기존과 같이 외부와 직결된 레인지 후드를 사용하는 것이다. 이때, 실내공기를 열교환 없이 바로 배출해야 하므로 어느 정도의 에너지손실은 감수해야만 한다. 그나마 열손실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는, 철저한 배관단열은 물론 평상시 외기가 침투하는 것을 막아주는 전동댐퍼의 설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아울러 후드를 가동하는 시간도 오염물질이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동안에 한해서 가급적 짧게 가져가는 것이 좋다. 대량의 공기를 오랜 시간 뽑아내는 과정에서 환기밸런스가 깨지고 환기장치의 효율도 급격히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만약 배기효과를 좀 더 높이고 싶다면 후드를 가동하는 동안 창문을 잠시 열어두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다.
욕실의 경우도 기본적인 냄새와 습기는 환기설비를 통해 꾸준히 제거되겠지만, 배기용량을 넘어서는 상황에 대해서는 별도의 대비가 필요하다. 특히 여름철 샤워 후의 습기는 실내습도 상승의 주범이므로 즉시 외부로 배출해줄 필요가 있다. 물론 가장 쉬운 방법은 기존처럼 밖으로 연결된 별도의 환기팬을 설치하는 것이겠으나, 이때 역시 열교에 대한 고려는 반드시 필요하다. 만약 욕실의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해주는 사소한 불편을 감수할 수만 있다면, 굳이 별도의 환기팬을 설치하지 않아도 큰 문제는 없다.
열회수형 환기장치,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
환기설비는 365일 24시간 계속해서 가동하는 것이 가장 좋다. 열교환이 필요 없는 봄·가을에도 깨끗한 공기를 위한 필터링 기능만큼은 반드시 필요해서다. 다만, 환기장치를 가동하는 데 소요되는 전기요금에 대해서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우선 전력효율이 높은 제품의 경우, 추가되는 전기요금은 월 전력사용량이 400kWh인 가정을 기준으로 2~3만 원을 넘지 않는다. 소비전력을 기준으로 보면 평상시 100W를 넘지 않는 수준이다. 이 정도면 환기장치를 상시 가동하는 데에도 큰 부담은 없다.
환기설비의 전력효율에 따른 전기요금
문제는 전력효율이 떨어지는 제품을 사용하는 경우다. 이때의 추가요금은 한 달에 5~6만 원 이상으로, 1년으로 따지면 60~70만 원이 넘는 큰 금액이다. 게다가 여기에 겨울철 전기예열기의 사용까지 더해지면 환기장치를 가동하는 것 자체가 상당한 스트레스가 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전기요금이 부담스러운 상황이라면 자연환기와 병행하면서 필요시에만 설비를 가동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다. 다만, 겨울철에는 환기장치를 끄는 순간 차갑게 식은 설비 내부에 결로와 곰팡이가 생길 가능성이 높으므로, 가능하면 최소풍량으로라도 계속해서 설비를 가동하는 편이 좋다.
물론 가장 좋기로는 기기의 가격은 다소 부담되더라도 처음부터 전력소비가 적은 제품을 선택하는 것이다. 누적되는 전기요금 차이를 생각하면 불과 몇 년 내에 기기 한 대 값을 뽑을 수도 있으니 장기적으로는 훨씬 더 이득이다. 무엇보다 자연환기와 병행하면서 매번 기기를 조작해야만 하는 번잡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따라서 환기설비를 선택할 때에는 기기의 가격이나 열교환효율 외에 전력효율까지도 꼼꼼하게 따져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한편, 환기장치와 연계된 전기예열기, 브라인 지열 시스템, 바이패스 기능 등은 적정온도를 설정해두기만 하면 대부분의 경우 자체 알고리즘에 따라 자동으로 작동된다. 예를 들어 여름철 저녁에는 바이패스 모드로 외부의 시원한 공기를 온도교환 없이 바로 들여온다거나, 겨울철 혹한기에는 전기예열기 또는 브라인 시스템으로 바깥공기를 한 차례 데워서 들여오는 식이다.
사용자는 마치 보일러를 조작하듯 계절별로 적정 실내온도를 설정해 두기만 하면 되므로 매우 편리하다. 심지어는 가족의 생활 패턴에 따른 기기의 작동방식을 미리 프로그래밍해둘 수 있는 제품까지 있으니 사전에 설비의 주요 기능을 자세히 검토해보는 것이 좋다.
마지막으로, 여름철이나 겨울철의 습도관리를 위해서는 습도회수기능(Enthalpy Recovery)이 포함된 환기장치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활용하면 겨울철에는 환기와 함께 빠져나가는 습기의 일부를 회수하여 실내가 건조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반면 여름철에는 에어컨으로 제습된 실내공기가 환기를 통해 다시 습해지는 것을 최소화할 수 있다. 물론, 안팎의 습도차가 상당한 경우에는 별도의 가습 혹은 제습과 함께, 시시각각 달라지는 거주자의 인원수에 따라 수시로 환기풍량을 맞춰주는 등의 추가조치가 필요하다.
기계에도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다
환기장치가 1년 동안 집안으로 들이는 공기의 양은 모두 얼마나 될까? 4인 가족을 기준으로 보면 120CMH, 즉 시간당 120m3의 신선한 공기가 필요하다. 이를 1년으로 따지면 부피로는 1,051,200m3, 무게로는 1,268톤에 이르는 엄청난 양이다. 물론 여기에는 먼지 등의 부유물질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으므로 이를 걸러주는 필터의 꾸준한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필터는 보통 6개월마다 한 번씩 교체한다. 비용은 한 세트를 기준으로 국산은 3~5만 원, 외산은 6~10만 원 정도다. 물론 교체주기 전이라도 오염이 심하면 진공청소기 등으로 먼지를 제거하거나 필터를 교체해야 하므로 가능하면 자주 점검을 해주는 것이 좋다. 필터에 많은 먼지가 쌓이게 되면 풍량이 감소하고 환기효율이 떨어질 뿐 아니라 곰팡이와 세균이 번식할 가능성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공기가 넓은 면적으로 통과하는 열교환 소자 역시 꾸준한 관리가 필요한 부품이다. 기본적으로는 세척 후 재사용할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제품에 따라서는 무조건 신품으로 교환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보통은 소자 자체가 상당히 고가이므로 가급적 재활용이 가능한 제품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재활용 횟수나 세척방법 등의 자세한 사항은 제조사의 매뉴얼을 참고토록 한다.
사실 웬만큼 부지런하지 않으면 매번 오염도를 확인하고 필터를 관리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기계가 지하실이나 보일러실에 처박혀 눈에 띄지 않는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그렇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환기장치는 우리 가족의 건강을 책임지는 든든한 파수꾼이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입는 옷은 매일같이 깨끗하게 세탁하면서, 신선한 공기를 얻기 위한 그 한 번의 수고가 그리도 어려울까. 기계에도 사람의 따뜻한 손길이 필요하다. 환기장치 역시 끊임없는 관심과 보살핌을 받을 때에만 제 역할을 해주는 정직한 기계임을 절대로 잊지 말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