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8,1-8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는 뜻으로
제자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셨다.
2 “어떤 고을에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한 재판관이 있었다.
3 또 그 고을에는 과부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는 줄곧 그 재판관에게 가서,
‘저와 저의 적대자 사이에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십시오.’ 하고 졸랐다.
4 재판관은 한동안 들어주려고 하지 않다가 마침내 속으로 말하였다.
‘나는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5 저 과부가 나를 이토록 귀찮게 하니 그에게는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어야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끝까지 찾아와서 나를 괴롭힐 것이다.’”
6 주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이 불의한 재판관이 하는 말을 새겨들어라.
7 하느님께서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그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지 않으신 채, 그들을 두고 미적거리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제1독서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우세하였다.>
▥ 탈출기의 말씀입니다. 17,8-13
그 무렵 8 아말렉족이 몰려와 르피딤에서 이스라엘과 싸움을 벌였다.
9 그러자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말하였다.
“너는 우리를 위하여 장정들을 뽑아 아말렉과 싸우러 나가거라.
내일 내가 하느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언덕 꼭대기에 서 있겠다.”
10 여호수아는 모세가 말한 대로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후르는 언덕으로 올라갔다.
11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우세하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우세하였다.
12 모세의 손이 무거워지자,
그들은 돌을 가져다 그의 발 아래 놓고 그를 그 위에 앉혔다.
그런 다음 아론과 후르가 한 사람은 이쪽에서,
다른 사람은 저쪽에서 모세의 두 손을 받쳐 주니,
그의 손이 해가 질 때까지 처지지 않았다.
13 그리하여 여호수아는 아말렉과 그의 백성을 칼로 무찔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하느님의 사람은 온갖 선행을 할 능력을 갖춘 유능한 사람이 됩니다.>
▥ 사도 바오로의 티모테오 2서 말씀입니다. 3,14─4,2
사랑하는 그대여, 14 그대는 그대가 배워서 확실히 믿는 것을 지키십시오.
그대는 누구에게서 배웠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15 또한 어려서부터 성경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구원을 얻는 지혜를 그대에게 줄 수 있습니다.
16 성경은 전부 하느님의 영감으로 쓰인 것으로,
가르치고 꾸짖고 바로잡고 의롭게 살도록 교육하는 데에 유익합니다.
17 그리하여 하느님의 사람이 온갖 선행을 할 능력을 갖춘
유능한 사람이 되게 해 줍니다.
4,1 나는 하느님 앞에서, 또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님 앞에서,
그리고 그분의 나타나심과 다스리심을 걸고 그대에게 엄숙히 지시합니다.
2 말씀을 선포하십시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계속하십시오.
끈기를 다하여 사람들을 가르치면서, 타이르고 꾸짖고 격려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오늘의 복음 묵상>
마지막 심판 때 믿음이 있다고 인정받으려면?
오늘 복음은 불의한 재판관에게 과부가 끊임없이 올바르게 판결해달라고 청하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지치지 않고 청하면 불의한 재판관도 올바르게 판결해준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자칫 믿음이 어떤 것을 들어줄 때까지 청하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것도 믿음이기는 하지만 오늘 복음은 그런 믿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복음은 '심판'에 관한 내용의 연속선상에 있습니다.
오늘 복음 바로 앞에는 노아의 홍수와 소돔의 멸망과 같은 심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복음은 무언가를 얻을 때까지 꾸준히 청하면 믿음이 있다는 내용이 아닙니다.
나의 심판을 심판관에게 맡겨야만 믿음이 있다는 내용입니다.
그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이 바리사이와 세리의 기도입니다.
바리사이는 하느님 앞에서 이미 자신이 의로운 사람이라 심판해 놓고 기도합니다.
그러면 하느님은 의미 없는 대상이 됩니다.
하지만 세리는 자기 심판을 주님께 맡깁니다.
그래서 의로운 사람으로 심판받는 사람은 세리가 되는 것입니다.
"개는 훌륭하다"에서 강형욱 조련사가 역대급 분노를 표출한 적이 있습니다.
자기 반려견끼리 싸우는데 보고만 있는 보호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보
호자는 개들끼리 싸워서 서열을 정리하기를 바랐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개들끼리 서로 판사가 되라는 의미이고 이는 자기가 판사의 권위를 버리겠다는 뜻입니다.
개가 주인 앞에서 서로 싸우면 주인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다른 사람을 심판하면 하느님을 심판관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심판관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 자체가 믿음이 없음을 증명합니다.
다시 말해 이웃을 판단하는 사람은 하느님을 심판관으로 인정하지 않기에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두 이웃을 심판하는 사람이 될 때 종말이 올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끝맺으십니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루카18,8)
전삼용 요셉 신부
첫댓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저희가 언제나 성실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정성껏 섬기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우리는 두 팔을 축 늘어뜨린 채 하느님께 기도하기를 잊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예수님께서는 재판관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달라고 줄곧 조르는 과부의 비유를 드시며,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하라고 가르치십니다.
믿음을 통하여 구원을 얻는 지혜를 주는 성경을 읽읍시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의 말씀을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선포하기로 다짐합시다.
인간은 다른 사람을 심판하면 하느님을 심판관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심판관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 자체가 믿음이 없음을 증명합니다.
다시 말해 이웃을 판단하는 사람은 하느님을 심판관으로 인정하지 않기에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두 이웃을 심판하는 사람이 될 때 종말이 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