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학생에서 전업뮤지션, 다시 농부로… 후회는 없어요”
“(살고 있는) 장소가 참 중요한 사람”인 루시드폴은 하지만 지난 20년 간 뜻하지 않게 ‘떠돌이’ 생활을 했다. 환경이 달라질 때마다 직업도 달라졌다. 스위스에서는 유학생으로, 서울에서는 전업 뮤지션으로, 제주도에서는 농부로 살고 있다.
“아련한 건 있어요. 실험실 교수님이 ‘미션 임파서블’에 가까운 일을 주면서 ‘이게 네 박사논문 주제’라고 했을 때, 처음 미팅을 하고 나서의 황당함,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던 일을 해나가는 과정…. 고통스럽지만 즐거웠고 그래서 열심히 했어요. 제가 해야 할 몫은 다 하고 마침표를 찍고 나왔죠. 후회는 없어요.”
고단했던 ‘서울살이’도 돌이켜보면 최선을 다했던 시간이었다. “세상이 원하듯이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거나 행사를 많이 하지는 못했지만 음악적으로는 누구 못지않게 발전하려고 아등바등하며 살았던 것 같아요.” 마찬가지로 후회는 없다. 예전에 살았던 동네를 지나며 향수를 품을 때는 있지만, 딱 거기까지다. “지금 다시 서울에서 살고 싶냐, 그건 별로에요. 저는 지금 저의 환경이 너무나 좋아요.”
루시드폴은 제주도에서 만든 온갖 것을 사람들과 나누고자 한다. 그의 노동력이 집약된 귤이나 삶이 집약된 에세이, 정서가 집약된 음악 등이 ‘앨범’이라는 형태의 패키지로 타인에게 전파된다.
“만들고 나누는 행위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할 생각은 없었어요. 다만 지난해 겨울을 지나면서 제가 굉장히 많은 걸 받으면서 살고 있다는 걸 느꼈죠. 그리고 저에겐 제 음악을 공표해줄 소속사와 이렇게 인터뷰하러 찾아와주는 기자들, 공연을 보러오는 관객들, 다양한 스피커가 있잖아요. 그렇다면 제가 나눌 수 있는 것들에 최대한 많은 걸 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루시드폴은 일본의 동요 시인 가네코 미스즈를 좋아한다.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아내에게 가네코 미스즈의 시를 소개해줬고 아내 역시 그 시를 너무나 좋아해 동시집을 내기도 했다. 루시드폴은 한 때 가네코 미스즈처럼 착한 노래를 내고 싶다고 소망하기도 했다.
“여전히 가네코 미스즈를 좋아하고 그의 글을 읽어요. 주변과 삶에서 중요한 사람이 됐죠. 항상 찾아서 보는 글이 됐지만 내가 그 사람 같은 노래를 만들고 있는지, 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제 아내가 쓴 동시는 (가네코 미스즈와) 굉장히 닮아있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