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청춘의 한 시절
천하 적막강산 대관령 길손이
어쩌다 강릉 비행장을 가게 되는 제
무언지 알 수 없는 오묘한 기대감으로 가슴 설래이는 그 무엇이... ㅎ~
빨간 마후라
강릉 제18전투비행단은 6·25 전쟁 기간 중(당시 10전투비행전대), 대한민국공군의 전진기지로 공군이 펼친 작전 중 93퍼센트를 담당한 공군의 살아있는 역사를 간직한 <빨간마후라>의 고향이다.
김영환(金英渙,1921-1954) 장군이 1951년 제1전투비행단 10전투비행전대장인 대령으로 있던 시절, 친형( 당시 참모총장 김정렬)집에 들렀을 적 형수가 입고 있던 붉은 치마를 보고 ‘형수님 빨간 치마 색깔이 좋게 보이니, 마후라를 만들어 달라’고 했더니, 치마를 짓고 난 자투리 천으로 마후라를 만들어 시동생 김대령에게 선물로 준 것이 ... 빨간마후라를 목에 두른 첫 전투조종사 탄생의 전설이다.
(6.25 전쟁중 해인사 폭격명령을 받아들이지 않아 팔만대장경을 지켜낸 것으로 유명한 김장군은 1954년 3월5일 임무 수행 중 악천후 사고로 인해 34세 일기로 순직했다.)
당시 한국 공군은 평양대폭격 등 출격 때마다 많은 희생을 치르면서도 강릉기지에서는 날마다 F-51D 무스탕 전투기 조종사들이 빨간마후라를 목에 두르고 쉴 새 없이 출격하였다.
6·25전쟁이 휴전되고 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뒤 1964년 영화 <빨간마후라>가 제작된다.
영화 <빨간마후라>의 실제 모델 조종사는 유치곤(兪致坤, 1927-1965) 장군.
그는 대구시 달성군 유가면 쌍계리에서 태어나 6·25전쟁 중인 1951년 소위로 임관해 1952년 1월 평양 승호리 철교폭파 작전에서 450미터로 초저공비행하면서 미 공군이 500여 차례 공격으로도 파괴하지 못한 철교를 폭파해서 북한군의 보급로를 차단하는 혁혁한 공을 세웠다.
강릉 아가씨
*
빨간 마후라를 목에 두르고,
하늘의 사나이들 나올 무렵엔
빨간 연지입술 강릉아가씨_
강가에 나와 기다리시네~...
* *
대관령 구름뚫고 떠오를 때엔,
강릉 아가씨는 마음 졸이며
가슴에 두손모아 무사하소서_
하늘에 사나이는 빨간마후라~ ...
~1962년 MBC 문화방송국 창사 1주년 기념특집 라디오 연속극 ‘빨간마후라’ 주제가로 한운사(韓雲史)가 노랫말을 붙인 「강릉아가씨」는 빨간마후라를 목에 두른 조종사에게 사랑에 빠진 강릉아가씨가 빨간 연지입술로 화장을 하고 강가에 나와서 조종사를 기다리며, 두근거리는 마음과 또 출격했을 때 무사히 강릉기지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것이다.
1994년 4월 1일 강릉 기지내 비행단의 역사기념관 옆에 <강릉아가씨 노래비>가 건립되었다.
1962년 MBC 문화방송국 창사 1주년 기념특집 라디오 연속극 ‘빨간마후라’가 1964년 영화 <빨간마후라>의 모태(母胎)가 되고,
라디오연속극 '빨간 마후라' 주제가 「강릉아가씨」는 64년 영화 <빨간마후라>의 주제가 「빨간마후라」의 모곡(母曲)이 되었다.
‘강릉아가씨’의 노랫말은 실제 그 당시 강릉기지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강릉아가씨는 빨간마후라를 목에 두른 전투기 조종사들이 백 번째로 출격하던 날,
강릉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이 무사히 승리하고 돌아오라고 환송식을 하였다.
그리고 무사히 기지로 돌아온 조종사들의 목에 꽃다발을 걸어주며 환영식을 도맡았던 강릉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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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라디오 연속극 '빨간마후라'주제가 '강릉아가씨'는 찾을 길 없고
아래의 '강릉 아가씨'가 그나마도 반갑게 만나볼 수 있기에 아래에...
강릉 아가씨カンルンの女性/イ·ミジャ
1966
이용일 작사, 백영호 작곡, 이미자 창(25세)
대관령 재를 넘어 떠나오던 날
그 님도 울었으리 나를 보내고
달빛어린 해변에서 맺은 사랑은
못잊어 못잊어서 불러보지만
지금은 알길없는 강릉 아가씨
못맺을 그 사랑에 눈물 뿌리고
힘없이 돌아서던 대관령 고개
별빛어린 경포대서 맺은 기약이
아쉬워 아쉬워서 그려보지만
이제는 알길없는 강릉 아가씨
별명 : 빨간 마후라
유치곤(兪致坤, 1927년 7월 17일 ~ 1965년 1월 1일)장군은
1927년 7월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면 쌍계리에서 태어나 1949년 12월 공군에 입대하여 1951년 4월 조종교육 과정을 이수하고 공군 소위로 현지 임관하였다. 1951년 9월 강릉 제10전투비행단에 배속되어 동년 10월 11일부터 1953년 8월 16일까지 전투조종사로서 한국 공군으로서는 처음인 203회의 빛나는 전진출격 기록으로 큰 전공을 세웠다.
평양 근교 승호리 철교를 폭파시킨 그의 비행은 공군에서 전설적인 신화로 내려오고 있다. 휴전 후에는 공군의전력증강 및 발전에 기여하다가 공군 제107기지단장으로 재직 중이던 1965년 1월 1일, 과로로 39세의 젊은 나이에 순직하였다.
1965년 1월 1일 : 공군제적(과로로 순직) / 공군 준장 추서
훈련생을 지도하는 도중 생도의 실수로 사고가 나서 한쪽 눈의 시력을 잃어 조종사로서 치명적인 타격을 입고, 장성급 승진인사에서도 배제되는 등 불운을 겪은 불운의 빨간 마후라...
2005년 대구 달성군 유가읍 양리 비슬산 아래에 유치곤 장군 호국기념관과 "빨간마후라 노래비"가 건립되었는데, 장군의 장남으로 공군사관학교를 진학하여 빨간 마후라가 되었다가 1982년 2월 제주에서 순직한 유용석(兪溶錫) 소령의 흉상과 추모비도...
첫댓글 추억의 명화인 빨간 마후라
다시한번 보고 싶습니다
좋은 하루를 보내세요 ~
젊은 날의 회상이
무진장 값진 의미를 선사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대한민국의 사나이라면 빨간마후라를 보고 박수를 치며 환호를 하지 않았던 사람이 있었을까?
당시 빈약한 공군이였기에 장비도 허술하여 조종사들은 온갖 위험과 곤경속에서 임무를 수행하였었죠.
나중에서 F86 세이버 전투기가 들어오면서 맘껏 끼를 살렸던 우리의 지난날 공군이였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난 지금은 스스로 전투기를 만들어 쓰기도 하고 팔기도 하는 나라가 되었으며
우리 영공을 넘보는 적기나 미사일 등으로부터 요격하는 미사일의 실력도 만만치 않아 가슴을 뿌듯하게 합니다.
청주에는 공군사관학교와 전투비행단이 있어 가끔 빨간 마후라를 보기도 합니다.
더욱 발전된 공군이 되어 이나라 영공을 철통같이 지키는 강군으로 더욱 발전되기를 기원합니다.
그렇습니다.
공군사관학교가 청주로 갔지요.
청주엔 비행장이 없었는데
비행장이 생기고 보니
비상리~ 비하리....라는 이름의 지역이라니...........선견지명이라는 둥 소문이...ㅎ
공군은 말 할 것도 없고
울나라 방위 산업 ㅎ
그렇게 부정부패해 먹고도 발전한 거 보면 ㅎ 대단합니다.ㅋ
18비의 역사를
조목조목 나열하셨군요
빨간마후라...영화를 본지가 까마득한
옛날이지만...어린마음에 나도
자라면 전투기 조종사가 되어서
멋지게 하늘을 날으면서 적진을 폭격하는
군인이 되겠다고 하였는데...ㅎ
유치곤장군!!
빨간마후라의 주인공이군요
공군의 전사에
승호리철교 폭파는 전사에 길이 빛나는
교훈이기도 하지요
이분의 고향이
달성군 쌍계리??이군요
박근혜 전대통령이 거주하는 동네이지요
또한
나의 군동기생의 고향동네이기도 해서
몇번 가보았답니다~ㅎ
좋은 역사공부하고 갑니다~^^
지나간 추억을 더듬다가 붙잡히는 끈을 잡고 ㅎㅎㅎ
대관령 길손이
강릉비행장을 갈제면
강릉아가씨를 먼발치라도 함 볼 수나 있으려나....
강릉비행장과 빨간 마후라와 강릉아가씨가 인연이..
유치곤 장군.
전설적 파일러트가
불운한 빨간 마후라.
유치곤 장군 호국 기념관
잘 아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