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투자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과감한 규제개혁을 해야 한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
“불합리한 규제는 해소해야 하지만 국민의 안전이나 생명에 관계된 규제는 강화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이 15일 첫 회동을 가졌다. 김 대표는 취임한 지 8일 만에 국회 민주당 당대표실로 찾아가 이재명을 만났다. 2021년 민주당 대선 경선 국면에서 날선 말을 주고 받았던 두 사람은 이날 공개 석상에서는 웃음과 덕담을 나누며 민생과 협치를 강조했지만, 비공개 회동에서는 서로를 양한 앙금도 내비쳤다.
● 金-李 “민생에선 협조”
먼저 발언에 나선 김 대표는 “반도체 관련법 입법에 약간의 이견이 있었지만 (민주당이) 3월 국회 내 처리하기로 합의한 결단에 대해 감사 말씀드린다”고 했다. 반도체 설비투자 세액공제 비율을 확대하는 정부안을 민주당이 수용하기로 한 것에 대한 감사를 표시한 것.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13일 김 대표 등 새 여당 지도부와의 만찬에서 반도체 관련법에 대해 “여론전의 승리”라고 한 바 있다.
이어 김 대표는 “쟁점이 덜한 법안부터 빨리 처리해 나가자”면서 “격주에 한 번씩 공개든 비공개든 계속 대화를 해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 이재명은 “여야 입장을 떠나 정부 여당이 제시한 안건이나 정책도 퇴행적이거나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언제나 적극 협조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이 노동개혁 등 윤 대통령이 강조한 3대 개혁 관련 입법을 주장하고 있지만 선뜻 협조하지는 않겠다는 의미다.
다만 이재명은 여야 간 이견이 없는 법안은 머리를 맞대고 처리하자는 뜻을 밝혔다. 그는 “대선 때 여야 후보들이 공통적으로 약속한 것은 ‘공통공약추진단’을 구성해 정책협의회를 만들자”며 “여야간 범국가비상경제회의도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두 사람은 민생 문제를 여야의 중점 협력 과제로 추진하자는데도 뜻을 모았다. 회동 뒤 김 대표는 “민생 문제 최우선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여야가 협조를 잘 하자고 했다”고 전했다. 또 두 대표는 “국민을 잘 살게 하기 위한 부분은 적극적인 협치로 가자”고 합의했다.
● 金 “격주로 밥 먹자” 이재명 “매일 욕하면서…”
12분간의 공개 발언이 끝난 뒤 이어진 비공개 회동에서 두 대표는 본격적인 신경전을 벌였다. 복수의 참석자들에 따르면 김 대표는 이재명에게 “기업 투자를 위해 과감한 규제개혁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이재명은 불필요한 규제는 과감히 해제하자는 게 본인 입장”이라면서도 안전과 생명에 관한 규제는 강화해야 한다고 단서를 달았다.
‘주 최대 69시간 근로제’와 관련한 이야기도 오갔다. 이재명이 “정말로 주 69시간 근로제 추진할 거냐”라고 물었고, 김 대표는 “총 근로시간을 늘리지 않고 탄력적으로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 논의는 많은 현장 목소리를 듣고 수렴해 결정할 사안”이라는 취지로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대표는 이재명에게 “격주로 밥을 먹자”고 제안했다. 윤 대통령과 2주에 한 번 씩 정례회동을 갖기로 한 상황에서 야당 대표 역시 격주로 만나 여야 간극을 좁히겠다는 취지다. 이 제안에 이재명이 “수시로 만나자”고 답했다고 국민의힘 유상범 수석대변인은 전했다.
그러면서도 이재명은 웃으며 “대표가 되셨으니 알겠지만 그렇게 시간이 잘 안 날 걸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참석자들에 따르면 이재명은 이어 “매일 욕하면서…”라고 덧붙였다.
국민의힘 새 지도부 출범 뒤 13일 첫 최고위원회에서 당 지도부가 일제히 이재명을 성토한 것처럼 여당이 자신에 대한 비판을 쏟아내고 있는 것에 대한 불만을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회동에서는 두 대표 간 구원(舊怨)으로 남아 있는 봉고파직(封庫罷職·관가의 창고를 봉하고 파면함)과 위리안치(圍籬安置·죄인을 귀양 보내 울타리를 친 집에 가두는 형벌)에 대한 이야기도 오갔다.
이재명은 2021년 자신을 향한 거친 공세를 펼치던 김 대표를 향해 “봉고파직에 더해서 위리안치 하겠다”고 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회동 뒤 기자들과 만나 “이재명이 예전 봉고파직, 위리안치 얘기에 웃더라”라며 “당대표가 되면서 서로 지킬 선이 있고 논란거리가 더 이상 아니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