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별아별 게 다 있다고 보면 맞을 것 !
언젠가 성(姓)이 'Deadman' 인 남자를 조우한 적이 있다.
미스터 데드맨(Mr. Deadman)은 '사인(死人) 씨' ?
*dead man은 '빈병, 빈술병'이니 먹을 게 없듯이
dead man은 먹을 수 없는 '게의 아가미' 이기도 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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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에...”
1931년 삼척출신의 가수 권혜경[權惠卿] ㅡ ‘산장의 여인(山莊의 女人,1957)’ 은
첫사랑의 화원(花園, 1958), 호반(湖畔)의 벤치(1961), 동심초(同心草,1964) 등 티없이 맑고 낭랑한 목소리로 세상을 빨아들였던...
가수 권혜경 음반
1950년대 가수 권혜경(1931년 11월 12일 ~ 2008년 5월 25일)은 당대의 톱스타, 눈높은 독신녀였다.
가냘픈 체격의 청순미로 사내들 마음을 뛰놀게 했고, 은행원이라면 누구나 알아주던 시절 조흥은행을 그만두고 1956년 당시 서울중앙방송국(현 KBS) 가수모집에 응시, 전속가수 3기생으로 발탁된다.
이후 1957년 '산장의 여인'으로 데뷔한 뒤 한때 가수 생활과 일요신문의 기자직도 겸업한 화려한 이력의 가수이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든 죽음으로, 각자의 팔자나 운명이 다 드러나더라는~.
첫사랑의 화원(花園)
1958 권혜경
白 湖 작사 박춘석 작곡
* 박춘석의 호는 백호, 본명은 박의병
꽃이 핍니다 첫사랑 화원에
새빨간 장미꽃 순백한 릴리꽃
아름답게 피었네
심심산천 바위 틈에
비에 젖어 피는 꽃도
거리서 먼지 쓰며
피어나는 꽃이라도
꽃은 꽃이요
비가 옵니다 첫사랑 화원에
꽃잎에 내리는 가랑비 이슬비
소리없이 고이네
한번 피면 시드는 게
첫사랑의 꽃의 운명
비바람 불어오는
들에 피는 꽃이라도
꽃은 꽃이요
꽃이 집니다 첫사랑 화원에
한숨에 시드는 청순의 꽃잎은
쓸쓸하게 웁니다.
달빛 속에 밤이 드니
떨어지는 꽃이라도
새벽에 이슬 맞아
떨어지는 꽃이라도
꽃은 꽃이요
"山莊의 女人" 가수 권혜경 [權惠卿]
본명 권오명(權五明)
1931~2008
1931년 10월 3일, 세무공무원이었던 아버지의 2남 4녀 중 넷째 딸로 삼척에서 출생했다.
이후 의정부로 이사, 대문을 세 번이나 열어야만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부유하고 엄격한 가정에서 자랐다.
의정부보통학교를 거쳐 서울의 동구여상을 졸업한 후 부모의 뜻을 따라 당시 조흥은행에 입사해 사회에 첫발을 디딘 그녀. 스물 여섯이 되던 해인 1956년, 당시 서울중앙방송국(현 KBS) 가수모집에 응시, 전속가수로 발탁된다.
그러나 부모는 가수활동에 대해 완강히 반대했다. 심지어 '풍각쟁이 광대'는 집 안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다고 해서 집에서 쫓겨나야 했다. 부모의 뜻을 거역했다는 배신감으로 그녀가 번 돈마저 바닥에 내동댕이쳤던 부모와는 그 후 쉽사리 화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했던가?
점차 부친은 어느 정도 이해해 주기 시작했지만 정작 어머니는 끝내 용서치 않은 채 갑자기 타계했기 때문에 권혜경 씨 입장에서는 당시 받은 충격을 감당해 내기가 쉽지 않았다.
때문에 그는 스스로 대견하다 싶은 일이라도 생기면 먼저 어머니 무덤부터 찾곤 했다.
<산장의 여인>으로 유명 가수가 된 직후인 1950년대 말부터 심장판막증 진단을 받은 뒤 '호반의 벤치'와 '동심초'는 병상에서 녹음을 해야 할 정도였다.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로맨스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지만 인연이 닿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시련을 이기기 위해 불교에 귀의한 그는 생의 절반 이상을 봉사활동에 바쳤다. '대명화'라는 법명을 받고 70년대 이후 전국 교도소를 돌며 재소자들을 격려해 수많은 수인들로부터 '어머니'라고 불리기도 했다.
심장판막증, 후두암 등 각종 병마로 평생을 투병하였으며 인생 말년 14년간 충북 청원군 남이면 산속에 홀로 살다가 2008년 5월 25일 청주 효성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77세.
생전에 결혼은 하지 않아 자식은 없다.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에...”로 시작되는 <산장의 여인>처럼 외롭게 일생을 마쳤다.
집안의 냉장고에는
‘ 나 죽으면 연락해 주세요.
손성미, 전화 02) 907-XXXX '
이라고 쓰여진 메모지가 한 장 붙어있었다고 한다.
손성미는 셋째언니 딸로 서울에 사는...
첫댓글 권혜경 추억의 가수 입니다
한때는 인기 가수였지요
좋고 편안한 하루가 되세요 ~
산장의 여인 같은 삶을 살다간
비운의 연예인있지요.
건강한 하루 즐거이 보내세요.
권혜경 가수의 맑은 목소리는 지금도 귓가에 쟁쟁합니다.
지금쯤인 가을이 되면 쓸쓸한 여인들이 많이 불렀던 산장의 여인.....
아무도 찿는이 없이 쓸쓸하게 세상을 떠났을 그를 생각해 봅니다.
말년에 청주의 남이면에서 기거하다가 지금도 건재해 있는 효성병원에서 생을 마치셨다니...
가을을 맞이하며 권혜경 가수의 명복을 빕니다.
안녕하세요. 샘님...
사람이 평범하게 한 생을 산다는 것도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나 봅니다.
아마도 저마다
기구한 운명에 기구한 사연이 있겠지요.
산장의 여인 팔자처럼
산장의 여인 같이 살다 가셨습니다...
쓸쓸하게...
산장의 여인
주인공 권혜경가수가??
외롭게 죽어가는 산장의 여인
마음이 짠합니다
아무튼
인간은 무슨 사연이든 안고 가나봅니다
독신녀의 말년
얼마나 외로울까요?
오늘도
좋은 하루되세요 ~^^
각자가 제각금(지지금ㅎ)
안고 지고 가야하는 운명이라는
골치 덩어리 ㅎ~
우리도
우리 나름 좀 짊어지고 비틀거리자나요.
ㅎ
다 그런거지 뭐
그런거야 ㅋ
인생은 비극이라더니
슬퍼요..................................오늘 하루도 슬프지는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