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숙 (5); 그 후
벌써 2주일이 지났나? 지난 토요일, 나는 내 외가 쪽 사람들과 하루 종일을 같이 보냈다. 이종사촌네 결혼식에 참석하느라 분당에 갔는데, 가는 길에 다른 이종사촌으로부터 부친상의 부고를 들었다. 장례식장은 강릉에 있어서, 우리는 결혼식에 참석한 후 그 길로 강릉으로 달려갔다. 벌써 몇 달 전 일이지만, 나는 외숙을 중심으로 외갓집 이야기를 네 편이나 써서 올린 적이 있다. 침통한 심정으로 울진에 내려가 외사촌 동생의 장례를 치루고 올라와서 썼었다. 그 때 나와 같은 심정으로 나와 같이 울진에 내려갔던 이종사촌, 외사촌들이 다시 분당에서 만났던 것이며 강릉까지 갔다 온 것이다.
세상 떠난 외사촌 동생의 누나(48세)는 의외의 말을 하였다. 아직 몇 달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동생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설마? 정말이예요. 가물가물해요. 이런 이야기 이외에도 우리는 물론 아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외조부가 아편을 하셨던 것이 맞다. 외조부에 관해서는 이런 이야기도 나왔다. 외조부는 찐빵을 드실 때 빵껍질을 까고 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접시에는 빵껍질이 수북이 쌓였다고 한다. 누군가가 내 전공을 묻기도 하였다. 나는 교육학이라고 말해주었다. 상대는 내 전공에 관해 더 듣고 싶어하는 듯한 눈치를 보였지만 나는 더 말하지 않았다. 지금 그것이 후회가 된다.
하루 종일 같이 있었으니 정말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겠지만 -- 우리는 짬을 내어 경포대 구경도 하였다 -- 지금 기억나는 것은 이상과 같은 것뿐이다. 한 동생의 이야기를 제외하면 말이다. 이 동생이 강릉 장례식의 상주였다. 이 동생은 결혼식이건, 장례식이건, 친척들의 모임에 일체 나타나지를 않았었다. 이 동생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최소한 10년은 더 된 것 같다. 올해 쉰이 된 동생은 이번에 고인이 되신 자기 아버지(나의 둘째 이모부)를 회고하는 말을 많이 하였다. 동생은 그 집안의 막내로, 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 하며, 이제 아버지를 모실 형편이 되어 조만간 모셔오려고 했는데 이렇게 되었다고 하면서 애통해했다. 친척들은 고인을 ‘홍서기’라고 불렀다. 면사무소 서기로 일하셨기 때문이다. 동생은, 자기 아버지는 평생을 당신 자신에 대한 불만 속에서 사신 분이라고 말하였다. 예컨대 군수 이야기가 나오면 “학교 다닐 때 나보다 공부도 못하던 녀석이 저렇게 되었는데......” 하고 말하셨다는 식이다.
동생은 아버지 이야기와 더불어 외삼촌 이야기도 하였다. 뜻밖이었다. 강릉 동인 병원 장례식장의 접객실은 시끄러웠다. 나는 귀를 쫑긋 세우고 바짝 다가앉아 동생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동생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외삼촌댁을 방문하곤 하였다고 한다. 황지에서 출발해 승부역에서 내려서 걸었다고 한다. 황지는 태백시에 있지만, 옛날 황지 사람들은 자기 고장을 태백이라고 부르지 않고 꼭 황지라고 부른다. 승부는 “하늘도 세 평이요, 꽃밭도 세 평이라”고 하는 바로 그 승부다. 부자가 앞뒤로 서서 철길을 걸어가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철길가에 야생화라도 피어 있었을까? 외삼촌 드리려고 떡보따리를 들고 나오기도 했다던가? 그날 이종 형제들 예닐곱 명은 정보를 모으고 지혜를 모아, 외삼촌이 향년 93세의 고인(쥐띠)보다 2년 연상(개띠)이라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동생은, 외삼촌이 자기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었을 뿐 아니라 자기와도 이야기를 나누어주셨다고 말했다. 부자는 외삼촌이 기거하신 사랑채에 들었겠지. 한참을 놀다가 아버지는 목침을 벤 채 돌아누워서 잠이 든다. 그러면 아버지 대신 아들이 나서서 외삼촌을 상대한다. 외삼촌은 말 수가 적은 분이고 황지 이모부(고인)는 아주 말을 많이 하시는 분이다. 그러니 대화의 양상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외삼촌은 조용히 이모부의 말을 들어주셨을 것이다. 그러다가 이모부가 물러나고, 어른들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내 동생이 다가 앉으면, 외삼촌도 입을 여셨던 것 같다. 동생은, 외삼촌은 어린 자기한테 말씀을 많이 하셨다고 말했다. 자기도 외삼촌 앞에서는 말이 술술 나왔으며 외삼촌과 이야기 나누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그래서 나중에는 아버지를 따라서 간 것이 아니라 혼자서 외삼촌을 찾아가기도 했다는 것이다. (동생은 외삼촌에 관하여 확실히 많이 알고 있었다. 외삼촌이 다닌 학교는 경기중학교가 아니라 경신중학교라고 바로 잡아주기도 했다.)
허허 그것 참, 그게 언제적 이야기인가? 외삼촌을 방문하곤 한 것은, 동생이 고등학교 다닐 때와 대학교 다닐 때였다고 한다. 동생은 강릉고등학교를 나왔고 대학교는 서울에서 다녔다. 방학 때면 외가에 가서 며칠씩 묵어가곤 했다는 것이다. 허허 그것 참, 50년 가까이 나이 차이가 나는 외삼촌과 조카가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말이지? 이야기의 내용이 뭐였어? 딱 부러지는 대답을 듣지는 못했지만, 다양한 주제가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소소한 일상적인 잡담과 주변 사람들의 안부 이야기에서부터 최근에 읽은 책에 관한 이야기와 수양에 관한 이야기 등이 나왔던 것 같다. 그날 접객실에서도, 외삼촌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이종형제들은 입을 모아, 외삼촌을 가리켜 “세상사는 데에 필요한 것은 아무 것도 모르고,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은 많이 아는 양반”이라고 말했으니, 대화의 내용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알고 보았더니, 이 동생은 외삼촌을 많이 닮았다. 그래서 서로 말이 통했던 것이다. 동생은 내년 2월에 연세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한국 교회사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는다고 한다. 졸업하는 데에 8년이 걸렸다. 동생은 잘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그 나이에 공부를 시작한 것이었다. 원래 신학에 관심이 있었던가 보군? “어렸을 때부터, 정신적인 것이라고 할까, 영적인 것이라고 할까, 하여간 그런 것에 관심이 있었어요. 그러다가 더 늦기 전에 달려들자는 심정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원 공부를 시작했지요.”
외숙에 관한 글 네 편 중 마지막 편에서 나는 ‘파인딩 포레스터’ 혹은 ‘포레스터 알아보기’라는 영화에 관하여 썼다. 은둔하는 천재 소설가와 재능이 있는 흑인 소년이 서로를 알아보고 교유하는 이야기다. ‘외숙’ 네 편은 외숙을 중심으로 외조부와 외사촌 동생 등 외갓집 사람의 일생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고 할 수도 있지만, 사람을 알아보는 일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그 결론은, 첫째, 나는 사람을 알아보기에는 너무 용렬하다는 것이었으며, 둘째, 주변 사람 중 그 누구도 외삼촌을 알아보지 못하였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종사촌 동생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이 결론을 수정하기로 하였다. 물론 첫째 결론은 여전히 맞으니까 수정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둘째 결론은 수정해야 한다. 최소한 그 동생이 외삼촌을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더 강하게 말해야 하겠다. 첫째 결론은 맞아도 너무 맞고, 둘째 결론은 틀려도 너무 틀렸다. 그 동안 나는 이 동생을 좋게 보지 않았다. “잘 다니던 직장을 그 나이에 왜 뛰쳐나오는가? 친척들의 대소사에 얼굴도 내밀지 않고 말이야.” 나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동생에 대해 불만을 가졌던 것이다. 게다가 동생은 나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이나 윗 사람들에게 그렇게 살갑게 굴지도 않았고 고분고분하게 굴지도 않았다. 말하자면, 태도도 불량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런 태도는 보다 높은 것에 관심을 두고 그것을 추구하는 사람들 특유의 것으로, 모르긴 몰라도, 외삼촌이 꼭 그러하였을 것이다. 그런 태도와 그런 행동, 그런 처세는 바로 외삼촌의 것이다.
그 동생은 외삼촌을 알아보았으며, 자기 자신이 보다 높은 그 무엇을 추구하여왔다. 사실 남에게서 보다 높은 무엇을 보아내려면 자기 자신이 어느 정도라도 그것을 추구하고 있어야 한다. 나는 이제 내 동생이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것을 인정한다면 한 걸음 더 나아가 또 다른 것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보다 평범한 다른 이종 형제들은 어떠한가? 다른 형제들도 큰 차이가 없지 않을까? 다들 외삼촌을 알아보았다고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와 더불어 다들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보다 높은 것을 추구하고 있다고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할 것 같다.
그냥 덜렁덜렁 다니는 것 같지만, 그 마음 속에는, 다들 보다 높은 것에 관한 갈망이나 염원 같은 것을 숨기고 있다. 이런 사실을 나는 몰랐다. 누군가가 내 전공에 대하여 더 듣고 싶어하는 눈치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입을 닫은 것은, 그런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첫댓글 누가 남자 좀 소개해줘. 내 외사촌 여동생 말이야. 48세, 미혼, 유순하고 명랑함. 호리호리하고 단정한 인상임. 교회에 나감. 정말로 관심 좀 가져줘. 내 메일: ytcho@woosuk.ac.kr
역시 장례식장은 배우며 소통하는 축제장이네.
메일 많이 보낼거 같네. 메일 보내면 사진 첨부해주셔.
외사촌 여동생이 69년생? 일단 카메라 테스트부터 해 보자. ㅋ
내가 따로 가지고 있는 사진은 없어. 그러나 이미 올린 셈이야. <외숙> 3편의 분천 산타 마을 사진에 나와. 왼쪽에서 세번째 마른 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