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 가득한 섬으로
인류는 지금껏 이상향을 찾아가기도
모색하기도 했어. 도연명의 무릉도원,
허균의 율도국,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제임스 힐턴의 샹그릴라, 베르길리우스의
목가적인 이상향인 아카디아가 그러하지.
(1) 섬에 갇힌 늙은이들
한편 예이츠는 이 땅이 노인들이
있어야 할 곳이 아니기에, 또 다른
그들만의 이상향을 찾아 ‘비잔티움으로
항해’라는 시를 썼어. 드디어 세대가
각기 다른 낙원을 꿈꾸기 시작했지.
그런데 얼마 후이면 이 땅은 노약한
그들로 가득할 테니 굳이 먼 곳으로
찾아갈 필요가 있을까?
그러면 어떻게 하지? 이 땅은 곧 섬이
될 거야. 그들만이 득실거리는 곳에는
젊은이들이 떠나게 되지.
아니, 떠난다는 건 남아 있어도 그들과
아무런 소통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야.
그러니 이곳은 늙은이들의 섬이 되는 거야.
아니, 섬에 갇힌다는 게 옳은 표현이야.
그러니 그들 스스로 행복이 가득한 섬을
만들어야 해. 예이츠가 비잔티움으로
항해하려는 까닭은 불멸의 지성을 찾기
위함이었어. 젊은이들이 본능에 따라
우글거리는 이 땅이 더는 그들이 살 곳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었지.
(2) 풍요에 시들은 풍경들
이는 서로 같은 모국어를 쓰고 있지만
그들의 생각과 언어가 우리와 너무
다르기 때문이야. 먹물들은 이를 사상과
이념의 다름이라고 부르더군.
더욱이 허구한 날, 쉬는 날 없이, 확성기와 깃발을
들고 거리에 쏟아져나와 허전한 갈등의 소리를
높이고 있어. 풍요에 겨운 그들이, 무엇이 그리
불만이고 분노에 차 있는지 참으로 알 수가 없어.
집시(Gypsy)족도 아니면서 집시(集示)의 자유만
누릴 뿐이야.
한강 변을 메운 큰 섬의 풍경도 다르지 않아.
진실은 없어지고 떼의 힘만으로 그들만의
떼창을 부르고 있어. 여름밤 맹꽁이 울음처럼.
그런데도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아. 두 눈만 굴리고
있을 따름이지. 어른이 모두 사라졌나 봐.
(3) 이어도(離於島)를 건너 그래 도로
왜 이 땅에는 초인(超人)이 나오지 못할까?
그렇지 못하면 에드먼드 버크라도 불러내어
자유 시민, 공동체와 사회, 나라의 품격에 대해
강의라도 들었으면 좋겠어.
설혹, 자기 땅에서 나그네로 살아갈지라도
우리는, 해체주의란 문화의 덫에 걸려 꼼짝도
못하는, 젊은이들을 더 이상 구할 수 없으니,
우리만이라도 호모사피엔스 보편의 진실과
가치를 이어가야 해.
춘분과 추분이 되어 파도가 칠 때면 보인다는
이어도(離於島)를 건너 그래 도(島)로 찾아가,
행복이 가득한 섬으로 만들어야 해.
그 땅은 바로 우리가 있는 곳이야.
그러니 멀리 갈 수고를 하지 않아도 좋아.
불멸의 지성은 우리 내부에 있기 때문이지.
그 섬에서 우리는 품격을 잃지 말아야 해.
2024.6.13.
첫댓글 이어도 같은 섬이 존재할까요?
잠간 소풍왔다가 가는 아이들처럼
순간을 즐기고 노래하면서 기쁘게 사는 거지요
그래도 지성이 있다면 품격을 잃지 말아야겠지요
많은걸 생각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