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잘 모르는 미시사에 대해서도 답변을 하게 되는군요 ^^*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 간단하게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일단 중세 이전의 철필이나 고대 이집트의 갈대 펜 등에 대한 설명은 생략합니다.
1. 깃털펜
깃털펜은 보통 중세를 묘사한 그림에서 자주 보는 것일 것입니다. 깃털펜은 대략 다음과 같은 과정으로 만듭니다.
a. 거위의 왼쪽 날개에서 깃털을 뽑습니다.(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자료마다 저 왼쪽이라는 걸 중요시하더군요. 뭔가 이유가 있는 모양입니다.)
b. 뽑은 깃털을 오랜 시간동안 물 속에 담궈 놓습니다. 그러면 이 깃털이 부드러워져서 쓰기가 좋아집니다.
c. 물에서 꺼낸 다음 건조시키고, 뜨거운 모래로 담금질을 합니다.
d. 깃의 끝을 비스듬히 잘라 낸 다음, 잘린 부분의 중간을 세로로 베어냅니다.(펜에 모세관 현상으로 잉크를 빨아들이는 갈라진 부분 있죠? 바로 그 부분입니다.)
e. 깃털 끝을 골라 내어 부드럽게 만든 다음, 다듬어서 뾰족한 촉을 만들면 완성!!
이렇게 만들어진 깃털 펜은 닳으면 써지지가 않았기 때문에, 책을 베끼는 필경사나 고관대작의 비서와 같이 펜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작은 문구용 칼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고 전해집니다. 촉이 망가지면 연필 깎듯이 깃털 펜을 손질해서 다시 쓸 수 있게 해야 했거든요.
2. 금속펜
오랜 세월 동안 사용되어 온 깃털펜이 금속 펜으로 진화하게 된 것은 18세기 중엽 이후의 일입니다. 교육의 확대와 더불어 글을 쓰는 것은 더이상 소수 지식인들의 특권이 아니었기 때문에 필기구의 수요도 늘었던 것이 발명의 원인이 되었습니다.(게다가 깃털펜의 그 끔찍한 수준이란... _-_)
금속펜이 처음 어디서 개발되었는지는 정확한 설이 없습니다. 미국의 신문 <보스턴 미캐닉>지는 보스턴의 유지인 페레그린 윌리엄슨이라는 사람이 금속펜을 발명했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만, 1808년에 발간된 독일의 정기간행물은 쾨니히스베르크의 학교 선생이 발명했다고 주장했고 또 어떤 프랑스 소책자에서는 프랑스 사람이 금속펜을 처음 발명했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뭐 일반적은 수요로 인해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기술 혁신이 이루어진 게 진실이 아닐까 싶습니다.
금속펜도 처음에는 품질이 좋지 않았습니다. 금속 가공 기술이 별로였기 때문에 초기의 만년필과 같이 이따금 종이를 찢기 일쑤였습니다. 황금으로 펜촉을 만들면 그런 일은 없어졌습니다만 그건 너무 비쌌습니다. 약간 더 시간이 흘러 품질이 충분하게 향상된 후에야 금속펜은 산업사회 최초의 소모품으로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3. 만년필
1883년 미국의 모험판매원인 워터맨이 발명한 워터맨 만년필이 만년필의 시초입니다. 워터맨이 커다란 보험 계약을 하려고 계약자에게 잉크를 찍은 펜을 건넸는데 그 펜에서 잉크가 쏟아져 계약서가 엉망이 되었습니다. 불길한 징조라고 믿은 계약자는 보험 계약을 엎어버렸고 뚜껑이 열린 워터맨은 잉크가 새지 않는 새로운 펜을 만들기 위해 노력, 만년필을 개발해 낸 것입니다. 1차 대전 종전조약을 서명한 워터맨 만년필 회사는 지금은 없어졌고 미국 백악관 공식 펜을 제공하는 파커가 가장 오래된 만년필 회사로 남아 있습니다.
만년필은 볼펜의 등장으로 인해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후 디지털 시대 아날로그에 대한 인간의 향수가 다시 돌아오고, 만년필이 사회적 성공, 지배 계급의 상징으로서의 이미지를 가지게 되자 고급 만년필 시장은 다시 폭발하게 되었습니다. 사용자의 DNA를 잉크에 심어서 위조를 원천 봉쇄하는 주문생산 만년필이나 수백여 개만 한정 생산하는 수십만 원짜리 고급 만년필도 있습니다.
4. 볼펜
1938년, 헝가리의 신문기자였던 라데스라오 피로는 신문 기사를 작성하다가 종이가 찢어지는 일을 자주 겪었습니다. 종이가 질이 나쁘면 만년필 때문에 찢어지는 경우가 많거든요. 열받은 피로는 만년필의 끝에 공을 달아 부드럽게 잉크를 쏘아 주면 질 나쁜 종이에서도 훌륭한 필기구를 만들 수 있겠다는 사실에 주목, 화학자인 동생 게오르그의 도움을 받아 연구를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만년필에 쓰는 보통 잉크를 사용했지만 말 그대로 잉크가 줄줄 새자-_- 화학자인 동생의 도움으로 점성이 있어 새지 않는 유성 잉크를 개발해 낸 것이죠.
2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나치 독일이 헝가리를 침공하자, 피로는 조국을 탈출하여 아르헨티나로 망명하게 됩니다. 드디어 1943년,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볼펜을 고안해 낸 피로는 특허를 취득하게 되었고 밀튼 레이놀즈라는 미국인이 1945년 피로의 특허를 인수하여 대량 생산을 시작하면서 볼펜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습니다. 편안함과 실용성을 중시하는 미구인 특유의 사고방식도 볼펜이 만년필을 대체하는 큰 원인이 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해방 후 미군이 남한에 진주하면서 우리나라에 소개되었고, 63년부터 국내 생산이 시작된 볼펜은 60년대 말에는 만년필처럼 비싸지 않고 편안한 필기구인 볼펜은 지금까지도 필기구의 왕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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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볼펜이라고 하면 일본 Mitsubishi에서 나온 Uniball 0.38mm 남색 볼펜만 사용합니다. 부드럽게 써지고 볼펜 촉도 잘 상하지 않아서 고등학생 이후로 아주 애용하고 있습니다. 만년필을 써본 적도 있었지만 역시 전 볼펜이 더 마음에 들더군요.
첫댓글 고골의 광인일기를 보면, 주인공인-러시아 이름은 외우기가 어렵습니다;;-하급 관리가 고위 공무원의 집에서 내내 깃털펜이나 깎고 있죠. 아, 저는 모나미 153을 애용합니다. 가격대 성능비로 이만한게 없지요;;; (하이테크는 한번 써봤다 그 내구성에 경악했습니다;)
하이테크의 내구성 덜덜덜
하이텍씨 인줄 알았는데...;;;
왼쪽 깃을 강조한건 오른손으로 쓸 때 편한쪽이라서 그런게 아닐까요? 깃털이 반대로 기울어져 있으면 쓰기도 불편할테고... 그리고 좋은글 잘 봤습니다
저는 밑줄 그을 때는 Bic을 쓰고, 그냥 필기할때나 끄적거릴 때는 아무 샤프나 애용.
정체모를 \3000 샤프 -_-;; 그리고 Bic 볼펜 외 용병만큼이나 잡다한 볼펜, 그리고 Staedtler 연필...ㅡㅅㅡ;;;;
^^ 잘 봤습니다. 답변이 안 올라와 잊혀진 줄 알았다가 지금 보네요.
요즘은 일본만년필을 애용하고 있습니다. 파카 만년필 두어 개 하고요. (사실 딴 것들도 있잖아) 이래저래 좀 늘어갑니다.
만년필에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