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코즈나들이 허리에 두르는 시메나와(注連縄)와 도효이리의 형태는 2가지로 나뉘어 집니다
고리를 가운데에 하나 만들고 왼손을 옆구리에 짚고 오른팔만 뻗는 운류(雲竜)형과
고리를 양 옆에 2개 만들고 양 팔을 모두 뻗는 시라누이(不知火)형 2개가 있죠
역대 요코즈나들을 보면 운류 형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그런데 시라누이 형을 채택한 요코즈나들은 단명한다는 징크스가 있더군요
위키백과에 적힐 만큼 스모 팬들에겐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사실인가 싶어서 시라누이 형의 요코즈나들 기록을 일부나마 한번 찾아 봤습니다
타마노우미 마사히로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오래 살지 못한 요코즈나입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윤이기라는 이름의 재일 한국인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어머니를 위해 집을 짓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노력하여 요코즈나가 되었고
통산 6회 우승을 기록했지만
1971년 10월 11일 맹장염 수술 이후 상태가 급격히 나빠져
겨우 27세의 나이에 혈전증으로 세상을 떠났기에 많은 팬들에게 안타까움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와 치열하게 싸웠던 라이벌 요코즈나 키타노후지는
타마노우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농담이 지나치다!"며 버럭 화를 냈고
사망 소식이 사실임이 알려지자 펑펑 눈물을 쏟았다고 합니다
키타노후지가 아직까지 살아 있는 걸 생각하면 더욱더 안타깝네요
후타하구로 코지
모두가 인정하는 최약에 최악의 요코즈나입니다
우승 없이 준우승만 2번 있었는데 가능성이 보인다며 요코즈나로 승급되었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비판받았죠
우승 없이 요코즈나가 된 건 50년대의 38대 요코즈나 테루쿠니 만조도 있었지만
그는 승급 후엔 2연속 우승을 기록하며 체면치례 정도는 했지만
후타하구로는 그 후로도 준우승 7번에 그쳤기에 사람들의 싸늘한 시선을 피할 길이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본인은 창코의 맛이 왜 이러냐며 방의 후배들을 때리더니 그걸 말리던 오카미상에게까지 주먹을 휘두르고
방을 뛰쳐 나가는 바람에 파문이나 다름없는 은퇴를 해야 했습니다
많은 기대를 걸었던 리키시가 저런 사고를 치고 친구 집에 숨어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 며 억지를 부리고 있었으니
타츠나미 오야카타(안넨야마 미츠지)의 심경은 차마 말로 설명을 못 했겠죠
그 후 프로레슬러로 전향했지만 시합이 마음에 안 든다며 "이런 짜고 하는 게 재미있냐?"
라며 프로레슬링을 정면에서 부정하는 폭언을 하는 등 트러블이 끝이 없었습니다
당시 상황:http://kkjzato.egloos.com/3278154
그리고 2019년 2월 10일
오랜 기간 앓아 오던 신장병으로 인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3월 29일이나 된 뒤에 밝혀졌습니다
명색 요코즈나의 마지막으로서는 참 쓸쓸했죠
아사히후지 세이야
현 이세가하마 방의 오야카타로
하루마후지와 테루노후지
2명의 요코즈나를 키워 낸 현 시대 최고의 스모 지도자라 할 만한 사람입니다
본인 역시 20세의 다소 늦은 나이에 데뷔했음에도
헤이세이 최초의 요코즈나에 오를 만큼의 실력자였지만
심각했던 위장 질환으로 인하여 통산 4회 우승에
요코즈나 등극 후 우승은 1회에 그치며 단명하였습니다
와카노하나 마사루
동생과 함께 전대미문의 형제 요코즈나로 등극하여
세기말 스모 붐을 일으킨 인물이었죠
천재 소리 듣던 동생과 달리 상당히 고전했지만
98년 2차례 연속 우승을 달성하며 동생의 뒤를 이어 요코즈나가 되는 데 성공했습니다
허나 요코즈나가 된 이후엔 부상으로 인하여 우승을 1번도 더 하지 못하고
99년엔 마케코시를 기록하는 등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 주다가 결국 은퇴해야만 했습니다
이런 면 때문에 동생이 형을 업신여겼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루마후지 코헤이
아사소류,하쿠호의 뒤를 이어 요코즈나가 되면서 몽골인 전성기를 이어간 리키시입니다
비록 부상 때문에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 주진 못했지만
그래도 9회의 우승을 기록하며 시라누이 형의 요코즈나로는 3번째로
10회 이상의 우승을 차지할 인물로 기대를 받았습니다
(나머지 두 명은 후술하겠습니다,한 명은 다들 아시겠지만)
하지만 타카노이와 폭행 사건으로 인해 본인이 목표했던 10회 이상 우승의 꿈도
오아캬타가 되어 후배들을 키우겠다는 목표도 다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타카노하나가 그 사건을 교활하게 이용하지 않았더라면
본인이 조금만 화를 눌렀으면 10회 이상의 우승도 기록했을 텐데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렇듯 전반적으로 실력보다는 실력 외적의 일로 단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징크스가 호사가들의 이야깃거리만은 아닌 듯 하네요
물론 어디에나 예외는 있는 법
하쿠호는 45회 우승이라는 경이로운 금자탑을 쌓으며
시라누이 형은 단명한다는 징크스를 깨끗이 극복해 냈습니다
현재 시라누이 형의 요코즈나로 10회 이상의 우승을 기록한 건
1911년의 22대 요코즈나 타치야마 미네에몬과
하쿠호 쇼 이렇게 2명 뿐입니다
현재 유일한 요코즈나 테루노후지 또한 스승과 선배를 따라
시라누이 형을 택했습니다
건강이 좋지 못해 오래 자리를 지킬 것 같지는 않다만
기적의 부활을 이룩해 낸 요코즈나이니만큼
적어도 10회 이상의 우승은 해 줄 거라 믿습니다
첫댓글 운류형이 전멸인데.. 이후로 타카케이쇼나 운빨,,대진빨좋게 요코즈나 등극하면 지 스승처럼 운류형으로 하겟지요? 테루노후지도 사실상 조금만더 노력한다면 10회우승 기록을 깰수있을것만같아요
지금 현역들 중 테루노와 그나마 맞설만한 게 케이쇼 1명 뿐이죠
@showmustgoon 간혹 용병수준으로 부상없는 엔도.. 운좋게 쇼다이도있지요
그런일이 있군요 고마워요
감사합니다
잘보고 갑니다 부지화가 시라누이 인건 처음 알았네요^^
감사합니다
그러고 보니 카부 목록중에 부지화(시라누이) 카부도 있네요. 시라누이형 요코즈나 도효이리와 관련이 있으려나요.
@sumo 시라누이 카타를 운류가 만들고 운류 카타를 시라누이가 만들었다고 하죠. 뒤바뀐 거 아닙니다.
초기 요코즈나 이름이 카부에 많이 남아있긴 해요. 히데노야마라던가, 진마쿠라던가…
@운명의방랑자 생각해보니 부지화=평화를 모른다 는 뜻이네요ㅋㅋㅋ 요코즈나 시코나 답습니다.
하쿠호 하나로 올킬이네요.
그렇죠ㅎㅎ시라누이를 위한 리키시였습니다
우리카페가 역시 멋진곳이네요~~
showmustgoon 님. 반갑습니다. 요코즈나가 착용
하는 벨트가 2가지 종류로 나눠지는지 몰랐네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