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아저씨 눈 할께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난 그 날도 평소처럼 집 앞 횡단
보도를 건너오다가 시속 80km
로 달려오는 차와 부딪어 중상을 입었다.
나는 기적적으로 생명은 건졌으
나 의식이 돌아옴과 동시에 깊은 절망에 빠졌다.
시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볼 수 없고 일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기
면서 일곱 살 된 소녀와 같은 병실을 쓰게 되었다.
"아저씨!. 아저씬 여긴 왜 왔어?
그렇게 눈에 붕대를 감고 있으니 꼭 미라 같아"
"꼬마야, 아저씨 혼자 있게 좀 내버려 둬!"
"그래, 아저씨 근대 언제라도 아저씨 기분 풀릴 때 말해, 난 정혜야, 오정혜!
그 동안 친구가 없어서 심심했는
데, 같은 병실 쓰는 사람이 고작 한다는 말이 귀찮다야?"
그러면서 그 아이는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 다음 날, "아저씨, 그런데 아저
씬 왜 이렇게 한숨만 푹푹 쉬어대
" 하고 그 꼬마는 말을 했다.
"정혜라고 했나? 너도 하루 아침
에 세상이 어두워졌다고 생각해 봐라.
생각만 해도 무섭지.
그래서 아저씬 너무 무서워서 이렇게 숨을 크게 내쉬는 거란
다."
"근데, 울 엄마가 그랬어요.
병이란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고. 그래서 난 절대로 날 환자라 생각 안 해요.
그러니까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다 불쌍해 보여.
얼마 전 그 침대 쓰던 언니가 하늘에 갔어.
엄마는 그 언니 착한 아이라서 하늘의 별이 된다고 했어.
별이 되어서 어두운 밤에도 사람
들을 무섭지 않게 환하게 해 준다
고 했어..."
어느새 그 꼬마와 나는 병원에서 소문난 커플이 되었다.
그 아이는 나의 눈이 되어 저녁마
다 산책을 했다.
7살 꼬마 아이라고는 믿기 어려
운 어휘로 주위사람과 풍경 등을 들려주었다.
2주 후 나는 병원에서 퇴원하게 되었다.
그 아이는 울면서 말했다.
"아저씨, 나 퇴원할 때 되면 꼭 와야 돼 알겠지? 응.... 약속."
"그래 약속." 우는 그 아이의 가녀린 새끼손가락에 고리를 걸고 약속했다.
그리고 2주일이 지난 어느 날 전화가 왔다.
"최호섭씨지요? 축하합니다.
안구 기증이 들어왔습니다."
"진짜요?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하늘로 날아갈 것 같았다.
일주일 후, 나는 이식수술을 받
고 3일 후에는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
다.
난 너무도 감사한 나머지 병원 측에 감사편지를 썼다.
그리고 안구 기증자를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기증자는 다름 아닌 그 꼬마 아가
씨 오정혜였던 것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바로 내가 퇴원하고 일주일 뒤에 정혜의 수술 날이었다.
그 아이는 백혈병 말기환자였던 것이다.
난 그 아이의 부모님을 만났다.
"정혜가 아저씨를 많이 좋아했어
요.
수술하는 날 아저씨를 많이 찾았
지요...."
정혜의 어머니는 차마 말을 이어
가질 못했다.
"정혜는 자기가 저 세상에 가면 꼭 눈을 아저씨 주고 싶다고.
그리고 꼭 이 편지 아저씨에게 전해달라고...."
또박또박 적은 편지에는 7살짜리 글씨로 이렇게 써있었다.
"아저씨! 나 정혜야.
이제 저기 수술실에 들어간다.
전의 옆 침대 언니도 하늘로 갔는
데 정혜도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
어.
내가 만일 하늘로 가면 나 아저씨 눈 할께.
그래서 영원히 아저씨랑 같이 살께.
하지만 수술실에서 나오면 아저
씨랑 결혼할래.
아저씨랑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래...."
이 글은 언젠가 {기독교사상}에
서 소개된 내용으로, 일곱 살짜리 어린 정혜의 마음 씀씀이와 죽음
에 대해서 슬프기도 하고 가슴이 뭉클하기도 하며 짠한 마음과 더불어 훈훈한 감동을 전해주기
에 다시 꺼내어 함께 공유하고자 소개를 합니다.
사람이 불치병이 들면 나약해지
기 쉽고 짜증내기 쉬우며 주변을 살피기가 어렵고 배려하며 사랑
하기가 어려운데, 어찌 일곱 살 어린 나이의 오정혜는 이리도 다를까 싶습니다.
불치병인 백혈병 말기 환자임에
도 불구하고 교통사고로 아무 것도 볼 수 없어 한숨만 푹푹 내쉬는 처음 보는 아저씨에게 병이란 마음먹기에 달렸다며 밝게 투병생활을 하면서, 오히려 위로와 격려를 해주는 순수하고 따뜻한 그 마음에 무욕(無慾)의 하늘사람과 해탈의 도인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또한, 전생에 부부의 인연이었는
지는 모르겠지만, 만일 하늘로 가면 좋아하는 아저씨의 눈이 되어주어 영원히 행복하게 같이 살겠다며, 앞을 못 보는 아저씨를 위해 안구를 기증하고 떠나는 그 마음은 나로 하여금 인생을 다시 생각하게 하면서 최후의 순간까
지도 사랑을 실천하며 살라는 소중한 경종을 울려주는 것 같았
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