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의 포스트 시즌 진출이 다시 한 번 좌절됐다. 한 LG팬은 “9년간 여인의 손목 한 번 잡아보지 못한 노총각의 심정”이라며 진한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번 시즌 LG의 행보는 한 마디로 드라마틱(dramatic). 시즌 초반부터 상위권을 유지하면서 9년만의 가을야구에 들떠 있던 LG는 6월부터 하강의 조짐을 보이더니 결국 무섭게 떨어지는 코스피(KOSPI) 지수처럼 추락에 추락을 거듭, 많은 팬들과 야구관계자들을 ‘공황(panic)’에 빠뜨렸다. 잘나가던 LG의 추락에 여러 가지 요인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 그 중에는 조인성을 받쳐줄 백업포수 부재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작년 전 경기 출장하며 타율 3할1푼7리-28홈런-107타점의 개인 최고 성적을 올린 조인성은 올 시즌이 시작되자 작년의 좋은 감을 이어가며 매서운 방망이와 안정된 투수리드를 앞세워 LG의 돌풍을 이끌었다. 하지만 LG의 하락세가 한창이던 8월24일 2군행을 통보받았다. 당시 4강 싸움의 중요한 길목에서 99경기 중 98경기에 출전하며 8개 구단 주전 포수 중 최다 출전 선수였던 조인성의 2군행은 의아스러운 소식이었다.
그러나 여기에 중요한 사실이 하나 숨겨져 있었다. 바로 조인성은 한화 신경현과 더불어 한국나이 37세로 가장 나이가 많은 주전 포수. ‘오래가는 밧데리’도 천년만년 쓸 수 없듯이 천하의 조인성도 여름이 되자 체력이 방전되어버린 것이다.
조인성이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된 다음 날인 25일, 잠실 롯데호텔 그랜드볼룸에서는 2012년 신인 드래프트가 열렸다. 전체 3순위 지명권을 가지고 있던 LG 스카우트 팀 강상수 과장은 차례가 되자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북일고-중앙대 포수 조윤준”
대학리그의 거포
2학년 때까지 2년 선배 변용선(롯데)에 가려 마땅한 출전기회를 잡지 못했던 조윤준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것은 3학년 때인, 2010년 제3회 KBO 총재기 대회.
“1학년 때는 못했어요. 가끔 대타나 지명타자로 나가는 경우가 있었는데, (변)용선이 형이 워낙 잘했어요. (변)용선이 형이 졸업한 후 ‘네가 포수를 봐야 된다.’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 때 ‘그냥 생각 없이 운동하면 안 되겠다. 정말 운동 열심히 해야지’라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동계 훈련을 열심히 했죠. 그 덕에 결과가 좋았던 것 같아요”
동아대와의 첫 경기에서 4타점을 올리며 콜드게임 승리를 이끈 조윤준은 한양대와의 2회전에서 7회 홍성민(기아 6라운드 지명)을 상대로 2점 홈런을 뽑아내며 뜨거운 방망이 솜씨를 뽐냈다. 그리고 경희대와의 8강전에서 3루타 하나를 포함해 5타수 2안타 1타점을 올리더니, 고려대와의 4강전에서도 2루타를 치면서 중앙대를 결승에 진출시키는 발판을 마련했다. 그의 진가는 결승전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결승에서 만난 성균관대는 매년 대학대회 한 두 개 씩 우승을 차지하는 대학야구의 강호. 대다수 전문가들은 성균관대의 우세를 점쳤다. 하지만, 2회초, 선두타자로 나온 조윤준이 성균관대 투수 이희성(넥센)의 2구를 목동야구장 전광판 앞에 떨어지는 큼지막한 홈런으로 연결하며 전문가들의 예상을 보기 좋게 깨뜨렸다. 이 홈런을 발판으로 중앙대는 성균관대를 거세게 몰아치며 8-0으로 승리, KBO 총재기 첫 우승의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결승전에서 홈런을 포함해 3타점을 올린 조윤준은 이 대회 최우수선수상(MVP), 홈런상(2개), 타점상(11타점)을 수상하며 3관왕에 등극, 대학야구를 대표하는 거포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한미대학선수권대회, 세계대학야구선수권대회 대표로 선발되며 대학야구를 대표하는 ‘공격형 포수’로 자리매김 했다.
“대학시절은 특별한 기간이었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 대학에 가면 먼저 국가대표가 되고, 그 다음에 프로에 진출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거든요. 근데 한미대학선수권이나 세계대학선수권 같은 경기에 대표로 뽑혀 출전할 수 있었어요. 대학야구는 제게 그런 기회를 준 것이죠. 그래서 더 특별하게 느껴져요”
조인성의 후계자
조윤준은 군면제다. 고교 1학년 때 길에 가다 배수로에 빠져 십자인대파열을 당해 수술을 받았던 것. 불운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수술 후 복귀해서 팔꿈치 부상을 당하며 한 번 더 수술대에 올라야 했다. 그 수술로 인해 남겨진 것은 커다란 흉터와 군대 면제였던 것이다. 고교시절 대부분을 재활에 매달려야 했던 조윤준은 운동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부상을 당하니까 몸도 힘들고 다시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도 들었어요. 근데 가족들이 격려해줘서 고3때 다시 마음을 다잡고 운동을 했습니다. 근데 제가 1라운드 지명을 받은 게 그때 당한 부상 때문에 군대 면제 받아서 아닐까요(웃음)”
새옹지마(塞翁之馬)의 고사를 떠오르게 하는 그의 말처럼 ‘군대면제’가 지명에 큰 영향을 미쳤을까. 일정부분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지만 1라운드 지명의 전적인 이유는 아니었다. LG 스카우트팀 강상수 과장은 “남아있는 투수와 비교했을 때 조윤준이 더 낫다고 판단했다”며 “3라운드까지는 미래도 생각하면서 빨리 팀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선수를 지명했다”라고 밝혔다. 또 강과장은 “가능하면 멘탈이 강하고 성실한 선수를 뽑으려 했고, 그런 선수를 뽑게 돼서 만족한다”고 했다. 즉, 조윤준의 기량과 인성을 높이 평가했던 것.
대다수 스카우트들도 좋은 체격을 갖춰 수비할 때 투수에게 안정감을 준다는 점, 강한 어깨, 일발 장타를 칠 수 있는 파워가 있어 바로 백업포수로 쓸 수 있는 기량을 가졌다고 평했다. 그리고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얘기가 조인성의 대학시절을 보는 것 같다라는 것이었다. 이런 말에 조윤준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조인성 선배님을 예전부터 좋아했습니다. 근데 조인성 선배님 실력에 비하면 저는 한참 멀었습니다. 아직 배울 게 많다고 생각하고요. 선배님하고 비교는 영광이긴 한데,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지난 21일 계약금 2억원(연봉 2400만원)에 계약을 마무리한 조윤준은 아직 전체 3순위로 LG에 1라운드 지명을 받은 것이 얼떨떨하다고 했다. 그리고 열성적이기로 유명한 LG팬들의 많은 관심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줄무늬 유니폼을 받아든 그는 다음과 같은 각오를 다졌다.
“LG는 예전부터 좋아했던 팀이었습니다. 많은 팬들의 관심 감사하고요. 항상 열심히 하는 선수, 한 발 더 뛰는 선수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근데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첫댓글 화이팅!!! 조인성 후계자보단 두산의 저 주전포수를 빨리 따라잡았으면~~~~~
정말 잘~해주세여~!! 임찬규선수처럼 경기장에서 바로 볼 수있는.. 실력으로..
그럼 당신은 엘지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을 수있습니다~!!~^^
조인성의 후계자란 소리는 하지말기를 차라리 양의지의 라이벌이 되라고 해주세요
포스트 조인성이라고 하니까 왠지 모르게 불안해지네요
도루저지 좀 잘했으면...
해봐야 알죠., 이태원도 그렇게 떠들썩하게 영입하더니 뭐 2군에서도 안되는것 같던데...솔직히 스카우터들 능력이 의심스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