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3.13.日. 맑음
어느 봄날 아침에.
현관문을 열고 나가 돌계단에 앉아 있노라면 넓지 않은 우리 집 마당이지만 계절季節마다 시절時節마다 그런대로 볼만한 것들이 눈에 띈다. 봄에는 화단의 붉고 노란 꽃들이고, 여름에는 몇 그루 나무들의 짙푸른 녹음이며, 가을이면 감나무와 단풍나무의 겸손한 단풍이지만 겨울이 되면 쓸쓸하고 황량해서 아쉬운 대로 이런저런 생각거리를 던져둘만한 무채색 공간이 되어주기도 한다. 겨울은 지나가버리고 봄꽃은 아직 피어나기 전인 요즈음에는 다른 손님들이 찾아와 새로운 구경거리를 만들어준다. 지금 화단 옆으로 큰 돌이 놓여 있는 주변에는 까만 얼룩이와 노란 얼룩이가 따스한 햇볕을 쪼이며 즐기는 나른한 봄잠이 한창이다. 고양이들이란 먹이를 구하는 시간을 제외한다면 대부분 시간을 잠으로 보내는 동물이긴 하지만 윤기 나는 등으로 햇살을 받으며 태평스레 몸을 웅크리고 있는 모습은 일견一見 부럽기까지 하다. 봄날 아침 푸른 햇살아래서 고양이는 과연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고양이들은 꿈을 통해 혹시 전생前生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고양이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사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무엇이 어떻게 다를까? 고양이로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사람의 생각이 미처 미치지 못하는 또 다른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까?
사람들이 많은 과거들 중에서 유독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현생現生과 전생前生의 경계지점境界地點을 확실하게 분간하지 못해서는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마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 어둡고 어슴푸레한 경계지점을 지나는 순간 생각의 줄을 놓쳐버리고 혼돈과 망각에 마음을 의탁해버리기 때문일 것이다. 전생은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고 생각을 한다. 전생이란 과거 어느 순간들의 압축되고 농축된 빛의 모둠과 같은 것이어서 내가 그것들을 타자他者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한 언제나 환영幻影이나 공화空華로 보일 뿐일 것이다. 내 생각의 빛이 그것들과 어울려 완전한 하나로 섞일 때 그때야 비로소 선명한 전생의 기록들이 머리에 되살아나겠지. 그렇다면 남과 나를 구별하고 이것과 저것을 분별하며 이성을 앞장세우는 사람보다는 알록달록한 부드러운 등에서 아지랑이 슬슬 피어 올리며 낮잠을 즐기고 있는 고양이들에게서 전생에 대한 기억의 가능성을 보는 것이 더 타당한 일은 아닐까한다.
과거過去 속에 살아있는 전생前生의 기억들.
1995년 1월로 기억을 하고 있는데 큰 아이인 선빈이에게 초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동안에 무언가 보람 있는 시간을 갖게 해주고 싶어서 여기저기 알아보다 신문에 난 겨울방학 캠프 소개란에 나와 있는 두레를 처음 알게 되었다. 여러 캠프들 중에서 두레가 눈에 띈 것은 다양한 시골 체험도 좋았지만 산토끼 몰이라는 특별한 체험이 들어있어서였다. 물론 도시 어린이들에게 몰이를 당할 만큼 만만한 산토끼가 있을 턱이 없어서 토끼몰이가 실행으로 옮겨지지는 못했지만 연을 만들고, 고구마를 구워 먹고, 썰매를 타는 등의 농촌체험과 함께 겨울날 하얀 눈밭의 토끼몰이라는 발상만으로도 즐거웠던 3박4일의 강원도 일정이었다. 그때 김재일 회장님과 김경준 선생님, 그리고 조채희 사무처장님과 지금까지 보이지 않는 손과 발이 되어 두레를 일구어온 여러 선생님들을 처음 만났다. 초등학교 일학년이던 선빈이가 해병대海兵隊 복무를 하고 있는 25세의 청년이 되었고, 동생인 수빈이가 대학교 상급학년인 23살의 처녀가 되었으니 두레와는 결코 짧다고 할 수 없는 16년 세월의 긴 인연으로 이어진 셈이다. 선빈이와 수빈이가 중학생이 될 때까지 아내를 포함한 우리 가족 네 사람은 여름과 겨울 방학의 두레 캠프를 거의 빼지 않고 참석을 했기 때문이다.
‘두레 창립 20주년 기념식 및 회장 이.취임식’이라는 안내문을 받아들고 잠시 망설였지만 미리 선약된 행사를 포기하고 두레 행사에 참석하기로 했다. 두레를 창립하여 20여 년간을 이끌어 오신 김재일 회장님의 노고에 진정으로 마음에서 우러나는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었고, 또 어느 분께서 신임 회장에 취임하여 두레를 이끌어 가실지가 궁금하기도 해서였는데, 정오쯤에 시내에 나가 선약되어있던 행사에 얼굴만 들이밀었다 돌아서서 신설동 부근에서부터 서서히 걷기 시작했다. 동대문을 지나고, 옛 동대문야구장을 지나서, 낙엽처럼 깔려있는 추억들을 밟으며 장충동으로 들어서면 감회가 없을 수 없었다. 그 많은 족발 집들과 장충체육관과 장충단 공원과 길 건너 신당동 골목길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태극당太極堂 제과점도 추억의 불쏘시개로 한몫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태극당 앞 사거리에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커다란 간판이 하나 서있었다.
‘여기서 독도까지 431Km’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백 마디의 말보다 마음의 거리가 순식간에 독도 앞바다 초록 물결에 닿는 듯한 눈 시원한 푸른 간판이었다. 431Km라는 숫자를 한참동안 바라보다 돌아섰다. 그리고 모임장소인 우리함께 빌딩을 찾았다. 우리은행도 있고, 우리들 병원도 있지만 우리함께 빌딩이라니 참 예쁜 이름이라고 생각을 했다. 눈에 익숙한 동네라 금세 빌딩을 찾았고, 그리고 이층으로 올라갔다.
시간時間과 공간空間과 인연因緣들과 만나고 헤어지고, 또 만나고 헤어지고.
김재일 회장님과 김경준 선생님, 그리고 다른 여러 선생님들을 실로 오랜만에 그 자리에서 만났다. 서로 반가워서 악수도 하고 얼굴을 마주한 채 눈을 깜박이며 둘러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었다. 한 분은 자리를 물려주시고 한 분은 자리를 이어받으셨다. 전임 회장님께서는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낮지만 소신 있는 목소리로 이임사를 하셨고, 신임 회장님께서는 유마거사나 방거사와 더불어 맞수를 둘만한 울림 있는 취임사를 하셨다. 세월이 흐르고 선 자리가 변하다보면 그 시간, 그 자리에 선 사람의 얼굴들이 서서히 바뀌는 것이야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러운 일인 줄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 시간, 그 자리를 지켜왔던 분들의 온기와 체취는 맑은 향기 되어 시방十方에 배어 있기에 항상 봄날의 꽃잎처럼 흩날리겠지. 그날은 과거過去 속에 살아 있는 전생前生 같은 선명한 기억들이 내 가슴 속에 가득했더란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좋은 사람들 두레> 카페로 가입하세요. 오히려 거기에 맞는 글인 듯합니다.
긴울림이 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