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하는 민시야
❤ 감상문 제목 : 새롭게 본 <마션>
❤ 감상문 주제 : <마션>을 봄으로서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마션>은 무척 대중화된 책이자 영화이다. 나는 영화를 많이 봤다. 이번에도 영화를 봤는데, 봐도 봐도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영화인 것 같다. 총 3번 봤는데 그동안은 대충 봐서 이해를 잘하지 못했다면 이번에는 여러 번 봐서 그런지 더 잘 이해되었다. 사실 <마션>이라는 영화가 너무 모험적인 내용이라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모험을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경험으로 모험적인 영화를 많이 보게 될 것 같다. 생각보다 흥미롭고 주인공 성격이 유쾌해서 집중해서 봤다.
이 영화를 보는 동안 든 의문은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날까?’인 것 같다. 너무 위험한 상황에도 주인공이 현명하게 해결하는 것을 보며 감탄했다. 그러나 이런 일은 실제에선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한 사람을 위해 나라에서 돈을 많이 쓰는 일은 극히 적을 것이다. 또 더 위험한 상황과 마주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화성에 고립되어 있는 동료를 위해 목숨까지 위험한 도박을 하는 사람이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다. 물론 나 역시 동료가 나에게 무척 소중하다면 다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죽을 확률이 크다면 가고 싶지 않다. 그래서 만장일치로 주인공에게 가기로 선택한 아레스 3 우주비행사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마션>이라는 책이자 영화는 사람의 삶에 필요한 모든 요소를 보여준다. 물, 공기 같은 본질적인 것들도 있지만 서로를 향한 믿음, 도움 등도 이 영화에 나온다. 그 때문에 이런 것들이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주인공이 아무리 뛰어났더라도 믿음이 없고 도움이 없으면 지구로 오지 못했을 것이다. 주인공을 위해 모두가 노력해서 해낸 결과여서 더 감동적이었던 영화였다.
이번에 <마션>으로 새로운 분야의 책에 관심이 생겼다. 내가 창작 연구 통합 과정에서 가장 발전한 것이 있다면 여러 분야의 책을 읽는다는 것이다. 원래 나는 공상과학에는 관심이 없었는데 앞으로 더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재밌는 책이나 영화라면 언제든지 좋을 것 같다. <마션>처럼 재밌는 영화를 더 찾아보고 싶다.
이로운 박시온
오늘의 책은 마션이다. 마션은 화성에 남겨진 한 생물학자 겸, 기술학자의 이야기이다. 이 기술학자 겸 식물학자인 마크 와트니는, 화성을 테라포밍(지구처럼 변화 시켜 사람이 살수 있게 하려는 것)시키려는 나사의 프로젝트를 위해 화성에 보내진 아레스 팀중 아레스 3의 팀원이었다. 아레스 3은 중간에 화성 폭풍으로 중단되었는데, 철수 도중 기지의 안테나가 떨어져 나가며 와트니를 치었다. 그러면서 생명 유지 장치를 뚫고 지나가며 본부에서는 마크가 죽었다고 판결 내리게 되고 철수한다. 그러나 와트니는 죽지 않고 다시 살아서 기지로 돌아간다. 그렇게 마크 와트니의 화성 생활이 시작된다.
이 책은 앤디 위어의 첫 장편 소설이다. 이 책의 대단한 점은 스토리도 스토리 나름이고 재미도 있지만, 99%가 과학적으로 합리적이다. 물을 만드는 것부터, 농사를 하는 것까지. 전부 과학적이다. 유일하게 아쉬운 점은, 처음에 와트니가 날아가는데, 화성에는 대기가 없어 그 정도로 강한 폭풍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그나저나 나는 화성에 남겨지면 큰 패닉이 올 것 같은데, 마크는 오히려 농담도 하면서 긍정적으로 보는 것 같았다.
기뻐하는 김담희
❤ 감상문 제목 : 화성에서 배운 삶의 지혜
❤ 감상문 주제 : 절망적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
몸을 다치고 화성에 혼자 남았을 때, 식량과 물이 부족해 곧 죽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폭발 사고로 감자가 다 죽었을 때도 마크는 절망에 빠지기보단, 어떻게 식량을 늘릴지, 다시 감자를 키우고, 보급품이 도착하기까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지 계속해서 다시 도전하고 포기하지 않았다. 화성에서 감자를 키울 수 있을 것이라며 기록을 남길 때 “운 좋게도 전 식물학자예요. 화성이 두려워할 겁니다. 제 식물학 파워를요”라고 한 것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다친 부위도 정말 아플 것이고, 당장 현실이 너무 암울하지만 그럼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밝음을 잃지 않는 것이 정말 대단해 보였다.
나는 그 낙천적이고, 현실에서 희망을 찾으며 행동하는 것이 마크가 화성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사실 난 화성에, 이 세상에 나 혼자 남아 매일 살아가기 위한 고군분투를 하고, 내 옆에 말을 할 수 있는 사람 하나 없다는 사실이 가장 절망적이고 힘들 것 같은데 그럼에도 마크는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가지고 어려운 상황을 잘 헤쳐 나갔다.
어릴 때 <마션>을 본 적이 있는데, 혼자 다친 곳을 치료하는 것이 아주 징그럽고 소름 끼친다는 것과, 화성에서 감자를 키운다는 것밖에 기억에 남지 않아 명성만큼 인상적이게 본 영화는 아니었는데, 다시 보니 역시 혼자 안테나를 뽑고 치료하는 것은 징그럽지만, 감자 키우기 말고도 마크가 화성에서 혼자 불가능을 해내는 장면이 정말 많고, sf라 현실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크에게 몰입할 수 있는 영화였다.
마크가 다행히 화성에서 동료들과 다시 만나고 구조되어 지구로 돌아와서는 우주의 새 역사였고, 교수가 되어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는데, “우주에선 뜻대로 되는 게 아무것도 없어. 어느 순간 모든 게 틀어지고 ‘이제 끝이구나’하는 순간이 올 거야. ‘이렇게 끝나는구나’ 포기하고 죽을 게 아니라면, 살려고 노력해야 하지. 그게 전부다. 무작정 시작하는 거지.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고, 다음 문제를 해결하고, 그다음 문제도... 그러다 보면 살아서 돌아오게 된단다.”라고 학생들에게 얘기해준다. 아무도 없고 변수도 너무 많은 화성에서 마크는 문제들이 일어났을 때 운이 따라주고 기적적으로 살아남길 바라지 않았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며 어려운 길을 돌아왔다.
이 말은 우리에게도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 살면서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되는 일은 많이 없다. 늘 틀어지고, 수습하기 어려운 일들도 너무 많지만 그럴 때마다 우리의 방향성인 주님에게 기도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면 다시 방향을 잡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마션>을 보면서 절망적 상황에서 낙천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큰 희망이 된다는 것과, 포기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면 결국 삶은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흘러갈 것이라는 배움을 얻었다.
슬기로운 민시은
이스라엘 요르단 해외지도력훈련을 준비하며 봤던 ‘마션’을 한 번 더 보았다. 오랜만에 보니까 감회가 새로웠고 기억과 달라진 부분들을 찾는 재미도 있었다. 무엇보다 마션은 기억전달자, 인터스텔라와 함께 내가 SF 장르에 관심을 갖게 해 준 작품인 만큼 보는 내내 즐거웠다. SF는 특유의 감동이 있어서 좋다. 현상을 인류의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고 꿈꾸게 하며, 우주를 배경으로 한다면 그곳을 잠시나마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다. 사람들 사이의 세밀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도 좋지만, 얼마 전부터는 SF를 통해 인류의 보편적이고 본질적인 가치를 전달하고 과학기술의 산물을 통해 감동을 주는 것이 나도 SF 한 번 해보고 싶다 하는 생각이 들도록 했다. 무엇보다 절대로 불가능할 것만 같은 일을 기어코 해내는 그 순간의 희열과 감격은 중독적이다.
마션은 표면적으로는 화성 탐사 프로젝트에서 낙오된 우주비행사이자 생물학자의 생존기이지만 그 이면에는 다양한 주제 의식을 전달하고 있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과 시간, 인력이 투자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마크 와트니를 구조하기 위한 여러 가지 과정 중 발생하는 변수로 인해 결국 화성 탐사선이었던 헤르메스 호가 다시 되돌아가기로 결정하는데, 이는 남은 대원들의 목숨을 건 결정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한 사람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도리어 더 많은 사람들의 생명이 위험에 처하더라도 그것을 감행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무래도 창작물이다 보니 결국에는 몇 가지 극적인 사건을 거쳐 모두 지구로 안전하게 돌아오지만, 만약 마션의 상황이 현실이었다면 단 한 명의 생존자를 위해 전 지구적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실행할 수 있을까? 설령 진행하더라도 그것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와 사람들의 관심으로 인한 것이지 않을까?
마크 와트니가 생물학자가 아니었다면 그는 감자조차 재배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생존확률은 매우 낮아진다. 만약 우주선이 돌아가기 전까지 그가 생존할 확률이 죽을 확률보다 낮다면, 나는 내 목숨을 걸면서 다시 돌아가 구조할 결정을 내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한 사람을 위한 나사와 과학자들, 동료들의 헌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했고 그만큼 순간적인 판단력과 리더의 역할도 중요함을 느꼈다. 동시에 특유의 유쾌하고 긍정적인 사고로 일반적인 사람이었다면 이미 패닉으로 정신질환을 겪었을 법한 상황에서 당면한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가는 마크 와트니도 존경스러웠다. 생존이란, 그리고 생명이란 무엇이길래 인간이 이토록 몸부림치도록 하는 것일까 생각이 들었고 다시 한번 SF의 묘미에 빠져보고 싶게 만드는 영화인 것 같다. 수백 페이지에 달하지만 책도 읽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