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선 >
햇살이 내려앉은 포도에는 가을이 눈부시다. 들길을 바라보는 넉넉한 시선은 가을 속으로 빠져드는 듯하다. 레일바이크를 타기 위해선 가을 속으로 3시간(275㎞)을 부지런히 달려야 했다. 예매만 했어도 이렇게 아침부터 호들갑을 떨지 않아도 될 텐데... 인터넷에서 50%를 예매 판매를 하고 나머지는 당일 현장 선착순판매(20장)란다. 그거라도 확보하려면 오전 내 현장에 도착해야 한다는 말에 휴게소 들리는 것도 마다하고 내리밟았다.
헐레벌떡 도착해 겨우 마지막 회 바이크를 티켓 팅 했다. 타려면 4시간을 더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는 동안 ‘정선5일장’을 둘러보기로 하고선 읍내로 향했다. 하지만 말로만 들었던 ‘정선5일장’은 이제 그곳에 없었다. 정선에 가면 옛 정취를 느낄 5일장이 있을 줄로만 생각했다. 여기만은 세월을 비켜간 옛 시장이 설 줄 알았는데...
여기저기 난전으로 펼쳐진 다양한 군상들, 약초나 산나물을 파는 사람, 종자를 파는 사람, 광주리에 담겨 있는 강아지들, 끓고 있는 가마솥의 소고기국 냄새가 시장을 온통 휘감아 돌아가는 그런 장을 생각했었다. 하지만 잘 정비된 시장을 보면서 상상이 여지없이 무너졌다.
“정선아리랑”은 현재 여러 버전으로 불러지고 있다. 그 중에도 ‘눈이 올라나 비가 올려나...’로 시작하는 버전이 대중적이지만 중모리-자진모리로 이어지는 “정선아리랑” 버전이 유달리 정감이 간다. 특히 그 4절 가사가 기억에 남아 있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단지 가사에 ‘정선’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탓인지...
“정선 읍내 물나들이 허풍선이 궁굴대는 사기장천 물 거춤을 안고 비비뱅글 도는데 우리님은 어디를 가고서 날 안고 돌 줄 왜 몰라” 이런 가사 내용이...
다리 위 초승달은 뭘 의미하는 걸까.
여기가 정선군 여량면 섶다리로 유명한 아우라지(‘어우러진다.’의 옛말)이다. 두 줄기의 물줄기가 이곳에서 만난다는 뜻이지만 또 다른 애절한 사랑 얘기를 담고 있다. 그 옛날 여랑 마을의 처녀와 강 건너 송천의 총각이 싸리골에 동백을 따러가려고 약속을 했단다. 근데 약속한 날 그날따라 비가 너무 많이 온 거라. 물이 불어나자 강을 건너지 못해 애절한 이들이 사공에게 배를 띄워 주라고 부탁하는 대목이 ‘정선 아리랑’의 가사라고...
이젠 아무리 비가와도 걱정이 없도록 저렇게 튼실한 다리를 만들었단다.
두 마리의 여치가 겹쳐져 있는 모습이다
구절리역은 우리나라에서 마지막으로 건설된 정선선의 10개 역사 중에 하나로 1974년 개통하고 2004년 문을 닫은 역사이다. 역사에는 무궁화 객차를 이용한 한 쌍의 여치모양의 레스토랑과 카페가 있어 이색적인 운치를 더한다.
구절리역에서 아우라지역까지 7.2㎞를 바이크로 달린 후 되돌아 올 때 타고 올 열차란다.
여기도 사랑의 자물쇠가 있네.
아마 연인들을 겨냥한 이벤트로 레일바이크 측에서 만들어 놓았으리라.
녹슨 열쇠 뭉치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
타고 떠날 레일바이크가 일렬로 도열해 있다.
2인(연인)용이 40개, 4인 가족 형이 40개라고 한다.
구절리역을 출발하여 아우라지역으로 가는 길에 만나는 첫 굴이다. 하천과 계곡을 낀 조망이나 약간의 경사도를 타고 내려간다는 것이 더없이 바이크 운행으로 좋은 조건인 듯하다. 내달리다 컴컴한 굴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 또한 묘하다.
개구쟁이처럼 바이크의 페달을 급하게 밟았다. 옆에 그녀가 무섭다며 꼬집고 난리다. 비명 소리는 오히려 남자의 귀에 더 부추기는 소리처럼 들렸다. 바이크를 타면 누구나 남자는 개구쟁이가 되고 여자는 내숭을 떨게 되나보다. 연인 사이라면 꼭 바이크를 타보라고 권하고 싶다.
바이크가 지나 갈 땐 저렇게 정말 기차라도 지나가는 듯 차단기를 내려줬다.
종점인 아우라지 역사 앞 광장에 펼쳐진 코스모스 밭은 참 장관이다. 제철을 만났다. 아마 이벤트를 위해 조성한 코스모스 밭인 듯하다. 보기 어려운 황금빛 색깔이 아마 개량종인가 보다. 참 곱다. 역사에는 두 마리의 어름치가 입을 벌리고 달려오는 레일바이크를 연신 삼키고 있다.
가을이 깊어 가고 있다.
10월 중순이면 만산홍엽이라는 단어가 지면마다 등장하겠지.
단풍을 잊어버린 자는 가을을 놓친 거라 했다.
때론 이런 레일바이크에 몸을 실어 가을 속으로 빠져봄은 어떨까.
너무 깊이 빠져 막차를 놓치는 경우가 있을지라도. ^^
첫댓글 인생을 멋지게 즐기시는 님이 늘 부럽습니다~
ㅎ 별 말씀을 다... 카렌스님은 하면 더하실텐데..ㅎ
정선은 울고왔다 울고가는 곳이지요,,
ㅎ 왜 그렇죠? 알듯 말듯...ㅎ
올때는 너무 산중이라여기서 어떻게 살아가나 하고 울고,,,떠날때는 너무 정이들어서 떠나기가,아쉬워서 웁니다,,
ㅎㅎ 어디선가 들었던 기억이 바로 정선을 두고 하는 말이었군요...ㅎ
이번엔 강원도 여행? .... ㅎㅎ 멋진 가을 아름답게 즐기시네요~^&^
문샘 어제뵈니 가을을 타시는지...더 야윈듯하던데...좀 쉬어가면서 하세요. 그카다 뼈만 남겠어요..^^
요즘 조금 그래요~영화님의 사랑으로 금새 회복 될거에요~ㅎㅎ~
흰색은 문샘의 트래드마크 같아요. 보석까지... 넘넘 예쁘게 나왔더라고요. 초등운동회 때..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