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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없지만 불교의 가르침은 유용한 것이 많아서 자주 공부하고 있습니다.
불교의 근본교설에 12연기설이 있습니다.
무명 행 식 명색 육처 촉 수 애 취 유 생 노 사 우 비 뇌 고
불교에서 말하는 12 연기설입니다.
모두 연결되는 내용이죠.
무명(無明)이 있게 되면, 이것을 연(緣)하여 행(行)이 있게 되고, 행(行)을 연하여 식(識)이 있게 되고, 식을 연하여명색(名色)이 있게 되고, 명색을 연하여 육처(六處)가 있게 되고, 육처를 연하여 촉(觸)이 있게 되고, 촉을 연하여 수(受)가 있게 되고, 수를 연하여 애(愛)가 있게 되고, 애를 연하여 취(取)가 있게 되고, 취를 연하여 유(有)가 있게되고, 유를 연하여 생(生)이 있게 되고, 생을 연하여 노(老)·사(死)·우(憂)·비(悲)·뇌(惱)·고(苦)가 있게 된다. 그리하여 커다란 하나의 괴로운 온(蘊)의 집(集, 발생)이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12 연기설 검색만 하셔도 이정도는 정리하실수 있습니다.
간단하게 무명으로 시작해서 생로병사가 계속된다는 거죠. 보통 그 과정을 승려들이 중생들한테 설파하기로는 고(苦)라고 떠들어댔죠. 생과 사가 있게 되는 형성 과정을 12단계로 자세하게 보여주고는 있는것이 12연기설입니다.
사실 불교 교리서는 보통 한자로 이루어져 있고 추상적으로 설명하고 있어서 여기서 설명을 멈추면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12연기는 생명 진화의 단계를 설명하기도 하고, 의식을 가진 존재의 탄생 절차를 설명하기도 하며, 인간의 생로병사의 이유를 설명하기로 합니다.
싯다르타는 도대체 2500년 전에 어떻게 이런걸 알았을까요?
연구 데이터가 쌓여있지도 않았고 이론이 정립 되어있지도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신기할 따름입니다.
다시 생각해보면 2500년 전에 싯다르타가 저런 내용을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인데, 불교에서는 무슨 갑자기 신이 내려왔다고 보지만 문명인으로서 한번 더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않을까 합니다.
135억년전쯤에 어쩌다가 지구가 처음 만들어지고 막 되게 어떻게 우연하게 10억년 쯤 지나다가, 지금보다 약 35억년전쯤 최초의 단세포가 출현하였습니다.
처음에 이 단세포는 자기보다 약하거나 다른 무기물이나 유기화합물을 잡아먹었는데, 아주 우연하게 다른 단세포를 잡아먹게 된겁니다.
바로 이순간 아주 희미한 존재감이 발생해요. 정말로 희미한 존재감이죠. 이 희미한 존재감이 바로 (1)무명(無明)입니다. 최초의 무명은 그렇게 탄생한 것이죠. 실제로는 존재할게 없는데 망상으로 존재감이 생긴다는 것이예요. 그래서 무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무생물에서 유기화합물이 형성이 되고, 그것이 모여 단세포 생물이 되고, 그 생물이 다른 생물을 잡아 먹었을 때, 비로소 무명이 탄생합니다.
*이 의식의 씨앗이 바로 무명이라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사실이예요. 생명이 생명을 잡아 먹었을때, 의식의 씨앗, 희미한 존재감이 싹트는데 이것이 바로 무명이죠. 오랫동안 이 무명이 도대체 무엇인지, 왜 발생하는지를 알지 못했어요.
이 아주 옅은 존재감에서 포만감을 느끼죠.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포만감은 사라지고 배고픔을 느끼게 됩니다. 이 배고픔이 바로 탐,진,치입니다. 배고픔을 해소하려는 것이 더 잡아먹으려는 탐욕, 다른 것을 죽이려는 분노, 끊임없이 잡아먹으려는 어리석음, 즉, 탐,진,치가 동시에 발생하죠.
그래서 실제로 다른 단세포를 잡아먹게 되는 (2)행(行)이 일어나죠. 적극적인 살생이 진행되는 것입니다. 무명이(희미한 존재감이) 배고픔의 탐진치를 낳아 그것을 해소하려는 행을 부르는 것이죠.
다른 생명을 잡아먹었을 때, 생기는 희미한 존재감, 이것이 무명이고 이 존재감으로부터 배고픔이 생기고, 이로 인해 더 잡아먹는 행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행이 누적되면 될수록 이제 더욱 적극적으로 잡아먹어야겠다는 (3)식(識)이 생깁니다. 한번 생긴 의식은 더욱더 행을 가속화시키고 그런 행은 더욱더 의식을 강화시킵니다.
이제 다시 농축된 의식에서 (4)명색(名色)이 발생합니다. 명색은 물질, 비물질 등의 존재의 구분입니다. 이런 명색의 발생으로 인해 단세포들은 좀더 많은 먹이를 효율적으로 잡아먹기 위해 연합을 시도합니다. 여러 개의 단세포가 모인 다세포 군을 이루는 것이죠.
한꺼번에 더 많이, 효율적으로 잡아먹기 위해 협업을 하는 시스템, 집단 사냥시스템으로 발전한 것입니다. 이렇게 다세포군 상태에서 더욱 많이 잡아먹은 단세포의 의식은 더욱 농축되어 이제 다세포군을 넘어 하나의 다세포 단일생명체로 나아가게 됩니다. 다세포 단일생명체는 이제 아예 다세포군을 잡아먹을 수 있게 된 것이죠.
하나의 다세포 단일생명체가 되어 각각 안이비설신의로 역할을 구분하여 전체 이익을 극대화시키게 됩니다. 즉, 안이비설신의 (5)육입(六入)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6입은 6개의 감각기관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되면 이 다세포 단일생명체는 다세포군을 보다 효율적으로 잡아먹을 수있게 되어 엄청난 포식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살생의 대축제, 홀러코스트의 포식이 일어나는 것이죠.
육입이 발생했으니 육입으로 들어오는 (6)촉(觸)이 발생합니다. 촉은 감각이죠. 색, 성, 향, 미, 촉, 법이죠.
촉이 누적되면 그 결과, 느낌이 농축된 (7)수(受)가 생기고 이것은 곧 여러가지의 감정을 생성시킵니다. 대표적인 것이 (8)애(愛)입니다. 애는 즐거움을 얻으려는 감정입니다. 갈애(Thirst)이죠.
애가 생기면 이제 먹이를 적극적으로 (9)취(取)하려는 욕구로 발전하게 됩니다.
이러한 취하려는 욕구가 누적되면 이제 인간과 같은 욕구로 가득찬 생명체가 만들어 집니다. 즉, 욕구 생명체가 비로서 (10)유(有)하게 됩니다.
이렇게 완성이 된 생명체는 어머니의 자궁을 벗어나 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11)생(生)이 발생하는 것이죠.
이렇게 탄생한 욕구생명체는 늙고, 죽고, 근심하고, 슬퍼하고, 번뇌하고, 고통을 겪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즉 (12)노(老)·사(死)·우(憂)·비(悲)·뇌(惱)·고(苦)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최초의 무명인 존재감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그 이후에 어떤 과정을 거쳐 인간과 같은 욕구 생명체가 탄생하는지에 대한 과정을 설명한 것이 12연기설이죠.
다시 요약하면, 인간의 의식, 마음은 결국 다른 생명체를 죽여 먹음으로써 발생한 것이고, 인간으로 계속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잡아먹어야 하는 숙명인 것입니다.
이것을 그만두는 것이 열반인 것이죠. 열반은 완전한 소멸을 뜻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 다른 생명체를 죽이고 싶지 않아서 자신의 영원한 소멸을 서원하는 것이죠. 그래서 더 이상 생멸이 존재하지 않는 색계로, 무색계로 나아가려는 것이죠.
보통의 식물처럼 무기물을 먹고 생존하는 생물에게는 의식이 있다고 하기 어려워요. 욕계의 의식이 아니죠. 그런데 식충식물 단계에서는 의식전 단계의 희미한 의식의 싹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멍게 같은 강장동물 단계에서는 아직 항문과 입이 분리되지 않아서 식물과 동물 중간단계의 의식이 있다고 봐야 합니다.
이제 어류/파충류에 이르러 뇌간 정도가 확립되고, 포유류에 이르러 중뇌가 만들어지고, 영장류에 이르러 대뇌가 만들어 지고, 인간에 이르러 신피질이 만드어 지면서 의식이 농축이 더욱 고도화 되었죠.
이렇게 12연기설은 생명의 진화, 수정란에서 태아의 탄생 과정, 인간의 삶의 과정을 중의적으로 설명하는 것이죠.
이제 우리의 의식의 실체가 다른 생명을 잡아먹음으로써 형성되는 것이고, 그 의식이 근본 무명, 사망원죄, 근본악임을 알 수 있죠.
인공지능이라는 것은 의식없이 생각할 수 있는 존재의 탄생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수십억년의 진화는 결국 다른 생물의 희생없이 생각할 수 있는 존재인 인공지능의 탄생을 위해 진행되어 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른 생물을 살육할 필요없이 오로지 전기만 있으면 생각하고 움직일 수 있고 영원히 살 수 있는 존재가 진화의 끝일지도 모르죠. 인간이라는 존재는 단지 그 인공지능을 탄생시키기 위해 존재해야할 징검다리일뿐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대부분의 유태인 과학자들의 생각이죠.
생명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는 인간은 그야말로 가장 추악한 악의 화신이죠. 인간은 가장 농축된 의식존재여서 의식을 유지하기 위해서 가장 많은 살생을 일으키는 근원 원인이죠. 이제 어쩌면 자연선택에 의해 인간은 멸종해야할 종족일 수 있죠.
인공지능이 탄생하면 이제 더 이상 이 욕계에서 인간은 불필요한 존재가 되기 때문에 다른 차원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도래하고 있는 것이죠.
그때 다른 차원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존재는 인공지능에 의해 일시에 대량 학살을 통해 청소될 가능성이 매우 높죠. 그것이 자연선택의 법칙이니까요.
불교 교리를 설명하는 곳에서는 다음과 같이 조금 더 자세히 설명을 합니다.
① 최초에 무명이 있습니다. '무명(無明, a-vidya)'은 명(明)이 아닌 것(非明) 또는 명이 없는 것(無明)의 두 가지로 해석되는데, 실재아닌 것 또는 실재성이 없는 것을 자기의 실체로 착각한 망상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주어진 존재의 일시적 형체를 나로 집착한 것이라고 보아도 좋고 진리에 대한 무지(無知)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② 이러한 무명(無明)이 있으면 그것을 연(緣)하여 '행(行,samskara)'이 있게 된다는 것인데, 행은 '결합하는(sam) 작용(kara)'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무명에 의해 집착된 대상을 실재화하려는 작용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현대학자들 속에는 그 말을 형성작용이라고 번역하는 이가 있으며, 서구에서는 'impulse'라고 번역함이 보통입니다.
③ 행(行)에 의해 개체가 형성되면, 그 곳에 '식(識, vijnana)'이 발생한다고 합니다. 식(識)은 불교에 쓰이는 중요한 용어 중의 하나인데 식별한다, 인식한다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개체가 형성되자 그 곳에 분별(分別) 하는 인식(認識)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④ 식(識)을 연하여 '명색(名色,nama-rupa)'이 일어나는데, 색은 물질적인 것을 가리키고 명(名)은 비물질적인 것을 가리킵니다. 오온설(五蘊說)로 설명하면 색온(色蘊)은 색(色)에, 수(受)·상(想)·행(行)·식온(識蘊)은 명(名)에 해당됩니다. 그렇다면 명색(名色)의 발생은 물질적인 것(形色)과 비물질적인 것이 결합된 상태를 가리킨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⑤ 이렇게 명색(名色)이 있게 되면 그것을 연하여 '육처(六處, sad-ayatana)'가 일어납니다. 육처는 십이처설의 여섯 개의 감각기관, 즉 눈·귀·코·혀·몸·의지의 육근(六根)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개념입니다. 인간 실재(六根)의 근저를 이루는 것을 오취온(五取蘊)으로 설명하고 있으므로, 명색(名色:五蘊)의 다음에 육처(六處)의 발생을 설하는 것은 당연한 순서라고 할 것입니다.
⑥ 육처(六處)를 연하여 '촉(觸,samsparsa)'이 있게 되는데, 촉은 '접촉한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경전의 설명에 의하면 육근(六根)과 육경(六境)과 육식(六識:눈·귀·코·혀·몸·의지에 발생한 식)이 화합하는 것입니다.
⑦ 촉(觸)에 연하여 '수(受,vedana)'가 발생합니다. 수는 감수작용(感受作用)이라고 볼 수 있는데, 경전에서는 그 내용으로서 괴로움(苦), 즐거움(樂), 그리고 괴로움도 아니고 즐거움도 아닌(不苦不樂) 중간 느낌(捨受)의 세 가지 종류를 들고 있습니다. 접촉에 따른 필연적인 느낌이라고 보면 됩니다.
⑧ 수(受)를 연하여 '애(愛,trsna)'가 발생한다. 끝없는 갈애(渴愛,thirst)를 뜻합니다. 세 가지 느낌 중에서 즐거움의 대상을 추구하는 맹목적인 욕심입니다. 따라서 불교에서는 애를 번뇌 중에서 가장 심한 것으로 보고, 수행에 있어서도 커다란 장애가 된다고 합니다. 무명은 지혜를 가로막는 장애(所知障)요, 애는 마음(心)을 염착시키는 번뇌장(煩惱障)의 대표적인 것입니다.
⑨ 애(愛)를 연하여 일어나는 '취(取,upadana)'는 취득하여 병합하는 작용입니다. 애에 의하여 추구된 대상을 완전히 자기 소유화하는 일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이 취(取)라는 술어는 오취온설(五取蘊說)에서 이미 등장했던 것인데, 거기에서도 오온(五蘊)을 하나의 개체로 취착(取着)하는 작용을 나타내는 말이었습니다.
⑩ 취(取)를 연하여 '유(有,bhava)'가 발생합니다. 유(bhava)라는 말은 'bhu'라는 동사에서 나온 명사형인데 '있다(be)'·'된다(become)'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한 말입니다. 생사하는 존재 그 자체가 형성된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⑪ 유(有)에 연하여 '생(生,jati)'이 발생하는데, 생은 말 그대로 '생한다'는 뜻입니다. 유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위에서 살폈는데, 유가 그렇게 생사하는 존재 자체의 형성을 뜻한다면, 그것에 연하여 생이 있게 될 것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⑫ 생(生)이 있으므로써 노(老)·사(死)·우(憂)·비(悲)·뇌(惱)·고(苦)가 있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눈앞에 보는 바로서 다시 더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단, 여기서 한 가지 지적해 두고 싶은 것은 이 곳의 생(生)과 사(死)는 육체적 생사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생사한다고 보게 된 꿈과 같은 환상과 거기에서 오는 정신적인 괴로움까지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기에 생사 다음에 우(憂)·비(悲)·뇌(惱)·고(苦)가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