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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황악이라고도 불리우는 이 산은 안휘성(安徽省)에 자리하고 있었으며,
예로부터 황산의 삼십육봉은 운무에 휩싸인 천도봉(天都峯)을 위시하여 그 풍광이 빼어나기로 소문 나 있었다.
폭우가 쏟아져 내리는 가운데 어둠마저 깔려 있어 아름다운 면모는 찾아볼 길이 없었다.
황산의 삼십육봉 중 하나로써, 그 아래로는 사람의 발길이 닿는 것을 일체 거부하는 천험의 절곡(絶谷)이 존재했다.
사망곡(死亡谷)이라는 이름부터가 섬뜩한 느낌을 안겨 주는 이 절곡은 뾰족하고 거친 기암괴석들만이 펼쳐져 있을 뿐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자라지 못하는 황량한 곳이었다.
더욱이 사시사철 짙은 운무가 깔려 있어 한 번 발을 들여 놓으면 방향을 분간하지 못해 헤매다 죽기 일쑤였다.
장대 같은 빗줄기가 바람에 휩쓸려 길게 사선을 긋고 있었다.
그 세찬 폭우 때문인지 사망곡 안은 어둠으로 뒤덮혀 있기는 해도 상징과도 같던 운무는 없었다.
폭우를 뚫고 갑자기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 장풍이 서로 충돌하는 굉음 등이 울렸다.
그 뒤를 잇는 것은 절곡을 흔들며 길게 메아리를 남기는 비명소리였다.
이는 두 말할 나위도 없이 죽어가는 자가 마지막 순간에 뱉아내는 단말마였다.
번쩍 하는 섬전(閃電)이 일순 천지간을 새파랗게 물들였다.
그 짧은 찰나를 빌어 절곡 안의 정경이 환하게 드러났다.
이 죽음의 오지에 물밀듯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 수많은 그림자들, 상대적으로 절곡 안으로부터 튀어나와 그들과 정면으로 충돌해 가는 무리들이 환상처럼 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양측 모두 손에 병장기를 휴대하고 있었는데, 각기 상대편을 향해 무자비한 살수를 전개하고 있는 중이었다.
도검이 부딪치면 의례 시퍼런 불꽃들이 피어 올랐으며, 살을 찢고 뼈를 부수는 음향이 울리면 예외없이 처절한 단말마의 비명소리가 그 뒤를 이었다.
통상 죽음의 절지라 불리우던 사망곡은 이 순간 때아닌 아수라의 혈전장으로 화해 있었다.
이와 동시에 사위는 다시 어둠 속으로 묻혀 들어가고 말았다.
그러나 쌍방이 어우러지는 아우성과 고함 소리는 이후로도 그치지 않았다.
도와 검이 허공을 베었으며 장풍(掌風)과 잠경(潛勁)이 격돌했다.
그 번뜩이는 섬광을 따라 속속 쓰러져 나뒹구는 시신들.......
"크핫핫핫! 그 동안 너희 일월맹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설쳤다. 나 녹존성군(祿存星君)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회천궁의 형제들이여! 사악한 무리들을 이 땅에서 영원히 제거하라--!"
어둠속으로부터 하나의 인영이 외침과 함께 절곡 안에서 쏟아져 나오는 무리들을 향해 맹렬하게 돌진했다.
그의 두 손이 허공을 휘저을 때마다 태산이라도 무너뜨릴 듯한 장력이 팔방으로 몰아쳐 갔다.
아닌 게 아니라 그 장세가 쓸고 지나간 곳은 굉렬한 폭음과 함께 비명소리가 끝없이 울렸다.
선봉장이 이처럼 맹위를 떨치자 그를 따르는 무리들의 기세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그들로 인해 일월맹의 무리들은 일시지간 전열이 흔들렸다.
"혈궁(血宮)의 형제들이여! 회천궁에 뒤져서는 안된다."
이번에는 거대한 체구의 한 인물이 허공으로 솟구치더니 흡사 내리 꽂히듯 일월맹의 군상들 속으로 뛰어 들었다.
무엇이 어찌 되었는지 파악할 겨를도 없이 도처에서 피분수가 터졌다.
일월맹의 무리 중 몇몇의 인영이 허공으로 퉁겨 올랐다가 땅에 처박히고 있었다.
동시에 제 이의 선봉장을 따르는 자들이 기세를 올리며 전면을 향해 짓쳐 나갔다.
이들이 혈궁 소속의 인물들이라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삼성림(三聖林) 산하의 구대무궁 중 이궁(二宮)이 이렇듯 길을 뚫으니 나머지 칠궁(七宮)의 사망곡 진입은 문제도 아니었다.
마치 해일과도같은 그 공세는 종내 일월맹을 크게 동요시키고 말았다.
지옥의 유부에서라도 울려 나온듯 스산한 외침이 울렸다.
"흐흐흐... 감히 삼성림의 모리배들이 본맹을 공격해 오다니! 정녕 죽음을 자초하는구나."
동시에 선두에서 분전하는 녹존성군의 앞을 가로막는 자들이 있었다.
녹존성군은 대뜸 세 혈포인들의 무공 수준을 예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그들의 전신에서 물씬 피어 오르는 사이로운 기운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흐흐흐... 그대는 일월맹에 혈천삼공(血天三公)이 있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그대를 저승으로 인도할 이름이니 필히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이다. 크크크......."
가뜩이나 메말라 보이는 녹존성군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들은 천년마등주와 같은 서열상의 인물들로써 이미 천하에 악명을 떨치고 있는 자들이다.
그러자 허공에 여섯 개의 수영(手影)이 떠오르더니 그들의 신형은 거짓말처럼 그 세 쌍의 손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녹존성군이 경악성을 발하는 찰나, 여섯 개의 손은 핏빛을 띄며 가공할 잠경을 토해냈다.
동시에 그 잠경은 단숨에 녹존성군의 전신을 그물처럼 휩싸고 말았다.
녹존성군은 당혹한 와중에서 재빨리 등뒤의 장검을 뽑아 들고는 신형을 허공으로 떠올렸다.
일성 대갈과 더불어 그는 여섯 개의 혈장(血掌)을 향해 무시무시한 검광을 뿌려냈다.
잠경과 검이 부딪치는 순간, 날카로운 금속성이 울렸다.
녹존성군은 짧은 신음과 함께 황급히 신형을 뒤로 빼냈다.
손목이 쩌르르 울려와 하마터면 검을 놓칠 뻔 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이 충돌로 인해 기혈이 뒤집혀 있는 상태였다.
이때, 또 다시 여섯 개의 혈장이 녹존성군을 향해 막강한 잠경을 뿌려냈다.
반면에 녹존성군은 어깨를 쫘악 폈다. 내심으로는 한계를 느끼고 있었으나 수하들을 생각하고 스스로 투지를 끓어 옳린 것이었다.
연이어 그는 신형을 뽑아 올리며 그야말로 필생의 공력이 담긴 검세를 떨쳐냈다.
허공에서 섬광이 작렬하는 가운데 그의 검이 으스스한 파공음을 토해 냈다.
묵직한 음성과함께 하나의 인영이 마치 흐르는 유성처럼 여섯 개의 혈장을 향해 쏘아져 갔다.
동시에 녹존성군의 신형은 화려한 금포를 걸친 한 중년인에 의해 허공으로 퉁겨져 올라갔다.
귀청을 찢는 비명 뒤로 여섯 개의 손이 장내에서 사라지며 혈천삼공이 그들 본연의 모습을 드러냈다.
인간이라기 보다는 피범벅이 된 채 짓뭉게진 세 덩이의 육괴일 따름이었다.
무참하게 툭 튀어나온 여섯 개의 안구에는 짙은 회의가 매달려 있었다.
그 직후, 혈천삼공의 신형은 마침내 썩은 짚단처럼 기암 사이에 처박히고 말았다.
장내에 뛰어 든 금포인이란 다름 아닌 탐랑성군 화개악이었다.
"인정합니다. 만일 대사형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이 아우, 지금쯤 혈천삼공이 누워있는 자리에 대신 누워 있었을 겁니다."
녹존성군은 얼굴을 붉히면서도 정중히 포권을 해 예를 취했다.
비록 팔 하나를 잃었을 망정 화개악의 권위는 절대적이었다.
"일월맹은 오늘로써 영원히 무림에서 사라진다. 이 사망곡은 곧 그들의 무덤이 될 것이다."
살기 띤 그의 음성에 녹존성군은 부지중 흠칫 몸을 떨었다.
화개악을 중심으로 다시 일곱 명의 인영들이 원형을 이루며 내려 섰다.
그들 중 비월궁주였던 하수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는데, 이는 그간에 있은 구대궁의 인사 개편을 의미했다.
즉 그녀를 빼고 몇 명의 인물들을 보강해 새로운 구대성군을 구성한 것이었다.
"대형, 이대로라면 불과 한 시진 이내에 놈들을 괴멸시킬 수 있을 것이오."
녹존성군이 고개를 젓자 화개악은 스산한 웃음을 흘렸다.
"이번 일이 끝나면 그들까지 쓸어 버려야겠군. 황제의 칙령을 무시했으니 명분도 그만하면 타당하다."
그가 폭우 속을 뚫고 나아가자 팔대성군도 각기 비쾌한 경공을 펼치며 그 뒤를 따랐다.
사망곡의 깊숙한 곳.
약 이백여명의일월맹 고수들이 동굴을 중심으로 반원을 그리며 진세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삼성림의 고수들이 차륜 형식으로 돌아가면서 그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화개악을 위시한 구대성군은 그 싸움에 가담하지 않은 채 줄곧 한쪽에 서서 관전하고 있었다.
그는 나머지 팔대성군에게 손을 들어 보인 후, 신형을 날렸다.
팔대성군도 즉시 그의 뜻을 알아 차리고는 동굴을 향해 쏘아져 갔다.
그들 구인(九人)은 막아서는 일월맹의 무리들을 추호도 용납하지 않았다.
그들의 손에서 공세가 뻗어 나갈 때마다 무수한 단말마와 함께 허공 중에 피보라가 튀어 올랐다.
당금 무림에서 최절정의 무공수준을 구가하는 그들은 삽시에 방어벽을 뚫고 동굴 안으로 날아 들어갔다.
그러나 화개악등에게는 어둠도 별다른 장애가 되지 못했다.
심후한 내공을 바탕으로 안력을 끌어 올리자 곧 흐릿하게나마 주위 경물들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그저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산동일 뿐, 평평한 바닥에서 약간 인공의 냄새가 느껴지는 것이 고작이었다.
약 십여장 정도 나아가자 동굴은 갑자기 넓어지더니, 전면으로 이어지는 길이 뜻밖에도 세 개로 갈라져 있었다.
"각기 세 명씩 나뉘어 들어가 보도록 하자. 만일 무슨 일이 발생하면 소리쳐 신호를 보내도록 해라."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녹존성군이 세 개중 중앙에 난 길로 몸을 날렸다.
화개악이 고소를 떠올리며 고개를 젓는 사이, 구대성군 중 두 명이 녹존성군의 뒤를 따라 몸을 날렸다.
이제는 무엇하러 이런 짓을 하고 있는가고 회의가 일 지경이었다.
그 순간, 한 가닥 스산한 음성이 그의 귓전으로 파고 들었다.
그것은 단지 느닷없는 침입자 때문에 놀라서가 아니었다.
그는 직감적으로 그 음성이 언젠가 들어본 적이 있는 음성이라는 것을 느꼈다.
잠시 기억을 더듬어 보던 녹존성군은 눈썹을 푸르르 떨었다.
마침내 한 인물을 뇌리에 떠올리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곧 실소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다. 그는 이미 죽은지 오래이거늘.......'
아울러 녹존성군은 안력을 더욱 높이며 전면을 주시했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핏빛을 띈 안개가 일어나더니 서서히 사람의 형상으로 화하기 시작했다.
단지 핏빛 장포를 입은 한 인물이 그렇게 느껴지리만치 신비하게 등장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녹존성군은 혈포인의 존재를 확인한 순간,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양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격정적인 성정을 지니긴 했어도 상대적으로 철심(鐵心)을 소유하고 있는 인물이 바로 그였다.
그런데 이 순간만은 그도 어쩔 수가 없는듯 비틀거리며 연신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동굴 암벽의 뾰족한 부분에 등을 부딪치자 통증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에 반해 혈포인, 즉 진중서(眞重書)는 무감동하게 말했다.
그 평범한 어투는 녹존성군으로 하여금 전율이 일게 했다.
그가 기억하던 단아한 문사(文士)는 어디로 가고, 지금 그의 눈 앞에는 전신에서 마기(魔氣)가 뚝뚝 흐르는 괴인물이 서 있었던 것이다.
"녹존, 너는 한 가지만 알면 된다. 구대성군이라는 가증스러운 자들 중 네가 가장 먼저 죽는다는 것, 지하에 가서 먼저 자리를 잡
죽음이라는 말을 통해 비로소 현실감을 갖게 된 그는 태도를 싹 바꾸었다.
그의 눈에서 새파란 광망이 뿜어져 나온 것도 바로 그 순간이었다.
"당신이 어떻게 살아 돌아왔으며, 또 어떻게 일월맹을 세우게 되었는지는 모르나 그런 행운은 두 번 다시 없을 것이오!"
놀랍게도 진중서가 우수를 내밀어 녹존성군의 검을 잡아채 버린 것이었다.
동시에 그는 흡사 연속동작인양 좌수를 들더니 그대로 녹존성군의 목을 움켜 잡았다.
목뼈가 부러지는 섬뜩한 음향이 울리자 녹존성군의 눈이 크게 휩떠졌다. 그것이 전부였다.
그는 두 눈 가득 경악과 회의를 담은 채 고요하게 굳어지고 말았다.
이 둔탁한 음향이 바로 일세에 영명을 떨쳐 왔던 녹존성군의 싱거운 죽음을 알리는 소리였다.
곧바로 그 뒤를 이은 것은 두 마디의 격노한 외침이었다.
"감히 녹존성군을 해하다니! 내 네 놈을 천참만륙해 주겠다."
두 개의 인영이 가히 벼락 같은 기세로 진중서를 덮쳐 갔다.
그 강맹함이란언뜻 보기에도 인간의 골육(骨肉)으로는 받아낼 것이 못되었다.
굉렬한 폭음과함께 진중서를 때린 잠경은 엄청난 회오리를 이루며 사방으로 퉁겨져 나갔다.
놀랍게도 그는 두 가지의 잠경을 고스란히 맞고도 전혀 타격을 입지 않았다.
그가 아무렇지도 않은양 신형을 돌릴 때, 그를 공격했던 두 성군은 그 반탄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뒤로 주르르 밀려 나갔다.
녹존성군의 검을 쥐고 있던 진중서의 손이 가볍게 움직였다.
검은 마치 흙덩이처럼 어이없이 부서져 버렸고, 그 파편들이 여세를 빌어 두 성군을 향해 날아갔다.
두 성군은 미처 신형을 잡기도 전, 헛바람을 들이켜야 했다.
그들은 각기 스스로의 몸에서 선혈이 튀어 오르는 것을 보면서도 무력하게 쓰러지고 말았다.
검조각에 의해온 몸이 벌집으로 화해 버렸으니 그들로서도 별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 웃음은 도저히 인간이 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흡사 악마의 울부짖음과도 같은 그 웃음소리는 그 뒤로도 한동안 동굴 안을 메아리쳤다.
일말의 공포가깃든 부르짖음이 또 다른 동굴을 뒤흔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어둠을 가르고 시뻘건 빛을 띈 두 개의 손이 비쾌하게 허공을 그으며 떠오르고 있었다.
폭음이 울리자처절한 단말마와 함께 온 몸이 짓이겨진 시신이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시신은 다시 동굴의 석벽에 부딪쳐 아예 그 흔적조차 알아볼 수 없게 변해 버리고 말았다.
마의 혈수(血手)는 볼 일을 마치자 곧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후후후... 비월궁의 궁주, 이로써 일곱명 째인가? 이제 남은 자는 둘뿐이다."
"으아악!"
인간의 생명이최후로 발하는 소리, 그 전율을 불러 일으키는 단말마의 비명소리가 동굴을 또 한 차례 진동시켰다.
그것을 따라 하나의 그림자가 섬광처럼 그 자리에 쏘아져 왔다.
"이럴 수가! 혈궁(血宮)의 파군성군이 당하더니, 이제는 철기궁의 거문성군마저 이 꼴인가?"
음성의 주인은바로 광명총궁의 궁주인 탐랑성군 화개악이었다.
그는 지금 거의 망연자실에 가까운 표정으로 혈괴가 되어 버린 거문성군의 시신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의 등 뒤로부터 한 가닥 사이한 음성이 그 말을 받았다.
"충분히 그럴 수가 있소. 그리고 이제 남은 자는 화개악, 그대 뿐이외다."
"화개악, 당신은 못보던 사이에 정녕 이상해졌소. 나이 들고 보니 이제는 사제들의 죽음이 안타깝소?"
"후후후... 이 사제는 오랜 세월 동안 뵙고 싶은 것을 참느라 무척이나 힘들었소이다. 엣센을 등에 업고 설치는 왕사형, 그리고 천마신궁의 착실한 주구인 당신이 말이오."
"호오! 어찌 아셨소? 이 사제가 누구에게든 빚을 지고는 못견딘다는 것을......?"
진중서의 빈정거리는 음성은 기이한 울림을 지니고 있어 마치 환청과도 같았다.
이는 그만치 마성(魔性)이 짙게 배어 있다는 증거였다.
"진중서, 네가 이렇게 건재해 있다는 것은 확실히 의외다. 하지만 이 화개악을 다른 성군들과 똑같이 생각하고 있었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다. 크크......."
그의 말꼬리에매달린 웃음소리에도 역시 진중서와 동일한 류의 마기가 느껴졌다.
바람 한 점 없는 동굴에서 화개악의 옷자락이 파동치며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그의 몸은 잿빛 가운데 은은한 혈색을 드리운 이상 기류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이른바 마인(魔人)대 마인의 접전, 이는 격돌하기도 전에 벌써 전율스러운 광경을 연출해 냈다.
전날에 진중서가 예견했던 바로 그 장면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흐흐... 진중서, 오늘 너는 이 화개악 비장의 무학을 보게 될 것이다. 너는 암천혈강(暗天血 )이라는 무공을 아느냐?"
전신에서 흐르는 마기를 배제한다면 화개악을 대하는 진중서의 태도는 시종 놀라울 정도로 담담한 것이었다.
그 순간, 화개악이 쳐낸 무시무시한 장력이 그를 덮쳤다.
그러나 승부수를 쥐고 있는 것은 유감스럽게도 화개악이 아니었다.
굉음이 울리며진중서의 전신에서 혈무가 솟아 오른 것은 바로 그때였다.
동시에 혈무는 핏빛 기둥을 만들더니 곧장 일직선으로 뻗어 나갔다.
하지만 그 짧은 찰나, 핏빛의 운무기둥와 화개악이 쏘아 낸 암천혈강이 허공에서 정면으로 격돌했다.
그의 신형은 허공으로 튀어 오르더니 그대로 산산조각이 나 흩어져 버렸다.
선렬한 피분수에 이어 충돌의 여파로 동굴이 반쯤 무너져 내렸다.
그 위로 다시 조각 난 화개악의 육괴가 흩뿌려진 선혈과 붕괴의 현장을 함께 뒤덮어 버렸다.
상대가 누구이건 간에 당대 광명총궁의 궁주인 탐랑성군 화개악이 단 일초에 즉사를 면치 못하고 분시(分屍)되어 버렸다면 믿을
그러나 무엇보다 놀라운 사실은 화개악이 죽기 직전에 내뱉은 한 마디였다.
천마혈영공이란 바로 반야천이 진일문에게 사용했던 극패잔살(極覇殘殺)의 마공이었기 때문이다.
무너져 내린 동굴을 응시하는 그의 눈은 의외로 극도의 허무를 띄고 있었다.
"이제 하나가 남은 셈인가? 왕중헌, 당신에게도 역시 빚을 갚아야겠지. 후후......."
"그 다음은 천마신궁....... 그 추(醜)한 본색을 구경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후후후후......."
웃음소리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 진중서의 신형은 다시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시산혈해(屍山血海)의 그 현장에서 놀라운 사실은 기습을 감했했던 삼성림이 초반의 우세에도 불구하고 결말에 가서는 거의 몰살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일월맹의 반격에 의해 대패(大敗)하고는 현판을 끌어내려야 할 정도로 지리멸렬하고 말았다.
중악으로도 불리우는 이 산은 여러 봉우리 중에서도 소실봉이 가장 유명하다.
그것은 소실봉에 불문선종(佛門仙宗)의 시조라 할 수 있는 소림사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강호상에서는 천여년 동안이나 정도무림의 영도자 격으로써 태산북두(泰山北斗)처럼 군림해 왔다.
그런데 이 불문의 성역(聖域)이자 무(武)의 전당(典當)이라 할 수 있는 소림사가 지금 일대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흡사 구름이 일듯 누런 먼지가 피어 올라 사위를 뒤덮었다.
한차례 폭우가 지나간 뒤인지라 마른 땅이 토해내는 그 먼지는 가히 황사현상에 버금갈 정도였다.
그리고 그 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대지를 진동시킬 때는 이미 먼지 따위는 의식할 수조차 없었다.
아니, 그것은 정확히 표현하자면 숫자를 헤아릴 수 없는 기마군(騎馬軍)들의 말발굽이 숭산의 만산편야(滿山遍野)를 마구 뒤흔들어 놓고 있다고 해야 옳았다.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 기마대의 행렬은 분진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속속 밀려와 소실봉을 원형으로 포위해 갔다.
그들은 팔로군(八路軍)으로 나누어진듯 팔방위에서 출현하고 있었다.
그들의 선두에는 각기 열 두개 씩의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는데, 누런 바탕의 그 깃발에는 황금빛 글자가 새겨진 채 선연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것은 황제의어림군(御林軍)들만이 사용하는 어림기(御林旗)였다. 즉 황제의 어가를 호위하는 자들로써, 그들이 대체 무엇 때문
천지간을 진동시키던 말발굽 소리가 멎더니 한 대의 화려한 전차(戰車)가 소림사의 산문(山門) 앞으로 달려갔다.
그 안으로부터소실봉 전체를 뒤흔드는 우렁찬 외침이 울려 나왔다.
"황명(皇命)이다! 방장은 속히 어지(御旨)를 받들라."
이로 인해 소실봉은 원래의 정적으로 되돌아 갔다. 그러나.......
하지만 겉에서느껴지는 위엄과는 달리 불당 안은 숨막힐 듯한 긴장에 휩싸여 있었다.
불상의 앞에는범상치 않아 보이는 인물들이 서로 마주한 채 이열로 배치된 방석에 앉아 있었다.
개중 상석(上席)으로 보이는 자리에는 머리에 계인이 선명하게 찍힌 한 노승이 합장을 한 채 불호를 외우고 있었다.
침통한 이 음성의 주인은 바로 당금 소림의 방장인 원광선사(圓光禪師)였다.
그는 미간에 어두운 그늘을 드리운 채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중인들을 돌아다 보았다.
"노납은 의견이 모아지면 무조건 따르기로 했소이다. 여러분들께서는 기탄없이 말씀해 주시길 바라오."
"아미타불... 필히 참조하셔야 될 것은 우리 구주동맹이 처해 있는 상황과 상대가 황제라는 사실이외다."
지금 이 자리에 모여 있는 자들은 하나같이 구파일방의 수뇌들로 구주동맹의 핵심인물들이었다.
그녀는 진일문의 변고 이후로 거의 칩거 중이었고, 이 자리에는 그녀를 대신해 개방의 수장로인 장미신개(長眉神 )가 배석하고 있었다.
"본 곤륜파는 그들과 일전을 불사하겠소이다. 아무리 황명이라고는 하나 관부와 무림 간에는 서로 간섭하지 않았거늘......."
두 인물이 앞뒤로 외치자 불당 내의 공기는 싸늘하게 냉각되었다.
"무량수불... 여러분, 혹시라도 일시적인 흥분으로 일을 그르쳐서는 아니되오이다. 상대는 황명을 받고 있는 어림군이므로 충돌했다간 반역으로 취급되고, 사태는 걷잡을 수 없게 되오이다."
"무량수불... 빈도의 좁은 소견으로는 일단 그들을 접한 뒤에 결정을 내리는 것이 어떨까 하오이다. 맹주께서 자리를 비우신 지금으로서는 그것이 최선책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들은 서로 눈치를 살피더니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는 묵시적으로 광수진인의 말에 따르기로 결정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윽고 그들 구파일방의 영수들이 산문을 나서자 전차 안으로부터 다시 예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황명이다! 일월맹은 작금에도 백성을 도탄에 빠뜨리고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다. 그러나 삼성림과 더불어 그들을 치라고 어지를 내렸건만 구주동맹은 명을 거역했다. 이 불충은 결코 용서받지 못할진저, 황명으로 구주동맹을 응징하노라."
"구주동맹의 수장은 즉시 무릎을 꿇고 성지(聖旨)를 받으라!"
황명 자체도 수용하기가 어려웠지만 응징이란 실로 어불성설이었다.
더구나 성지를 전한다는 자는 얼굴도 내밀지 않고 있었다.
만고천우에 대역죄인이라는 오명을 남길지언정 내부에서 꿈틀거리는 무림인의 기개까지는 그들 스스로도 제어하지 못했다.
"성지를 받고도 어이 배례고두를 하지 않는 것이냐? 정녕 너희가 역모반심을 품고 있더란 말이냐?"
소림사의 산문 안쪽으로부터 반발이 깃든 고함성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은.
"우우! 도저히 못참겠다. 이 무슨 어림없는 수작이냐?"
"아무리 당금 황제라 해도 우리 강호인들과의 불간섭 원칙을 깰 권리는 없다!"
"싸웁시다! 각파의 지존이신 장문인들께서 이런 모욕적인 대접을 받아야 하다니, 무림의혼을 더 이상 떨어뜨릴 수는 없소."
그러더니 곧 병기가 뽑혀지는 금속성이 사찰 전역을 울렸다.
그들은 장문인을 따라 이 곳까지 온 구파일방의 절정고수들로써 본시 관(官)을 두려워해 본 적이 없는 인물들이었다.
따라서 그들은자파를 영도해온 장문인들의 위신이 하락되는 것도, 공연히 치죄를 당하는 것도 용납할 수가 없었다.
"발칙한! 감히 너희가 황제의 어림군과 맞서겠다는 것이냐? 구족(九族)이 능지처참을 당해야 정신을 차릴 모양이구나."
마차 안에서 들려 오는 외침 또한 기세를 한층 높이고 있었다.
첫댓글 즐감 입니다
이제부터, 새로이.... 즐감햇슴다.
즐독하구갑니다
늘 감사합니다.
즐 독
즐감요!!!!!
즐감했습니다.
어림군이라... 그들은 숫자로 밀거니까.. 까짓거 깨기는 문제 없지 싶은데..
굿,,즐감,,
ㅎㅎ
감사합니다
즐감요
쟴납니다
잘 보았습니다
줄겁게 열독하고 갑니다.감사 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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