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권을 읽고 만 리를 걷다
박경구 지음
지은이 : 박경구
쪽 수 : 336쪽
판 형 : 148*220
ISBN : 979-11-6861-357-7 03810
가 격 : 25,000원
발행일 : 2024년 8월 8일
책 소개
작아도 가장 현실적이고
가장 이성적인 것들을 찾아 헤매는
나이를 잊은 이방인
▶ 독서광에서 외톨이 여행자로
우연히 만난 문장이 인생의 지침이 되기도 한다. 저자에게는 ‘독만권서·행만리로(讀萬卷書·行萬里路, 만 권을 읽고 만 리를 걷다)’가 그러하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활자중동 성향도, 여기저기 다니던 떠돌이 병도 이 경구로 정리되었다. 대학 신입생 시절 다방 벽에서 읽었다가 생활에 쫓겨 한때 잊고 지냈던 이 문장이 다시금 떠오른 것은 50대 중반부터였다. 그 후로 건강을 챙기고, 여비를 준비하고, 언어를 익히면서 시나브로 ‘만리행’에 착수하다가 비로소 생업까지 마무리한 팔순에 들어 저자는 이름 그대로 외톨이가 되어 유유히 걷고, 느긋하게 쉬면서 그동안 책에서 얻었던 이성의 구슬들을 직접 보고 듣고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 『만 권을 읽고 만 리를 걷다』에는 지난 삼십여 년간의 여행기가 담겨 있다. 혼자 다니는 여행은 자유롭다. 때로는 길을 잃기도, 몸이 안 좋아 여행을 포기하기도 했지마는 그래도 저자에게는 자유로운 휴식이자 사색이요, 감동이었다. 한마디로 이 책은 그 흔한 여행에세이가 아니라, 여행의 밑바탕이 된 독서와의 연관이 적힌 묵직한 수상록이다.
▶ 아름다운 자연에서 만난 착한 사람들
책 속에 담긴 여행은 아름다운 마을 속 착한 사람들을 찾는 과정이다. 저자는 여행에서 만난 현지인 혹은 여행자에게 말 걸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들과 나눈 대화는 다양하다. 가벼운 인사와 여행 일정에서부터 예술, 정치 문제까지.
로비로 내려가 어제저녁 할머니와 얘기하다가 만 옛 동요 <토오랸세(とぉリやんせ)>에 대한 얘기를 다시 이어 간다. 내가 시창을 부탁하자, 할머니는 고어(古語)풍의 이 쓸쓸하고 애잔한 노래를 거침없이 완창한다. 80이 훨씬 넘어 보이는 노인의 정신력에 감탄한다.
_「4장 신들의 고향 ‘산인’」에서
저자는 새로운 장소, 낯선 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경험과 지혜를 쌓아간다. 짧지만 진심을 다한 대화는 여행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고 단순히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 아니라 빛나는 기억을 선물한다. 이러한 만남을 통해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과 인간적인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여행의 참된 의미와 인간적인 만남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낯선 여행지에서 만난 새로운 세계
저자의 여행지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익숙한 관광지가 아니다. 중심에서 한 발쯤은 빗나간 장소이다. 그렇기에 저자의 감상도 흔하지 않다. 스위스 생모리츠 외곽의 세간티니 미술관을 방문하여 그의 생애를 되짚어 보거나 일본 가고시마 가라쿠니다케 화산을 보며 일본 역사서 『고지키(古事記)』를 떠올린다. 저자는 역사는 물론 언어, 예술 등으로 지역의 문화를 이해한다. 책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도 어느새 낯선 여행지를 천천히 거닐며 주변 모든 것과 교감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 지혜와 용기를 담은 여행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도전이나 모험이 무서워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저자는 노년기에 접어든 자신을, 모든 준비를 마치고 비로소 진정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존재로 인식한다. 저자의 여행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다. 책을 통해 얻은 지식을 실제로 체험하고 마주하는 과정이다.
저자의 글은 한 사람의 삶과 경험을 넘어 자유로운 사색의 가치와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전달한다. ‘만 권을 읽고 만 리를 걷는다’라는 경구가 인생의 지침이 되어 활기찬 저자의 삶을 선물해준 것처럼 이 책은 독자의 삶 또한 풍요롭게 만드는 데 영감이 될 것이다.
연관 키워드
#에세이 #여행 #노년 #일본 #프랑스 #스위스 #독일 #인문학 #미술
책 속으로 / 밑줄긋기
p54
규모가 크건 작건, 적어도 단체(복수)여행은 외톨이 여행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데가 있다. 육체노동이라면 수가 많을수록 능률적일지 모르나, 적어도 한 개인이 누릴 수 있는 자유나 휴식은, 일응 사람 수에 반비례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해서, ‘만리행’을 자기 인생의 길로 삼는 사람은, 끝내 ‘여수(旅愁)에 찌들린 외톨이(étranger)’가 될 수밖에 없고, 그 여행은 ‘외톨이의 방랑(wanderings)’이 될 수밖에 없다.
p90
아무튼 생업(돈벌이)은 끝났다. 퇴근시간이 되어 옷을 갈아입고 승용차를 타는데, 만세! 소리가 입 밖으로 나올 것 같았다. 정확히 60년 전, 고2를 수료하자마자 1년 휴학계를 내고 교문을 나설 때의, 바로 그 기분이다.
당장, 유효기간이 지난 여권부터 갱신해야겠다.
이제 내게 ‘휴가철’은 없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봄·가을이 있을 뿐.
p132
어젯밤 비가 한 방울씩 떨어져 날씨를 걱정했더니 완전히 개었다. 간발의 시차로 태평양의 일출을 놓친 것이 섭섭하다. 밤에 모기가 들어와 잠을 설친 바람에 늦잠이 들었던 모양이 다. 동네를 한 바퀴 돌아 숙소로 돌아오는데, 등교하는 학생들이 자전거를 타고 열을 지어 가면서 모조리 “안녕하세요(おはようございます).” 하고 인사를 한다. 일본 시골길을 걷다 보면 가끔 겪는 일인데도, 그때마다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잠시나마 이방인이라는 느낌이 사라진다.
p212
역사는 과거에 있던 인류사회 생성·변천의 과정이요, 그 기록일 뿐, 서 있는 것도 앉아 있는 것도 아니다. 당대의 인류가 역사를 위해 할 일이 있다면, 그 기록이나 유적, 이른바 역사가 산일·훼손되지 않도록 정성껏 보존하고 정리해서, 다음 세대에 물려주는 일이 있을 뿐이다. 유적을 없애는 것은 귀중한 사료(史料)를 훼손시켜 그 자체 역사를 파괴하는 것이고, 후손들을 위한 아까운 관광자원만 하나 멸실시키는 것이 아니겠는가.
p206
은사 할머니가 떠오르면서 마음이 개운치 않다. 생각 난 김에 셀폰을 꺼내 작별 인사를 하자, “꼭 다시 와야 해요. 우리 죽기 전에….” 하고 또 흐느낀다. 내가 “그래야지요.” 했어도, 내 목소리에 자신이 없는지 울음이 그치지 않는다.
생각하니 그때 선생님의 언행으로 미루어, 선생님의 처지가 외롭다는 것쯤은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모르는 체하고 돌아설 바에야, 무엇 때문에 그 멀고 외진 곳을 찾아 갔단 말인가. 특별히 바쁠 일도 없었는데, 더도 말고 이틀만 더 묵고 나올 수는 없었던가. 전에 없었던 “죽기 전에….”라는 한마디가 예사로 들리지 않는다.
저자 소개
박경구
순천고등학교를 나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부산지방법원 판사,
부산지방법원 밀양지원장,
대구고등법원 판사를 거쳐,
부산에서 변호사로 40년을 재직했다.
독서와 여행이 평생의 보람이어서,
반생은 읽는 데 보냈고,
나머지 반생은 걷는 데 보내고 있다.
차례
머리말-“구슬이 서 말이라도…”
1장 ‘활자중독’이라는 병
역마살 낀 악동
날넘은 소년
고전(古典)의 발견
처음 맞은 ‘해방’
줄타기 대학 입시
“너 좋아하는 책 충분히 읽어라”
‘말’ 배우고, ‘촌티’ 벗은 이야기
“변호사 하려고 나온 사람”
‘만 권을 읽고, 만 리를 걷다’
2장 외톨이의 길채비
‘혼자 떠나는 연습’
우선, 건강이다
다음은 여비다
고달픈 변호사
‘윗목이 따뜻해야 온 방이 따뜻하다’
과분한 노후 준비
“돈은 졸업했소”
‘말’없는 여행은 없다
‘영어’라는 세계어
필요한 만큼의 외국어
“50년의 재수”
‘영어가 도대체 무엇인데’
끝으로, 시간이다
몇 번의 시행착오
3장 그리도 가까운 나라, 가고시마와 미야자키
초조
상무(尙武)와 탐미의 나라, 가고시마
기리시마 공원과 가라쿠니다케
‘역적의 묘지에 참배라니요’
염치없는 나그네
뒤돌아 보이는 난슈 신사
‘시로야마’와 사이고 동굴
미술관들
성 프란시스코 하비에르의 일본관
영웅들의 고향, 가지야 마을
인사를 아는 나라, 미야자키
종려나무 늘어선 태평양의 방파제, 니치난카이간
아오시마(靑島)
사라다빵과 ‘오후의 홍차’
‘인사는 마음을 여는 제1보’
‘와타 고개’와 사이고의 최후
4장 신들의 고향 ‘산인’
‘산인’ 지방을 찾아서
하늘의 다리 아마노하시다테
돗토리 사구
‘다이센’의 노을
물의 도시 마쓰에
신이 만든 고을 이즈모(出雲)
“토오랸세 토오랸세”
5장 쪽빛해안과 프로방스와 고흐 마을
모처럼의 미술산책
코트다쥐르
마티스와 샤갈
한 맺힌 샤토 디프(Châeau d’If)
빈센트의 자취를 찾아
‘예쁜 도시’ 아비뇽
잘도 팔리는 로마의 유적들
루브르와 샹젤리제
오르세 미술관과 고흐 마을
몽마르트르 묘지
6장 루체른, 티치노, 엥가딘의 인상
피어발트슈테터호와 리기산
느긋한 양지 티치노
천혜의 계곡 오버엥가딘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찾아
완행으로 달리는 빙하특급
“영혼의 평화를 원한다면 몽트뢰로 오라”
7장 “꼭 다시 와야 해요”
70년 만의 해후
페르가몬 박물관과 훔볼트 대학
낙조에 빛나는 브란덴부르크
바이에른 문화의 중심지
으쓱해진 나그네
‘전생의 고향’ 취리히
페스탈로치 동상 앞에서
교민이 걱정하는 “자유민주주의”
기구한 인강과 눈 덮인 노르트케테 연봉
위대한 합스부르크 유산과 ‘초원의 성모’
무모한 하이커
“꼭 다시 와야 해요, 우리 죽기 전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