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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4.금요일
총수
본지 북리뷰의 첫 서적으로 선정된 <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변호사를, 필자 인터뷰라는 핑계로 만났다. 그러나 실은 필자 김용철이나 책의 내용이 궁금했던 게 아니었다. 김용철의 고발이나 주장이 아니라, 자연인 김용철을 기록해 두고 싶었다.
왜.
그는 그럴만한 자격이 있으니까.
인터뷰는 2010년 5월 6일 오후 1시 삼청동 모 카페에서 이뤄질 예정이었으나, 커뮤니케이션 혼선으로 시간을 훌쩍 넘겨 시작됐다. 본지에선 총수와 빅마우스가 출동했고 그는 혼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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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한 아이스 브레이킹 없이 대뜸 들이댔다. 첫 눈에 느낌이 왔다. 아, 그래도 되는 양반이다. 무슨 소리인지는 인터뷰를 읽어 가면 곧 알게 될 터.
총: 50줄 들어서 인생이 갑자기 바뀌신 거 아닙니까.
김: 계속 바뀌었죠. 20대에는 그래도 대학도 나오고. 지구인 80억 중에 대학 나온 사람들 얼마나 되겠어요. 대한민국이야 8, 90% 지만은. 30대에는 서울 부산 인천 특수부 검사 폼나게 했잖아요. 대통령 재벌 수사도 하고... 40대는 남들 꿈의 직장이라는 데 다녔잖아요. 그리고 50대에 이렇게 세상 사람들한테 떠들고 있고.
총: 제 말은 나름대로 잘 먹고 잘 사시다가...
김: 요즘에도 잘 먹고 잘 살아요. 오면서도 밤도 먹고 홍어도 먹었어요. (웃음)
총: 아니 언론 통해 비친 걸로만 보자면 50줄에 인생을 조진 걸로 보이던데(웃음)
김: 아, 자기들이 만든 이미지죠. 나는 지금까지 내 인생 중에 지금처럼 행복했던 적이 없는데요. 편안해요.
총: 빵집은 잘 되시나요.
김: 빵집은 책 출간과 동시에 그만했죠. 제가 구속 될 거라고 생각을 했으니까.(웃음) 이렇게 예측력이 없어요.
총: 물론 지금도 잘 산다 하시지만 그게 좀 다르잖아요. 과거와는. 그 종류가.
김: 종류가 다르죠. 예전엔 아침에 눈 뜨면 이렇게 새끼줄 매고 출근해야 하는데 어~ 그거 안 하니까 얼마나 좋은지... 뭐 옷도 막 구겨져도 되고.
총: 그동안은 언론과는 현안 인터뷰를 하셨는데 저희는 현안이나 책이 아니라 인물 인터뷰를 하려고 합니다.
김: 아, 인간 김용철이 누군가... 개차반이지 뭐~(폭소)
총: 대체 이 사람이 누구냐 씨바~~(폭소) 뭐 삼성에 대해서는 책에 다 나왔으니까.
김: 그렇죠. 다 나왔지만 하나도 해결 못하고 있지만.
총: 저도 삼성을 말한다, 읽어봤는데.
김: 조금은 재미있죠? 남들이 보통 구경하거나 겪어보지 않는 이야기니까.
총: 무협지더라고 무협지.(웃음)
김: 그 책을 각자 참 다르게 받아들이더라고요. 아는 철학 선생님 한 분은 이건희라는 인물이 거울을 자주 보는 거를 가지고 연구대상이라고 하는 거예요. 나는 뭐 나르시시즘 그 정도 이야기인줄 알았더니 천민 자본가의 전형이라나... 허허허...
총: 거울을 자주 본다고... 으허허. 그게 연결이 되나. 그건 과도한 해석인 거 같은데.(웃음)
김: 그래서 난 앞으로는 거울 자주 안 봐야 되겠구나. 생각했죠. (웃음)
총: 썰렁하시군요.(웃음) 인간 김용철을 만나기로 한 건, 뭐 책은 이미 장사가 잘 되고 있기도 하고.(웃음)
김: (웃음)맞아요.
총: 본인이 원하던 원하지 않던 사실은 이제 하나의 상징이 되셨단 말예요
김: 원했던 일이죠.
총: 폭로야 원했던 거지만 상징이 되려고 하신 건 아닐 테니까.
김: 아, 물론 그건 아니었죠.
총: 근데 상징이 되었어요. 그래서 딴지가 기록을 하자. 아, 딴지일보 잘 모르시죠.
김: 쬐끔 알아요. 한겨레에 글 쓰신 거 보기도 하고. 한겨레 팀장급들이 존경하더라고요. 천재라고. 그래서 저도 한 번 만나보고 싶었었어요. (웃음)
총: 하하. 여하튼. 대한민국 권력의 진짜 작동방식, 그걸 고발했어요. 생생하게. 이건 본인이 원하던 원하지 않던 역사에 남습니다. 그래서 아, 이 인물 자체를 기록해둬야겠다. 이 양반 이런 양반이었다고. 이미 경험하셨겠지만 보통 언론이라는 게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만 인물을 소비하거든요. 자기들이 필요한, 원하는 이미지만 쏙 빼서 써먹죠. 실제로는 훨씬 더 입체적인 살아있는 인간인데. 그래서 저희는 그런 거 말고 있는 그대로 실제 인물. 50대에 인생 조진 바보.(웃음)
김: 어~ 바보하면 노무현 이미지가 오버랩 되는데~ 제가 노무현을 지지했지만은. 그 분한테 제가 딱 한 가지 맘에 안 드는 거는... 꿈은 가졌는데 약점이 많았어요. 집권 초기부터 그 밑에 줄줄이 들어갔잖아요. 집권하자마자 레임덕인 것처럼. 나는 그걸 좋게 해석하려고 했어요. 자신이 자기 참모들한테 진 빚, 채무가 그렇게 정리되는구나. 그런데 한계를 많이 갖고 있었죠. 말을 좀 거칠게 한다.. 랄지. 이거는 저도 컴플렉스가 있어요. 명문가에서 교육 잘 받고 집안도 좋고 이런 거에 대한 컴플렉스. 그게 평생 안 떨어집디다. 이제 없어질 나이도 됐는데. 그 양반도 그런 게 좀 작동 되지 않았나 하는 느낌도 들더라구요.
총: 그 얘긴 있다 다시 하시구요. 본인 이야기부터 해보죠. 제가 책에서 보니까 이북에서 내려오셔 가지고. 할아버지께서.
김: 이북에서 내려온 게 아니라.
총: 아, 참 만주에서.
김: 전남이 고향인데, 일제 때 그쪽으로 소개된 거죠.
총: 만주 가셨다가 다시 서울로 잠깐 내려 오셨다가.
김: 예. 서울에서 자리 못 잡고 도로 내려가신 거죠. 김만철씨가 일가랍디다.
총: 아 그래요?
김: 예. 이북에 무슨 엉터리 의사집안이 바로 우리 집안이래요. (웃음)
그가 자신 이야기를 하는 방식이 이런 식이다.
스스로를 하릴없이 농담거리로 만들어 버린다.
총: 먼 친척이래요?
김: 가깝다 그래요. 이북에 의사 가족이 왔었잖아요. 일가라 그래서 가만 보니깐 닮은 거 같더라구요.
총: 할아버지는 어떤 일 하셨던 분이십니까?
김: 할아버지야 농사 지셨지 않겠어요? 우리 아버지야 뭐 할아버지에 대해서 아무래도 포장을 좀 하실 테니까... (웃음) 부모님이니까. 근데 우리 아버지가 어릴 때 돌아가셨나봐요. 그러니까 좋은 이미지만 남으셨던 것도 있겠고.
총: 아버님도 그럼 농사를..
김: 농사를 젊어서 짓다가 시골에서 무 농사 하다가 실패 했대요. 어려운 집안의 막내니까... 근데 농사를 실패하니까 살기 힘든 시절이라 주변에서 위로를 하는 게 아니라 고향 동네에서도 스스로 무시당한다는 느낌을 받았나 봐요. 그래서 그나마 도회지 광주로 나온 거죠. 그래가지고 인제 쪼금 여유 있는 집에 장가를 들었어요.
총: 장가를 잘 가셨구나.
김: 그거는 이유가 있어요. 사실은. 공개를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어머니가 어릴 때 치과치료를, 옛날에는 치과의사가 엉터리가 많았아요. 그래가지고 사이비, 그러니까 담양이 고향인데 사이비 치과의사 있잖아요. 거기에서 치료를 받고 안면 기형이 왔어요. 후천적으로. 멀쩡한 처녀가. 남들 앞에 나서지를 않고 학부모회의나 이런 데도 한 번 안 오셨어요. 그러니까 제 느낌에는 그래서 외갓집에서 우리 아버지 같은 사람을 사위로 맞지 않았나. 뭐 이런 생각이 들어요.
총: 으하하하하
김: 시장에 내 놓을 수 있는 상품 가치가 많이 훼손 됐잖아요.
총: 으흐하하하.. 그럼 그 결혼 덕분에 경제적 사정이 좀 나아지셨고...
김: 아버지가 크게 도움을 받으신 것 같진 않은데. 그래도 그 결혼반지를 빼 가지고 새벽에 배타고 완도 가서... 그 당시는 김이 굉장히 귀한 물건이었나 봐요. 또 완도 반출도 안 됐나 봐요. 일본으로 수출해야 되고 그러니까. 근데 그런 거를 좀 사다가 작은 장사부터 시작해 가지고... 제가 기억할 때는 안 해 본 장사가 술장사 여자장사 빼고는 다 해본 신 거 같아요. 그렇게 사업을 시작하셨고.
나중에 주택 붐이 부니까 멀쩡하게 살던 집을 두 조각을 내더라고요? 한옥 쪼그마한 집에 살았는데 땅은 넓었어요. 100평 가까이 되었는데 딱 두 조각 내서 한옥을 두 채를 지어가지고 팔면서 돈을 벌었어요.(웃음) 그렇게 아버지가 돈 번 덕에 제가 덕 본거는 제가 초등학교 3.4학년때 백과사전을 하나 얻었고, 그리고 보약을 제가 먹었고요...
총: 으흐흐하하하하하 (대폭소).
초반부터 대폭소 연발.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가족의 치부에 해당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직구로 마구 던져버리는 데 넘어가는 줄 알았다. 자신을 이렇게 무방비로 털어낼 수 있는 사람, 매우 드물다.
김: 맏아들이 몸이 약하다. 이래가지고 보약을 먹었죠. 제가 사실 많이 약했어요. 학교를 걸어서 못갈 정도로. 나중에 보니까 심장에 이상이 있는 거라. 몰랐던 거죠. 그 당시에만 해도. 심전도 한 번만 해봤으면 군대 면제됐을 거예요. 그런데 군대도 다 갔다 왔잖아요. 나중에 팔다리 부러져 가지고 수술할 때야 처음 알았어요. 40 넘어서.
총: 경제적으로는 어려움이 없었군요. 큰 부자는 아니었어도.
김: 아, 먹고 사는데 지장은 없었어요. 그러니까 제가 학교 다닐 때는, 다들 비슷한 시절이었지만, 점심때 애들이 나가서 축구하는 거 보고 저놈들은 밥도 안 먹고 공놀이 하나 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걔들은 도시락을 못 싸온 애들이었어요. 그래서 옥수수빵 나눠주고 그랬었죠. 근데 저희 집은 불고기도 싸 주시고 달갈 후라이 노른자 딱 엎어 가지고 싸주시고 했으니까. 제가 딱 뚜껑 열기만 하면은 우리 반 애들이 우르르 덤벼들어 내 반찬을 다 먹었으니까. 초등학교 3,4학년 때부터 텔레비젼도 있었으니까.
총: 그러면 어릴 때부터 못 먹고 못 자라 자연스럽게 축적된 반골기질, 이런 건 전혀 아니었군요.
김: 아, 전혀. 전혀요. 나중에야 깨달았어요. 제가 아주 여유 있게 컸다는 걸. 그러니까 부자까지는 아닌데 하고 싶은 건 다 했죠. 악기도 사 달라면 사 줬고 기타도 사고 바이올린도 사고.
총: 그럼 안정적인 중산층이었다 봐야겠군요.
김: 그 당시로 보면 그렇죠. 다들 판자촌이라 어렵게 사는데 전세도 안 살고 저희 집에 살았고, 집에 전축도 있고 텔레비젼도 있고. 사실 그 당시 기준으로는 대단한 거죠. 그리고 청색전화 백색전화 이런 거 기억 하실지 모르겠는데, 전기가 일반선, 특선 있었잖아요. 일반선은 12시 되면 끝나요. 단전되요. 근데 우리 집은 특선이었어요. 24시간 전기도 들어오고. 우리 집 텔레비젼 켜면 온 동네 사람들 다 와서 보고....
총: 공부는 어릴 때 잘 하셨습니까?
김: 반장 회장 항상 했어요. 그러니까 뭐 항상 일등은 아니었겠지만 꽤 잘했겠죠? (웃음)
총 : 푸하하...
김 : 그 당시엔 반장을 공부 잘 하는 애들로 뽑잖아요. 공부 잘하는 애들 중에 순한 놈으로다가.
총: 그렇죠. 선생님 말 잘듣고.
김: 예. 만만한 놈 뽑았죠. 그러니까 제가 어릴 때 맞고 다니지도 않았고. 잘못했으면 만날 맞고나 다녔을 텐데 권력이 있었잖아요. 선생님한테 고자질 할 수 있는 권력. 최고권력자와의 거리 세 제곱에 반비례하는게 권력이잖아요. (폭소)
총: 으허허허허허.. 그럼 가족의 지원도 충분히 받았고 악기나 백과사전 같은 인문학적 환경도 마련됐고...
김: 서울에 와서 사립대학도 다녔고~
총: 공부도 잘 했고. 그럼 어릴 때는 유세하고 다니셨겠네. (웃음)
김: 목에 힘주고 다녔죠.(웃음) 꼬마 때부터 애들 촥 모아놓고 구라도 많이 풀고. 제가 몸이 약해서 그런 버릇이 생겼을 거 같은데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는 항상 책 보고 있었어요. 그것도 주로 백과사전. 지금도 그 내용을 기억 하는데...
총: 지적 호기심이 많으셨구나.
김: 어.. 잘난 척 하려고~
총: 으하흐하하하하, 우리가 아는 그 김용철이 아냐~~~(대폭소)
계속 터진다.
김: 최초의 유인 우주선 유리가가린 스푸트니크 1호 뭐 이런 걸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알았으니까...
총: 근데 원래 백과사전 그런 거 좋아하는 사람들이 지적호기심이 많은 사람들인데....
김: 아.. 글쎄 내가 무슨 책을 보거나 하면 우리 집 애들이 걱정해요. 또 잘난 척 하려고 그런다고.(폭소)
총: 푸하하하.. 아이고. 그럼 중고등학교 때는요. 그 시절 이야기 들어보면 이미 고등학생들이 박정희 독재타도를 이야기 하고 그랬다고 하죠. 좀 조숙한 애들은.
김: 아~ 그렇죠. 제 고등학교 동창들은 보안법 위반으로 입건된 친구도 있고 학교 다닐 때 제적된 사람들도 수 십 명이고. 유신 때니까. 긴급조치로.
총: 본인은 아니셨구나. 그럼 대학생 때도 그런 일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운동을 하고 그러진 않았었군요.
김: 제가 집안의 문패요 서까래요 간판이요 기둥이인데, 그래서는 안 된다고 여겼죠. 우리 아버지는 항상 데모를 하더라도 앞에 서지마라 가운데 쯤 서라... (웃음)
총: 하하하하하
김: 그래서 전 항상 가운데만 섰어요.
총: 그러니까 단순 가담자... 으하하.
김: 예. 단순가담. 부화뇌동. (폭소)
총: 원래 늦깍이들이 무서운 거죠. 하하
김: 제가 대학 다닐 때 고등학교 대학교 친구, 참 친한 친구인데 그 친구는 완전히 운동권이었어요. 구속도 되고. 그 친구가 그 시절 저한테 그럽디다. 니가 가는 길이 영광의 길일지 내가 가는 길이 영광의 길일지 나중에 보자고. 난 사실 그 시절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어요. 내가 뭐 영광스러운 길을 가기 위해서 그런 게 아니라 시골 집안의 장남이고 법대를 갔으니까 당연히 고시는 해야 하고 그런 정도의 생각이었거든요. 그런 면에서 데모하다 구속되고 제적되고 하는 친구들한테 안타깝고 내가 비굴하게 생각되고 뭐 이런 면이 사실 많이 있었죠. 그래서 대학 다닐 때는 참 부끄러웠어요. 사실은. 나도 같이 가야 되는 거 아닌가 싶어서.
총: 그 정도의 부채의식...
김: 대부분이 다 가니까. 번듯하게 졸업하는 놈이 잘 없으니까요. 그래서 고시 공부 한답시고 책 보는 게 참 부끄럽고. 특히 80년 광주 항쟁 그 직후에 고시 공부 하다가 책 태워버린 놈들도 많았거든요. 그래서 내가 참 부끄러웠는데.. 세월이 한참 지나서 보니까. 나한테 그랬던 친구들이 지금 내가 보기엔 나보다 더 부도덕하게 살아...
총: 하하.. 그래서 늦깍이가 무섭다는 거죠.
김: 뭐 세금 빼 먹기도 하고... 뭐 이상하게 살더라구..
총: 본인의 이미지가 대단히 꼬장꼬장하고 뭐랄까 그.. 불의를 보면 못 참고..
김: 정의의 사도고~
총: 지구를 구하는 벡터맨인데. 어릴 때부터 그런 건 전혀 아니었단 거군요.
김: 예. 누구랑 싸움해 본 기억도 없어요. 누가 때리면 맞을 수밖에 없었어요. 몸도 약하고. 초등학교 때 여자 짝한테도 꼬집히면서 다녔으니까. 근데 제가 사고를 낼 기질은 있었단 생각은 들어요.
총: 어떤 겁니까? 어쩌다가 말년에, 아니 말년은 아니죠. 아직 50대니까.
김: 예. 말년은 아니죠.(웃음) 초등학교 때 한 번은 나한테 너무 몰상식하고 심하게 대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때 제가 난생 처음으로 화를 냈어요. 교실에 있는 책상과 의자를 다 집어 던졌어요. 그렇게 화를 딱 한번 냈어요. 사실 화 내고 싸움도 자주 해보고 그런 사람 같으면 스스로 적당히 제어도 하고 자기 한계도 알 거 아녜요. 근데 저는 안 그러다가 한 번 폭발하면 정말 사고를 내겠구나...
지금 제 팔자 이렇게 만든 거는... 제가 정말 내몰리고 궁지에 몰려서 비명을 지른 거라고 봐야죠. 저 진짜 한 5달 동안은 혼자 컨테이너 방 안에서 고민했었어요.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런데 결국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역할 아니냐. 또 다른 사람들은 할 수 없는 역할이고. 그렇게 나한테 주어진 역할이라면 기왕이면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싸우자...
총: 사람은 결국 자기 선택이죠. 나머지는 다 변명이고. 결국 무슨 선택을 했느냐가 그 사람이 누구냐를 결정하죠. 그 마지막 선택이 결국 김용철이죠. 그런데 그 선택은. 정의의 문제 이전에 무섭잖아요. 워낙 큰 상대라.
김: 제가 무서워한다고요?
총: 예.
김: 아~ 그 점은 제가 좀 틀려요. 그러니까 제가 검사를 할 때도 후배들한테 항상 이야기 했어요. 명색이 특수부 검사는 핵심세력의 심장부에다 비수를 꽂아야 된다고. 검찰권을 준 이유가 뭐겠어요. 가장 쎈 놈에게 덤빌 수 있는 권한을 준 거. 그게 아니겠어요. 밑바닥 사람들. 어디 도움도 요청 할 수 없는 사람들 짓밟으라고 준 거 아니잖아요. 가장 믿을 수 있는 놈한테, 가장 도움을 못 받을 사람들은 보살펴주고, 가장 쎈 놈한테 칼대라. 뭐 이런 거 아니겠어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저는 검찰 수사할 때 청탁이 없는 사건은 할 맛이 안 나서 그만둔 거 많아요.
총: 으하하하하..
김: 특수부 검사가 일하는데 압력과 청탁이 없다. 그건 잘못 건드린 거죠.
총: 으흐하하하하.. 그건 일반검사나 하는 거고.
김: 그렇죠. 그런 거는~(웃음)
총: 그럼 이런 거는 어디서 나온 겁니까? 그러니까 그런 청탁이 오면...
김: 청탁이 오면 저는 그걸 철저히 정보로써 활용했어요. 청탁의 강도와 세기와 그게 이 사건의 중요성을 증명하는 거다. 뭔가 있다는 정보다. 그리고 청탁이나 압력이 있으면 굉장히 반가워요. 이게 할 만한 사건이구나. 해야 되는 거구나. (웃음)
그렇다. 검사가 이 정도는 되어야 검사지.
총: 근데 사람 사는 곳이라는 게 다 끈으로 연결되어 있잖아요. 그러니까 요걸 이렇게 받아들이면 저렇게 돌아올 이득을 생각하게 되게 마련인데.
김: 그 점에 있어서는 저는 좀 문제아죠.
총: 그게 정의감을 그만큼 더 많이 타고나신 겁니까. 아니면 성깔입니까
김: 못된 성질입니다. (웃음)
총: 으하하하.
김: 제일 힘든 게 라인의 지위계통, 내 위의 결재권자를 통한 이야기. 그게 제일 답답해요. 그건 나한테 바로 이해관계가 있는 거니까. 그런 경우에 조금은 갈등, 고민이 되요.
총: 제가 궁금한 건 본인을 그렇게 만든 게 뭔가. 뭘 타고 났길래....
김: 잘못된 가정교육.(폭소)
총: 으하하하.. 어떤 의미에서.
김: 그... 세상을 적당히 살아야 한다는 그런 품성을 못 가르쳤죠. 부모님이.(웃음) 나도 내 아이들한테 못 가르쳤고. 어차피 한 목숨 살다가 가는 거니까... 예를 들면 우리 아버지도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를 폐묘 했어요. 왜냐하면 내 아들 며느리도 크리스챤이고 내 손주도 그 이후로도 줄줄이 와서 성묘하고 할 리가 없다고 보신 거죠. 그래서 저한테 통보하고 폐묘하더라구요. 당신들도 화장하고 없앤다고 하시고. 그래서 우리 집안은 산소가 없어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볼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렇게 한 목숨 살다 조용히 사라지는 게 맞는 거라고 봅니다. 혼이 있는지 령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총: 무신론자시구나, 기본적으로.
김: 법명이 진각이에요. 세례는 법명이 아우구스티노. 세례 받을 때 신부님들한테 양해를 얻었어요. 법명이 진각이라고. 그랬더니 좋은 거 다 하면 좋지 않으냐고.(웃음) 전 기본적으로 그렇게 생각해요. 예수님도 그 불가에서 말하는 무상정등각자, 깨달은 사람 중의 한 분이라고.
총: 기본 태도는 무신론자의 것인데요.
김: 종교에 진지하지 않죠. 천당이 있네 하는 건 인간을 훈육하기 위해 만든 이론이라 생각 하니까.
총: 그럼 요약하자면, 누구한테 잘 보이기 위해서 혹은 출세하기 위해서 내가 생겨먹은 것과 다른 뭔가와 타협해야 하는 것은 싫다..
김: 고향동네 말로 표현하면, 제가 그런 표현을 자주 쓰는데, 생긴 상판대로 찌그러지는 게 인생이다. 타고난 대로 살아야지.
총: 저도 백번 동감 하는데. 그게 쉽지는 않잖아요. 용감해야 하잖아요.
김: 용기라고 표현해야 할지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안 살면 병나던지 문제가 되요.
총: 그렇죠. 저도 그래요. 누구한테 보여주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김: 예를 들자면 남의 돈 먹는 것도 작은 돈 먹는 것은 창피하고 큰 돈 먹으면 토 하는 거거든요. 그게 세상 순리예요. 우리가 배웠든 안 배웠든 부끄러운 짓인지 아닌지는 알잖아요. 그런데 아예 큰 돈 먹는 애들은 그 머리구조를 잘 모르겠어요. 어째서 그런 사고방식을 가지게 된 건지. 그것도 가정교육의 문제라고 봐요, 나는.
총: 그러니까 돈 받는 게 정의롭지 않다는 게 아니라 남사스러운 거군요.
김: 불편하잖아요. 그게. 사람이 맘 편하게 살아야지.
총: 아하하하.
김: 속 편하게 살아야죠.
10분 대화만으로, 삼성이 그를 왜 끝내 요리할 수 없었는지 단박에 알겠다.
총: 그런데 결혼은 왜 이렇게 일찍 하셨어요?
김: 팔자죠 뭐. 결혼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됐죠.
총: 대학교 때 결혼하셨다고.
김: 졸업 시험보고, 졸업식 전에.
총: 그럼 첫 연애가 바로.
김: 그런 셈이죠.
총: 아니 어쩌자고 그러셨어요?(폭소)
김: 아무 대책도 없이. 바로 그런 게 제 문제죠. (웃음)
총: 아니 연애도 이렇게 저렇게 많이 하고나서 하셔야지.
김: 아니 근데 그 쪽도 딸 하나고 그래가지고 저것들 공부나 하게 빨리 결혼시키자 그래가지고 이 양반들이 소주 한잔 하더니 그러다라구.(웃음) 그래서 약혼했는데, 대학축제 때 부모들이 그러더라구요. 약혼한 사람들이 축제기간에 참석하고 그런 거 아니래요. 그래서 뭐 둘이 설악산 여행 갔죠. 그랬더니 뭐 큰 애가 생긴 거죠.(폭소) 인간의 생명은 잉태된 순간부터 그건 인간이야. 무조건 낳아야 돼. 그래서 그렇게 되었죠.
총: 그러니까 연애 한 번에 바로 결혼 해 버리신 거 아녜요.
김: 그런 셈이죠. 그 연애도 뭐 후배들이 미팅하는데 자리 남았다고 와서 채워주라 해서 간 건데. 팔자가 그렇게 된 거죠.
총: 연애 도사 얼굴은 아닌데.(웃음)
김: 얼굴이 따로 있나요. 카사노바나 돈 후안이 그렇게 잘 생기지 않았답디다. (웃음)
총: 연애 한 번에 바로 결혼하신 건 후회하지 않으셨어요?
김: 그런 건 없어요. 다만 잘 꾸려나가지 못한 게 좀 안타깝지요.
총: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생각나는데 양심선언, 뭐 본인 표현대로 하자면 내가 견딜 수가 없어서 결국 토해낸 건데, 그런데 그때 사모님은..
김: 온 집안, 제 새끼들까지 다 반대한 사람은 없었어요.
총: 그건 어떻게..
김: 우리 자식들도 그게 아빠다운 모습이라 보기 좋다고.
총: 자식들이야 그냥 아버지가 정의로운 걸로 충분하다지만 사모님은 생활이 있는데.
김: 이런 여파가 크게 올 거라든지 그런 거는 예측을 못했겠죠. 다만 굉장히 불합리한 압박이랄지 그런 과정들은 다 아니까. 남편이 그거에 대한 억울함을 표출하는 정도로 생각했겠죠. 세상이 이렇게까지 시끄러워 질 거라고는 예측을 못 한 거죠.
총: 아이들과 사모님이야 그랬을 수 있지만, 본인은 이게 장난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셨죠?
김: 했죠. 당연히 했죠.
총: 그 말씀은 사모님한테는 안 하셨고요?
김: 이렇게 저렇게 고달파질 거라는 건 다 설명할 필요가 없었죠.
총: 일이 이렇게 커지기 시작하니까 당황 안 하시던가요?
김: 어우. 집에도 못가고 다들 불안해하고 불편해했죠.
총: 후회 안하시던가요?
김: 그런 때도 있었죠. 저도 그런데요 뭐. 아, 이게 뭔 짓이냐. 답답하잖아요. 심지어는.. 이건 전혀 예측을 못 한 건데, 옛날에 그렇게 절친했던 사람한테 제가 전화를 하면, 다들 왜 전화했느냐고 의아해 할 때... 저를 몰랐던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거죠.
총: 왜 그런답니까.
김: 뭐 물어볼 순 없지만 본인들이 불편한 거겠죠.
총: 김용철과 친하면 불이익을 당할까봐.
김: 그렇죠. 최근에 제가 어디 지방 로스쿨을 갔는데 거기 학생이 그런 질문을 합디다. 내 강의를 듣는 게 자신들한테 불리하지 않겠느냐고.
총: 으하하하. 학생이 그 정도니,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야.
김: 그래서 내가 로스쿨에온 너희들은 입신양명 출세하고 잘 먹고 잘 살려고 맘먹었으니까 기왕이면 잘 먹고 잘 살아라 하고 말해줬어요.
총: 그런데 본인에게 역공이 들어오기 시작했잖아요. 퇴폐 노래방이니 하면서. 그럴 때 어땠어요.
김: 애들이 울었답디다. 지들은 아빠 엄마를 알잖아요. 어떤 사람들인지.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걸 가지고. 좃선에서 났죠. 발음을 잘해야 돼.(폭소) 걔네는 용공신문 아녜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기관지?
총: 으하하하 그 새끼들은 신문이 아니죠. 창작 집단이지.
김: 아니 난 그 신문은 제발 백지로 좀 줬으면 좋겠어. 용도가 없어 용도가.
총: 으하하하하..
김: 아니 고구마 포장할 때 이럴 때 좋거든요. 면수가 많으니까. 군밤포장이나 요런 거 용도에 딱 좋기 때문에 백지로 나눠주라. 메모지도 하고 그러게. 아니면 시골에선 아직도 이렇게 휴지로 쓰니까. 뒤 닦을 때도 좋고. (대폭소)
총: 으하하하하... 그런데 말이죠. 갑자기 유명해진 사람들은 말이죠.
김: 저, 원래 유명했어요.(웃음)
총: 일반 대중한테 유명하진 않았잖아요.(웃음)
김: 그렇죠.
총: 갑자기 사람들의 평가에 민감해져서 인터넷 댓글들을 살피기 시작하거든요.
김: 절 욕하는 걸 보니까 기분이 안 좋데요. 그냥 말로 하면 사라지지만 글로 쓰면 남는 건데.. 하지만 말이 안 되는 것도 한 번도 반박을 안 했는데.
총: 사건 당사자가 댓글 직접 반박하면 정말 일이 커지죠.
김: 반박하면 또 이상하잖아요. 그런데 저를 욕해도 내가 지목한 상대의 범죄와 문제도 같은 정도로 욕 해준다면 모르겠어요. 아니면 본인은 그쪽 사람이라고 명확하게 밝히던지. 왜 다짜고짜 저만 욕을 하는 지 모르겠더라구요.
총: 근데 그렇게 갑자기 노출돼서 그런 일을 한꺼번에 겪다보면 조울증 같은 것도 생길 수 있거든요.
김: 제가 그런 거에 대해선 둔해요.
총: 이게 긍정적인 측면으로는 사람이 들뜨게 만들죠. 업된 상태로. 에너지가 넘치게. 그리고 좀 겸연쩍기도 하고. 그리고 대중의 눈을 의식하게 되고. 신경 쓰이고.
김: 누구나 겪는 과정이겠죠. 저는 저기 여주 어디 해장국 집에서 새벽에 밥 먹는 데 옆에 있던 어떤 아저씨가 트럭기사인데, 갑자기 밥 먹다 나가더니 어디서 공책을 가져와. 밥 먹고 있는데 와서 싸인해달래...
총: 그렇죠. 그런 일들.
김: 기분 나쁜 일은 아닌데.. 길거리 가다가 앞에서 어떤 사람이 갑자기 문방구 가서 종이 사와서 싸인해달라고 그런 거... 그런데 제가 이전에 제 이름을 종이에 쓴 게.. 구속지휘 영장청구서. 요런 데나 썼지.(폭소) 아니면 카드전표에나 하던가.
총: 그러니까 제가 궁금한 건 이제 그런 상황을 즐길 수준은 되셨나 하는 건데?
김: 즐겁잖아요. 행복하잖아요.
혼자 버려두는 것 같아 괜히 미안해 물었다. 다행이다.
총: 타고난 대로 살게 되었고, 그래서 행복하지만 그리고 싸인 해주는 것도 즐겁지만, 그 외에 말도 안 되는 비난, 중상, 모략 이런 것들은 짜증나잖아요?
김: 근데 그런 게 제게는 아주 사소한 문제들입니다. 저는 컴퓨터로 말하면 딜리트 기능이 굉장히 작동이 잘 되요. 요건 삭제. 딱 삭제 되요. 아주 편하지요. (웃음)
총: 하하. 편하시겠다.
김: 아주 속편해요~
총: 하지만 가족들은. 사모님은.
김: 제가 이혼한 거 알고 물어보시나 모르고 물어보시나. 전 두 번 이혼했잖아요. 동일한 여인과.
총: 한 번 이혼한 건 제가 알고 있었는데...
김: 이혼을 했다가 내가 못 살겠다, 이렇게 꼭 굳이 해야 되겠느냐고 해서 다시 혼인신고 했다가, 다시 또 도저히 근본적인 문제가, 제가 가정적이지 않은 게 클 거예요, 해서 다시.
총: 다시 이혼하셨구나
김: 예. 호적상.
총: 저도 돌싱인데...
김: 잘하셨네요.(웃음)
총: 언제 하셨습니까. 그 두 번째 이혼은.
김: 기억이 잘 안나요. 아마 2,3년 되었을 거 같은데.
총: 그럼 이 일 본격화 되고서.
김: 그 직전인가 직후였을 거예요.
총: 그럼 지금 혼자 사십니까.
김: 뭐 그렇죠. 아 강아지 여덟 마리 새도 세 마리 있고 한때는 토끼도 스무 마리 닭도 스무 마리 뭐 온갖 생명체를...
총: 아니 무슨 개를 스무 마리나 기르세요?
김: 개는 여덟 마리. 원래는 다섯 마리였는데 새끼 낳았죠. 제가 불임시술을 안 하려고 했는데, 아니 새끼를 너무 많이 나.(웃음)
총: 외로워서?
김: 내가 외로워서 갖다 놨는데. 또 지들이 외로울까봐 더 갖다 논거죠.
총: 아니 외로우면 연애를 하셔야지
김: 굉장히 어려운 일이죠. 굉장히 힘든 일이에요. (웃음)
총: 아니 그럼 다 헛 산거야. 헛 산거. 연애도 못하고.(웃음)
김: 그건 체력과 정력이 많이 필요하잖아요.(웃음)
총: 아니 체력과 정력을 것다 쓰라고 있는 건데.(웃음)
김: 아~ 해야죠.
총: 연애 하신 게 얼마나 되셨어요?
김: 어릴 때 했잖아요.
총: 그건 30년 전 아닙니까.(웃음)
김: 저 만나자는 아줌마들도 있어요. 밤에 만나자고.(폭소)
총: 연애를 하셔야 되는데.(웃음) 지금 하시는 건 아니시고?
김: 예. 못하고 있어요.
인터뷰 시작이 늦어지는 바람에 시간이 빠듯해 자연인 김용철은 다음 만남에서 이어가기로 하고, 이 대목에서 검찰 출신 김용철과 삼성 출신 김용철에 관해 묻기 시작했다. (바로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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