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가 바라보인 갯가로
십이월 넷째 월요일이다. 작년 이맘때는 교직 말년을 거제에서 보내면서 교단생활을 마무리 짓는 즈음이었다. 해가 짧아진 동지 전후였지만 마지막까지 이른 새벽과 일과 후 어둠이 깔려도 갯가를 누볐다. 그러자 연말을 맞아 방학에 들어 설 쇠고 개학해 며칠 출근하고 봄방학이었다. 동료들에게 교단을 내려서는 인사는 그때 나누었어도 원룸의 짐은 겨울방학에 들면서 철수해 왔다.
지난 이월 말 정년을 맞았지만 일 년 전 거제섬에서 뭍으로 건너온 셈이었다. 정년을 삼 년 앞둔 임지가 거제로 정해졌을 때 난감했으나 주변 지기들의 염려와 성원 덕분에 잘 지내다 왔다. 근무지가 가까운 연사리에 와실을 정해 아침저녁 끼니를 끓여 먹고 점심은 학생들과 같은 급식으로 해결했다. 금요일 퇴근길에 거가대교를 건너오면 일요일 점심나절에 다시 건너가길 반복했다.
주말이나 주중 공휴일 창원으로 돌아오질 않고 거제에 머문 날도 더러 있었다. 거제는 알려진 산과 풍광 좋은 해안이 많은데 웬만한 곳은 다 둘렀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불편함에도 남부면 망산에 올라 남녘의 쪽빛 바다에 점점이 뜬 바위섬들도 바라봤다. 코로나로 보름 미루어 실시된 작년 수능일에 저구항에서 출항하는 배로 다녀온 소매물도 답사는 내겐 교직 졸업 소풍이었다.
어느 날 가을 새벽은 매일 거닐던 연사 들판과 연초천 산책로를 걷지 않은 적도 있었다. 고현에서 출발한 첫차 시내버스로 구조라에서 해안을 더 돌아간 망치까지 갔다가 해돋이를 보고 학교로 출근하기도 했다. 정기고사가 시행 중이던 오후에는 가조도로 들어가 견내량으로 붉게 물든 아름다운 저녁놀을 완상하거나 옥포에서 울음재를 넘어간 문동폭포의 쏟아지는 물줄기를 바라봤다.
포구 연안이 복잡한 거제섬의 해안선은 제주도보다 그 길이가 길다고 알려졌다. 내가 머문 연초는 내륙이라도 하청과 장목이 가까웠는데 거기는 진해만과 마주했다. 거가대교가 놓이기 전에는 하청 실전항으로 진해 속천항에서 오가는 뱃길도 있었더랬다. 하청에 딸린 칠천도와 황덕도로 가면 마산합포구 구산 갯가가 빤히 바라보였다. 구산면 원전 갯가로 나가면 눈앞은 거제섬이다.
추위가 닥쳐 물러가지 않은 계묘년 세밑 월요일이다. 문득 내가 떠나온 거제도 생각이 나 마산합포구 구산 갯가로 가보려고 마산역 광장 농어촌버스 출발지로 향했다. 번개시장 들머리에서 김밥을 한 줄 마련해 62번 녹색버스를 탔다. 농어촌버스는 어시장과 댓거리를 둘러 현동 교차로에서 신도시 아파트단지를 지나 구산면 소재지 수정을 거쳐 안녕마을에서 해안선을 따라 돌았다.
합포만 바깥은 홍합을 양식하는 부표가 점점이 줄을 지어 떠 있었다. 바다 건너편은 군항기지 시설물과 진해 시가지였다. 연안을 돌아간 버스가 옥계 포구에서 차를 되돌릴 때 현지인인 할머니 한 분과 같이 내렸다. 나는 조업을 나가지 않은 어선들이 정박한 포구를 따라 봉화산이 흘러내린 산기슭 임도를 따라 걸었다. 임도가 끝난 지점에서 오솔길을 따라 연안의 갯바위로 내려섰다.
난포에서 이어져 온 연안 갯바위였다. 푸른 물결이 넘실거리는 바다 건너는 거제 장목과 하청이었다. 가덕도에서 침매구간을 거쳐온 거가대교 연륙교가 아스라했다. 아침저녁 틈이 날 때 여러 차례 그곳까지 찾아 진해와 마산을 바라보며 발자국을 남겼던 연안이었다. 주말이면 카풀로 다녔던 같은 아파트단지에 사는 이웃 학교 지기는 올해까지 근무해야 정년이라 아직 근무 중이다.
갯바위에 앉아 진해만 건너 거제를 바라보며 한동안 사념에 잠겼다가 가져간 김밥을 비우고 일어섰다. 군항에서는 작전을 수행하려는 군함 한 척이 위용을 드러내며 먼 바다로 나갔다. 나는 연안을 따라 난포로 향해 걸었다. 일제 강점기 지적부에 남루할 람(襤)자로 등재된 남포 지명을 해방 후 지역 인사들이 알 란(卵)자로 바꾸어 난포가 되었다. 거북이 알을 품는 형상의 포구였다. 22.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