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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제의 학계에선... 유일한 백제가사이자... 중국 일본에도 유사 가사가 있단 정읍사(井邑詞)를...
장사 나간 남편을 염려하는 정읍사란 여인의 가사다"라 하지만...
밑의 선생님께서 분석하시기론... 틀림없이 중국 동정호의 장사(長沙)지역으로 파견나간 백제 군사를 염려한 글이라는데...
이런 해석도 제가 보기엔 좀 그렇고...
말 그대로 정읍사는...정읍(井邑)이란 고을의 가사를 이른 것이고...
여기에 나오는 장사(長沙)또한 그 지역인 동정호 주변을 이릅니다.
재미있는게... 백련교와 아주 관계가 많은 상제교...그 후신인 보천교...근자의 증산도의 주 본산이란
전나도 정읍지역의 지명인...태인,김제,정읍... 이게 동정호의 장사(長沙)란 지명과 늘 함께 나온다는 겁니다...?
고로... 증산 강일순 도사를 도조로 하는 보천교가 활동한 전라도 김제,정읍은...중원 호남성 동정호 일대란 얘기가 됩니다.
요즘 아주 재미있습니다...정읍(井邑)...연구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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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사의 남편, 장사꾼이 아니라 장사(長沙)에 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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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가요 정읍사는 안록산 토벌군 병사가 돌아와서 부른 유행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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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사노래는 장터에 간 남편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원하는 아낙의 애절한 노래가 아니라 당나라 안록산 토벌군병사가 돌아와서 부른 유행가로 보인다. 그랬을 때 정읍사 노래에 등장하는 남편은 장사꾼이 아니라 당나라 장사(長沙)땅에 간 것을 의미한다. 중국 땅 장사(長沙), 신라시대 고창군 무장면 옛 군청소재지 이름
그 중국 "장사땅"의 이름이 신라시대 우리나라 고창군 무장면의 옛군청 소재지 이름으로 되었고 선운산가 노래에서 장사에서 사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신라 충신 박제상 부인이 울었던 치술령 고개 이름이 장사(長沙) 라고 하며 동국여지승람의 정읍사노래 명칭은 여기와 똑같이 망부석이라고 부른다. 망부석(望夫石)과 장사(長沙), 정읍사 노래를 이해하는 키워드 망부석(望夫石)과 장사(長沙), 두 곳의 말이 일치하는 점은 우연이 아니고 모방과 유행의 연결로 보인다. 그리고 방장산가는 장일현 여자가 불렀었다고 한다. 한데 동국여지승람 등 어느 기록에도 장일현은 장성군에는 없는 지명이다. 장사(長沙)의 모래사자를 넉사자로 표현한 것이 이두문 표기하듯 가로왈자, 또는 날일자로 장사현은 장일현으로 표기된 것 같다. 노래의 줄거리와 형식이 같은 치술령가, 선운산가, 방장산가, 정읍사에는 "장사"라는 단어가 붙어있다. 영광군의 법성포 항구는 천혜의 방파제가 산으로 막아준 태초의 항구로서 중국 사람이 많이 거주하고 왕래하는데 장보고의 부대이름 역시 무령군으로 고창 무장과 영광 법성포의 옛군명이 또한 무령이다. 고구려에서 항복한 노예군사의 후손 왕모중을 주축으로 백제와 가야, 고구려의 패잔병은 당나라 현종(이융기)을 황제로 만들어준다. 안록산란으로 당나라 혼란기에서 활약했던 고구려-백제-가야 세력들 그러나 현종이 고구려 비대한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터키계 장군 안록산으로 바꾸고 다시 양귀비와 양국충의 세력으로 바꾸려는 계획을 세우자 이를 알고 안록산의 반란이 일어났다. 안록산의 반군 세력은 당나라를 덮었다. 그래서 자연히 안록산 세력으로 흩어진 가야 백제세력 허이기가 달려갔고 요서지방에 있던 고구려장군 이정기의 손자 이사도가 지원군으로 산동반도로 들어와 승전하고 수도 낙양성을 점령해 버린다. 신라백성이 대거 입당하고 안록산 토별 주역인 태인허씨- 장보고 -이사도가 수도 낙양성을 점거하는 시기가 일치한다.
중국 장사(長沙)땅과 신태인 인접 김제 부량의 유사한 설화와 민속놀이 장사는 우연한 지역 이름이 아니다. 장사(長沙) 동정호 (洞庭湖) 에는 악양공원(岳陽公園 ), 삼취정(三醉亭), 악양루(岳陽樓), 려동빈 상(呂洞賓 像)등이 있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바로 장사지방의 민속유물 자씨탑 전설과 신태인 인접지역 김제시 부량면 벽골제의 쌍용놀이 민속놀이가 비슷한 점이다. 아마도 장사지방에서 살았던 장보고의 부하들이 모두 김제 부량지역에 강제로 이주해서 살았기에 같은 풍속을 보이는 듯하다.(주1) 망부석이 된 박제상 부인을 노래한 치술령가에도 장사 지명 등장 경북 울주군의 박제상 부인을 노래한 치술령가, 장사(長沙)땅 노래가 있다. 박제상은 신라 눌지왕 때의 충신으로 유명하며 신라 파사왕의 6세손이다. 일본에서 고문을 당하며 일본 신하가 될 것을 강요당하였으나 "계림의 개, 돼지가 될 지언정 왜국의 신하가 되지는 않겠다"며 거절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렇게 외친 박제상은 박다진 목도(木島 : 기시마섬)에서 화형을 당해 죽었다. 지금도 갈대 위가 붉은 것은 박제상 피의 흔적이라고 한다. 박제상이 부인 김씨에게는 알리지 않고 일본으로 떠난 뒤 그 사실을 박제상의 부인이 알고 쫓아갔으나 만나지 못하자 울주군 망덕사(望德寺) 남쪽 모래 위에서 몸부림치며 통곡하였는데, 후세 사람들은 그 모래를 장사라 하였으며, 친척 두 사람이 부인을 부축하여 돌아오려 하자 부인은 다리를 뻗은 채 앉아서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곳을 벌지지(伐知旨 : 뻗치다의 고유음)라 하였다. 박제상이 돌아오지 않자 부인은 남편을 사모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두 딸과 치술령(述嶺: 수릿재)에 올라가 남편을 부르며 통곡을 하다가 죽어서 망부석(望夫石)이 되었다. 이 망부석은 현재도 유명한 망부석이며 사람들이 부인 김씨를 치술신모(수릿재 신모)라고 하여 사당을 지어 제사를 지냈다. 박제상의 두 딸 박아기, 박아경 또한 아버지를 부르며 통곡을 하다 죽으니 세 모녀를 "호국삼신여"라 칭하고 치술 신모사를 지어 제사를 지내게 하고 국대부인에 봉했다. 중국에서 활약했던 정읍 호족들로 인해 신라-당나라-백제가요 혼합 태인허씨 허이기와 장보고, 전주도독 김원웅은 모두 정읍지역 호족으로 그들의 활약기인 후백제 건국 50년에 신라와 당나라, 백제의 노래 가사가 혼합된 가요변천이 보인다. 이런 변천의 과정에서 공통된 중국 "장사(長沙)땅"의 이름이 "장사꾼"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선운산가 노래에 나오는 장사(長沙)로 징용(부역) 나간 것을, 즉 장사(長沙)사람을 장사꾼으로 잘못 해석한 가사변천으로 보인다. 어쩌면 고려시대 충효정책화 과정에서 백제가요 곡에 가사를 번안하여 제정한 것으로 본다. 이렇게 망부석과 장사(長沙)의 단어로 보아서 정읍사 노래는 통일신라시대의 치술령가와 선운산가를 혼동하여 부르는 노래로 만들어진 듯하다.
호남성 장사현 자씨탑 (장사공항직통로로 현재 인천에서 대한항공, 아시아나, 동방항공이 매일 출발하고 있으며 해남항공(HU)은 대구에서 주 2회, 청주에서 주 2회, 06년 7월부터는 한국광주에서 주 2회(계획) 운행 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한국에서의 비행시간은 약 3시간(2시간 30분~3시간)소요 되고있다. 비행기를 타고 장사에 오면 황화(黃花)국제공황에 도착한다. 말이 국제공황이지 국제선은 이전까지는 유일하게 홍콩노선밖에 없다가 두 번째로 생긴 곳이 한국이다. 공황은 장사(長沙)시에서 동쪽으로 약 30km밖에 위치해 있다. 장사에 도착하면 노선버스도 있고 리무진도 있고 택시도 있는데 장사역까지 일반적으로 택시는 200元정도 달라고 하고 리무진은 15元, 노선버스는 3元정도 한다. 소요 시간은 승용차는 30분 정도 버스는 1시간정도 걸린다.) 중국 호남성 장사현의 자씨탑(慈氏塔)...악양루(岳陽樓) 공원에서 남쪽으로 약 1km정도 가면 집들 사이로 우뚝 솟은 고풍스런 하나의 탑이 보인다. 당 현종이 양귀비를 끼고 놀 때 만들어진 탑이라는데.... 그러면 역사가 한 1300년은 넘지 않았을까? 그런데 이런 유물이 빨래줄 가지랑대 역할이나 하고 있으니...... 자씨탑(慈氏塔)의 건립에는 민간에 전해지는 전설이 있는데 옛날에 동정호(洞庭湖) 안에 요괴가 살고 있었다. 그 요괴는 자주 요술을 부려 밖으로 나와서 사람이나 가축들을 해하고 어떤 때는 거대한 파도를 일으켜 어선들을 침몰시키고 전답과 가옥들이 물에 잠기어 일반 백성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모두들 십시일반 돈을 모아 한기의 탑을 쌓아 요괴를 제압하기로 하였다. 탑을 쌓는 부근에 한 가족이 살아가고 있었는데 전 가족들이 요괴가 일으킨 풍랑으로 집이 잠기는 바람에 모두 사망하고 과부 한명만 살아남았는데 그의 성씨가 慈氏라고 하였다. 그녀는 탑을 쌓으면 요괴를 물리칠 수 있다는 마을 사람들의 말을 듣고 매우 기뻐하여 오랫 동안 모아둔 돈을 모두 내놓고 또한 밤낮으로 쉬지 않고 탑을 쌓는 사람들에게 차와 음식을 제공하느라 매우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녀는 탑이 완공되기 전에 세상을 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를 기리기 위하여 탑의 이름을 “慈氏塔”이라고 짓고 탑의 옆에 “자씨사(慈氏寺)”을 세웠다. 탑은 모두 작은 벽돌로 쌓았으며 누각식(樓閣式) 8각 7층으로 되어 있고 총 높이가 39m에 이르고 탑의 하부 기단은 돌을 깎아서 5층으로 쌓았다. 2층부터 매 층 4면에는 전부 작은 불감(佛龕)이 있는데 총 28개 이고 원래는 불감(佛龕)안에 작은 불상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전부 유실 되였다. 철로 만들어진 탑살(塔刹)은 6개로 된 쇠사슬이 바로 탑의 처마를 관통하는데 사용되고 있다. 매 층의 처마 끝에는 작은 종이 매달려 있어 미풍이 불어오면 종소리가 은은히 울려 퍼진다. 애석하게도 탑의 내부가 물에 차있어 탑에 올라가 동정호(洞庭湖)의 경치를 조망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단지 호남에서 유명한 古塔중의 하나로 탑에 얽힌 고사만이 전해지고 일부 아는 사람만 찾아오고 있는 실정이다. 청대(淸代)에 자씨탑(慈氏塔)에 대하여 “湖心臥塔形, 蛟走千百”라는 시구가 전해질 뿐이다. 위의 중국 장사현의 자씨탑에 전해지는 역사와 괴물과 용의 해침이 같고 신앙이 유사하다. 정읍지방의 고부면, 북면, 옹동면에서 연못은 가운데 섬이 있는데 그 섬은 지각(池閣) 자라섬으로 부른다 김제 부량면 용성리의 쌍용놀이 신라 원성왕 때 무너지기 직전이던 벽골제를 보수하기 위하여 원덕랑이라는 기술자를 파견하고 태수에게 명령을 내려 주민들을 동원케 하였다. 그런데 벽골제 주위에는 청룡과 백룡이 살았는데 백룡은 백성들이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도록 천재풍우변란(天災風雨變亂)을 막아주고 벽골제도 수호해 주었는데 반해 청룡은 심술이 궂어서 백성들을 괴롭힐 뿐만 아니라 인명을 살상하는 등 백성들에게 갖은 피해를 주었다. 이 청룡은 벽골제 보수공사가 완성 단계에 이르렀을 때 갖은 심술을 부리기 시작하여, 공사를 하지 못하도록 폭우를 내리고 천둥과 번개를 쳤으며, 제방을 헐려고 하였다. 이때 백룡이 나타나 제방을 무너뜨리지 말라고 충고하지만 청룡은 막무가내였다. 드디어 두 용은 처절한 싸움을 시작하였으나 백룡은 사나운 청룡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 참패한 백룡이 피를 흘리며 물러나자 청룡은 꺼릴 것없이 제방을 헐었다. 청룡이 행패를 부리자 달아났던 백성들은 청룡의 노여움을 풀어 주려면 처녀를 바쳐야 한다고 하여 멀리 서라벌에서 약혼자 원덕랑을 찾아온 월내라는 처녀를 바치기로 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김제태수의 딸 단야는 자신이 그녀 대신 제물이 되기로 결심하고 제방을 마구 무너뜨리는 청룡에게 다가가 "수많은 백성들이 피땀 흘려 쌓은 제방이니 제발 헐지 말고 수호하여 풍년이 계속되게 해달라"고 가야금을 연주하는 등 간절히 부탁하며 제물이 된다. 월내 대신 단야가 희생되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안 백성들은 청룡이 사는 곳에 배를 띄우고 그녀의 넋을 위로하였다. 이 같은 전설을 극화한 것이 바로 "벽골제 쌍룡놀이"인데 1975년 9월에 열린 제16회 전국 민속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으며, 민속자료 제10호로 지정되고, 해마다 열리는 "지평선 축제"때 실시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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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년 03월 16일 00:54:30 / 수정 : 2007년 04월 06일 09:59:07![]() | ||||||||||||||||||||||||||||||||||||
첫댓글 증산도와 "정읍사", "백련교" 하나도 관련없습니다. 글 자진 삭제 부탁드립니다.
정읍사에 나오는 지명들이...보천교가 활동한 김제 정읍일대의 지명과 상당부분 중복됩니다...조선이 대륙에 있었던게 맞다면 당연 그곳을 전라도 부근으로 봄이 맞을듯 해서 유추했습니다.
그리고 대순진리회와 증산도의 전신인 보천교의 교리와 그 용어들은...태평천국의 배 상제회와 거의 판박입니다...태평천국의 상제회는...역시 백련교의 교리와 상당히 일치합니다...고로 증산도가 백련교는 아니지만...그 교리의 영향은 엄청 받은 종교란 유추를 한 겁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나도 관련이 없는 것인질 자세히 설명해 주시면..읽어보고 타당하다 판단되면 글을 자삭하겠습니다.
새해 더욱 건강하십시오...박선생님.
여기 카페회원 중에도 증산도인 조금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글은 "명예훼손이 다분합니다.증산도가 무엇인지는 "증산도 도전" 책을 읽어보시기바랍니다. 선생님의 글은 여기 어떤분의 글처럼 "명사"라는 책을 읽어보지 않고 "실록"의 내용으로 명사가 왜곡되었다는 식의 글과 같습니다.
저도 대순...증산도 다 입도했던 잡니다...도전도 좀 봤는데...역사적 내용보단 교조나 그 대리인으로 모시는 분들의 일대기와 교훈이 대부분입니다...거기에 정읍,김재,전주,곡부(산동에 있는 지명)이 수 없이 나온단 것에...전라도가 중원 남부란 본 연구회의 대체적 연구성과를 접목해 추정한 겁니다.
근자에 "음양***" 의 명예훼손 사건이 있었습니다. "종교관련" 글은 조심스러워한다고 생각됨니다. 증산도란 종교가 지금도 이땅에 존재하고 있기때문입니다.
일반에선 보천교로 통칭되던 훔치교...태을교...등등이...이 증산도나 대순진리회...멀겐 원불교의 교리적 전신인 건 실제이니...누가 사이비냐 정통이냐를 떠나...그건 명예회손의 조건이 아닙니다...저도 그 방면엔 꾀 관심이 많아 입도를 한 20년 전에 했었던 사람입니다만...그 전신이 보천교란 종교의 유래...그 윗대의 상제회 관련성...이런 내용 같은건...종단에선 중점적으로 교육을 않 하는 편이라...이제서야 좀 감을 잡는 답니다.
근대의 조선역사는...상제회로 대표되는 태평천국과..동학... 그 분파인 여타 종교들의 연구가 필수라 보여집니다...대륙조선의 흥망성쇠도...홍건적의 백련교와 유사 종파들 대중 봉기가 원나라와 고려...명나라...청조를 모두 몰락시킨걸로 볼 때...종교연구를 빼고 역사연구란 한쪽 날개 떼고 날자는 격이니...무리가 많은 충고 같으십니다...거짓과 과장만 없고...분명한 욕설만 없다면...어떤 특정 종교들의 명예를 생각해...궂이 역사적 보편 진실들까지 거론을 피할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하여간 특정종교에 명예가 실추되지 않는 범위에서..최대한 객관적으로 접근해 보겠습니다.
대평천국에 개벽이 있나요? 동학과 증산도에는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개벽이 있지요...백련교에도여...후천엔 악한 영과 선한영중 선한영들이 선택을 받는 미륵의 세상이 도래하니...도 같고...남녀평등도 같고...교도들끼리 형제 자매님 하는것도...남교도를 외수...여자교도를 내수라 부르고...교단의 최고 우두머리 바로 밑의 계급을 장로라 한 건 현재의 교회와 같고..하늘님을 상제라 한 것도 같고...천주라 한 것도 같고...밤늦게 모여 새볔까지 향을 피우고 주문을 외며..조상을 섬기는 것도 같고...다 같습니다.
젤 재미있는게...동학의 최고 대표를 대통령(대인통령)이라 했는데...현재의 대한민국도 그렇단 겁니다...황제를 대인통령이라 한 건...왕을 대인으로 부르던 북방 여진인들이란 것도여...증산도엔 대두목이란 말도 있는데...그 두목이란 용어도... 상제회도 쓰던 단어로 압니다.
참 이건 예민한 예긴데..사실이니 적습니다...그 사람의 진심을 알려거든...돈을 얼마나 순수하게 의심없이 낼 수 있느냐도 중요하느니라~...란 말씀으로서...기부금(헌금)의 크기나 의심없는 기부가 그 신도의 믿음의 중요한 척도로 교리에 적시되어 있기에...상제교의 분파임을 자칭한 중원의 수많은 단체들이 이 구절만을 유독 잘 이용했고...이 대목을 후대의 대한민국에서 증산교의 계파임을 자칭한 수많은 단체들이 자주 이용했음도...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