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당신, 당신께 말하고 싶어요*
요즈음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를 읽으며
찻집에서 새롭게 태어나요
창밖을 보면 귀가 커진 토끼구름, 그 아래 은행나무들은
줄지어 어디로 가고 있나요
맥문동이 그려놓은 보라색 군락을 지나며 챙 넓은 모자를 쓴 여자가
허리가 긴 개를 끌고 걸어가고 있어요
혀를 길게 뺀 오후 3시의 그림자가 뒤뚱뒤뚱 걸어가요
게으른 창문 밖 풍경을 배경으로 우리가 마시는 건
한 모금의 슬픔, 그 장면들이 존재의 문장들이라면
그 문장들 표절하고 싶어요
찻잔을 기울일 때마다 하루가 이울고요
입술 문양을 찻잔에 새겨 놓는
달콤한 시간의 죽음,
찻잔 위에 침묵하는 구름들이 유유히 떠가고 있어요
우리가 구름을 연구하는 동안
낙타가 사막을 걷는 동안,
당신 거기 있나요?
꾸벅꾸벅 졸고 있는 양떼구름들 사이
카톡 카톡, 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오는
라떼 한 잔의 시간이에요
* 버지니아 울프가 쓴 마지막 편지의 한 구절
-『내외일보/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2024.06.27. -
어릴 때 저는 커다란 창문을 활짝 열고 바닥에 누워 책 읽는 걸 정말 좋아했습니다. 창밖으로 푹신한 구름이 흘러가고 가끔은 바람이 책장을 들춰보고 가기도 했지요. 어른이 된 지금도 항상 그런 종류의 휴식을 꿈꿉니다. 햇빛이 잘 드는 창가에 앉아 시원한 차 한 잔 마시면서 벽돌만큼 두꺼운 고전을 읽는 그런 것 말입니다. 현실은 창문을 꼭꼭 닫은 채 에어컨을 틀어 놓고 소파에 누워 유튜브나 봅니다. 스스로도 한심하다고 느끼지만, 종일 일하고 돌아와 쌓여있는 집안을 하다 보면 여유가 없습니다.
휴가를 가도 다르지 않습니다. 직장 일에서 벗어날 뿐 가족을 위한 돌봄 노동은 종일 이어지니까요. 저의 경우, 물리적으로는 버지니아 울프가 말한 ‘자기만의 방’을 가지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내면에 ‘자기만의 방’을 만들 여유는 상실한 것 같습니다. 온갖 비싸고 좋은 물건이 넘쳐나는 세상, 어느새 여유라는 단어는 가장 값비싼 사치재가 되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