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출발해야 했을 것이다. 미리 지도를 살피고 프린트해서 그분이 계신 댁으로 가는 지름길을 익혀 두려고 했다. 그런데 지도를 볼수록 알아먹기 힘들었다. 지도가 자세할수록 그분 댁에 가까운 곳을 보여주는 지도일수록 더 알아먹기 힘들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한번도 가 보지 못한 길을 상상할 수 없기에 모든 굽이가 생소하고 표지가 구체적일수록 당혹스러웠던 것 같다. 충주시 엄정면에 있는 이현주 목사를 찾아가는 길이다. 당신은 늘 ‘이아무개’라 하는데 사람들은 늘 ‘이현주’ 목사라고 또박또박 발음한다. 점심 때쯤 도착하겠습니다, 기별을 넣었으나, 오전 9시 반이나 되어 서울에서 출발할 수 있었는데, 서울을 빠져 나올 때부터 뱅뱅 돌며 헤매고 있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선 작은 자동차 사고도 있었다. 우리가 안심하고 그분을 찾아갈 수 있었던 것은 그분과 통화를 하고나서 부터였다. 편안한 음성, 그분은 마치 인간 네비게이션처럼 중간 중간 전화를 주어서 오는 길을 일러주셨다. 미리 누군가 표식을 넣어둔 교통지도보다 사람의 입을 통해 찾아가는 길이 훨씬 더 편안했다. 아니 안심(安心)되었다.
아늑하고 그래, 편안했다
이현주 목사님은 마침 충주에 나와 계셨다. 자동차에 이상이 생겨서 정비소에 차를 맡기고 사모님과 정비소 앞 육교 아래서 우리를 기다려 주셨다. 들길을 돌아 깊은 곳에 자리잡은 선생님 댁은 아늑하고 그래, 편안했다. 야트막한 산기슭에 자리잡은 작은 마을에 튀지 않고 들어앉아 있는 집은 곧 그 사람의 마음 풍경을 반영하는 것 같다. 얼핏 보면 눈빛이 날카로운 편이라고 할 수 있는 그분이 편안한 것은 그분의 마음자리가 그러해서일 것이다. 그분은 가르치려 하지 않고 강요하는 법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늘 해주신다. 받아들이는 것은 응당 듣는 이의 몫이다. 목사님은 그 집에 깃들어 사는 사람들이 편안해야 그 집이 편안하고 손님은 환대받는다는 느낌을 받기 마련이라고 말씀하신다. “반갑습니다!”라는 말이 필요 없이 제 집처럼 앉아서 쉴 수 있 편안한 집이다.
왕성하게 생명력을 뿜어내며 제각기 자라고 있는 꽃들이 가득한 마당이 눈에 보이는 곳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루와 방을 터서 만든 대청마루라 해야 하나, 거실이라해야 하나, 그런 트인 공간 뒤로는 커다란 창밖으로 대숲이 보이고 그곳엔 돌조각을 주어다 쌓은 탑도 하나 있었다. 사모님이 걷어낸 돌로 목사님이 쌓아올린 작아서 부담 없는 탑, 이 집에 중심을 가져다주는 표식처럼 보였다.
이현주 목사님
영혼의 숨결이 닿아야
제일 먼저 벽에 걸린 몇가지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를 끌어안아주고 있는 아버지. 헨리나웬이 그렇게 입에 마르도록 ‘저게 하느님이다!’라고 말한 모성적 하느님, 죄를 묻지 않고 먼저 안아주는 분을 형상화한 그림이다. 그 액자 유리판 위로 이 집 마루와 창틀이 비쳐서 공간을 더욱 따뜻하게 해주고 있었다. 렘브란트의 그림 안에 이 집이 들어앉아 있는 형국이다. 마침 준비한 선물이 없다 생각했는데, 요 며칠 전 분도출판사에 다니는 후배가 선물한 책이 가방에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렇지, 그 책을 목사님께 선물을 내어드렸다. 갓 나온 책, <렘브란트>였다. 요 며칠 간간이 읽던 책인데, 목사님은 대단히 좋아하셨다. 책에선 당대 미술비평가들이 무시했던 렘브란트의 그림을 이해할 수 있었고 환호했던 단 한 사람이 있었다 한다. 빈센트 반 고흐. 그만이 렘브란트의 그림에서 ‘거룩함의 그림자’을 읽을 수 있었다. 모든 이론을 넘어서 영혼의 숨결 자체가 통해야 우리는 그 사람의 깊은 곳에 가 닿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내가 이 집에 오게 된 것도 그런 파장의 일부이기를 희망해 본다.
그리고. 그분 앞에 앉아 있는 까닭에 이야기 도중 자꾸 벽에 눈길이 가서 닿은 곳이 ‘만물일화(萬物一華)’라고 쓰여진 액자였다. 장일순 선생의 글씨다. “하늘이 내인 것이 다 한송이 꽃”이라고 새겨야 할까? 지천으로 들판에 피어난 꽃들이 다 거룩한 그분 얼굴이라던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말씀이 응축되어 있는 말씨다. 이현주 목사님은 당신이 그분을 처음 만났을 때 이야기를 해주셨다. 목사 안수를 받은 지 3년밖에 안된 혈기방장한, 그래서 세상 모르고 찧고 까불던 시절에 그분을 만났다는 것이다. 첫 만남에서 그분은 글을 ‘이제 그만 보는 걸 멈추라’는 뜻의 글씨를 써주셨는데, ‘도인(道人) 이현주’에게 준다고 썼더란다. 그러니 당시 젊은이 나이에 이게 무슨 말인가, 외람되어 물었더니, “자네는 길을 가는 사람 아닌가?” 하셨단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길을 가는 길 위의 사람, 도인(道人)이라는 거다. 이 말씀을 듣고 확 깨이는 게 있었다고 한다.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 그림에 살림이 담겨 있다.
예수를 만난 사람, 사람들
그러고 보면, 이현주 목사님이 쓰신 책 중에 유난히 ‘길’이란 말이 자주 나온다. 아마 이 탓일까? 이분에게 초발심을 불러 일으킨 최초의 법문(法文)이 이 말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이현주 목사가 지은 책으로 <사람의 길 예수의 길> <이아무개의 장자 산책> <대학 중용 읽기>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 이야기> <길에서 주운 생각들> <이아무개 목사의 금강경 읽기> <이아무개 목사의 로마서 읽기> <이아무개의 마음공부> <예수의 죽음> <지금도 쓸쓸하냐> 등이 있는데, 대부분이 모든 ‘길에서 길을 묻는’ 도인의 생각을 담은 글이다. 그중에서도 마땅히 그에게 길을 일러준 사람 가운데 가장 도드라진 분은 예수였다.
그분이 1944년생이니 1982년에 나온 책이라면 응당 38살 정도에 쓴 책일 텐데, <사람의 길, 예수의 길>이란 책이 있다. 그 책 머리말에서 그는 예수를 만난 이야기를 쓰고 있다.
단 한 번 땅바닥에 낙서를 한 일 말고는 평생 글 한 줄 남기지 않고 가버린 예수에 대하여, 나는 또 무슨 지저분한 개칠을 이렇게 늘어놓은 것일까? 부끄러운 노릇이다.”라고 하면서 우연한 기회에 유치장에 들어갔을 때 경험을 적었다. 철창문이 덜컥 잠기고 캄캄한 미래처럼 유치장 어두운 한 구석으로 가는데, 누군가 그 구석에서 피식 웃고 있었다는 것이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군용담요 한 장이었고, 그걸 무릎에 덮고 앉아 있으니 세 번씩이나 그 웃음소리가 들려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목쉰 소리로 누군가 “이제 오니? 널 많이 기다렸는데”하는 것이었다. 그도 은근히 켕겨 “당신 누구요?” 하니, “나야 나, 나는 몰라?” 묻는다. 그리고 몸이 떨리게 기뻐하였다. 그분이었던 것이다. ‘내가 감옥에 갇혔을 때 네가 찾아와 주었고......’
그 뒤로 이현주 목사는 그분을 거기에 남겨두고 유치장을 나왔다. 그러나 이제 그분을 광화문에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거리에서 무시로 만난다. 그러나 “그분은 언제 보아도 시무룩하고 슬프고 고뇌에 찬 얼굴이다. 그분을 만날 때마다 눈물이 나려고 한다. 그러면 나는 눈물을 감추려고 하늘을 본다. 요새는 가을이다, 하늘이 너무 맑다”고 썼다. 아마도 유신정권이 날뛰던 엄혹한 시절에 민중의 아픔에 주목하며 길 가던 사람의 심정이었을 것이다. 갑자기 2000년대를 사는 이현주 목사님이 지금 만나는 그분의 얼굴은 어떠한지 묻지 못한 게 아쉽다. 생각해 보니, 그분이 쓰신 책 중에 가톨릭에서 베스트셀러가 <예수를 만난 사람들>도 있었다. 그분도 그 중의 하나일 터.
오죽을 잘라 단소 만들 품을 보고 있다.
길을 여는 길
충주를 떠나올 때 목사님이 선물로 내민 책이 <예수에게 도를 묻다>였다. 그분은 유치장에서 처음 만났던 그분을 지금도 수시로 만나 길을 묻고 있는 것이다. 예수는 그분의 도반이었고, 또한 스승이었다. 마르코 복음을 읽으며, 여기서 예수를 무릎 앞에 불러내어 조언을 받으며 노자며 장자가 더불어 길을 논한다. 아니 길에 대해 문답한다. 이현주 목사는 오랜 스승을 부르듯이 “선생님, 선생님” 하면서 예수에게 스스럼없이 질문을 던진다. 게중에는 “정말 선생님이 하느님의 아들이십니까?”하고 도발적인 질문을 하기도 하고, “선생님에 관한 복음인데 세례자 요한이 왜 먼저 등장합니까? 혹시 그의 명성에서 덕 좀 보자는 것이었나요?”하고 다소 무례해 보이는 질문들까지도 한다. 친밀한 사이가 아니라면 도저히 던질 수 없는 질문에 스승도 다정하게 답하신다. 그렇게 그분과 묻고 답하며 길은 가는 사람, 외롭지 않을 것 같다. 그에게 성서는 ‘밥’이라 한다. “밥을 먹으면 밥은 죽고 기운(氣運)이 산다. 성서를 읽으면 말씀은 죽고 삶이 살아야 한다. 성서를 읽어서 알게 된 바 나에 관한 지식을, 내게로 오는 길에 걸림돌이 되게 하지 말고 디딤돌로 삼아라. 내 말이나 나에 관한 증언을 받들어 모시지 말고 발로 밟으라는 얘기다. 알아듣겠느냐?”하고 말한 분이 예수라는 것이다. 그분과 더불어 길 떠나는 예수, 나도 동행하고 싶다.
수세미를 다듬고 있는 아무개 목사님.
그 집에 머무는 동안 그럴듯한 이야기만 나눈 것 같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당에 있었다. 마당엔 몸에 좋은 물을 만들어준다 해서 태양빛을 쏘이고 있는 물병이 있었고, 이현주 목사님은 마당에서 잘 익은 수세미를 따서 일일이 씨를 솎아내고 깨끗이 다듬어 이 길에 동행했던 배은주 선생에게 타올로 쓰라며 내주었다. 대문을 나서면 커다란 오동나무 옆으로 콘크리트 바닥에선 고추가 빨갛게 마르고 있고, 텃밭엔 부추꽃이 한창이다. 잠시잠간 다녀가는 사람 눈에는 뵈지도 않을 생활의 현장이다. 죽어버린 오죽(烏竹)을 거두어 단소를 만들어 그 생명을 되살려 내는 손길이 기실 마음길과 다르지 않다. 행장을 다시 거두는데 사모님이 말 건네신다. “혹시 쌀 가져다 줄 데 있어요?” 얼마전 누군가 쌀을 한 포대 보내왔는데, 목사님댁엔 아직 먹을 게 남아 있으니 더 필요한 곳에 가져다주라는 따뜻한 전갈이다. 고마운 마음이다. 그 말씨와 손길이 곧 길을 여는 길이 됨을 깨닫는다.
뒤곁에 새로 내달아서 만든 서재. 방에는 대숲이 보이게 큰 창을 달았다.
목사님 혼자 쓰는 방. 작지만 가장 아늑한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다.
화장실 바깥마루에서 본 정경.
마당에서 죽은 오죽을 거두고 있다.
처마에서 한창인 수세미
뒤곁 서재 쪽 정경. 장독대가 도란도란 이야기할 듯 하다.
방과 마루를 터서 넒힌 거실 창쪽. 여기서 차도 마시고 손님도 맞는다.
거실 다탁과 성소
다시 길을 떠나며 한 장 찰칵. |
첫댓글 좋은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