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해 연세대 명예교수] "감사하는 생활"
올해로서 내 나이 92세가 되어 제법 장수의 사람이 된 것 같이 생각되었으나, 우리 학교의 선배교수 김형석교수가 102살인데 얼마 전 “백년을 살아 보니” 란 책을 써서 받아 읽어 보니 두 가지를 강조하셨다.
첫째는 감사하며 살 것, 둘째는 모범이 되는 생을 살아야한다고 강조하여 기독교를 믿는 선배교수 에게서 좋은 것을 배웠다고 생각되었다. 내가 장수를 자랑하기엔 아직 이르다는 생각을 하였다.
나는 지난 12월 11일 대학동기와 점심 약속이 있어 나갔다가 집에 다 와서 급하게 달려오는 자동차를 피하다 우리 집 옆의 길에서 넘어져 부상을 당했다. 마침 길을 지나가던 청년의 도움으로 일어나서 사력을 다해 집에까지 왔다. 그날이 토요일 오후라 병원에 못가고 집에서 집사람이 준비한 진통제로 집에서 월요일까지 요양을 하는데 어찌 아픈지 기침을 해도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이 아파 나의 실수지만 스스로 불행한 자신을 원망하였다. 월요일 12월 13일 반포의 정형외과에 가서 X-ray를 찍으니 늑골 5,6,7번이 골절되었다는 말을 들으니 가슴은 더욱 아프고 대단한 실망감으로 집에 와서 많은 행동의 제약을 받으며 지금까지 왔다.
나는 일생 살아오면서 감사하는 생활,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을 하라고 제법 여러 번 설교도 했다. 그런데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집사람이 나와 언쟁을 하였는데 이유인즉 왼쪽으로 83킬로그램의 거구가 넘어졌는데 다리와 팔의 골절이 없다는 것, 바른 손을 쓸 수 있다는 것 감사해야 된다는 것이다.
나는 비교적 건강하고 성인병도 없었는데 이번 사고는 나에게 대단한 충격과 동시 교훈도 주었다. 지나간 일이지만 몸을 움직일 때 마다 못 견디게 아픈 것은 10일 지나니 거의 없어지고 진통제도 아침 저녁 먹던 것을 아침 한 번으로 줄이게 되었다.
앞서 소개한 나와 와이프와의 에피소드는 내가 잘못이고 와이프의 말이 옳았던 것이다.
여기서 비슷한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싶다.
세계적인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한 식당에 들어갔습니다. 그때 홀 안에서 음식을 써빙하던 소년이 셰익스피어를 보면서 계속 싱글벙글 웃었습니다. “너는 무엇이 그렇게 좋아서 싱글벙글하느냐?”고 소년에게 묻자 “이 식당에서 음식 나르게 된 것이 감사해서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아니, 음식 나르는 것이 뭐가 그렇게 감사하냐 ?”라고 묻자, “음식을 나르므로 선생님 같은 귀한 분을 만날 수 있게 되었지요.
이런 날이 오기를 오래 기다렸습니다.” 라고 대답했답니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 기쁜 일이 있어도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
둘째, 기쁜 일이 있을 때만 감사하는 사람,
셋째, 역경 속에서도 여전히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세 번째가 가장 바람직한 사람이지요.
신기하게도 가만히 보면,
* 받기만 하는 사람,
* 묻는 말에만 답하는 사람,
* 묻는 말에도 답도 안 하는 사람,
* 대화를 서로 주고받으며 교감하는 사람 등이 있습니다.
카톡이나 문자를 보내는 사람은 시간이 남아 돌아서 보낼까요 ?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을 감사하는 마음을 나누고 싶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 감사할 조건이 없는 것이 아니라, 감사할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부모님의 은혜, 아내, 남편, 자녀, 친구, 벗들에 대한 고마움 등은 자칫 지나쳐 버리기 쉽지만 늘상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 들입니다.
그리고 그 감사는 절대로 마음 속에만 담아두지 말고, 반드시 겉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그렇게 표현될 때 비로소 서로간 기쁨과 행복을 함께 공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 어느 지방 신문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기사로 났습니다.
어느 회사의 전무인 40대의 남자가 혈압으로 쓰러져 그만 반신불수가 되었습니다. 병원에 입원하여 매일 실망과 좌절에 빠져 자신의 신세타령을 하면서 짜증과 불평 불만으로 옆에서 수발을 드는 부인조차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친한 친구의 문병을 받고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친구의 권면은 신세타령과 불평, 불만만 하지 말고 일생을 살아오면서 도움을 준 사람을 생각하면서 감사의 조건들을 찾아보라고 권면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감사할 조건이 조금도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자기에게 도움을 준 사람도 별로 생각이 나지 않았고 그저 짜증만 났고 부인도 자식도, 친구들도 고맙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노력을 해서 지난 날을 회상하는 가슴 속에 뭉클한 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초등학교 때 여선생님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는 초등학교 때
그렇게 공부를 잘 하지 못했는데도, 늘 담임 여선생이 칭찬을 잘 해주어서 용기를 얻어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되었고, 중. 고등학교와 대학을 우등으로 졸업하고
취직하여 회사의 중역까지 되었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뜨거워지기 시작했고,
어릴 적 그 여선생님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여기 저기 수소문해서 그 여선생님이 계신다는 양로원의 주소를 찾아 간단한 사연을 편지로 썼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저는 윌리인데 지금 반신불수가 되어있습니다.
선생님은 저의 생애에 있어서 둘도 없는 은사입니다.
그동안 한번도 감사의 글을 드리지 못하고 무심했던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 중략"
이 선생님도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나서 홀로 양로원에서 외롭게 지내고있었습니다.
어느 날 편지통에서 이 편지를 받아 읽게 되었고, 너무나 기쁘고 고마워서 답장을 썼습니다.
"사랑하는 윌리군! 내 평생 수많은 어린이를 가르쳤지만 고맙다고 감사의 편지를 써 보낸 제자는 자네밖에 없었네. 이제는 늙어서 의지할 데 없는 외로운 이 노친네를 자네는 참으로 행복하고 기쁘게 해주었네! 내가 자네의 편지를 눈물로 읽은 것을 아나? 나는 자네 글을 침대 옆에 놓고 매일 밤 한번 씩 읽는다네. 그리고 읽을 때마다 그 편지를 어루만지면서 자네에게 감사하네.
이 편지가 내게 어떤 의미를 주었는지 아는가? 내 생애 새로운 희열과 기쁨을 용솟음치게 해 주었네. 나는 자네의 편지를 내 교편생활의 유일한 보람으로 알고 내가 죽는 날까지 간직하려 하네. 자네의 건강을 간절히 기도하면서
그대의 선생 000"
이 편지를 읽는 순간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앉을 수 있었습니다. 그 뒤 그는 삶의 용기를 찾았습니다. 걷는 연습을 했습니다. 말하는 연습을 했고 재활운동에 사력을 다한 결과 건강이 점점 좋아졌고 다시 직장에 복직하게 되었습니다. 부사장이 되고, 사장이 되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구절만큼 잘 알려진 말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정작 행동으로 옮기려면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 까닭은 바로 이 구절에 "범사"라는 말이 전제되었기 때문입니다.
큰 사고를 당했거나 난치병으로 사경을 헤맸던 사람들은 한결 같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사히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오늘 나의 생명에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은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기본이
진정으로 닦여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내가 격은 실수로 생명도 잃을 수 있는 큰 사고에서 순간
감사하는 마음을 잃은 것을 깊이 뉘우치며 반성합니다.
다른 두 개의 예에서도 밝혔듯 인간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감사하는 마음과 그런 기본적인 생활 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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