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비니즘, 맹목적 우월의 이름]
19세기 초 프랑스의 연극 무대에는 한 병사가 자주 등장했다. 그는 나폴레옹을 위해 수십 번의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도, 여전히 “황제 폐하 만세!”를 외치는 인물이었다. 이름은 ‘니콜라 쇼뱅(Nicolas Chauvin)’. 그가 실제로 존재했는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1815년 워털루 패배 이후, 나폴레옹 제국의 추락과 함께 프랑스 사회에 남은 ‘제국 향수’를 풍자하기 위해 만들어진 상징적 캐릭터라는 점은 분명하다. 당시 희극과 풍자극에 자주 등장한 이 인물은, 전쟁이 끝났음에도 끝내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시대착오적 애국자’를 상징했다. 관객들은 그의 맹목적 충성심을 통해 웃었지만, 그 웃음에는 자신들 속에 남은 제국의 그림자를 향한 자조도 섞여 있었다.
이 가상의 병사 이름이 곧 ‘쇼비니즘(Chauvinism)’의 어원이 된다. ‘쇼뱅’이란 인명에서 파생된 이 단어는 처음엔 “나폴레옹에 대한 과도한 충성”을 뜻했으나, 곧 ‘비이성적 애국주의’, ‘자국의 우월함에 대한 맹신’으로 확장되었다. 프랑스 혁명 이후 제정과 공화정을 오가던 혼란의 시기, 사회는 국가의 위상을 되찾기 위한 열망과 현실 정치의 모순 사이에서 흔들렸다. 이때 ‘쇼비니즘’은 극단적 민족주의와 맹목적 충성심을 풍자하거나 경계할 때 쓰이는 말로 자리 잡았다.
19세기 말 유럽은 이런 ‘쇼비니즘’의 실체를 국제정치에서 목격하게 된다. 독일의 비스마르크 체제 아래 군국주의가 확산되고, 프랑스와 영국, 러시아 등 열강이 식민지를 놓고 경쟁하던 시기였다. 각국의 언론은 “우리 민족은 문명화의 사명을 지녔다”는 논리를 내세워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했다. 프랑스의 ‘문명화 사명(mission civilisatrice)’, 영국의 ‘백인의 짐(White Man’s Burden)’, 독일의 ‘문화사명(Kulturmission)’은 모두 같은 뿌리를 가진 표현이었다. 자국의 문화와 가치가 타 민족보다 우월하다는 ‘국가적 쇼비니즘’이 세계를 지배한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제1차 세계대전으로 폭발한다. 각국 국민들은 자신들의 전쟁을 ‘정의로운 전쟁’이라 믿으며 전선으로 향했고, 수천만 명이 그런 맹목 속에서 희생되었다.
20세기 중반, 쇼비니즘은 또 한 번의 의미적 변화를 맞는다. 1960년대 미국과 영국에서 여성해방운동이 일어나자, 여성들은 남성 중심 사회의 뿌리 깊은 차별 의식을 ‘남성 쇼비니즘(male chauvinism)’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남성은 여성보다 이성적이고 우월하다”는 믿음은 오랜 문화와 제도 속에 자리한 일종의 ‘성별 우월주의’였다. 당시 페미니스트 작가 저메인 그리어(Germaine Greer)와 글로리아 스타이넘(Gloria Steinem) 등이 이 용어를 사회 비판적 언어로 확산시켰고, “male chauvinist pig(수컷 쇼비니스트 돼지)”라는 풍자적 표현은 대중문화에서도 유행했다. 예컨대 1970년대 미국 TV 코미디와 신문 만평에서는 가부장적 남성을 ‘쇼비니스트 돼지’로 묘사하며 조롱했다. 이 시기 이후 ‘쇼비니즘’은 국가적 맹신에서 성차별적 편견까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절대적 우월을 믿는 사고방식’ 전반을 의미하게 된다.
역사는 이런 쇼비니즘의 폐해를 수없이 보여주었다. 나치 독일의 ‘게르만 인종 우월주의’는 인류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집단 학살을 낳았고, 일본 제국주의는 ‘대동아공영권’이라는 명분 아래 아시아 민족을 차별하며 침략을 정당화했다. 냉전 시대에는 미국과 소련이 각자의 이념이 유일한 진리라 믿으며 세계를 양분했다. 이념적 쇼비니즘은 핵무기 경쟁과 수많은 대리전을 불러왔고, ‘우리만 옳다’는 사고가 어떻게 인류 전체를 위협하는지를 여실히 드러냈다.
오늘날에도 쇼비니즘은 다른 형태로 존재한다. 국경을 넘어 협력을 강조하는 시대지만, 국가주의적 발언이 정치적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데 여전히 효과적이다. 스포츠 경기에서의 과열된 애국심, 이민자와 난민을 배척하는 포퓰리즘, 학벌이나 지역을 둘러싼 우월의식, 그리고 온라인 커뮤니티 속 ‘우리 편’만이 정의라는 확신—all of these are modern forms of chauvinism이다. 사회심리학자들은 이를 ‘내집단 편향(in-group bias)’이라 부르며, 인간이 본능적으로 자신이 속한 집단의 우월성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을 지적한다.
결국 쇼비니즘이란 단어는 시대마다 옷을 바꿔 입어왔지만, 그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그것은 언제나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고, 공감보다 우월감을 택하는 사고방식을 의미한다.-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