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당랑거철(螳螂拒轍)>
중국 제나라 장공(莊公) 일행이 사냥을 나가는데, 작은 사마귀
한 마리가 앞을 막고 마치 수레를 세우라는 듯이 손을 들었다.
장공은 수레를 세우고 한참 바라보다가 기특하게 생각하고
수레를 돌려서 사마귀를 피해서 지나갔다.
이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 당랑거철(螳螂拒轍)인데,
제 역량을 모르고, 강한 상대나 되지 않을 일에 덤벼드는
무모한 행동거지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온 국민이 자녀를 잘 키우려고 학원에 보내는데, 늙고 병든 초라한 전직 교사 한 사람이 길을 막고,
초등학생을 학원에 보내지 말라고 떠드는 꼴이야말로 당랑거철이 아닐 수 없다.
돈키호테의 무모한 싸움과도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다.
친구 넷이 모처럼 만에 만나 함께 점심 먹었다.
그냥 헤어지기가 아쉬워서 찻집에 들렸다.
전직 초등학교 교장인 우리는 만나면 사실 학교 이야기밖에 할 이야기가 없다.
즐겁고 아름다웠던 옛 추억을 누가 꺼내면 다들 꿈같은 시절의 옛날이야기들을 하나씩 풀어놓는다.
되돌아가고 싶은 젊은 시절의 아름답고 그리운 이야기들이다.
그 이야기가 대충 끝나면 자연스럽게 오늘날 참담한 학교 이야기로 이어진다.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교실에서 자고 있어도 깨우지 않으며,
덥다고 상의를 벌거벗어도 교사들은 나무라지도 않는다.
수업하는 여교사 뒤에 누워서 사진을 찍어도 교사는 꾸짖지도 않는다는 등
오늘 아침 신문에 보도된 내용을 걱정스럽게 이야기하며 분통을 터뜨린다. 이게 학교인가?
오늘날 학교에 안타깝게도 교육은 없다.
인성교육이며 인간교육은 말할 것도 없고 아이들은 우리 한글을 제대로 읽지도 못한다는 기사가 신문에 보도된다.
원인은 책을 읽어야 할 아이들이 책은 읽지 않고 학원에 가서 마냥 놀기 때문이며,
초등학교 어린이에게 학원 사교육은 효과가 없다. 바보들이 하는 짓이다. 등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무슨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를 합니까?”
청각이 무디어지니 우리의 목소리가 컸던 모양이었다.
뒤쪽에 앉아있던, 좀은 우락부락하게 생긴 50대의 남자가 와서 따졌다.
“많은 돈을 들여서 학원에 보내는데, 학원에 안 다니는 것보다야 낫지,
선행학습 학원에서 먼저 배우고, 학교에서 또 배우고,
그리고 복습학원에서 또 배우면 안 배우는 것보다 훨씬 낫지,
대체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를 합니까? 효과가 없다니요?”
우리나라 학부모들은 다들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유치원부터 학원에 보낸다.
그렇지 않다고 말하다가는 젊은 사람들에게 뭇매를 맞을지도 모르고,
장공(莊公)의 수레바퀴 앞의 사마귀처럼 언제 깔려서
흔적도 없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교실에 가보면 안다.’, ‘국어 교과서를 읽혀 봐라.’
‘교실에 정답이 있다’고 말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질 것이 뻔한 말다툼은 먼저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아이고, 미안합니다.”
더 설명해보아야, 알아들을 위인도 아니고, 듣고 이해하고
믿을 만한 사람도 아니었다. 우리는 목소리가 너무 컸음을 시인하고
사과하는 선에서 수습했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모두 자녀를 학원에 보냅니다.
대한민국에서 학원에 안 보내는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그 부모들이 모두 틀렸고, 바보란 말입니까?
학교에서 제대로 가르쳐주면 왜 비싼 학원비 내고 학원에 보내겠습니까?”
전직 교장인 당신들이 재직 중에 잘못 방치해서 교육이 이렇게
엉망진창이 된 것 아니냐고 따지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었고,
낭패를 모면할 수 있었다.
자리를 서둘러 끝내고 헤어져서 집으로 돌아갔다.
마치 싸움에 진 승냥이처럼 꼬리를 내리고 힘없이 걷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혼자 쓴웃음을 웃었다.
중고등학생은 모르지만,
초등학교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는 것은 효과가 없다.
그걸 우리 국민들은 왜 모를까? 알고도 저럴까?
전직 교사의 40년 경험에서 얻은 지혜를 믿어주지 않는 사회가
너무 안타까웠고 화도 났다.
‘그러나 지구는 돈다.’고 했던 갈릴레이도 이랬을까?
나는 거대한 수레바퀴 앞에 서 있는 작은 사마귀에 불과했다.
마지막 학교, 어머니교실에서 특강을 할 때도 비슷했다.
우리 학교 아이들의 기초학력이 매우 부진하다.
학원에 보내지 말고 책을 읽히라고 부탁했었다.
그때도 어머니들은 여기저기서 술렁이고 더러는 똑같은 불만을 터뜨렸었다.
벤허, 모세 등 명화를 나는 지금까지 아마 다섯 번도 더 보았을 것이다.
오늘 저녁에 어느 채널에서 또 방영한다면 나는 또 볼 것이다.
하지만,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유명 강사의 강의는 두 번 들은 적은 없다.
아무리 유명한 강사의 명강의라도 같은 내용을
세 번 듣는 바보는 세상에 없다. 재미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부모들만 모르고
아이들에게 세 번 들으라고 학원에 보낸다.
같은 강의를 세 번씩 3일만 반복해서 들으면 어른도 미쳐버릴 것이다.
어머니교실 특강에서 그렇게 이야기했더니,
“학원에 다녀서 미친 아이는 없다.”
고 즉각 항변했다. 맞는 말이다. 학원 다녀서 미친 아이는 없다.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이들은 같은 내용을 세 번 듣지 않기 때문이다. 세 번 듣다니,
엄마가 거듭 말해도 잔소리한다고 짜증 내면서 귀를 닫아버리는 아이들이다.
같은 내용을 세 번 듣는다고? 천만에, 한 번도 듣지 않는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효과가 없는 것이고, 미치지 않고 견딜 수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친구들보다 한 걸음 앞서가게 하려고 담임교사 모르게 학원에 보냈다.
하지만, 요즘은 학원에 보내는 일이 정규과정처럼 되어버렸다.
학교에는 안 보내도 학원에는 보낸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계단을 한 번에 두세 칸씩 껑충껑충 건너뛰어서 오르게 하려고
아이를 학원에 보내는 것 같다. 돈을 많이 주면 고속 엘리베이터에 태워서 단숨에 건물 옥상에 올려놓는 줄 안다.
우리는 지금 옥상에 먼저 올라가는 경주를 하는 것이 아니다.
옥상에는 가장 먼저 올라가지만,
멀미 때문에 수면제를 먹고 배를 타는 것과 같다.
잠을 깼을 때 배는 이미 종점에 도착했고,
갈매기의 먹이 사냥과 돌고래 쇼와 고기를 잡는 어부와
아름다운 한려수도는 보지 못했다. 본 것도 생각하고 느낀 것도 없다.
요즘 아이들이 이렇게 학교에 가는 갓 같다.
수업 시간에는 자고 많은 돈을 주고 학원에 다닌다. 그러니 효과가 있을 턱이 없다.
교육은 장거리 여행이다. 그 여행은 누구나 공평하다.
한 걸음씩 차근차근 걸어가야 한다.
능력에 따라서 뛰어갈 수는 있지만, 보통 아이들에게 지름길이나
급행열차는 없고, 엘리베이터는 더더욱 없다.
누구든 계단을 한 칸씩 밟고 올라가야 한다.
친구와 생각을 토론하고 우정도 나누고, 차근차근 한 계단씩 올라가야 한다.
아이는 그렇게 성장한다. 그런데도 우리 부모들은 좀 더 쉽고 빨리 가는 길을 찾는다.
공부 안 하고 1등 하려고 헤맨다. 그런 방법은 없다.
공부는 누구도 대신해 줄 수는 없다.
학문에 왕도는 없고, 지름길은 더더욱 없다.
<Daum 카페, 동악골과수원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