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밑에 다녀온 서울
임인년이 이틀 남은 계묘년 세밑 목요일이다. 한 달 전 서울로 올라가 받았던 건강검진 결과 상세 내용은 보름 전 모바일과 이메일로 도착했다. 검진 당일 위내시경에서 다시 체크할 부분이 있어 약을 한 달 복용한 후 내원하십사는 통보는 먼저 받았더랬다. 정한 그날이 되어 연말을 즈음해 연차 휴가를 내어 창원에 온 큰 녀석과 동행해 아비는 짐이 되어 서울로 동행한 입장이었다.
사실 나는 퇴직을 앞둔 작년에 공무원 신분으로 마지막이었던 건강검진을 받았더랬다. 그것은 국민 누구에게나 의료보험 공단에서 격년으로 실시하는 의례적이고 요식행위인 검진 절차였지만 퇴직 앞두고는 시대 조류가 바뀌어 상황이 달랐다. 평생 근무했던 상부 기관으로부터 복지 포인트에서 검진비가 일부 지원되어 심층 있게 받을 수 있는 규정에 따라 건강검진을 마치고 나왔다.
이렇게 퇴직 직전 건강검진을 받아 놓고 다음 주기가 오기 전 서울에서 한 번 더 검진받게 됨은 어쩜 나에게 사치인지도 모를 일이다. 홀로서기를 해 가장이 된 큰 녀석이 제 살기도 바쁠 텐데 부모를 불러올려 반강제적으로 건강검진을 시켜 비켜 갈 수가 없었다. 어미와 아비는 자식의 부름에 따라 시키면 시키는 대로 검진받았고, 검진 이후 따르는 후속 절차도 거스를 수가 없었다.
나이가 들면 혈압과 당뇨가 염려되게 마련인데 나는 혈압은 지극히 정상이고 당뇨는 가족력이 있어 신경을 쓰고 있다. 평소 남들보다 많이 걸음에도 즐기는 음주로 인해 낮추어 놓은 혈당은 다시 오르기 마련이었다. 내가 당뇨로 코가 꿰인 동네 내과 주치의는 혈당수치가 낮아질 때면 의사가 환자를 낫게 한 보람도 있을 테지만, 한편으로는 고객이 떨어져 수익에 지장을 줄 듯했다.
평소 서울로 오르내린 열차로 가던 익숙했던 선로와 달리 고속도로를 따라가는 걸음이었다. 출두하는 병원의 진료 예약이 오후라 시간은 그리 바쁘지 않았다. 아침 식후 큰 녀석네 일가와 함께 동승해 생활권을 벗어나 중부내륙고속도로를 달려 김천 어디쯤에선가 경부고속도로로 건너와 추풍령을 넘었다. 거기서부터 주변 산야는 내렸던 눈이 녹지 않아 남녘에서 드문 설경이었다.
천안부터는 수도권이 뻗쳐옴을 실감하는 고층 아파트와 대학 캠퍼스들이 보였다. 화성 동탄 신도시를 지난 성남 판교에서 강남은 그리 멀지 않았더랬다. 지난번 검진받았던 병원 근처에 이르러 아들네와 점심을 같이 먹었다. 평양 대동강의 하중도로 알려진 ‘능라도’ 냉면집이 강남 한복판에도 있었는데 불고기를 곁들여 아들네는 냉면을 먹고 나는 콩나물국밥으로 점심상을 받았다.
점심을 먹고 지난번 들렸던 검진 전문 병원을 찾았는데 방문 예약 시간보다 일찍 닿아도 절차를 밟아 잠시 대기했더니 가정의학 전문의를 면담하게 되었다. 의사의 검진 소견은 위벽이 헌 상태가 심해 치료가 필요하고 헬리코박터 제균 치료제를 복용하고 한 달 경과 후 다시 내시경 검사를 받으십사는 내용과 가슴 X레이 상 미심쩍은 부분이 한 군데 있으니 CT를 찍어보길 권했다.
지방에서 올라갔는지라 추후 생활권 병원에서 진료받을 수 있는 의뢰서와 향후 복용할 처방전을 함께 받아 전문의 면담은 마쳤다. 병원을 나서기 전 검진 상세 내용은 CD로 받고 아까 처방전에 따라 약국에서 약을 탔다. 아비의 병원 걸음에 아들네 일가가 동행해 든든하고 고맙기 그지없었으나 아비 체면은 구겨진 꼴이었다. 이제 세월 따라 부양자와 피부양자가 역전이 된 셈이었다.
귀로는 열차표가 예매되지 않아 고속버스터미널로 갔다. 멀지 않은 곳으로 옮겨가 아들네와 손을 들어 헤어지면서 아비는 뒷모습을 보이고 창원행 버스표를 끊었다. 강남터미널에서 오랜만에 타 본 버스였다. 잠시 잠들었더니 성남을 빠져나가 눈이 쌓인 산천과 날이 저문 어둠 속을 달려 창원으로 돌아왔다. 아비가 자식에 짐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답이 있기는 한데 … 22.12.29
첫댓글 명답은 맑은~^^
조금 더 몸을 살펴 날로 날로 건강하게
산과 들을 누비는 새해, 2023년이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