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언론도 “MBC 올림픽 중계 모욕적” 비판
MBC, 일부국가 부정적 내용 소개
野 “외교결례”… MBC “정중히 사과”
아이티 소개땐 “대통령 암살”… 아프간엔 마약원료 양귀비 사진 MBC가 2020 도쿄 올림픽 개회식 중계방송에서 일부 참가국을 부적절한 표현으로 소개한 데 대한 비난이 국내외로 확산되고 있다. MBC는 23일 중계방송에서 아이티 선수단을 소개할 때 자료사진으로 아이티 폭동 사진과 함께 ‘대통령 암살로 정국은 안갯속’이라는 자막까지 띄웠다(윗쪽 사진). 아프가니스탄 선수단 입장 화면에서는 마약 원료인 양귀비를 옮기는 사진을 썼다. MBC 중계 화면 캡처
MBC의 2020 도쿄 올림픽 개회식 중계방송에 대한 비판이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 각국 주요 언론은 MBC가 부적절한 중계로 비판과 반발을 불러왔다고 보도했다. MBC가 외교 결례를 범해 우리나라의 국격을 떨어뜨린 것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는 국내 여론도 커지고 있다.
MBC가 23일 개회식을 생중계하면서 여러 국가에 부정적인 내용들을 사용한 사실은 외신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각국으로 빠르게 퍼졌다. 미국, 유럽, 호주 언론 등은 24일(현지 시간) MBC 중계의 잘못된 점들을 상세히 전달하며 ‘무례한(disrespectful)’ ‘모욕적인(offensive)’ ‘기괴한(bizarre)’ 등의 용어로 비판했다.
국민의힘은 25일 논평을 통해 “대한민국이 입은 이미지 추락, 상대 국가들에 대한 외교적 결례를 고려하면 책임이 가볍지 않다”며 MBC에 제작진 문책과 재발 방지 대책을 촉구했다.
비판이 커지자 MBC는 24일 공식 사과문을 내고 “국가 소개 영상과 자막에 일부 부적절한 사진과 표현을 사용했다. 해당 국가 국민과 시청자께 정중히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MBC는 “짧은 시간에 쉽게 소개하려는 의도로 준비했지만 당사국에 대한 배려와 고민이 크게 부족했고 검수 과정도 부실했다”고 해명했다.
MBC, 아이티 입장땐 폭동사진… 野 “나라망신” 외신 “심각한 결례”
개회식 방송 비난 확산
MBC가 이번 중계에서 범한 오류와 결례는 도를 넘어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우크라이나 소개에 세계 최악의 방사능 유출 사고로 기록된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진을 쓰고, 아이티 선수단 입장 화면에는 폭동 사진과 ‘대통령 암살로 정국은 안갯속’이라는 자막을 띄웠다. 남태평양 마셜 제도는 ‘한때 미국의 핵실험장’이라고 소개했다.
아프가니스탄 선수단이 입장할 때는 마약 원료인 양귀비를 옮기는 사진을 내보냈고, 도미니카공화국 선수단을 소개하면서 금지 약물 복용으로 논란이 된 이 나라 출신 야구선수 데이비드 오티즈의 사진을 올렸다. 중계진이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와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혼동해 설명하는가 하면 스웨덴 소개 자막에 ‘복지 선지국’(선진국의 오자)이라고 썼다.
○ 각국 언론 “부적절한 방송”
사안이 심각하다 보니 외신들은 이 소식을 상세히 전했다. 영국 로이터통신은 MBC 방송 내용을 구체적으로 전하며 “한국 TV가 각국 소개에 부적절한(inappropriate) 이미지와 자막을 사용한 뒤 사과했다”고 보도했다. 호주의 뉴스채널 7뉴스는 “한국의 TV 방송이 만든 ‘완전히 부적절한(totally inappropriate)’ 올림픽 그래픽이 (한국 시청자들로부터) ‘나라 망신(national disgrace)’이라는 비판을 불러왔다”며 “이 무례한(disrespectful) 소개가 격렬한 반발(furious backlash)을 불러왔다”고 보도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도 “MBC가 기괴한(bizarre) 자막을 사용했다”고 지적했다.
미국 CNN은 MBC에 대한 SNS에서의 반응을 전하며 “한국을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세월호 참사의 나라로 소개하면 좋겠나?”라는 국내 트위터 사용자의 글을 뉴스 화면에 띄웠다. AFP통신, 영국 인디펜던트, 미국 폭스뉴스도 일제히 MBC의 부적절한 자막과 이미지 사용을 지적하는 보도를 내보냈다.
프랑스의 국제보도 채널 프랑스24는 AFP통신을 인용해 “온라인 사용자들이 ‘그들(MBC)은 구글에 먼저 뜨는 것은 무엇이든 사용했다’ ‘이번 일은 심각한 외교적 결례(serious diplomatic discourtesy)’라고 했다”고 전했다. 국민의힘 정진석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무개념 MBC’란 제목의 글을 올리고 “MBC 임원진은 대대적으로 나라 망신을 시킨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23일 올라온 ‘MBC 올림픽 개회식 중계에 대한 조사를 부탁드립니다’ 청원은 25일 현재 6000명이 넘는 동의를 얻었다.
○ MBC 안팎 “시스템 문제가 부른 참사”
학계와 방송계에서는 이번 문제가 일회성 ‘사고’가 아니고, MBC 시스템 전반의 문제가 불러온 ‘참사’라는 지적이 나온다. 배정근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참가국을 존중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태도임에도 지상파 언론사에서 이런 수준의 방송을 만들었다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며 “상식적인 차원에서 봐도 내부에서 충분한 논의와 준비, 그리고 검증이 이뤄지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황근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방송의 준비 자체가 무성의하고 졸속으로 진행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며 “MBC에서 각 프로그램 제작진이 방송 내용에 대한 검토도 간섭으로 여기는 문화가 개선되지 않는 한 이 같은 문제는 계속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방송계에서는 올해 2월 MBC가 스포츠국을 조직개편하면서 스포츠국 상당수 인력과 중계 및 제작 기능 일부를 자회사인 MBC플러스로 옮긴 것도 관련이 있을 거란 분석이 나온다. 올림픽 등 대형 스포츠 행사 프로그램을 제작한 경험이 있는 제작진은 이번 도쿄 올림픽에선 대부분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MBC노동조합(3노조)은 24일 성명에서 “도쿄 올림픽 개회식 생중계에서 일부 국가에 모욕적인 내용을 방송하면서 공영방송이 국민의 재산으로 나라 망신을 시켰다”며 “재발 방지를 위해 실무자 처벌에만 그치지 않고 책임 있는 사람을 문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성택 기자, 조종엽 기자. 윤다빈 기자
“아프리카의 죽은 심장”… MBC, 베이징때도 ‘국가 비하’ 자막
‘살인적 인플레國’ 등 부정적 소개
방심위 중징계에도 ‘중계참사’ 반복
MBC 중계 화면 캡처
MBC의 올림픽 중계 ‘참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참가국을 소개하면서 비하성 내용이나 사실과 다른 설명을 내보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제재를 받았다.
MBC는 2008년 8월 8일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을 중계하면서 자막으로 참가국 케이맨 제도를 ‘역외펀드를 설립하는 조세회피지로 유명’이라고 소개했다. 마치 이 나라가 범죄의 온상인 것처럼 내보낸 것이다. 국토 대부분이 사막지역인 중앙아프리카 국가 차드에 대해선 ‘아프리카의 죽은 심장’(사진)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또 다른 아프리카 국가인 수단은 ‘오랜 내전 등으로 불안정’, 짐바브웨는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이라고 설명했다. 이 밖에 미얀마는 ‘아웅산 수지 사건의 버마’, 오세아니아 지역 키리바시는 ‘지구 온난화로 섬이 가라앉고 있음’과 같은 부정적인 내용으로 다뤘다. 영국령 버진 제도는 ‘구글 창업자의 결혼식 장소’라며 단편적인 흥미 위주로 소개하기도 했다.
기본적인 사실관계마저 틀린 국가 소개도 있었다. MBC는 당시 아프리카 대륙의 가나를 소개하며 ‘예수가 기적을 행한 곳’이라는 자막을 내보냈다. 하지만 신약성경에 따르면 예수가 물을 포도주로 만드는 첫 기적을 행한 ‘가나의 혼인잔치’는 아프리카 가나가 아닌 이스라엘 북부의 가나지역에서 일어났다.
MBC의 당시 방송에 대해 방심위는 법정제재에 해당하는 ‘주의’를 의결했다. 법정제재는 해당 방송사의 재허가 심사에서 감점 요인이 되기 때문에 처벌 수위가 높은 징계다. 당시 방심위는 “MBC가 부정적 내용이나 흥밋거리에 불과한 내용을 마치 해당 국가의 대표적 사실인 것처럼 보이게 함으로써 방송의 공적 책임 등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을 심각하게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정성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