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다만 인간의 내면을 궁극적으로 탐구하여 그 실체를 구명해 내는 것이 불교요. 선이기에 그 실체에 다가가려고 했던 용감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옛 이야기처럼 들려주고 싶었다. 책 들려주는 장가를 개설한 지 만 3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쉼없이 낭독을 이어나갔는데 이제는 저작권을 준수하며 읽을 수 있는 책들을 찾는 일이 무척 힘들어졌습니다. 콘텐츠 고갈로 마음고생을 하던 차에 산림출판사의 책들을 낭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눈곱판 형태로 흥미로운 주제들을 400. 여 종 이상 출간한 산림지식 총소의 책들을 간간이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산림의 첫 번째 책으로 선택한 달마와 그 제자들을 낭독하고 편집하면서 저는 짙은 묵향을 느끼곤 했습니다. 이혼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또한 낭독을 허락해 주신 산림 출판사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선이란 무엇인가 신강은 남쪽으로 내려가 달마가 자선하고 있는 컴컴한 굴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숭산소린골에서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는 달마를 신기하게 생각하여 찾아왔던 구경꾼들의 발걸음도 점점 잦아들었다. 저녁부터 눈발이 조금씩 날리기 시작했다. 짧은 겨울에는 서산을 넘어가고 인적 끊긴 산 중에는 찬바람을 타고 온 눈발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신광은 석상처럼 꼼짝도 않고 앉아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사람이 돌을 구할 때에는 뼈를 깨뜨려서 골수를 꺼내고 피를 뽑아서 줄인 일을 구제하고 머리를 진땅에 펴고 벼랑에서 떨어져 줄인 호랑이를 먹였다. 옛사람도 이러하거늘 나는 어떤 사람인가 눈은 내리고 또 내렸다. 신강은 며칠째 무릎을 꿇고 있었다. 인도에서 왔다는 그 괴승 달마 또한 한 번 들어간 오두막에서 나오지 않았다. 무릎을 꿇은 신강의 머리 위에 눈은 쌓이고 또 쌓였다. 살을 내는 바람은 불고 또 불었다. 그렇지만 신방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이 흘러갔다. 드디어 달마가 문을 열었다 닫아 주십시오 신강이 머리를 숙였다. 달마가 신강의 꽁꽁 몸을 바라보며 물었다. 너의 뜻이 얼마나 깊으냐? 신감은 잠시 말이 없었다. 달마다 민망히 생각하여 되물었다. 내가 눈 속에 오래 있으니 무엇을 구하는가 신강이 슬피 울면서 말했다. 바라오건대 화산께서 감노의 문을 여시오 여러 중생들을 널리 제도해 주소서 달마다 대답했다. 부처님들의 위없는 묘한 돈은 여러 겁을 부지런히 정진하여 행하기 어려운 일을 참아야 하거늘 어찌 작은 공덕과 작은 지혜와 경솔한 마음 교만한 마음으로 참법을 바라느냐 호수구를 할 뿐이다. 꾸로 앉은 신간 곁에는 커다란 칼 하나가 놓여 있었다. 신강은 닮아의 말을 듣자마자 칼을 들어 한쪽 팔을 끊었다. 불공피가 하얀 눈이에 후뿌려졌다. 신강은 떨어진 팔을 한쪽 손으로 집어서 스승에게 바쳤다. 갈 만한 비로소 해가라는 법명을 주며 말했다. 부처님들이 처음 돌을 구할 때는 법을 위해 몸을 던지셨다. 내가 이제 내 앞에서 팔을 끊으면서 구하니 가히 할만한 일이다. 단비 구밥 팔을 잘라 버블 구했다는 유명한 이야기 중국서는 초조 닮아와 이조해가와의 이렇게 너무나 아름답고도 터무니 없이 저연한 전법 선화로부터 시작된다. 선은 고대 인도인의 요가라고 하는 명상의 방법 정신 집중의 방법에서 나왔다. 그러니까 선은 넓은 의미에서는 요가 실습의 한 단계로 볼 수 있다. 양쪽 모두 마음을 일정한 대상에 결부시키는 것에 의해 번뇌를 가라앉히고 밝은 지혜를 얻고자 하는 목적은 같다. 정은 선을 닦아서 얻어지는 결과를 가리키는 말이며 또한 선이 한층 향상되고 완성된 단계를 가리키기도 한다. 다시 말하면 정의 개념에 선이 포함된다고 볼 수 있는데 이 둘을 함께 묶어 선정이라 한다. 인도 불교에서의 선정 사상은 불교 수행 전반에 걸친 기본적 요소인데 선정 사상만을 취하여 그것을 중심으로 종파가 발생하고 발전된 것은 중국에서이다. 이 과정에서 최초의 순수한 명상으로서의 성격이 변질되어 인도와는 다른 중국적 색채가 농후한 새로운 의미의 선이라는 개념이 생겨나게 되었다. 불교의 중국 전례와 함께 선 또한 거의 동시에 중국에 소개되었다. 인도에서 발생하여 불교 수행에 기본이 되었던 선정이 중국으로 전해지면서 많은 이들이 그 신비한 매력에 이끌려 접근함으로써 불교의 확산에 기여하였다. 그러나 노자와 장자의 사상에 가까운 것으로 여겨져 자연 관조의 낙천주의와 결부되기도 하였고 심산유곡에서 불로 장생술을 연마하던 도사들의 생활과 같은 곳으로 간주되기도 하였다. 또한 위진 육조 시대에 은둔문학의 분조와 결합하여 점차 중국적 색채가 농후한 특유의 경향을 띠게 되었다. 이요. 모든 불경의 소개와 함께 그 깊이가 더해지고 여기에 중국인들의 현실주의적 성향과 유교 도교 등과의 끊임없는 교섭 그리고 다양한 사회 변화에 맞추어 지극히 중국적인 선의 모습을 갖추어 갔던 것이다. 보리 닮아 충국 선종의 계족 그의 인도 이름은 보디다름아이다. 중국에서는 보리 달마라고도 하며 달마라고도 쓴다. 온갖 대사라는 시호를 당나라 춘기에 받았다. 그는 6세기 초 인도에서 화북으로 건너와 낙염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종래에는 11세기에 정리된 전승 설화 외에 그의 전기나 사상 등이 불분명하였으나 20세기에 들어와 둔황에서 발견된 오록에 의해 벽관으로 일컬어지는 독자적인 선법과 제자들과의 문답이 확인되어 그 실상이 밝혀졌다. 그는 현학적인 철학 체계에 갇힌 그 시대의 불교에서 벗어나 본래의 청정한 자성에 눈떠 바로 성불하라는 설법을 평이한 구호로 말한 종교 운동가였다. 많은 민중들은 그의 사상에 열광했다. 8세기부터 9세기에 걸친 급격한 사회변혁 시대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새 불교의 이상을 닮아에게 구하였다. 민중들은 논리적이고 교학적인 불교보다는 단순하고 직설적인 불교를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보리 닮아는 남인도 향지국의 셋째 왕자로 태어나 성을 셋테일이라고 했다. 이와 달리 달마는 인도가 아닌 페르시아 출신이며 세테일이라는 것은 성이 아니라 인도 사성 계급 중에 크샤트리아를 의미한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어느 날 반야다라라고 하는 고승이 널리 가르침을 베푼다는 말을 듣고 향지 국왕은 그를 왕궁으로 초청하였다. 국왕은 반야다라의 가르침을 받고는 비싼 보석을 공양하고 신자가 되기로 하였다. 한편 왕에게는 3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장남은 월정 다라라고 불렸으며 염불산매의 행을 닦았다. 둘째는 공덕 따라였는데 백성에게 봉사하는 것을 기쁨으로 여겼다. 셋째는 보리다라고 불렸는데 부처님의 가르침을 해석하는데 뛰어났다 다녀다라는 세 왕자의 지혜를 시험해 보기 위해 질문을 던졌다. 이 세상에서 이 보석보다 더 훌륭한 것이 있겠습니까 월정 달아가 대답했다. 이 보석은 우리나라의 보물입니다. 이 세상에 더 훌륭한 것이 있을 리 없습니다. 콩독 따라 역시 비슷한 말을 했다. 그런데 보리다라가 말했다. 이런 보석은 감히 최상의 보물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이 보물은 가지고 있는 사람만을 기쁘게 할 뿐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가는 보물은 여러가지 법 중에서 부처의 가르침이고 사람이 지닌 뛰어난 여러 가지 능력 중에서는 지혜가 가장 두드러집니다. 그리고 지혜 중에서는 마음의 지혜가 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2 3 가지 보물이 가장 훌륭할 것입니다. 다냐다라는 핑궜 웃었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후에 국왕이 승하하자 보리다라는 반야다라를 따라 출가하여 불법을 배우게 되었다. 반야다라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대는 모든 법을 다 깨달았다. 닮아라 함은 통달하고 크다는 뜻이니 닮아라 하라 그는 보리 닮아로 이름을 고쳤다. 달마가 스승 밑에서 수행하기를 40 여 년 어느 날 달마는 스승에게 물었다. 제가 이미 법을 얻었으나 어디로 가서 불사를 하오리까 일로 주십시오 스승이 대답했다. 내가 죽은 후 67년이 지나면 동쪽 중국이라는 나라에 가서 천법하도록 하여라. 처음에는 남쪽에 머무르다가 훗날 때가 무르익으면 너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 북쪽으로 가도록 하여라 행요. 너무 빨리 떠나서 햇볕에 시드는 일이 없도록 하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의 계송을 들으라. 가다가 물을 건너서 다시 양을 만나네 혼자 서 쓸쓸히 강을 걷는다. 두 마리의 상마는 한낮에 애처로운데 두 그루의 계수나무 오랜만에 무성하리 이는 모두가 닮아와 불교의 앞날을 예언한 것이었다. 개송을 웃고 반야다라는 조용히 입적했다. 닮아둔 두 손 모아 합장했다. 닮아 중국으로 건너가다 달마다 수행하길 어언 67년 스승 반야다라가 유언한 해수가 흘렀다. 이제 인도에서 할 일을 어느정도 마쳤다고 생각한 달마는 중국으로 갈 것을 결심하고는 왕을 찾아갔다. 왕이 만료했지만 달마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꼭 가셔야 하겠습니까? 왕의 말에 닮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이렇게 눈물을 흘리며 간청에도 가시겠습니까? 그래도 닮아는 고개만 끄덕였다. 그렇다면 꼭 다시 돌아오신다는 약속을 하실 수 있습니까? 역시 달만은 고개만 끄덕였다. 왕은 닮아의 항해를 준비하였다. 닮아는 우선 제자 불타 야사에게 사전 답사를 떠나게 했다. 불타 야산은 오랜 요정 끝에 겨우 중국에 도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중국에서 접한 광경들은 달마의 가르침과는 크게 어긋나는 것들이었다. 중국의 승려들은 달마의 사상을 낯선 것으로 배척하였던 것이다. 이에 불타야사는 크게 낙심하여 병으로 죽고 말았다. 너무 일찍 가서 시들지 말라는 바야다라의 예언이 맞았던 것이다. 이에 닮아는 뛰어난 제자의 죽음에 안타까워하면서 참된 불교를 중국에 전해 주고자 비로소 동쪽을 향해 출발하였다. 드디어 달마가 바닷길을 출발하는 바로 이 시점에서 지금도 많은 대중들이 알고 있는 전설이 시작된다. 그에 얽힌 많은 육신이탈 설화 중에 한 가지만 살펴보기로 하자 달마가 배를 타려고 항구에 이르자 수백 년 묵은 큰 고기가 배에 드나드는 길목에 와서 죽어 있었다. 많은 개들이 그 길목을 통과하지 못하고 돌아가야 했다. 더구나 그 인근에 사는 주민들의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썩은 생선 냄새가 진동하였던 것이다. 탈마는 그곳 주민들을 위하여 숲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선정에 들어가 자신의 육체를 벗어났다. 그리고 신통욕으로 구운 물고기의 시체를 먼 바다에 버리고 돌아왔다. 그러나 성정을 불고 돌아왔을 때 자신의 몸은 오간 데가 없고 어떤 선인의 이상한 몸이 있었다. 달마는 다시 신통력을 발휘해 사방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그곳에서 이름 높은 어떤 성인이 숲속에 달마의 몸이 있는 것을 보고는 얼른 자신의 몸을 벗어 버리고 닮아의 몸을 바꾸어 가지고 갔던 것이다. 그 선인의 몸은 눈이 새파랗고 수염이 많아서 사랑 같지 않았다. 그러나 달마는 빙긋 웃었다. 그때 이미 닮아는 자신이 쓰고 있는 육신에 대한 미련을 버렸던 것이다. 그에게 있어 육신은 단지 경우에 따라 있고 벗을 수 있는 단순한 의복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것이 후대에 전하는 달마의 모습이 괴상한 까닭이다. 그러나 이 거짓말 같은 전설은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달마가 전하는 법의 요체가 이 전설 하나에 모두 담겨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목숨이면 그 누구든 버릴 수 없는 육신의 이 집착 그것을 버리라고 닮아는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 형성되는 선사상은 모두 이 설화를 기초로 하여 발전하는 것이다. 달마가 어려운 항해를 마치고 중국의 광주에 도착한 것이 양무제 보통 원년 9월 21일이었다고 전해진다. 광주자사 소왕이 바로 이 사실을 무지에게 알리자 무제는 재빨리 달마를 궁궐로 초청하였다. 달마는 11월 1일 수도인 건강에 도착하여 무제와 마주앉게 되었다. 양무제는 역대 중국왕들 중에서도 열렬한 불교 신자로 이름난 인물이다. 바로 여기서 3개의 문다 달마와 양무제의 이야기가 비롯된다. 달마와 양무제 옆에 나란히 선 많은 군신들은 숨을 죽였다. 양부제가 물었다. 나는 지금까지 많은 절을 짓고 경문을 직접 옮기기도 했으며 또한 많은 승려와 비구니를 육성했소 그러니 앞으로 얼마나 많은 보답을 받겠소 가르쳐 주시오 그때 다른 수행자 같았으면 불법 홍포를 위해 많은 자비를 베푼 황제에게 최대한의 찬사를 보내는 것이 당연했다. 양무제는 흐뭇하게 닮아의 다음 대답을 기다렸다. 황제의 선행과 공덕이 넓고도 크므로 부처님으로부터 최고의 보답이 있을 것입니다라는 그러나 달마는 조용히 말했다. 그런 것은 공덕이 될 수 없습니다. 무제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이라고 달마는 다시 말했다. 무공덕이라 하였습니다. 어째서 그렇단 말이오 이 정도의 일이 아무것도 아니라면 내가 무슨 일을 해야 공덕이 된단 말이오 무제가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런 일은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 않으면 쓰레기가 될 뿐입니다. 무제의 얼굴은 하얗게 변했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감출 수가 없었다. 둘만이 있는 자리도 아니었다. 많은 군신들이 있는 자리였다. 더구나 많은 사람들은 무죄가 부처님을 따르는 어떤 수행자보다 그 공덕과 지혜가 뛰어나다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공덕이란 무엇을 가리키는가 달마는 다시 말했다. 마음과 지혜가 완전히 하나가 되어 아무런 걱정도 없는 것 무제는 더 화가 났다. 그러면 불법에서 말하는 깨달음의 첫 번째를 한마디로 말하면 무엇인가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무엇이라고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고 그렇다면 내 앞에 있는 너는 도대체 무엇이냐? 무제는 망나가고 있었다. 달마를 만난 것은 많은 군신들 앞에서 자신의 공덕을 뽐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문제는 달마에 황당한 대답만 들어야 했던 것이다. 내 앞에 있는 너는 무엇이냐 말이다. 무제는 황제라는 체면까지 버리고 발악을 하였다. 달마는 최후의 한마디를 던졌다. 그런 것은 나도 모릅니다. 달마와 황제의 문답은 이곳으로 끝났다. 이 문답은 달마에 관한 에피소드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 중에 하나이다. 중국 불법 공포를 위해 먼 길을 달려온 달마도 양무제에 대해 적자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양무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양무제는 도무지 닮아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은 그렇게 쓸쓸히 돌아섰다. 훗날 양무제는 이를 두고두고 후회하였다. 자신의 무지로 하여 달마가 양나라를 떠났기 때문이었다. 스승 반야다라의 말대로 남쪽 나라는 아직 자신의 불교를 퍼뜨릴 분위기가 성숙하지 않은 것을 깨달은 달마는 조용히 양나라를 떠나 북조 위나라를 찾아가기로 마음 먹었다. 이때 닮아낸 갈대를 꺾어타고 양자방을 건넜다고 전해진다. 물론 그것 또한 닮아의 신통력을 존중한 후대 사람들의 경애가 만들어낸 이야기이다. 그 후 달마는 후위 효문제가 세워 놓았던 숭산에 들어가 힘껏 정진에 몰두했다. 닮아난 소림사에 자리를 잡고 법을 전할 제자가 나타날 때까지 고요히 자선에 잠겼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밤낮으로 얼굴을 펴게 되고 고요히 앉아 있을 뿐이어서 당시 사람들은 달마를 벽간 바라무늬라고 불렀다. 이는 벽을 바라보는 바라문이라는 뜻이다. 정신을 모아 멈추고 벽을 바라보며 나와 남이 없고 본부와 부처가 같으리라. 달마가 오기 전에는 예부터 내려온 제자의 해설은 모두가 이전의 4.8 정이었으며 여러 고승들이 모두 그것을 수행하여 효과를 얻었다고 했지만 역시 이전에 선수행의 형태였다. 예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달마는 불린 문자 교회 별전 직지 인심 견성 성불의 내구절로 불교의 교유와 역사를 집약했다. 이렇게 닮아의 정교는 교학적 체계를 갖춘 중국 불교와는 전혀 다른 면에서 출발하였다. 달마의 종교는 언어와 문자를 모두 불태워 버리고 오로지 직관적 인식에 의존한 이심전심으로 일관하였다. 닮아는 자신이 정립한 원리적 방법을 이입이라 했으며 실천적 방법을 사행이라 하였다. 이 24 행은 여러가지 복잡한 설명이 있어야겠지만 간단하게 말하면 경전의 대의를 이해함으로써 그 뜻을 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본보와 성인을 막론한 일제 생물은 평등한 진리의 본질을 가지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비본래적 망상에 사로잡혀 그 본질적인 내용을 현상계에 실천하지 못할 따름이라고 확답 확신하는 것이다. 효명제가 달마에 이러한 교의를 듣고 사자와 조서를 보내어 부르기를 세 차례나 하여도 끝내 닮아는 소림을 떠나지 않았다. 명재의 뜻은 더욱 굳어져서 만악가사 두 벌과 금바루 음병 비단 따위를 하사했으나 달마는 굳이 사양하여 세 번이나 돌려보냈다. 그러나 네 번째 명제의 뜻이 진심임을 알고 닮아난 그제야 비로소 받았다. 닮아둔 그로부터 9년 동안 한결같이 자신이 말한 바를 수행하였다. 그러자 승속의 제자가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달마는 비로소 다시 서쪽의 인도로 돌아갈 생각을 하고 제자들에게 물었다 때가 되었다. 너희들은 어둔 바를 말해 보라 이때 도부가 대답했다. 제가 보기에는 문자에 집착하지 않고 문자를 여의지도 않음으로써 도를 삼가는 것입니다. 달마가 말했다. 너는 나의 가죽을 얻었다. 총지가 말했다. 칠리는 불국토를 잠시 보는 것입니다. 한 번은 볼 수 있어도 두 번 다시 볼 수 없습니다. 제가 알기에는 아나니 아쪽 불국을 보았을 때 한번 보고 다시 보지 않은 것 같습니다. 너는 나의 살을 얻었다. 도육이 말했다. 4대가 본래 공하고 온이 따로 있지 않으니 제가 보기에는 한 법도 얻은 것이 없습니다. 너는 나의 뼈를 얻었다. 마지막 차례 그의 법을 전해 받게 되는 2조 회관은 침묵만 했다. 그러자 달마가 해가의 마음을 이끄는 빙긋 웃었다. 너야말로 내 골수를 얻었도다. 폐가가 일어나 절을 하자 달마가 말했다. 옛날에 여래께서 정법 한 장을 가섭에게 전하였는데 차츰차츰 전해서 나에게까지 이르렀다. 내가 이제 그대에게 전화 노니 그대는 잘 지키라. 그리고 가사를 겸해 주어 법의 시표를 삼놈이 제각기 표시하는 바가 있음을 알라 해가가 말했다.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달마가 대답했다. 안으로 법을 정해서 마음을 깨쳤음을 증명하고 겉으로 가사를 전해서 종지를 확정한다. 후세 사람들이 얄팍하여 갖가지 의심을 해서 내가 인도 사람이요. 그대는 이곳 사람이니 무엇으로서 법을 증득했다는 것을 증명할 것이냐고 할 것이니 그대가 지금 이 옷을 받아두었다 안타까워 뒤에 환란이 생기거든 이 옷과 나의 개송을 내놓아서 중명을 삼으면 교화하는 일에 지장이 없으리라. 내가 10 반에 든 지 200년 뒤에 옷은 그치고 전하지 않아도 법이.
항아사 세계에 두루하리라. 허나 돌을 밝힌 이는 많아도 행하는 이
가 적으며 진리를 말하는 이는 많으나 진리를 통달하는 이는 적으리라.
진리에 부합해서 비밀이 증택할 이가 1000만이 넘으리니 그
대는 잘 드날리어 깨닫지 못한 이를 가벼이 여기지 말라 한 생각.
돌이키면 본래 깨달은 것과 같으리라. 나의 계송을 들으라.
제자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닮아의 계송을 들었다. 내가.
볼래 이 땅에 온 것은 버블 전에 어리석은 일을 제도하려는 것이다.
한 송이의 꽃에 다섯 꽃잎이여 열매는 자연이 이루어지리라 닮
아는 곧바로 제자들을 거느리고 우문의 천송사로 가서 사흘을 먹었다.
그때 부처의 법에 약간의 관심이 있던 극오울태수 양현지가 찾아와 달마.
에게 물었다. 서형 인도에서 스승의 법을 전해 받고 조사라 한다는데.
그 도가 어떠합니까? 달마다 대답했다 부처님의 마음자리를 밝혀.
행가 지혜가 서로 응하는 것을 조사라 하오 그 밖에는 어떠합니까?
물음직이 다른 이의 마음을 밝히고 고금을 알고 있음과 없음을 싫어하지 않고.
법에 집착이 없으며 어질지도 어리석지도 않고 미혹도 깨달음도 없느니 이렇게.
아는 이는 조사라 하오 제가 산보에 귀의한 지도 몇 해가 되었건만 지혜가 혼
몽하여 아직도 진리를 미혹하고 있었는데 이제 대사의 말씀을 듣고 미혹도 깨달음도 없나이다.
바라올 건데 대사께서 세관에 오래 머무시오 많은 대중들을 교화해 주소서 달
마가 대답했다. 나는 가야 하오 오래 머무를 수 없어. 금기와 성품이 망가지 차이가.
있으므로 많은 환란을 만날 것이오 누구이옵니까 제가 대사를 위해서 제거해 드리겠습니다.
나는 부처님의 비밀을 전해서 어리석은 무리를 이롭게 할 뿐인데 남을 해치고 내가 편함.
은 이치에 맞지 않소 만일 대사께서 말씀하시지 않으면 제가 어찌 대사의 신통 변화와 관찰하는 힘
을 표시하겠습니까? 달마는 할 수 없이 예언했다. 강의 놋대가 옥 같은 물결을 가르고.
통 속에 횃불을 비춰 쇠구리를 연다 옷자와 구자를 같이 행하는 이가 구자와 십자를 분별하는.
생각 없다. 양현지가 그 말을 듣고 까닭을 몰라 하면서도 잠자코 속으로만 기억한 채 물러갔다.
그때 위나라 왕족들이 불교를 받아들여 이름난 승려들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율4인 광통과 3장인 보
리 유지는 승당 가운데 가장 뛰어난 이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달마다 돌을 설할 때 형상을 배척하고 바로 마음.
을 지적하는 것을 보고 늘 달마와 토론을 벌이고 시비를 일으켰다. 그들은 닮아의 새로운 선풍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는 것을 시기하여 달마의 음식에 독을 넣었다. 달마가 그것을 모를 리 없었다. 어느 날 달마가 해가에게 말했다. 나에게 능가경 내곤이 있는데 그것마저 그대에게 전하노니 이는 곧 열에게서 마음 자리를 가르치신 유기난 본문으로서 중생들을 깨달음에 들게 하신다. 내가 여기에 온 뒤 다섯 차례 독을 맞았는데 항상 꺼내어서 시험 안 봐 돌에다. 놓으면 돌이 깨졌었다. 내가 본래 인도를 떠나서 여기에 왔을 때 적현신주의 대승의 기상이 있음을 보고 바다를 건너고 사막을 지나서 법천해 줄 사람을 구했는데 매양 만나면 개합되지 않아 마치 어리석은 이 같고 말더듬이 같던 이제 너를 얻어 법을 전하였으니 내일은 이미 끝났도다. 이윽고 강통과 보리 유지와 무리들이 여섯 번째 독을 주자 닮아난 단정에 앉아서 입적하였다. 부위의 효명제 태와 19년 병진년 10월 5일이었대 그해 12월 28일 제자들이 그를 웅의산에 장사 지내고 정림사에 탑을 세웠는데 그 뒤로 3년 만에 인도의 사신으로 파미루 고온에서 달마를 만났다. 달마는 지팡이에 신한 짝을 들고 유유히 가고 있는 중이었다. 송은이 물었다 대산은 어디로 가십니까 서촌으로 가노라 너의 임금은 이미 돌아가셨느니라 소문이 귀국해 보니 과연 명제는 이미 승하하고 표장제가 즉위하였다 송은이 돌아오다가 겪은 일을 왕에게 보고하니 왕은 달마의 무덤을 파괴하였다. 그런데 관 속에는 신이 한짝 있을 뿐이었다. 온 조정이 깜짝 놀랐고 황제의 명에 따라 남은 신을 가져다 소림사에서 공양하였다. 그리하여 이제 2조 혜가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선종이 중국 땅에 이식된 인도 품종의 큰 나무라면 가지치기와 입다동기를 한 정원사가 바로 닮아와 그의 제자들이나. 달마대자는 타협이나 방편을 쓰지 않고 직설로서 정법의 핵심을 가르쳤다. 마지막으로 여기에 훗날 양무제가 자신의 어리석음을 한탄하며 달말을 추모하여 새긴 비문의 내용을 기록하며 슬프도다 보고도 보* 못했고 만나고도 만나지 못했어? 지난 일 오늘날의 뉘우침이 그지없도다. 지문 한낱 번으로써 감히 그 가신 뒤에 스승으로 모시나이다. 제2조 해가 달마의 법을 이은 이대조사 혜가의 성은 희씨이다. 어머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