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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비수부(楚妃守符)
초(楚)나라 왕비가 부(符)를 지킨다는 뜻으로, 명분에 사로잡혀 실(實)을 잃음을 이르는 말이다.
楚 : 초나라 초(木/9)
妃 : 왕비 비(女/3)
守 : 지킬 수(宀/3)
符 : 부호 부(竹/5)
출전 : 유향(劉向)의 열녀전(烈女傳) 卷4 정순전(貞順傳)
초(楚)나라 왕비가 부(符; 신분확인 증표 물)를 지킨다는 뜻으로, 명분에 사로잡혀 실(實)을 잃음과, 약속을 소중하게 여기는 여인상(女人像)을 비유하는 말이다. 이 성어는 한(漢)나라 유향(劉向)이 지은 열녀전(烈女傳)에서 유래한다.
본 고사성어는 일명 초소정강(楚昭貞姜)이라고도 한다. 곧 초(楚)나라 소왕(昭王)의 부인 정강(貞姜)을 이르는 말이다. 정강(貞姜)은 제(齊)나라 26대 제후 경공(景公)의 딸로 초(楚)나라 29대 소왕(昭王)의 부인이다.
어느 날 소왕(昭王)이 지방을 순시(巡視)할 때 부인도 함께 갔는데 그 지방에서 부인을 물 위의 누대(樓臺)인 점대(漸臺)에 머물러 있게 하고 그 자리를 떠난 일이 있었다.
그때 갑자기 물이 불어나 위험이 닥치게 되어 왕은 위험에 닥치게 된 부인을 걱정하여 사자(使者)를 보내 부인을 급히 모셔오게 했는데 너무 다급하여 부인과 약속한 대로 사자에게 부절(符節)을 주어 보내야 할 것을 잊어버렸다. 그렇지만 사자는 누대(樓臺)에 이르러 물이 불어나 위태로우니 빨리 나올 것을 청(請)하였다.
부인이 말하길, "왕께서는 나와 약속하길 나를 부르실 때는 반드시 부절(符節)을 대조(對照)해 보고 가기로 하였는데, 지금 사자는 부절을 가져오지 않았으니 저는 감(敢)히 시자를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사자가 말하길 "지금 바야흐로 큰물이 밀려오고 있어 이제 돌아가서 다시 부절을 가지고 오자면 아마도 때가 늦을까 두렵습니다."
부인이 말하길, "제가 들으니 정녀(貞女)의 의(義)는 약속을 어기지 않고, 용감한 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오직 한결같이 절의(節義)를 지킬 뿐이라 했으니, 제가 사자를 따라나서면 틀림없이 살 것을 알고 그대로 머물러 있으면 틀림없이 죽게 되겠지만, 그러나 약속을 어기고 절의를 버리면 비록 삶은 구하겠지만 약속을 어기고 구차하게 살 뿐입니다. 따라서 그대로 머물러 있으면서 죽는 것만 같지 못할 뿐입니다."
이에 사자는 돌아가서 부절을 가지고 오니 그때는 이미 큰물이 밀어닥쳐 누대(樓臺)는 허물어지고 부인은 급류에 휩쓸려 죽은 뒤였다.
왕이 말하길, "아아! 의(義)를 지키고 절조(節操)로 죽어 구차(苟且)하게 삶을 구하지 않았구나! 신의(信義)로써 굳게 지켜 정절(貞節)을 이루었도다." 이에 그녀를 정강(貞姜)이라 하였다.
이에 군자(君子)가 이르길, "정강(貞姜)은 절조(節操) 있는 부인이다"라고 칭송하였다. 시경(詩經)에는 "훌륭한 군자의 그 거동(擧動)이 틀림이 없네"라고 노래하여 인간의 삶에 약속을 지킴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 교훈임을 기리고 있다.
또한, 춘추시대 노(魯)나라에 미생(尾生)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가 있었다. 그는 약속을 중요히 여겨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절대로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애인(愛人)과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던 미생은 평소와 같이 약속시간에 다리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으나 이상하게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고, 많은 비가 왔다.
얼마를 지나자 쏟아지는 비로 인해 다리 밑의 개울은 빠르게 불어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안타까워하며 피할 것을 적극 권고했으나 그는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개울물은 계속 불어났고 더 버틸 수 없는 상황까지 왔지만 미생은 다리 밑을 떠나지 않고 애인을 기다렸고 결국 밀려오는 물속에서 기둥을 끌어안고 죽어버렸다.
이 이야기를 읽고 사람들의 생각은 두 가지 부류로 엇갈린다.
한 부류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약속을 지키고자 하는 굳은 신의를 지킨 훌륭한 사람으로, 다른 한 부류는 융통성 없이 버티다가 어리석게 죽은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다.
옛 선현들은 한번 약속은 어떠한 경우를 막론하고 반드시 지켰다. 애초부터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았다. 따라서 약속(約束)은 사회생활에 신용으로 이어지고 사업의 성패를 가늠하는 가장 핵심요소 중 하나가 된다.
약속은 개인의 약속도 중요하지만 특히 공인(公人)의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공인과 지도자(指導者)가 약속을 어기면 그 피해는 온 국민의 실망과 허탈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공자는 정치에 가장 중요한 요소를 족식(足食; 경제), 족병(足兵; 국방), 민신지의(民信之矣; 신용)으로 대변하고 그 중 신용을 가장 중요시했다. 곧 국민 서로 간, 지도자와 국민 간 믿음이 없으면(民無信不入) 그 나라의 멸망은 불을 보듯 뻔한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근간 대한민국의 사회는 벌써 내년에 있을 대선(大選)의 움직임이 속도를 내고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있으면, 국민들은 공약(公約)의 혼란에 빠지게 된다.
꼭 필요한 약속만 하고,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키는 신용 있는 인재를 국민들은 원하고 있다. 공약이 크고 예산이 많이 투입되는 것일수록 국민의 고통은 커져가는 것을 우리는 지난 정권들로부터 경험했다. 따라서 허황된 약속은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
먼 곳의 물로 가까운 곳의 불을 끌 수 없다(遠水不救近火)라는 고사를 다시 새겨 본다.
列女傳 卷4 貞順傳
10. 초소정강(楚昭貞姜)
초(楚)나라 소왕(昭王)의 부인 정강(貞姜)
○ 貞姜者, 齊侯之女, 楚昭王之夫人也.
정강(貞姜)은 제(齊)나라 26대 제후 경공(景公) 저구(杵臼)의 딸로 초(楚)나라 29대 소왕(昭王)의 부인이다.
王出遊, 留夫人漸臺之上而去.
소왕(昭王)이 지방을 순시(巡視)할 때 부인도 함께 갔는데 어느 지방에서 부인을 물 위의 누대(樓臺)인 점대(漸臺)에 머물러 있게 하고 그 자리를 떠난 일이 있었다.
王聞江水大至, 使使者迎夫人, 忘持符, 使者至, 請夫人出.
그때 물이 갑자기 불어나 위험이 닥치게 되어 왕은 위험에 닥치게 된 부인을 걱정하여 사자(使者)를 보내 부인을 급히 모셔오게 했는데 너무 다급하여 부인과 약속한 대로 시자에게 부절(符節)을 주어 보내야 할 것을 잊어버렸고 사자가 누대(樓臺)에 이르러 물이 불어나 위태로우니 빨리 나올 것을 청(請)하니,
夫人曰: 王與宮人約令, 召宮人必以符, 今使者不持符, 妾不敢從使者行.
부인이 말하길, '왕께서는 나와 약속하길 나를 부르실 때는 반드시 부절(符節)을 대조(對照)해 보고 가기로 하였는데, 지금 시자는 부절을 가져오지 않았으니 저는 감(敢)히 시자를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 使者曰: 今水方大至, 還而取符, 則恐後矣.
사자가 말하길, '지금 바야흐로 큰물이 밀려오고 있어 이제 돌아가서 다시 부절을 가지고 오자면 아마도 때가 늦을까 두렵습니다.'
夫人曰: 妾聞之, 貞女之義不犯約, 勇者不畏死, 守一節而已, 妾知從使者必生, 留必死, 然棄約越義而求生, 不若留而死耳.
부인이 말하길, '제가 들으니 정녀(貞女)의 의(義)는 약속을 어기지 않고, 용감한 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오직 한결같이 절의(節義)를 지킬 뿐이라 했으니, 제가 사자를 따라 나서면 틀림없이 살 것을 알고 그대로 머물러 있으면 틀림없이 죽게 되겠지만, 그러나 약속을 어기고 절의를 버리면서 삶을 구하는 것은 그대로 머물러 있으면서 죽는 것만 같지 못할 뿐입니다.'
○ 於是使者反取符, 還則水大至, 臺崩, 夫人流而死.
이에 사자는 돌아가서 부절을 가지고 오니 그때는 이미 큰물이 밀어닥쳐 누대(樓臺)는 허물어지고 부인은 급류에 휩쓸려 죽은 뒤였다.
王曰: 嗟夫. 守義死節, 不為苟生, 處約持信, 以成其貞. 乃號之曰貞姜.
왕이 말하길, '아아! 의(義)를 지키고 절조(節操)로 죽어 구차(苟且)하게 삶을 구하지 않았구나! 신의(信義)로서 굳게 지켜 정절(貞節)을 이루었도다.' 이에 그녀를 이름하여 정녀(貞姜)라 하였다.
○ 君子謂貞姜有婦節. 詩云; 淑人君子, 其儀不忒. 此之謂也.
군자가 이르길, '정강(貞姜)은 절조(節操) 있는 부인이다' 하고, 시경(詩經)에 이르길, '훌륭한 군자의 그 거동(擧動)이 틀림이 없네'고 한 것은 이것을 두고 한 말이다.
頌曰: 楚昭出遊, 留姜漸臺, 江水大至, 無符不來, 夫人守節, 流死不疑, 君子序焉, 上配伯姬.
송(頌)에 말하길, '초(楚)나라 소왕(昭王)이 순시(巡視)를 할 때 정강(貞姜)을 점대(漸臺)에 머물게 하였고 강물이 크게 불어나 닥쳐도 부절(符節)이 없으니 따르지 않았으며 부인은 절의(節義)를 지켜 물에 빠져 죽을 것을 의심(疑心)하지 않았으니 군자는 이것을 서술(敍述)하여 올려서 백희(伯姬; 송나라 경공의 부인)와 짝 지웠다.
열녀전(列女傳) / 유향(劉向)
한(漢)나라 때의 유향(劉向)이 편찬한 '열녀전(列女傳)'을 언급할 때면,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충신'과 '열녀'를 지칭할 때의 그 '열녀(烈女)'들의 전기를 수록한 전적(典籍) 정도로 이해한다.
그러나 유향의 '열녀전'은 의(義)를 위해 생(生)을 가볍게 여기며 절조를 중시하는 그 '열녀(烈女)'들의 전기를 수록한 전적이란 뜻이 아니다.
'열(列)'이란 글자 뜻 그대로 '여러 여성들의 전기'를 가리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유향의 '열녀전'은 사회의 여러 방면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여성들의 전기를 수록한 전적이다.
편찬 배경을 살펴보면, 당시는 황궁 안에서는 조비연 자매가 황제를 미혹했고 조정에서는 태후 왕씨의 형제인 왕봉 등이 권력을 농단함으로써, 국가가 붕괴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
유향은 왕실의 종정(宗正)으로서 구국(救國)의 사명감을 갖고서 자신이 황제에게 진언해야 할 책무를 느낀다.
이에 황제가 열람하여 정사를 바르게 펴도록 경계시켜 줄 목적으로, 역대 규범으로 삼을 만한 여성들과 나라를 망친 여성들을 제시해 '열녀전'을 편찬한 것이다.
'열녀전', 일명 '고열녀전(古列女傳)'은 유향에 의해 편찬돼 나올 때에 총 7권으로 구성되었다. 여기에는 상고시대부터 한나라에 이르는 여성 104명의 전기가 일곱 가지 주제에 따라 기록되어 있다.
1권부터 6권까지는 본받아야 할 긍정적인 여인상을, 7권은 경계해야 할 부정적인 여인상을 반면으로 깨우치려는 의도를 지니고 편찬되었다.
본서에 함께 첨부된 '속열녀전(續列女傳)'은 누가 편찬했는지 알 수 없는데 한 권으로 되어 있고, 주(周)나라 때부터 동한시대까지 총 스무 명의 여인들의 전기를 수록했다.
'열녀전'은 중국 최초의 여성에 관한 전문적 전기 모음집으로, 그 편찬 목적이 통치자를 경계시키기 위한 것이었으나, 이 전적이 여성들의 활약상에 대해 자세히 기록돼 편찬됨으로써 여성에 관한 세간의 관심을 높여, 여성의 사회적 인식과 지위를 제고하는 데 상당한 긍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다만 이후 여성들의 전기가 '정절'을 기리는 쪽으로 치우치게 되고 송명(宋明)대 이후부터는 성리학의 영향으로 정절을 더욱 중시하게 되면서 부인들의 덕행에 대한 평가는 곧 정절에 대한 평가로 굳어져 버렸다.
(解)
의(義)를 위해 생(生)을 가볍게 여기며 절조를 중시하는 ‘열녀(烈女)’들의 전기가 아니다. 사회의 여러 방면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여성들의 전기를 수록한 전적이다.
이 책에는 유향이 편찬한 상고시대부터 한나라에 이르는 여성 104명의 전기와 후대에 덧붙여진 ‘속열녀전’의 20명의 전기가 실려 있다.
'열녀전'은 중국 최초의 여성에 관한 전문적 전기 모음집으로, 그 편찬 목적이 통치자를 경계시키기 위한 것이었으나, 여성들의 활약상을 자세히 기록함으로써, 여성의 사회적 인식과 지위를 제고하는 데 긍정적 역할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유향(劉向, BC 77∼BC 6)
본명이 갱생(更生), 자(字)는 자정(子政)이다. 서한 말엽의 저명한 경학가(經學家)이자 도서목록 분류학자이며 문학가다.
선제(宣帝) 때 산기간대부(散騎諫大夫)에 발탁되고 원제(元帝) 때 종정(宗正)이 되었는데, 음양오행술로 정치의 득실을 따지고 환관과 외척들을 탄핵함으로써 두 번이나 하옥되었다.
성제(成帝) 때에는 이름을 향(向)으로 바꾸고 광록대부(光祿大夫)를 지냈으며 관직을 중루교위(中壘校尉)로 마쳤기 때문에, 후세에는 그를 '유광록(劉光祿)' 또는 '유중루(劉中壘)'라고 칭했다.
유향은 전적들을 교감하여 '별록(別錄)' 20권을 찬(撰)했으며, 그 밖의 저작물로는 상서홍범오행전론(尙書洪範五行傳論), 신서(新序), 설원(說苑), 열녀전(列女傳) 등이 남아 있고, 이 외에도 분실된 오경통의(五經通義)와, 대부분이 분실된 구탄(九歎) 등 사부(辭賦) 33편이 있다.
유향(劉向)의 열녀전(列女傳)에 대하여
1. 열녀전(列女傳)에 대하여
열녀전(列女傳)은 중국 최초의 여성 전기이다. 기원전 1세기 전한(前漢)의 유학자(儒學者) 유향(劉向)이 역사적 여성 106 명을 열전(列傳) 형식으로 저술한 것이다.
고대 문헌에 기록된 여성들을 뽑아 7 주제로 분류하고, 주제별로 15 명 내외로 배치하여 열녀전(列女傳) 7 권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 열녀전(列女傳)은 중국 고대 역사에서 영향력을 행사한 여성들의 삶을 단순히 소개만 한 것이 아니다. 여성 능력에 대한 인식과 성(性)에 따른 차별이 편견이었음을 논증해 준, 인간 이해를 위한 귀중한 자료이다.
더군다나 이 책은 이론적인 지식이 아니라 인간 앞에 던져진 다양한 문제를 통하여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지혜를 제시하고 있다. 실천을 중시하고 조화와 화해의 가치를 존중하는 유교적인 삶의 방식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2. 열녀전(列女傳)의 의의
열녀전(列女傳)의 의의는 크게 두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열녀전(列女傳)은 문학적 상상력과 철학적 깊이를 두루 갖추고 있어 학문적 가치가 높은 책이다.
맹자(孟子)가 훌륭한 학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교육 때문이라고 우리는 알고 있다. 자식 교육을 위하여 세 번이나 이사를 하였고, 중도에 학문을 포기한 자식에게 손수 짜던 소중한 베를 칼로 끊어 보임으로써 교훈으로 삼았다는 이야기들 ....
그런데 맹자 어머니에 관한 고사(故事)는 열녀전(列女傳)에 처음 등장하는 이야기이며, 맹자 당시의 어떠한 문헌에도 그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맹모의 '자식 키우기' 이야기는 사실(史實)이라고 단정하기가 어렵다.
열녀전(列女傳)은 사실 그대로의 열전이기 보다는 실제 인물들이 활동한 시대보다 훨씬 뒤에 저자의 상상력으로 각색한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맹모의 고사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사실여부와 상관없이 '자녀 교육'의 대명사가 되어 있다.
이 밖에도 열녀전(列女傳)에는 중국의 고대 역사를 이끌어 온 걸출한 인물들의 사생활이 흥미롭게 기술되어 있다.
한 인간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는 공(公)과 사(私)의 양 영역을 두루 섭렵했을 때 가능하다. 드러난 역사에만 존재하던 역사적 인물들이 가족이나 여성 관계 등 숨겨진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에게 좀더 친숙하게 다가올 것이다.
문학, 예술, 민속, 철학적인 깊이를 두루 갖춘 열녀전(列女傳)은 이후에 잇따라 등장한 다른 여성 전기나 여성 교훈서의 추종을 불허, 그 독보적인 위치를 고수하고 있다.
시경(詩經), 서경(書經), 주역(周易), 국어(國語), 춘추좌전(春秋左傳), 사기(史記) 등을 전거 자료로 삼고 있으므로 이들과의 관계에 대한 연구도 주목된다.
둘째, 여성의 삶과 가치를 다양하게 평가한 열녀전(列女傳)은 편협한 가치 체계를 거부하는 오늘날 우리의 문제 의식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열녀전(列女傳)은 '남성을 위한 여성' 제조에 목적을 두었던 시대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성 차별적인 고정 관념이 인간의 삶을 얼마나 축소하고 왜곡하는가를 역설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이 시점에서 세계를 이해하고 인간을 해석하는 새로운 패러다임, 페미니즘에 열녀전(列女傳)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페미니즘은 남성 일방적 지배 원리를 부정하지만, 그렇다고 여성의 독주를 긍정하는 것도 아니다. 궁극적으로 여성과 남성은 서로 이루어 서로 도와 주는 상생, 상보적 관계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열녀전(列女傳)의 관심이다.
남성과 여성의 바람직한 관계 원리의 대안으로서, 동양적 원리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여성 연구자들에게 열녀전(列女傳)은 큰 의미를 줄 수 있을 것이다.
3. 열녀전(列女傳)에 대한 오해
열녀전(列女傳)은 '열녀(烈女)'들의 전기가 아니다. '열녀(列女)', 즉 많은 여성들의 전기이다. 이 전기는 BC 1 세기 경 한(漢)나라의 유학자 유향(劉向, 劉更生)이 중국 고대의 문헌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열녀전(列女傳)에는 모두 106 명의 여성이 등장하는데, 실제로 존재하였던 역사상의 인물이 대다수이지만 설화상의 인물도 있다.
유향은 열녀전(列女傳) 이전에 있던 문헌에서 간략하게 취급한 여성을 기본 자료로 하여, 이것을 7 개의 주제로 분류한 다음 각각의 주제에 알맞게 각색하였다.
각 편에는 말미에는 '군자왈(君子曰)'이라는 형식으로 이상적인 여성상을 제시하고 있다. 군자의 입을 빌려 지은이 자신 또는 당시 식자들의 여성관을 반영한 것이다.
실제로 송(宋), 명(明) 이후의 중국이나 조선에서 강조된 정절과 '열녀(烈女)' 부분은 열녀전(列女傳) 전체 주제중 1/7 에 불과하다.
4. 열녀전(列女傳)의 내용
열녀전(列女傳)은 모의전(母儀傳), 현명전(賢明傳), 인지전(仁智傳), 정순전(貞順傳), 절의전(節義傳), 변통전(辯通傳), 얼폐전(얼嬖傳) 등 총 7 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① 모의전(母儀傳)은 어머니로서 모범이 된 여성들의 이야기다.
전설상의 성군 요 임금의 두 부인인 아황과 여영, 거인의 발자국을 장난삼아 밟고 난 후 주나라 시조가 된 후직을 잉태하였다는 강원, 제비의 알을 삼키고 설을 잉태하였다는 간적 등은 고대 각 왕조의 기원 설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교만한 아들을 꾸짖는 어머니, 뇌물을 받아 챙기는 아들을 추궁하는 어머니 등 여러 유형의 어머니 역할이 제시된다.
卷一 母儀傳
유우이비(有虞二妃)
기모강원(棄母姜嫄)
설모간적(契母簡狄)
계모도산(啟母塗山)
탕비유신(湯妃有㜪)
주실삼모(周室三母)
위고정강(衛姑定姜)
제녀부모(齊女傅母)
노계경강(魯季敬姜)
초자발모(楚子發母)
추맹가모(鄒孟軻母)
노지모사(魯之母師)
위망자모(魏芒慈母)
제전직모(齊田稷母)
② 현명전(賢明傳)은 아내로서 현명함을 드러낸 여성들의 전기이다.
남편을 위하여 무조건 희생만 하는 여성보다는 주체적인 삶을 추구한 깨어있는 여성의 모습이 있다. 제후의 부인에서 마부의 아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조의 형태를 볼 수 있다.
관리인 남편이 아내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재산 불리기에 급급하자 남편을 떠나는 부인도 있고, 난세를 보내는 처세술의 하나로서 자신과 남편의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면서 道를 즐기는 아내도 등장한다.
여필종부, 남존여비라는 지배와 종속의 관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바람직한 부부관도 제시하고 있다.
卷二 賢明傳
주선강후(周宣姜后)
제환위희(齊桓衛姬)
진문제강(晉文齊姜)
진목공희(秦穆公姬)
초장번희(楚莊樊姬)
주남지처(周南之妻)
송포녀종(宋鮑女宗)
진조최처(晉趙衰妻)
도답자처(陶荅子妻)
유하혜처(柳下惠妻)
노검루처(魯黔婁妻)
제상어처(齊相御妻)
초접여처(楚接輿妻)
초노래처(楚老萊妻)
초오릉처(楚於陵妻)
③ 인지전(仁智傳)은 지혜로운 여성들의 전기이다.
인도(人道)와 천도(天道)를 통찰함으로써,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있는 여성들의 모습이 있다. 주로 정치적 안목과 역사와 세계에 대한 뛰어난 통찰력을 가졌던 여성들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초나라 무왕의 부인 등만의 정치적 안목, 재상 손숙오 어머니의 도덕적인 종교관, 현군(賢君)과 우군(愚君)을 알아본 진나라 범씨의 어머니, 동생의 정치적 역량을 알아 본 누이, 절대 권력 앞에서도 자신의 생각을 당당히 제시하는 시골의 할머니 등이 이 편의 주인공이다.
아버지의 명성을 배경으로 교만해진 아들이 장수로 임명되자, 군주 앞에 나아가 잘못된 인사(人事)임을 주장한 조괄의 어머니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卷三 仁智傳
밀강공모(密康公母)
초무등만(楚武鄧曼)
허목부인(許穆夫人)
조희씨처(曹僖氏妻)
손숙오모(孫叔敖母)
진백종처(晉伯宗妻)
위령부인(衛靈夫人)
제령중자(齊靈仲子)
노장손모(魯臧孫母)
진양숙희(晉羊叔姬)
진범씨모(晉范氏母)
노공승사(魯公乘姒)
노칠실녀(魯漆室女)
위곡옥부(魏曲沃負)
조장괄모(趙將括母)
④ 정순전(貞順傳)은 예와 신의를 중시한 여성들의 이야기이다.
禮는 나와 다른 사람, 나와 사회와의 약속이라 할 수 있다. 사회 관계에서 가장 기본을 이루는 부부간의 禮는 신의(信義)가 중심이 되고 있지만, 이후 시대의 정절(貞節) 관념이 내포하고 있는 형식적인 禮 해석과 대조를 이룬다.
정순전(貞順傳)의 여성들은 정절을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 파악하고 있다. 그들은 당시 남성들의 담론인 禮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는 시대적 한계를 지니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이른바 '가내 노예(家內奴隸)'는 아니었다.
정순전(貞順傳)에 나오는 여성들의 행적은 사회적 규범의 실천이라는 차원에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卷四 貞順傳
소남신녀(召南申女)
송공백희(宋恭伯姬)
위과부인(衛寡夫人)
채인지처(蔡人之妻)
여장부인(黎莊夫人)
제효맹희(齊孝孟姬)
식군부인(息君夫人)
제기량처(齊杞梁妻)
초평백영(楚平伯嬴)
초소정강(楚昭貞姜)
초백정희(楚白貞姬)
위종이순(衛宗二順)
노과도처(魯寡陶妻)
양과고행(梁寡高行)
진과효부(陳寡孝婦)
⑤ 절의전(節義傳)은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마땅한 도리를 실천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정순전(貞順傳)이 지아비에 대한 정절을 지킨 아내의 이야기가 중심이었다면, 이 편에서 다루는 대상은 그보다 훨씬 더 넓어서 보모, 계모, 첩, 고모, 숙모 등으로 도덕적 의무를 실천한 사람들이다.
비록 혈연 중심에 국한되어 있기는 하지만, 절의전의 여성들은 사리사욕을 보류하고 공동체적인 삶을 선택하였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명분을 위하여 자기 희생을 감내하였다는 비판도 가능하지만 극단적 이기심과 공동체 윤리의 갈등이 일상화된 현대 사회에 좋은 모델이 될 것이다.
특히 가족 이기주의가 만연한 현실에서 절의전(節義傳)에 실린 여성들의 삶과 의식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卷五 節義傳
노효보의(魯孝保義)
초성정무(楚成鄭瞀)
진어회영(晉圉懷嬴)
초소월희(楚昭越姬)
개장지처(蓋將之妻)
노의고자(魯義姑姊)
대조부인(代趙夫人)
제의계모(齊義繼母)
노추결부(魯秋潔婦)
주주충첩(周主忠妾)
위절유모(魏節乳母)
양절고자(梁節姑姊)
주애이의(珠崖二義)
합양우제(郃陽友娣)
경사절녀(京師節女)
⑥ 변통전(辯通傳)은 고전(古典)에 관한 지식과 사리에 밝은 여성들, 이른바 똑똑한 여성들의 전기이다.
여기서 유향은 뛰어난 논리적 사고로서 자신 앞에 던져진 문제를 현명하게 해결하여 나갔던 여성들의 삶을 소개하고 있다. 절대 권력에 당당하게 맞서 은폐된 진리를 밝히고 잘못된 관행을 고치는 계기를 마련한 여성들이 등장한다.
절대 권력의 횡포를 지적하여 아버지를 구해내고, 법에 어긋난 권력의 특혜에 냉정한 여인 군자의 모습도 읽을 수 있다.
법에 어긋난 권력의 특혜에 냉정한 여인 군자의 모습도 읽을 수 있다. 함께 국사를 논의하고 진리를 토론함으로써 정치적으로 영향을 끼친 여성들의 이야기이다.
卷六 辯通傳
제관첩정(齊管妾婧)
초강을모(楚江乙母)
진궁공처(晉弓工妻)
제상괴녀(齊傷槐女)
초야변녀(楚野辨女)
아곡처녀(阿谷處女)
조진녀연(趙津女娟)
조불힐모(趙佛肸母)
제위우희(齊威虞姬)
제종리춘(齊鍾離春)
제숙류녀(齊宿瘤女)
제고축녀(齊孤逐女)
초처장질(楚處莊姪)
제녀서오(齊女徐吾)
제태창녀(齊太倉女)
⑦ 얼폐전(얼嬖傳)은 나라 또는 가문(家問)을 망친 여성들의 이야기이다.
하(夏), 은(殷), 주(周) 고대 왕조들을 멸망으로 이끌었던 말희, 달기, 포사의 전기(傳記)가 실려있다. 이 편에 실린 15 명의 여성들은 음행과 권력욕으로 당시의 禮적 질서에 도전장을 던진 사람들이다.
여자가 똑똑하면 나라를 망친다는 여화(女禍) 이데올로기는 제왕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 중 단연 수위를 차지한다.
새로운 왕조가 혁명으로 들어설 때마다 앞 왕조의 '王이 여자에 빠져 정사(政事)를 돌보지 않았다'는 이유를 첫번째로 들었다.
앞 왕조 멸망의 교훈이 된 '여자 망국론'은 역사 발전 법칙의 필연성을 무시한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색채가 짙다 하겠다.
이 책의 저작의도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 있는 이 편에 대한 이해는 더구나 2000 년전의 저술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전적으로 독자(讀者)에게 맡긴다.
卷七 孽嬖傳
하걸말희(夏桀妺喜)
은주달기(殷紂妲己)
주유포사(周幽褒姒)
위선공강(衛宣公姜)
노환문강(魯桓文姜)
노장애강(魯莊哀姜)
진헌여희(晉獻驪姬)
노선목강(魯宣穆姜)
진녀하희(陳女夏姬)
제령성희(齊靈聲姬)
제동곽강(齊東郭姜)
위이란녀(衛二亂女)
조령오녀(趙靈吳女)
초고리후(楚考李后)
조도창후(趙悼倡后)
◼속열녀전(續列女傳)
주교부인(周郊婦人)
진국변녀(陳國辯女)
왕손씨모(王孫氏母)
왕릉지모(王陵之母)
장탕지모(張湯之母)
준불의모(雋不疑母)
한양부인(漢楊夫人)
한곽부인(漢霍夫人)
엄연년모(嚴延年母)
한풍소의(漢馮昭儀)
왕장처녀(王章妻女)
반녀첩여(班女婕妤)
조비연자제(趙飛燕姊娣)
효평왕후(孝平王后)
경시부인(更始夫人)
양홍지처(梁鴻之妻)
명덕마후(明德馬后)
양부인예(梁夫人嫕)
▶️ 楚(초나라 초/회초리 초)는 형성문자로 椘(초), 檚(초)는 통자(通字)이다. 옛 모양은 도끼로 작은 나무를 베고 있는 모양을 나타낸다. 楚(초)는 많은 나무를 뜻하는 林(림)과 음(音)을 나타내며 동시에 많은 뜻(叢; 총)을 가지는 疋(필)로 이루어지며, 잘라 모아진 작은 나무의 뜻이다. 그래서 楚(초)는 (1)중국 춘추전국시대의 나라. 양자강(揚子江) 중류의 유역에 근거한 나라로, 춘추 초엽에 무왕(武王)이 이웃 지역을 정복한 뒤부터 발전함. 장왕(莊王) 때, 제(齋)나라의 환공(桓公), 진(晉)나라의 문공(文公)에 이어 패자(覇者)가 됨. 한때 오(吳)나라의 공격을 받아 쇠했으나 다시 세력을 회복하여 전국칠웅(戰國七雄)의 하나가 됨. 후에 진(泰)나라에 멸망됨 (2)중국 5대십국(五代十國)의 하나. 호남(湖南)과 광서(廣西)를 영토로 하여 마은(馬殷)이 세움. 차(茶)의 재배로 거부(巨富)가 되었는데, 뒤에 내분으로 분열하여, 남당(南唐)에 망함. (3)중국에서 북송(北宋)이 망한 후 1127년에 금(金)나라가 세운 나라 (4)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초(楚)나라, 나라의 이름 ②회초리 ③가시나무 ④매(사람이나 동물을 때리는 막대기, 방망이 따위) ⑤아름다운 모양 ⑥우거진 모양 ⑦매질하다 ⑧아프다 ⑨괴롭다 ⑩늘어놓다 ⑪산뜻하다 ⑫곱다 ⑬우거지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초나라의 노래를 초가(楚歌), 어떤 범위의 밖에 존재함을 초재(楚在), 가시나무가 무성한 거친 땅을 초지(楚地), 아프고 괴로움을 초통(楚痛), 꼬리가 긴 초나라의 닭으로 변변치 못한 물건을 이르는 말을 초계(楚鷄), 초나라와 월나라라는 뜻으로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 아무 상관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초월(楚越),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림을 초달(楚撻),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리는 벌을 초벌(楚罰), 사람이나 짐승을 때리는 데 쓰는 매를 추초(菙楚), 간난과 고초로 고생이 심함을 간초(艱楚), 억울하게 당하는 고초를 원초(冤楚), 슬프고 가슴 아픔을 비초(悲楚), 몹시 슬프고 괴로움을 통초(慟楚), 말쑥하고 조출함을 청초(淸楚), 심히 아프고 괴로움을 통초(痛楚), 뭇사람 가운데에서 뛰어남 또는 그 사람을 교초(翹楚), 종아리채 또는 종아리를 침을 추초(箠楚), 초나라 왕비가 부를 지킨다는 뜻으로 명분에 사로잡혀 실을 잃음을 이르는 말을 초비수부(楚妃守符), 사방에서 들리는 초나라의 노래라는 뜻으로 적에게 둘러싸인 상태나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고립 상태에 빠짐을 일컫는 말을 사면초가(四面楚歌), 제나라와 초나라 사이라는 뜻으로 약한 자가 강한 자들 사이에 끼여 괴로움을 받는다는 말을 간어제초(間於齊楚), 나릇을 북쪽으로 향하게 해 놓고 남쪽인 초나라로 가려 한다는 뜻으로 의도하는 바와 행하는 바가 서로 어긋난다는 말을 북원적초(北轅適楚) 등에 쓰인다.
▶️ 妃(왕비 비, 짝지을 배)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계집 녀(女; 여자)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同時)에 짝짓다의 뜻을 나타내기 위한 己(기, 비)로 이루어졌다. 배우(配偶)의 여성, 왕비의 뜻이다. ❷회의문자로 妃자는 '왕비'나 '태자의 아내', '배우자'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妃자는 女(여자 여)자와 己(자기 기)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하지만 갑골문에서는 己자가 아닌 巳(뱀 사)자가 쓰였었다. 巳자는 웅크리고 있는 태아를 그린 것이다. 여기에 女자가 더해진 妃자는 여자가 태아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妃자는 본래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아내'를 뜻했었다. 그러나 금문으로 넘어오면서 巳자는 己자로 바뀌게 되었고 배우자가 아닌 황제의 첩이나 태자의 아내를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그래서 妃(비, 배)는 (1)임금의 아내 (2)황태자(皇太子)의 아내 등의 뜻으로 ①왕비(王妃), 왕후(王后) ②아내, 배우자(配偶者) ③태자(太子)의 아내 ④여신(女神)의 존칭(尊稱) 그리고 ⓐ짝짓다(배) ⓑ배합하다(配合--)(배) ⓒ보좌하다(補佐ㆍ輔佐--)(배)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배우자를 달리 이르는 말을 비우(妃耦), 왕비와 궁녀를 비빈(妃嬪), 왕비로 간택된 아가씨를 높이어 이르던 말을 비씨(妃氏), 임금의 아내를 왕비(王妃), 제왕의 배필을 후비(后妃), 어진 왕비를 현비(賢妃), 선왕의 후비를 대비(大妃), 옥 같이 어여쁜 후궁을 옥비(玉妃), 황제의 아내를 황비(皇妃), 왕비를 봉함을 봉비(封妃), 임금의 정실을 원비(元妃), 왕의 정실인 왕비를 정비(正妃), 왕비에 대하여 임금의 첩을 이르는 말을 방비(傍妃), 아리따운 여자를 원비(媛妃), 부왕이나 모후의 상중에 왕비를 맞아들이는 일을 일컫는 말을 상중납비(喪中納妃), 왕의, 살아 있는 할머니를 지칭하는 말을 대왕대비(大王大妃), 초나라 왕비가 부符를 지킨다는 뜻으로 명분에 사로잡혀 실實을 잃음을 이르는 말을 초비수부(楚妃守符) 등에 쓰인다.
▶️ 守(지킬 수)는 ❶회의문자로 垨(수)는 동자(同字)이다. 갓머리(宀; 집, 집 안)部의 관청에서 법도(寸; 손, 손으로 꽉 잡는 일, 또는 치수, 규칙)에 따라 일을 한다는 뜻이 합(合)하여 직무를 지킨다는 데서 지키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守자는 '지키다'나 '다스리다' 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守자는 宀(집 면)자와 寸(마디 촌)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寸자는 又(또 우)자에 점을 찍은 것으로 ‘법도’라는 뜻을 갖고 있다. 금문에 나온 守자를 보면 집안에 寸자가 그려져 있었다. 마치 손톱을 날카롭게 세운 듯한 모습이다. 이것은 집을 '지킨다'라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守자는 본래 '보호하다'나 '지키다'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후에 寸자가 가지고 있는 '법도'라는 의미가 확대되면서 '다스리다'라는 뜻도 갖게 되었다. 그래서 守(수)는 (1)조선시대 때 관계(官階)가 낮은 사람을 높은 직위에 앉혔을 경우에 관계와 관직 사이에 넣어서 부르던 말. 가령 종2품(從二品)인 가선 대부다 정2품(正二品)직인 이조판서(吏曹判書)가 된다고 하면 가선대부 수 이조판서(嘉善大夫守吏曹判書)라고 서칭(書稱) (2)조선시대 종친부(宗親府)에 두었던 정4품(正四品) 벼슬. 왕자군(王子君)의 증손(曾孫)들에게 주었음 (3)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지키다, 다스리다 ②머무르다 ③기다리다 ④거두다, 손에 넣다 ⑤청하다, 요구하다 ⑥지키는 사람 ⑦직무, 직책(職責), 임무(任務) ⑧벼슬의 지위는 낮고 관직은 높음을 나타내는 말 ⑨지방 장관(지방에 파견되어 그 곳을 지키는 일이나 사람) ⑩정조(貞操), 지조, 절개(節槪) ⑪임시, 가짜 ⑫벼슬의 이름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지킬 보(保), 막을 방(防), 좇을 준(遵), 지킬 위(衛),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칠 격(擊), 칠 공(攻)이다. 용례로는 지키고 보호함을 수호(守護), 절개를 지킴을 수절(守節), 일정한 지역이나 진지 등을 적의 침입으로부터 지키어 방비함을 수비(守備), 적을 맞아 지키는 형세 또는 힘이 부쳐서 밀리는 형세를 수세(守勢), 진보적인 것을 따르지 않고 예부터 내려오는 관습을 따름을 수구(守舊), 건물이나 물건 등을 맡아서 지킴을 수직(守直), 행동이나 절차에 관하여 지켜야 할 사항을 정한 규칙을 수칙(守則), 법을 준수함을 수법(守法), 보기 위하여 지킴으로 관청이나 회사 등의 경비를 맡아 봄 또는 맡아보는 사람을 수위(守衛), 적의 공격 등을 막기 위하여 산성을 지킴을 수성(守城), 그대로 좇아 지킴을 준수(遵守), 보전하여 지킴을 보수(保守), 굳게 지킴을 고수(固守), 죽음을 무릅쓰고 지킴을 사수(死守), 공격과 수비를 공수(攻守), 후퇴하여 수비함을 퇴수(退守), 망을 봄으로 또는 그런 사람으로 교도소에서 죄수의 감독과 사무에 종사하는 사람을 간수(看守), 경계하여 지키는 것 또는 그 사람을 파수(把守), 완강하게 지킴을 완수(頑守), 튼튼하게 지킴을 견수(堅守), 감독하고 지킴 또는 그런 사람을 감수(監守), 규칙이나 명령 등을 그대로 좇아서 지킴을 순수(循守), 중요한 곳을 굳게 지킴을 액수(扼守), 혼자서 지킴으로 과부로 지냄을 독수(獨守), 엄하게 지킴으로 어기지 않고 꼭 지킴을 엄수(嚴守), 행실이나 말을 제 스스로 조심하여 지킴을 자수(自守), 그루터기를 지켜 토끼를 기다린다는 뜻으로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어 구습과 전례만 고집함을 일컫는 말을 수주대토(守株待兔), 입 다물기를 병마개 막듯이 하라는 뜻으로 비밀을 남에게 말하지 말라는 말을 수구여병(守口如甁), 사람의 도리를 지키면 뜻이 가득 차고 군자의 도를 지키면 뜻이 편안함을 일컫는 말을 수진지만(守眞志滿), 묵적의 지킴이라는 뜻으로 성의 수비가 굳세고 튼튼함을 이르는 말 또는 자기 의견이나 주장을 굳이 지킴을 일컫는 말을 묵적지수(墨翟之守), 빈방에서 혼자 잠이란 뜻으로 부부가 서로 별거하여 여자가 남편 없이 혼자 지냄을 뜻하는 말을 독수공방(獨守空房), 세 마리의 말을 타고 오는 수령이라는 뜻으로 재물에 욕심이 없는 깨끗한 관리 즉 청백리를 이르는 말을 삼마태수(三馬太守), 나라를 세우는 일과 나라를 지켜 나가는 일이라는 뜻으로 어떤 일을 시작하기는 쉬우나 이룬 것을 지키기는 어렵다는 뜻을 이르는 말을 창업수성(創業守成), 도리에 어긋나는 행위로 빼앗고 도리에 순종하여 지킴을 일컫는 말을 역취순수(逆取順守) 등에 쓰인다.
▶️ 符(부호 부)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대 죽(竹; 대나무)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붙인다는 뜻을 가진 付(부)로 이루어졌다. 맞붙여 증거를 확인하는 부절(符節)을 말한다. ❷형성문자로 符자는 '부호'나 '기호', '증표'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符자는 竹(대나무 죽)자와 付(줄 부)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付자는 누군가에게 물건을 건네주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주다'는 뜻이 있다. 符자는 본래 병력을 이동하는 데 쓰였던 '증표'를 뜻했었다. 고대에는 상급기관이나 국왕의 병부가 있어야만 병력을 이동할 수 있었다. 符자는 그 병부를 뜻하는 글자로 '대나무로 만든 병부를 주다'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병부에는 특수한 기호가 있어서 진위를 확인 할 수 있었다. 그래서 符자는 후에 '기호'나 '부호', '공문'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符(부)는 ①부호(符號), 기호(記號) ②증거(證據), 증표(證票) ③부적(符籍) ④예언서(豫言書), 미래기(未來記) ⑤도장(圖章) ⑥부절(符節: 돌이나 대나무·옥 따위로 만들어 신표로 삼던 물건) ⑦조짐(兆朕), 징조(徵兆) ⑧법(法), 법도(法度), 규율(規律) ⑨씨방 ⑩껍질 ⑪귀목초(대나무의 일종) ⑫공문(公文) ⑬나타난, 드러난 ⑭들어맞다, 부합하다(들어맞듯 사물이나 현상이 서로 꼭 들어맞다) ⑮명령하다 ⑯확실히, 틀림없이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틀림없이 서로 꼭 들어맞음을 부합(符合), 일정한 뜻을 나타내기 위하여 정한 기호를 부호(符號), 악귀나 잡신을 쫓고 재앙을 물리치기 위하여 붉은색으로 야릇한 글이나 그림을 그린 종이를 부적(符籍), 길흉화복이나 흥망 등 뒷날에 나타날 일을 미리 알아서 해석하기 어렵게 비밀로 적어놓은 글을 부참(符讖), 뒷날에 나타날 일을 미리 알아서 남모르게 적어 놓은 글을 부서(符書), 음표의 검거나 흰 둥근 부분을 부두(符頭), 음표기둥에 꼬부려 덧붙이는 줄을 부미(符尾), 어떤 증표를 찢거나 나누어 서로 지니다가 뒷날 맞추어 증거로 삼은 물건을 부신(符信), 믿음이나 부처나 신령에 통함을 부응(符應), 좋지 않은 일에 어울려 한통속이 됨을 부동(符同), 서로 들어맞음을 상부(相符), 보배로운 부적을 보부(寶符), 악보에서 소리를 내지 않고 쉬는 사이를 나타내는 표를 휴부(休符), 부호가 같음을 동부(同符), 이름과 실상이 서로 들어맞음을 일컫는 말을 명실상부(名實相符), 부절을 맞추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꼭 들어맞아 조금도 틀리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약합부절(若合符節), 초나라 왕비가 부를 지킨다는 뜻으로 명분에 사로잡혀 실을 잃음을 일컫는 말을 초비수부(楚妃守符), 부절을 맞추는 것과 같이 사물이 꼭 들어맞음을 일컫는 말을 여합부절(如合符節)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