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mooria - 23 추억으로 변해가는 발렌타인 데이
민서우
- 23
린은 곧장 냉동실 문을 열어 안을 확인했다. 아니나 다를까, 유리가 얼리려고 넣어놓은 초콜렛 틀이 두 개가 들어있는 게 아닌가. 틀을 다시 냉동실에 넣으려던 린은 멈칫했다. 화이트로 적힌 초콜렛을 줄 사람의 이름들.
그 이름들 중 하나에는 <린 언니> 라고 분명하게 적혀 있었다. 그 린이 자신을 가리키는 말임을 알아차린 린은 멍하니 냉동고에서 다 언 초콜렛을 바라봤다.
아몬드 가루와 호두 가루, 슈가와 미니하트, 레인보우꽃 등 다양한 장식으로 꾸며진 흑색의 초콜렛. 작고 귀여운 것이 한 입에 쏙 들어갈 크기여서 먹기가 아까울 정도다.
나 상처 있는 거 알면서 만들었다면, 그 상처를 치유해주기 위해서. 유리, 넌 마음이 너무 예뻐서 탈이야. 정말 맛있어 보인다. 나 때문에 고생 했을 유리 널 위해서, 이번 60만원은 그냥 넘어갈게. 케이와 레인도 힘들었을 것 같으니까.
초콜렛이 들어 있는 틀을 냉동고에 넣은 린은 냉장실까지 보면서, 세세하게 확인한 뒤 식당을 나와 2층으로 올라갔다. 정리를 막 끝낸 레인과 케이가 뒤를 이었다. 계단을 올라가며 레인이 뒤따라오는 케이에게 입 모양으로 묻는다.
‘우리만 태워주고 간다 하지 않았어?’
‘분명히 그랬어. 근데 그게 다가 아니었나봐. 도대체 왜 저래?’
‘내가 아냐.’
말을 남기고 자신의 방에 들어가 무라마사를 풀어놓고 다시 나오는 케인. 어깨를 으쓱인 레인은 린과 함께 유리의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 구석구석 훑어보는 린의 모습을 보며, 케이와 레인이 동시에 그녀를 부른다.
도대체 왜 저래?
“린.”
그들의 물음에 린은 시선으로는 방 안을 살피며 말했다.
“이상했어. 식당을 둘러봤을 때, 60만원 가까이 산 것치고는 양이 너무 적었거든. 그리고 현재의 물가로 따졌을 때 식료품을 아무리 많이 사도 60만원이 안 나와. 냉장고를 살펴봤을 때는 30만원이 조금 안 되는 것 같았어. 즉 또 다른 30만 원짜리의 뭔가를 같이 샀다는 뜻이야. 뭘 샀는지 살피는 중이니까 너희도 한 번 찾아봐줄래? 지금까지 유리가 갖고 있던 것과는 다른 게 나올 테니.”
케이와 레인도 움직였다. 갚아야 할 금액이기에 더 하다. 아직 안 들어서 모르는 거지만 린은 이미 60만원 상당에 대한 마음을 접었다. 한참 위쪽을 살피던 레인은 몸을 숙여 침대 아래를 살폈다. 그러다가 뭔가를 발견했다.
침대 밑에 놓인 얇고 긴 종이 상자가 하나. 저게 뭐지? 레인은 손을 뻗어 상자를 잡아 앞으로 빼냈다.
“어! 저게 뭐야?”
레인이 상자 안의 무언가를 빼내며 바닥에 철푸덕 앉았다. 린과 케이도 바닥에 앉는다. 백색 구슬이 위에 달린 그것은 마치 지팡이 같았다. 까만 흑색에 용무늬가 그려진 지팡이.
“지팡이지, 이거. 지팡이 같은데?”
케이의 물음에 린이 레인이 들고 있는 지팡이를 잠시 받아서 쥐어보았다. 그리고 순간. 지팡이에서 엄청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엄청난 빛이라서 눈을 뜨지 못 하는 린과 케이, 그리고 레인이었다.
지팡이에서 뿜어진 빛은 약 10초가량 유리의 방안을 감싼 뒤 사라졌다. 빛이 사라진 느낌이 들자 린과 케이, 레인은 눈을 가렸던 팔을 내렸다. 빛이 사라진 뒤의 지팡이는 흑색이 아닌 밝은 옥색을 띄고 있었다.
“아까 그 빛은 뭐지?”
“어? 색이 바뀌었는데?”
“있었어. 실제로 있었어.”
케이와 레인이 이구동성으로 물었고, 린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멍하니 넋이 나간 린의 어깨를 잡고 케이가 흔들었다.
“린? 정신 차리고 설명 좀 해줘봐.”
“응? 아아, 응!”
케이의 도움으로 정신을 차린 린은 지팡이를 보면서 설명을 시작했다.
“이 지팡이의 이름은 ‘선도의 지팡이’ 야. 다른 사람들을 이끄는 통솔력을 가진 자를 바른 길로 인도해준다는 설이 있어. 오래 전에 이 지팡이를 마지막으로 가진 항해사와 함께 바다에 빠졌다고 들었는데….”
“그럼 보물이야?”
또 다시 터지는 케이와 레인의 이구동성. 요도 무라마사 다음으로 두 번째로 일행의 손에 들어오는 보물이라고 할 수 있다. 린은 지팡이를 양손으로 부드럽게 끌어안듯 잡으면서 대답했다.
1경을 준다 해도 못 바꿀 가치의 보물을 유리는 불과 30만원에 사 왔다. 보물을 모르는 자들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응.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보물이라고 할 수 있어. 이 선도의 지팡이도 무라마사처럼 주인을 가려서 정하거든? 아무래도 유리한테는 통솔력이 조금 모자랐던 모양이야. 이 색은 지팡이가 원한 사람의 손에 들어갔을 때 나오는 색이라고 해. 바다에 잠긴 지 꽤 오래 됐지.”
“그럼 넌 어떻게 알아?”
케이의 물음에 린은 뜻 모를 조소를 지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물음인 건지.
“내가 괜히 탐정이겠어? 지구의 보물에 대해서는 꽉 잡고 있다고.”
당당함이 돋보이는 뻐기는 말투! 어떻게 보면 뻔뻔하다.
“으음-.”
어? 유리 깼다.
열린 방문 너머로 1층의 유리 소리가 들려왔다. 이젠 다 같이 초콜렛을 먹어볼 차례.
린은 자신의 손으로 넘어온 지팡이를 잘 놓아둔 후 케이, 레인과 함께 1층 자신의 침실로 내려갔다. 방에서 막 나오는 유리를 1층에 내려온 린과 케이, 레인이 반긴다.
“잘 잤어?”
“어? 린 언니, 언제 왔어?”
“아까. 너 초콜렛 얼리고 있더라? 내 이름도 있는 거 봤어. 어디, 맛 좀 볼까?”
“…!!”
린의 말에 유리는 입을 쩍하니 벌렸다.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해~~~ 난 분명히 놀라게 해주려고 그랬는데~~~~ 이게 뭐야, 이미 들켰잖아~~~~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하다는 얼굴이네? 식당 정리를 하나도 안 해놨더라? 초콜렛은 피곤한 사람들에게 딱 좋은 피로회복제야. 자. 어서 먹자.”
피로회복제? 그거 좋지. 어서 먹어보자고.
린이 먼저 식당으로 들어가고 케이와 레인이 이었다. 서울역에 갔다가 원치 않는 고생을 한 덕에 많이 지친 상태의 케이와 레인에게, 린의 얘기는 딱 알맞은 소식이었다.
하지만 유리는 달랐다.
아, 안 돼! 안 돼~~~ 포장지까지 다 준비를 해놨단 말이야~~~ 포장지를 산 의미가 없어지잖아~~~
유리는 부리나케 몸을 날려 식당으로 들어가려는 셋을 막고 섰다.
“앗, 잠깐만요~!”
“…?”
쾅-
유리의 힘에 의해 닫혀버리는 문. 식당에 들어갈 수 없게 된 린과 케이, 레인은 유리를 정면으로 보고 섰다.
“나, 포장하는 것만 하게 해줘요. 마무리는 해야 하니까.”
셋은 서로를 보고 섰다. 잠깐 떨어져 있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린은 케이와 레인의 눈을 보고 얘기하는 게 훨씬 자연스러워졌다.
“어떻게 하지?”
“이왕 알아차린 거 포장만 하라고 할까?”
“그럼 그럴까?”
결론은 이내 나왔다. 고개를 끄덕인 린과 케이, 레인은 거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포장만 해~”
“응!”
유리는 싱글싱글 웃으며 식당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포장 다 했어요~!”
유리는 여섯 개의 포장된 초콜렛을 갖고 거실로 나왔다.
“케이는 단 걸 안 좋아해서 생크림만 넣었어. 너무 쓰지 않게. 그리고 린 언니는 설탕 좀 넣었고요. 탐정 활동 한다고 몸 관리 제대로 못 하는 거 같아서, 아몬드와 호두 가루 듬뿍 넣었어요. 레인은 단 걸 좋아해서 데코레이션 특히 더 신경을 썼어. 린 언니, 김 대표님이랑 민 비서님 드릴 것도 준비를 했거든요.”
“김 대표는 내가 직접 전해줄 수 있지만 민 비서는……. 알았어.”
린은 고민 끝에 알았다는 대답과 함께 세 개의 초콜렛 상자를 받았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으로 된 초콜렛 상자를 열었다. 네 개의 초콜렛이 올망졸망 모여있는 모습이 보기 좋은 듯, 린은 살짝 웃었다.
네 개 중의 하나의 초콜렛을 먹어보는 린. 케이와 레인과 유리의 시선이 린의 움직이는 볼로 향하는 가운데-
어? 맛있는데? 유리의 실력이 안 좋다고 해서 기대를 별로 안 했더니. 맛있다. 잘 만들었네? 유리의 정성이 가득 담긴 초콜렛이니까 더 맛있는 것 같아.
“맛있어! 잘 만들었네, 유리. 고마워. 날 위해주고 생각해주는 유리의 마음, 고맙게 받을게. 지금까지의 발렌타인 데이는 없었던 일로 아예 만들 수는 없겠지만, 묻어둘 수는 있을 거야. 잊을 수도 있겠지? 그리고 유리의 발렌타인 데이만 추억으로 기억으로 남길 수 있게 노력해볼게.”
“언니-!”
린의 감사담긴 말에 감동 받은 유리는 린에게 확 달려들었고, 또 하나의 초콜렛을 손에 든 린은 깜짝 놀라 떨어트릴 뻔 했다.
“어우, 유리! 떨어트릴 뻔 했어!”
품에 안긴 유리를 토닥여주며 린은 손에 쥔 초콜렛을 입에 넣었다.
“고마워!”
Ace.Star.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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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어흥, 그런데 1경은 너무한듯 ㅇ<-<
하핫, 그런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