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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부르즈에 같이갔던 팀이 킬리만자로 등정에 성공한것을 보면서 다리부상으로 이제는 추억으로만 간직해야될 아쉬움에
2년전 내 온몸을 살랐던 등반기를 사진몇장과 함께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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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부르즈 정상
정상등정사진
등반기를 올림리다
*** 나는 엘부르즈로 간다 ***
1.준비 :
3월에 엘부르즈원정대에 참여할까 하는 얘기를 신중갑 선생님과 나눈다.
60을 바라보는 나이에 좀 무모한 도전일까를 생각하며 젊은 친구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을까 두렵기도 했다.
4월에 원정에 참여하겠다고 확답을 한 뒤로 2주에 한번씩 하는 합동훈련에 참여하고 훈련이 없는 주말에는 나 혼자서 훈련 삼아 계속 산행을 했다.
주중에는 2회씩 런닝 머신을 뛰고, 20대 제자들과 남산을 뛰고, 양재천을 같이 뛰었다. 그리고 올림픽공원 산책로를 속보로 걷고, 또 성내천을 뛰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서서히 머릿속에는 엘부르즈의 설산을 걷는 이미지가 잡히기 시작하는데 두려운 마음 또한 한구석에서 계속 떠나지 않고 있었다.
2.출발 : 첫째날, 8월4일(토)
드디어 출발이다. 큰 짐 100리터 카고백은 1주전에 원정대원중 한명의 사무실에 모여서 준비해 놓고, 작은 배낭에 나머지 짐들을 꾸리면서 몇 번을 확인 하고 또 확인 한다. 그래도 한 두가지는 빠뜨리고 출발했다.
출발 전날 테니스회원들과 가볍게 맥주한잔을 하고 돌아와 자리에 누웠으나 쉽게 잠이 오지 않는다. 어린 시절 소풍가기 전날의 설렘하고는 좀 다른 어떤 기대감이나 고산 등정에 대한 부담이 아닐까.....
6시에 일어나 공항버스를 타고 9시쯤 도착하니 내가 일등으로 도착했다.
환송 나온 중동산악회 회원들과 가족들 응원 속에 결의를 다지고 출국한다.
러시아 항공은 우리나라 비행기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두 번의 기내식은 내가 열흘 동안 어떤 식사를 해야 되는지 짐작케 한다. 잠을 잘려고 맥주를 달라고 하니 돈을 준 뒤에야 갖다 준다.
반쯤 자고 반쯤 깨면서 9시간의 비행 후에 도착한 모스크바는 동토의 땅이 아니라 무더운 여름이다. 공항 밖으로 나오니 정면의 제일 큰 광고판에 현대의 에쿠우스와 산타페 선전판이다. 또 호텔 셔틀 버스를 타고 가는데 도로의 중앙아치선전판에는 삼성 갤럭시의 광고판이 보인다. 우리나라의 국력이 이 정도인가 놀랍다.
호텔에 도착하니 큰 짐을 내리는데도 종업원이 나와 보지도 않는다. 이들 러시아인들의 자존심인가? (이건 서비스인데 이상하다) 무거운 짐들을 대형 행거로 각자의 객실로 날라놓고 호텔 밖으로 나와 보니 자작나무숲이 바로 옆이다. 내가 드디어 몇 달을 몸만들기를 하면서 갈망하던 러시아 땅에 온 것인가 !!!!!
위도가 높아서 인지 백야는 아니라도 오후 9시인데도 훤하다. 러시아에서의 첫날, 쉽게 잠이 오지 않는다.
3.도착 : 둘째날, 8월5일(일)
아침 일찍 어제 도착했던 세리메티예보 공항에 나와서 미네랄 보디행 비행기를 탄다. 2시간의 비행으로 메네랄 보디에 도착하면서 비행기에서 본 이곳은 광활한 토지에 바둑판처럼 잘 구획된 농토에는 노란색(해바라기밭)과 갈색(옥수수밭)천지다.
미네랄보디공항 출국장은 시골시외버스 대합실처럼 궁색하다. 짐을 찾으며 한 개를 흘리는 헤프닝 속에 우리를 맞이하는 가이드는 벌써 몇 팀을 안내했는지 자외선에 코가 빨갛게 익었다.
30년은 됨직한 승합차에 짐을 싣고 나는 더 낡은 승용차에 타고 출발한다.
무려 3시간을 가면서 지평선으로 보이는 광활한 농토에 눈을 떼지 못한다.
이곳은 대부분의 주민이 무슬림으로 소가 도로를 점령해도 쫓지 않고 천천히 피해간다. 광활한 평야지대를 달리다가 계곡으로 들어서서 한시간을 달리는데 물이 회색 빛깔이다. 높은 산의 빙하가 녹아서 흐르는 물인데 우리의 홍수와 같이 흐른다. 도착한 테스콜의 숙소는 큰 소나무 숲속의 산장 같은 집이다.
4.적응 : 셋째날, 8월6일(월)--- 첫번째 고소적응
숲속의 숙소는 밤에는 창문을 닫고 이불을 덮었지만 옷을 하나 더 꺼내 입고 잘 만큼 공기도 맑고 시원하다.
아침식사 후 가벼운 차림으로 고소적응을 위하여 테스콜 마을을 지나 산으로 접어든다. 마을의 끝자락을 지나면서 소나 양의 외양간을 지나는데 냄새가 고약하다.
산길에는 야생화가 우리나라에서 보던 것과는 다른 꽃들인데 너무 아름답다.
우리가 너무 잘 따라가니 가이드 블라드 미르는 갑자기 가파르게 직상길을 택해 힘들게 한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데 옆으로는 서양의 청춘남녀가 윗통을 벗고 일광욕을 하면서 간다. 여자도 위는 비키니 차림이다. 자유분방한 그들이 부럽다. 천천히 걸어 댕기머리 폭포에 이르니 아가씨는 바지도 벗고 위 아래 비키니 차림으로 폭포 속으로 들어가서 포즈를 취한다. 우리도 열심히 사진을 찍는다.
해발 2800을 넘으니 걷는데 숨쉬기가 조금 힘들다. 천천히 숨을 크게 쉬고 속도를 늦추며 자연의 순리를 따르며 걷는다.
오늘의 목적지인 테스콜 피크(3100)에는 둥그런 천문기상대 같은 것이 있다.
첫 번째의 고소에 나름대로 적응을 해가는 것 같아 구름에 가린 엘부르즈를 향해 마음속으로 빌어본다. 엘부르즈 신에게 내 등반을 허락해 달라고 기도한다....
하산 길도 천천히 내 몸을 적응시키면서 걸어 내려온다. 도착한 체스콜 마을의 까페(술과음식)에서 늦은 점심을 먹는데 이곳 사람들은 샤슬릭을 굽는데 쓰이는 페치카에서 불을 쬐는 사람들이 있다.(움직이지 않고 있으면 그늘은 서늘하다)
천천히 숙소로 돌아오면서 이곳의 장비점에 들러본다. 장비점은 세븐 서미트(7대륙최고봉)등정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전문상업등반대의 안내장을 보여 준다. 이런 힘든 등반을 팀웍이 아닌 개인적으로 등반을 하는지 조금은 이해가 안 된다.
숲속의 숙소 앞에서 맑은 공기를 마음껏 즐기고 늦은 저녁을 먹고 두 번째의 밤을 보낸다.
넷째날, 8월7일(화) --- 두번째 고소적응
며칠간의 빵,햄,치즈는 더 이상 내 위가 받아주지를 않는다. 간신히 한 조각씩만 먹고 차에 짐을 싣고 아자우 마을 리프트 승강장(2350)에 도착하여 짐을 싣고 두 번을 갈아타고 올라가니 마지막 리프트는 의자 하나만 있다. 몇 명이 올라가고 짐을 한 개씩 올리고 뒤에 사람이 다 올라가서 짐을 정리한다.
내린 곳에서 각자의 짐을 한 개씩 50미터를 옮기는데 10번을 쉬면서 간다. 이곳 바렐대피소가 3700 이니 3100까지 적응된 몸으로는 너무 힘 든다. 간신히 숙소에 들어오니 큰 깡통처럼 생긴 대피소 에는 나무판자위에 바닥에는 침구가 깔려있다.
이곳에서 4일을 보낼 생각하니 좀 답답하다. 하긴 이 위치에 이런 시설이 없었다면 등반하는데 훨씬 힘들고 며칠은 더 걸리겠지.....
간단한 점심 후에 2시부터 3중화에 아이젠(크램튼)을 착용하니 이젠 진짜 설산에 온 느낌이다. 가이드를 따라 천천히 호흡을 크게 하면서 퓨리웃 대피소(4100)까지 고도400을 올리는데 무려 3시간이 걸린다. 내려올 때도 천천히 적응하면서 내려오니 왕복 5시간 가까이 걸렸다. 돌아와서 머리가 아파 누워 자고 일어나니 더 아프다. 누군가가 고소에서 머리가 아플 때 누워있으면 더 아프다 하니 일어나서 조금씩 몸을 움직이니 괜찮아 진다.
저녁 식사에는 신대장이 가져온 깻잎과 장조림를 먹으니 입맛이 살아난다. 입맛이 생기니 머리 아픈 것도 없어지고 이 배럴의 높이에는 서서히 적응되어가는 듯하다.
이곳 배럴대피소에서의 첫 밤은 동계침낭인데도 새벽에 한기가 든다.
다섯째날, 8월8일(수) --- 세번째 고소적응
6시에 아침을 먹고 7시에 고소적응을 위한 세 번째의 산행을 나선다.
가이드는 고맙게도 어제보다 더 천천히 걷는다. 어제 올랐던 퓨리웃대피소 까지는 2시간도 안 걸렸다. 머리가 기억하는지, 근육이 기억하는지 적응 했던 곳 까지는 그리 어렵지 않게 올라왔다.
새로 경험하는 높이의 산행은 열 걸음을 세면서 옮기고 쉬고를 계속 반복하면서 힘들게 올라간다. 거의 탈진하다시피 올라간 파츠코프락(4600) 에는 갑자기 눈보라가 몰아친다. 고도 900을 올리는데 무려 6시간을 넘게 걸었다. 힘들게 올라온 곳에서 불과 10분도 못 쉬고 일어선다.
오늘 날씨가 좋았는지 이곳에는 정상을 등정한 사람들이 많이 내려오고 있다. 먼저 등정에 성공한 그들이 너무 부럽다. 등정자들은 이곳에서 설상차를 타려고 기다리고 우리는 적응을 위한 하산을 시작 한다.
하산 길에 가이드가 갑자기 속도를 높여 뒤에서 계속 멈추게 하면서 내려온다. 그래도 혼자 내빼니 우리끼리 휴식도 한다. 고소에서는 하산도 쉽지 않다. 힘든 하산을 하니 오후 4시다. 오늘 참 많이 걸었다.
휴식을 하던 중에 문자를 본 대원 한명이 홍명보호의 결승좌절을 알린다. 역시 브라질을 이기기는 힘든가 보다. 하지만 홍감독 현역시절에 일본에 진적이 없으니까 기대해 본다......
중년의 일본여자는 상업등반대에 참여하여 오늘 등정을 성공했다고 수다를 떤다.
맑은 하늘에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더니 계속해서 비가 내린다. 비가 미리오고 우리 등정일 에는 맑기만을 기대해 본다. 저녁식사 후의 좀 이른 잠자리는 피곤함에 비해 쉽게 잠들지 못한다.
5.휴식, 여섯 번째날, 8월 9일(목)
뒤척이다가 잠을 자는데 내가 어쩐 일인지 여인들만 사는 마을에 와 있다. 이곳에서 어느 여인이 자신의 두 딸을 나에게 맡기는 꿈을 꾸었다. 이상하다 요즘엔 거의 꿈을 꾼 적이 없는데.....
아! 나의 간절함이 두 봉우리를 거느린 엘부르즈 여신에게 통하여 정상을 허락하는게 아닌가 하는 나름대로의 해몽을 하면서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3일간의 고소적응 훈련 후 쉬는 날이다. 아침식사부터 우리가 가져온 반찬들과 누룽지 등을 끓여 먹으며 동봉,서봉을 모두 보여주는 엘부르즈를 카메라에 담는다. 제발 내일도 이 만큼만 보여 주소서 하면서 기원한다.....
아침 식사 후에 일본여자가 보여주는 등정사진을 곁눈으로 보면서 각 위치에서 시간들을 눈여겨 봐둔다. 이 여자 대단하지만 수다는 조금 거슬린다.
컨디션 조절을 위하여 낮잠도 조금씩 자고 산책도 하고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낸다. 이곳 3700의 높이는 완전히 적응이 되었는지 모든 것이 편하고 자유롭다. 출발 전 잠을 더 자기위하여 즐겨 마시던 커피도 마다하고 다른 차들로 아쉬움을 달랜다.
저녁을 누룽지를 끓여먹고 잠을 푹 자기위하여 액체로 된 귀미테를 바르고 일찍 잠자리에 든다. 조금 뒤척이면서 자는데 누군가가 12시 30분 이라고 기상 시킨다. 좀 더 자리에 뒤척이다가 일어난다.
6.정상등정, 일곱 번째날 8월 10일(금)
1시가 되어 일어나 식당으로 향하는데 비가 많이 내린다. 이곳의 날씨는 변덕이 심하니 조금 오다 그치겠지 하면서 누릉지 끓인 것을 조금만 먹고 나오니 비는 더 심해졌다.
긴 시간의 산행준비를 꼼꼼하게 하고 3중화를 신고 아이젠을 착용하고 있으니 가이드는 출발을 한 시간 늦춘다고 한다. 완전무장(?) 한 채로 군대에서의 5분대기조처럼 침상에 누워 기다린다.
3시10분전 드디어 출발이다. 비를 맞으며 설상차에 오르니 2일전에 6시간 걸려 올라왔던 파츠코프락(4600)에 40분만에 도착한다.
설상차에서 내리니 비는 눈으로 변했지만 바람은 다행히 심하지 않다. 가이드를 선두로 한발 한발 올라간다. 경사가 급한지 지그재그로 천천히 올라간다. 지금은 내딛는 한 발자국 마다 나에게는 처음 오르는 고도가 아닌가.
그렇게 한 시간 가량 올라서 눈 위에 쉬고 또 한 시간 가량 걸어 올라서 쉬는데 이제 고도 5000 이란다. 이젠 날이 밝아 헤드랜턴을 빼고 선글라스를 쓰니 스노우 샤워에 눈이 안으로 들어와 쓸 수가 없다. 해는 떠 올랐는데 내리는 눈으로 빛을 가려주니 그대로 걷기로 한다.
이쯤에서는 가이드가 난리다. 한사람 처질 때 마다 가이드 한사람씩 붙으니 두 명이처지니 자기 혼자서 8명을 끌고 갈 수는 없다고 난리다. 이러는 중에 뒤처졌던 한대원이 따라붙어 다가와 울먹인다. 자기 때문에 정상등정에 문제가 생기면 하는 걱정에 눈물을 보이며 울먹인다. 이대로 가다가 한사람 이 더 처지면 4명씩 2개조로 나눌테니 그대로 가자고 경험 많은 신대장이 가이드를 어르고 달래어 출발한다. 이 사건이후로 정상까지 9명이 거의 1,2
미터 간격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걸었다.
고도가 높아지니 숨 한번 크게 쉬고 한 발짝 씩 걷는다. 우샤인볼트는 한번 숨 쉬고 백 미터를 달리는데 나는 간신히 한 발짝을 옮긴다.
숨이 턱에 닿아 앞사람의 발만 보고 걷는데 약간 우측으로 트레버스 하는데 끝도 없이 걷는다. 아마 동봉을 거의 다 돌아가야 되는가 보다. 트레버스 하는 길은 고도는 그리 높아지지 않는데 추락하면 끝이 보이지 않는다. 한번 더 쉬는 곳에서 고글을 꺼내어 쓰고 머리가 아프고 메슥거려 고소병 증세인 듯 하여 비상용으로 받은 비아그라 반쪽을 얼른 꺼내어 먹는다. 생애 처음 먹어 보는 비아그라는 효과가 있는지 조금 걸으니 상태가 호전된다. 이 때의 고도는 5300 이라고 한다.
계속해서 옆으로 트레버스를 하다 보니 어느덧 서봉의 시작점 안부인 섀들(5400)에 도착했다. 산행 시작 후 꼭 6시간만이다.
스틱을 접어 넣고 피켈로 바꾸고 더 긴장해서 올라가는데 각도가 엄청나다. 조금 더 가니 이젠 재우가 자일을 먼저 가지고 가서 고정한 후에 가이드가 한사람씩 확보해서 보낸다.
모두 다 위험지대를 오르니 평평한 지역이 나와 위를 보니 정상이 시야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배낭을 모두 벗고 카메라와 가져온 깃발만 들고 출발한다.
빈 몸으로 가면서 드디어 정상에 가는구나 생각하니 그동안 준비해온 온갖 일 들이 생각나 고글 속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정상을 향해 100미터쯤을 걸으면서 얼마나 많은 생각들이 스쳐가며 눈물이 멈추지를 않는다. 마치 40여년전 군 입대 할려고 탄 버스에서 나를 바라보며 눈물을 훔치던 가족을 뒤로 하고 보이지 않으면서 터졌던 눈물만큼 흐른다.
온갖 상념 속에서 도착한 정상에서는 그동안 마음고생이 많았던 신선생과 신대장을 붙들고 챙피한 줄도 모르고 소리 내어 울었다 60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 무슨 엉뚱한 울음인가......
그만큼 나에게는 엘부르즈가 에베레스트나 다름없이 힘들고 벅찬 일이었나 보다.
백두대간종주에, 설악산, 지리산종주, 웬만한 국내산은 거의 다 다니며 산행을 해왔고, 안나푸르나 트레킹도 다녀왔고, 일본 북알프스와 후지산도 올랐다. 내 산행의 정점인 여기 엘부르즈 정상까지 오게 되었다.
신장섭 회장과 모든 중동산악회 회원들과 그동안 산행을 함께 했던 나의 산행 친구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이렇게 힘든 산행을 하면서 생각한다. 내가 사랑 할 수 있는 것 들을 모두 사랑하며 살리라 다짐한다. 또 내가 용서 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
그렇게 갈망하던 정상에서는 그래도 날씨가 맑아 주변의 산맥들은 깨끗하게 보인다. 큰 산맥들에 둘러 쌓여 산들만 보이고 그 아래로는 구름이 가려 운해만 보인다. 정상 표지석은 뒤에 있어 그 뒤로는 천길 벼랑처럼 보인다.
설맹이 왔는지 내 카메라를 꺼내 찍으려니 도대체 보이지를 않는다. 내 카메라는 한 두 컷만 찍고 다른 대원들이 찍어주는 대로 여러장의 깃발을 들고 기념촬영을 한다.
정상에서는 10분정도 사진만 찍고 다른 사람들에게 양보하고 내려온다. 사진 촬영 후 배낭 있는 곳까지 내려와 집에서 가져간 내 아침식사인 미숫가루를 물에타서 마시고 원기를 회복한다. 많이 가져간 비상식들은 파워젤 만 세개 먹고 손도대지 못했다. 역시 늘 먹던 음식이 이런 위기 상황에서는 최고의 음식이다. 등정을 하고의 휴식은 꿀맛이다. 아 아직은 힘든 하산길이 남아있지 !!!!!
아쉬음을 뒤로하고 하산을 시작한다. 올라올 때 확보해둔 자일에 비너를 걸고 내려오는데 정말 가파르다. 내가 이 길을 어떻게 올라왔는지 모르겠다. 두 번째 위험구간에서는 자꾸 넘어져서 위험지대를 벗어난 지역에서는 넘어진 김에 앉아서 엉덩이 썰매를 타보는데 쉽지 않다. 가이드가 깜짝 놀라 자기 쪽으로 오라고 큰 소리로 난리다. 그래도 친절하게 피켈을 배낭에 끼워주고 스틱을 빼어 적절하게 조절해준다.
안부인 새들에 모두 모여 안 자일렌 상태로 하산하는데 신대장은 시간이 없으니 쉬지 말고 가자고 한다. 올라가는 것 보다는 쉽지만 체력의 90 퍼센트 이상을 썼으니 내려가는 길도 너무 힘들다.
트레버스 하는 길은 각도가 크지 않아 그런대로 내려갔는데 급한 내리막 에서는 날씨가 흐려지더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화이트 아웃 상태가 된다. 이런 곳에서 길을 찾지 못해 엉뚱한 곳으로 빠지면 조난 당한다. 가이드가 없이 내려가기는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우리팀은 30미터 자일에 모두 확보하고 앞사람만 따라간다. 그래도 내가 자꾸 넘어지니 가이드가 내 팔뚝을 잡고 부축하듯이 걷는다. 조금만 쉬면서 천천히 가면 완벽하게 내 힘으로 내려갈 수 있는데....
나는 내 체력을 모두 소모하면서 하산했다. 내려오는 길이 힘들긴 하지만 마지막에는 가이드의 부축도 마다하고 끝까지 내려왔다.
설상차 있는 곳까지 오니 드디어 내 산행을 자신의 힘으로 해 냈다는 자부심과 함께 긴장이 풀린다. 고글 속에서는 열이 나고 눈을 뜰 수 가없다.
눈을 뜰 수가 없어 감고 내려오는데 험한 날씨에 설상차도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 알 수가 없다.
도착하여 아이젠을 벗고 숙소로 돌아와 3중화 만 벗고 그대로 뻗어버린다.
한 시간쯤 옷 입은 채로 누워 있다가 나오니 엘부르즈 정상은 또 구름에 가려졌다. 구름 속에 숨어버린 저 엘부르즈 정상을 같다온 것이 꿈만 같다.
나의 등정을 허락해준 엘부르즈 신에게 마음속으로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저녁식사는 라면을 끓여 와서 조금만 먹었지만 정말 꿀맛이다. 다른 것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라면만 먹고 밖으로 나오니 해가 넘어가는지 조금 춥다.
식당에서 뜨거운 물을 수통에 담아 와 침낭 속에 넣는다.
조금 서성이 다가 침낭 속으로 들어가니 수통의 온기가 몸을 덥혀주어 포근하다. 침낭 속에서 길고 긴 오늘 하루를 생각하며 상념 속에 잠이 들었다.
7.하산 : 여덟번째 날, 8월 11일(토)
한 번도 안 깨고 9시간을 넘게 잤다. 새벽에 바람이 창문을 때리고 번개치고 천둥치면서 잠에서 깨었다. 오랜만에 아무 걱정 없이 길고 긴 편안한 잠을 잤다.
7시경에 일어나 그동안 4일을 묵었던 나무침상위에 요 하나 깔려있는 이곳 3700의 배럴대피소 에서 떠날 채비를 한다. 무슨 짐이 그리 많은지 카고백에 가득 찬다. 하기는 가져온 동계용 옷 까지 모두 사용했으니 짐이 많을 수밖에 .....
9시에 간단한 식사를 하고 우리의 등정 깃발에 모두 싸인을 하여 식당에 걸어둔다. 뒤에 오는 한국등반대는 우리 깃발을 보고 얼마나 반가울까 하면서 좋은 위치에 자릴 잡아 건다.
10시에 체어리프트에 짐을 보내고 타는데 역시 춥다. 앞에 보이는 웅장한 코카서스산맥을 보면서 그 아름다운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아쉬움을 달랜다. 등반이나 관광으로 올라오는 사람들도 추운지 어떤 사람은 담요를 온몸에 감았다.
3번의 리프트를 갈아 타면서 아자우 마을에 도착하니 주변의 차 나 마을이 정겹다. 전에 묵었던 숙소로 차를 타고 돌아왔다. 키를 받아들고 짐을 옮긴 후 5일만에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워있으니 먼 꿈나라에서 이제야 정상적인 내 삶으로 돌아 온 느낌이다.
가이드의 안내로 근처의 식당에서 스테이크를 먹는데 고기도 부드럽고 너무 맛있다. 식사 후 숙소의 시원한 나무그늘 아래서 숲속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맥주를 마시니 정말 행복하다. 젊은 시절 읽었던 어린왕자처럼 내가 마치 다른 유성에 불시착 한게 아닌가 생각이 들 만큼 이곳의 자연은 너무 좋다.
다른 사람의 핸드폰으로 일주일 만에 집으로 등정소식과 안부를 전한다.
저녁에는 이 마을의 광장 같은 곳에 있는 음식점에서 양고기 샤슬릭에 보드카로 정상 등정 축하 파티를 한다. 모두 기분이 들떠서 마음껏 마신다.
가이드도 기분이 좋은지 철제 기둥에서 턱걸이로 힘자랑을 한다. 가이드의 힘자랑에 오기가 생겨 술기운에 나도 턱걸이를 해 보지만 평소 같지 않다. 신선생도 턱걸이를 하는데 나보다 더 많이 한다.
정상에서 만났던 스페인팀이 옆자리에서 먹는다. 이들도 등정성공으로 한 껏 기분을 내며 술을 마시고 즐긴다. 고조된 기분으로 한 친구가 물구나무 서기를 하니 우리의 신대장은 더 잘 한다 .....초등학교때 기계체조 선수란다.
같은 목적으로 등반을 하는 사람들은 말은 잘 통하지 않지만 어느 나라 사람들 하고도 잘 어울린다. 그 목적이 순수하기 때문이 아니가 싶다. 너무 즐거운 파티에 거의 자정이 다 되었다.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지 맥주를 사가지고 숙소에 들어와 한잔씩 더 하고 기분 좋은 하루를 끝내고 잠자리에 든다.
8.피크닉 : 아홉 번째날 8월 12일(일)
맑은 숲속의 숙소에서 일어나니 기분이 상쾌하다. 간단한 아침을 먹고 장비점을 들르고, 계곡을 따라 걸어가면서 길가에 있는 산딸기를 따 먹는다. 우리 산에서 보는 것하고는 나무도 조금 다르고 열매도 조금 다르지만 산딸기임에는 틀림없다.
이곳의 유원지에 도착하니 온천물이 노천에 그대로 있다. 우리나라 같으면 누군가가 독점을 하고 온천장을 만들고 손님을 유치해서 장사를 할텐데.....
유원지의 모습은 어느 나라나 비슷하다. 말 타는곳, 음식점, 조그만 연못에 고기를 넣어놓고 낚시로 잡게 해서 구워주는 곳, 다양하다.
양어장에 같혀 있는 고기를 잡는 것이 유치한 생각이 들어 어제 저녁에 먹었던 양고기 샤슬릭에 맥주 한 잔씩 한다.
이것, 저것 구경을 하고 천천히 걸어서 올라오는데 이곳의 숲길은 너무 좋다. 울창한 나무에 조금 높은 곳에는 만년설이 보이고 사람들도 욕심 없이 편안해 보인다. 떠날 때가 되니 슬슬 이곳의 모든 것이 정이 들려고 한다. 시간이 있으면 이런 마을에서 일주 일 쯤 푹 쉬다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숙소가 있는 마을(체스콜)로 돌아온다.
이곳에도 일요일이니 관광객들이 많이 보인다. 임시 시장 같은 곳에서 털실로 직접 짜는 아주머니도 있고, 수완이 좋은 아주머니는 아주 간단한 영어를 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짐승 가죽을 내다 파는 곳을 보니 이곳이 겨울에는 얼마나 추운지 알 듯도 하다. 시장 구경을 하고 조금 이른 시간이지만 숙소에 돌아와 편안한 휴식을 취한다.
저녁식사에는 등반을 맡겼던 러시아 회사의 담당자가 참석하여 축하주를 한잔씩 주고 건배를 하는데 옆 테이블의 일본인들이 너무 시끄럽다. 저 들은 저희나라에서는 조용한데 밖에 나와서는 너무 떠든다.
식사 후에는 정상등정에 대한 등반증을 한사람씩 준다. 여하튼 기분 좋은 하루다.
숙소 밖으로 나오니 젊은 대원들이 서울에서 가져갔던 재료들을 이용해서 안주를 장만하고 있다. 신선생이 광장으로 나가서 맥주 몇 병을 사 들고 와서 별을 보며 즐거운 맥주파티를 한다.
방으로 들어와 내일 새벽에 떠나기 위해 짐을 싸고 잠자리에 든다.
9.이동, 열번째날 8월13일(월)
간단한 아침식사 후 4일이나 머문 숙소 앞에서 기념촬영을 한다. 이 숲속의 환경이 너무 좋아 몇 번을 더 봐도 부러울 뿐이다. 언제 이곳을 또 오게 될까. 아마 내 평생 다시 오기는 힘들겠지......
올 때보다 더 오래된 승용차에 타고 민보디를 향하여 깊고 깊은 계곡을 빠져 나간다. 차창 밖으로는 이곳에 올 때 미처 보지 못했던 산과 들을 더 자세하게 본다.
한 시간을 넘게 계곡을 빠져 나오니 드디어 광활한 평야다. 노란 해바라기 꽃이 지평선 끝까지 펼쳐져 있다.
3시간을 달려 민보디 공항에 도착하여 수속을 하는데 그래도 올 때보다는 새 청사라서 깨끗하다. 비행기는 프랑스제 에어버스지만 기내식은 형편없다. 무사히 착륙하여 박수를 치고 모스크바 공항에 도착하여 밖으로 나와 한참 만에 민박집 사장님을 만난다.
이곳에서는 처음 타보는 깨끗한 승합차를 타고 모스크바 시내로 들어오는데 역시 대도시답게 교통체증이 엄청나다.
민박집에 도착하니 낡은 아파트다. 실망 속에 무거운 짐을 답답한 승강기에 싣고 올라가니 집 안은 샹들리에가 천정에 달려있고 너무 깨끗하다. 정말 이곳 사람들은 외빈내화.... 우리와는 반대다. 체스콜의 숙소도 외장은 벽돌그대로 인데 안은 깨끗했었다.
저녁식사 전에 거리에 나가보니 이곳이 예술인의 거리라는 아크로바트 거리에는 오가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러시아의 대 시인 푸시킨의 생가가 숙소 바로 옆이다. 그 건너에는 푸시킨 부부의 동상이 서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의 사진 찍는 장소로 인기가 최고다. 동상에서도 푸시킨의 부인은 아름답다. 푸시킨이 부인을 지키기 위하여 군인과 결투를 벌여 사망 했다는데, 그만큼 예뻤나 보다.
주인 내외의 환대와 오랜만에 대하는 한국음식은 말 그대로 꿀맛이다. 모든 대원이 엄청 먹는다.
식사를 마치고 9시경에는 붉은 광장의 야경을 보러간다. 모두 모스크바의 밤거리를 즐기며 많은 것을 본다. 붉은광장, 크레믈린 궁, 레닌의 무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이라는 바실리 성당(더 이상 아름다운 건축물을 남기지 말라고 완공 후 건축가를 죽였다고 함). 모스크바의 밤거리를 만끽 하고 돌아오니 2시간을 넘게 돌아다녔다. 러시아 에서의 마지막 밤은 그렇게 아쉬움 속에서 지나간다.
10. 귀환, 열한번째날 8월 14일(화)
아침도 한식으로 배불리 먹고 젊은 대원들은 모스크바의 명물인 지하철을 타고 장비점을 가고 또 몇 명은 선물준비를 하고 나는 3사람과 함께 민박 사장님의 승용차로 모스크바 시내관광을 나간다. 꽤 많이 내리는 비 때문에 차안에서 눈으로만 시내관광을 하다가 모스크바 대학으로 가니 시내가 한 눈에 다 들어온다. 안개로 뿌였게 보이지만 그래도 운치가 있어 좋다.
언덕 옆에는 스키점프대가 있다. 이곳에 눈이 얼마나 오면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스키 점프대가 있을까 신기하다.
모스크바 대학은 방학 중이라 학생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사회주의 국가의 맹주국 답게 대학건물은 엄청난 건축물로 어느 방향에서나 똑 같은 모습이라 한다. 건축물도 부럽지만 관광버스가 손님을 내려놓는 대학 앞의 광장이 더 부럽다. 땅이 넓으니 이렇게 여유 있는 공간이 많다.
러시아 정교회의 총본산에 들러 박물관도 둘러보고 교회 내부에도 들어가 본다. 어떤 종교도 신도들 한데는 성스러운 곳이다. 무언가를 기도하는 신도들의 절실한 모습을 본다.
본당은 수리중이어서 못보고 나오니 옆에 호수가 보인다. 이 호수에서 백조가 노니는 모습을 보고 백조의 호수를 작곡했다고 한다.
이곳저곳을 들러보면서 민박집 사장님은 피겨 페어 국가대표 선수인 딸 15살 레베카 김 자랑에 여념이 없다. 우리나라의 부모님들은 대단하다. 이 딸을 위하여 연습장인 리투아니아 까지 20시간을 운전해서 데리고 다닌다고 한다. 이런 부모님의 열의에 평창올림픽에서 메달리스트가 탄생 하기를 기원해 본다.
숙소에 돌아와서 대원 모두모여 러시아의 정식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짐을 꾸린다. 이제 큰 짐 싸는 것은 마지막이겠지......
공항으로 이동하는 차속에서 모스크바의 시내를 관통하면서 우리하고는 다른 모습의 건축물 들을 눈에 담는다.
일찍 도착한 공항에서는 몇 일전 아이거북벽의 사고소식을 들었던 침통한 표정의 한국팀을 만난다.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외국에 원정을 와서 사고를 당했으니 얼마나 가슴 아플까. 아차 하는 순간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것이 이런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늘 있을 수 있는 일인데.....
우리는 지금 아무 사고 없이 원하는 등정을 무사히 마친 이 상황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그들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느끼며 모든 것에 감사한다.
두 번의 기내식을 먹으며 오는 내내 잠도 자면서 우리는 인천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러시아 사람들은 비행기가 무사히 착륙하면 박수를 친다. 이젠 우리도 같이 박수친다.
신대장을 선두로 우리는 공항을 빠져나온다. 산악회 회원들이 등정성공을 환영해주기 위해 폭우 속에도 많이 나와서 박수를 치며 반겨준다.
드디어 우리는 무사히 귀환했다. 부푼 꿈을 안고 출국해서 그 꿈을 이루고 귀환했다.
축하인사를 받고 등정성공의 깃발아래 기념촬영을 하면서 또 한번 울컥한다. 오늘은 그래도 잘 참아 낸다.....
대원들과 헤어져 공항버스를 타고 오면서 우리 서해안의 갯벌들을 보면서 숲도 좋지만 바다와 함께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의 이 모습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가. 정겨운 우리의 모습을 보고 또 본다.
11. 마침
긴 여정에서 돌아왔다. 젊은 대원들에게는 단지 10박12일 이지만 나에게는 엘부르즈 등반에 참여해 볼까 라면서 시작된 5개월여의 대 장정이었다.
가족에게는 설산등반이라고 하지 않아 안나프르나 트레킹정도 인줄 알고 허락해준 내 평생의 동반자인 집사람. 등반 장비를 보고 큰 딸을 시켜 확인해 보고는 기왕 가는 거 안전하게 다녀오라고 허락해 주었다.
딸들은 위험한 곳인지 알고는 노인네(?)가 효도 관광이나 가지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 끼치려고 따라 가느냐고 잔소리(?)로 걱정을 한다. 그런 내 가족들 에게 너무 감사한다.
그리고 그동안 힘든 일만 시킨 내 몸에도 감사하며 보상을 해주고 싶다.
가끔씩 산행을 함께하며 나의 무모한 도전에 성원을 해준 고향 친구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 이상 끝까지 읽어준 친구들에게 감사합니다.
첫댓글 예 감사합니다. 열심히 재활하면 한번쯤은 그런산행을 할 수 있겠지요
3천미터 이하에서의 고소공포증은 생리현상이 아니고 심리상태입니다.
산행열심히 하시면 자연스럽게 극복됩니다.
그럼요 마음먹기에 따라 쉽게극복할수 있어요
2년전 여름~거긴 살인적 혹한 !의 등정 성공한
중동고 의~~멋찐 ! 작은거인 자현 ^^ 있었지~~
그 환희 ~~ 곱씹을수록 여전히 신선~~^!^
그팀 이~킬리만자로를 ? 우~와 와~↖^♥^↗
재활 하면서~시간되믄~~
백두대간종주~연재~~앵콜 !
고마우이 .... 백두대간 종주기는 벌써 10년전에 초등학교 홈페이지에
했던거라 또 하기는 좀 !!!!!
사진도 좀 많이 올리지 그랬어?
등반기 잘 보았네~~"엘브르즈"
늦었지만 축하하고,
부럽기도 하구..ㅠㅠ
재활 잘하구 산에서 함보세...
끝까지 보기 지겨웠을 텐데 고마우이.
등반기는 보고서에 올렸던거라 야사는 못올렸음.....
사진 몇장 더 올려 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