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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네루다 — 노벨상 만찬 연설1971년 12월 10일, 스톡홀름 시청
전하, 신사 숙녀 여러분,
우리는 아주 먼 곳에서 왔습니다. 우리 자신의 바깥에서, 혹은 우리 자신의 내면에서 왔습니다. 서로 다른 언어들로부터, 서로 사랑하는 나라들로부터 왔습니다. 그리고 여기, 세계의 중심이 된 이 밤, 스톡홀름에서 우리는 서로 만났습니다.
우리는 화학에서 왔고, 현미경에서 왔으며, 사이버네틱스와 대수학과 기압계에서 왔고, 시에서 왔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실험실을 감싸고 있던 어둠을 떠나, 우리에게 영예를 안겨 주면서도 지금 이 순간 우리 눈을 부시게 하는 빛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우리 수상자들에게 이것은 기쁨이면서 동시에 고통입니다.
그러나 감사의 말씀을 드리기 전에, 그리고 숨을 돌리기 전에, 저는 제 자신에게로 깊이 침잠해야 합니다.
용서하십시오.
저는 여기서 멀리 떠나야 합니다.
용서하십시오.
다시 나의 땅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다시 한번 내 조국의 밤과 새벽 속으로 사라져야 합니다.
나는 어린 시절의 거리로 돌아갑니다.
남아메리카 남부의 겨울로,
아라우카니아의 라일락 정원으로,
내 품에 안았던 첫 번째 마리아에게로,
아직 포장도로를 알지 못하던 진흙투성이 거리로,
정복이 우리에게 남겨 놓은 상복 입은 원주민들에게로,
빛을 찾아 헤매던 어두운 하나의 나라로,
하나의 대륙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만일 이 축제의 방에서 뿜어져 나오는 이 찬란한 빛이 계속 뻗어 나가, 땅과 바다를 건너 나의 과거를 비춘다면, 그 빛은 동시에 우리 아메리카 민중의 미래도 비추고 있습니다.
존엄에 대한 권리를,
자유에 대한 권리를,
그리고 삶에 대한 권리를 지키고 있는 우리 아메리카 민중의 미래를 말입니다.
나는 그 시대를 대표하는 사람이며, 동시에 오늘날 나의 시를 가득 채우고 있는 투쟁들을 대표하는 사람입니다.
나의 감사가 나의 모든 사람들에게까지 뻗어 나간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
세상에서 잊힌 사람들에게까지 말입니다.
내 삶의 이 행복한 순간에 그들은 나 자신의 표현보다 더욱 진실하게 느껴지고,
나의 산맥보다 더욱 높으며,
대양보다 더욱 넓게 느껴집니다.
나는 자랑스럽게 인간의 군중에 속해 있습니다.
몇몇 사람에게가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에게 속해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서 나는 그들의 보이지 않는 존재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 모든 사람들의 이름으로, 그리고 나 자신의 이름으로, 오늘 나의 시인으로서의 작업에 이 영예를 베풀어 주신 스웨덴 한림원에 감사드립니다.
끝없이 펼쳐진 숲과 깊은 눈의 나라인 이 나라에도 감사드립니다.
평등에 대한 의식과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
균형감과 관대함으로 세계에 깊은 인상을 주는 이 나라에 감사드립니다.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제 나는 다시 나의 작업으로 돌아갑니다.
날마다 시인들을 기다리고 있는 하얀 페이지로 돌아갑니다.
우리가 우리의 피와 우리의 그림자로 채워야 할 그 하얀 페이지로 돌아갑니다.
왜냐하면 시는
피와 그림자로 쓰이는 것이며,
피와 그림자로 쓰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파블로 네루다의 노벨상 만찬 연설
1971년 12월 10일, 스톡홀름 시청
출전: Les Prix Nobel en 1971, 편집 Wilhelm Odelberg, Nobel Foundation, Stockholm, 1972.
Copyright © The Nobel Foundation 1971
파블로 네루다
찬란한 도시를 향하여1971년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
제 이야기는 긴 여행이 될 것입니다. 아주 멀리 떨어진, 지구 반대편의 지역을 지나 제가 실제로 겪었던 여행입니다. 그러나 그곳의 풍경과 고독은 스칸디나비아의 그것과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제가 말하는 곳은 제 조국이 남쪽 끝까지 길게 뻗어 내려가는 지역입니다. 우리 칠레 사람들은 너무나 먼 곳에 살고 있어서, 우리 국경은 거의 남극에 닿아 있습니다. 마치 스웨덴의 북쪽 끝이 이 행성의 눈 덮인 북방에 닿아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 아래, 내 조국의 광대한 지역에서, 이제는 이미 망각 속으로 사라져 버린 사건들로 인해 나는 아르헨티나와 맞닿은 조국의 국경을 찾아 안데스산맥을 넘어야 했습니다.
거대한 숲은 그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을 하나의 터널처럼 만들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여행은 비밀스럽고 금지된 것이었으며, 길을 알려 주는 표식이라고는 거의 없었습니다.
길도 없었고 오솔길도 없었습니다.
나와 네 명의 동행자는 말을 타고 구불구불한 길을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거대한 나무들이 가로막았고, 건널 수 없을 것 같은 강과 엄청난 절벽, 황량하게 펼쳐진 눈밭을 피해 가며, 오직 나 자신의 자유가 있는 방향을 눈먼 사람처럼 찾아 나아갔습니다.
나와 함께한 사람들은 울창한 나뭇잎 사이로 길을 찾아가는 방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돌아올 길을 확실히 해 두기 위해 그들은 이따금 마체테로 거대한 나무껍질을 베어 표시를 남겼습니다.
그들이 나를 내 운명과 함께 홀로 남겨 두고 돌아갈 때 따라가야 할 흔적이었습니다.
우리 각자는 끝없는 고독을 품은 채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나무들과 거대한 덩굴식물의 초록빛과 흰빛의 침묵 속으로, 수백 년 동안 쌓여 온 흙의 층 사이로, 반쯤 쓰러진 채 갑자기 새로운 장애물이 되어 앞을 가로막는 나무둥치들 사이로 나아갔습니다.
우리는 눈부시면서도 비밀스러운 자연의 세계 속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세계에서는 추위와 눈과 추격의 위협이 점점 커지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고독과 위험과 침묵, 그리고 내가 수행해야 할 임무의 절박함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희미하게 남아 있는 길을 따라갔습니다. 밀수꾼들이나 도망치는 범죄자들이 남긴 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겨울의 얼어붙은 손길에 붙잡혀 죽었는지 우리는 알지 못했습니다.
안데스에서는 무서운 눈보라가 갑자기 몰아쳐 여행자를 집어삼키고, 일곱 층 높이에 이르는 흰 눈 아래 묻어 버리기도 합니다.
길 양쪽의 황량한 자연 속에서 나는 인간이 그곳을 지나갔다는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여러 겨울을 견딘 나뭇가지들이 쌓여 있었습니다.
그 길을 지나갔던 수백 명의 사람들이 바친 제물이었습니다.
쓰러져 죽은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한 소박한 돌무덤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이 끝내 길을 계속 가지 못하고 영원히 눈 아래 남은 사람들을 생각하도록 만든 것이었습니다.
나의 동료들 역시 마체테로 나뭇가지를 잘랐습니다. 겨울 폭풍에 마지막 잎을 흩날리는 거대한 참나무에서 우리 머리를 스치며 아래로 늘어진 가지를 잘라 냈습니다.
나 역시 무덤 하나하나에 작은 헌사를 남겼습니다.
나무로 만든 명함과도 같은 것,
숲에서 꺾은 나뭇가지 하나를 이름 모를 여행자들의 무덤에 바쳤습니다.
우리는 강을 건너야 했습니다.
안데스 정상에서 흘러내리는 작은 물줄기들은 어지러울 정도로 사납고 미친 듯한 힘으로 아래로 몸을 던집니다. 높은 곳에서부터 품고 내려온 격렬한 힘으로 흙과 돌을 뒤흔드는 폭포를 만들어 냅니다.
그러나 이번에 우리가 만난 물은 잔잔했습니다.
거울처럼 넓게 펼쳐진 물이었고, 말을 타고 건널 수 있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말들이 물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발밑을 잃은 말들은 맞은편 강둑을 향해 헤엄치기 시작했습니다.
곧 내가 탄 말은 거의 완전히 물속에 잠겼습니다.
나는 몸을 지탱할 곳도 없이 위아래로 출렁였고, 두 발은 필사적으로 허우적거렸습니다. 말 역시 머리를 물 위로 내놓기 위해 안간힘을 썼습니다.
마침내 우리는 강을 건넜습니다.
반대편 강둑에 도착하자마자 나와 함께하던 노련한 시골 사람들이 웃음을 애써 감추며 물었습니다.
“무서웠소?”
“몹시 무서웠습니다. 마지막 순간이 왔다고 생각했지요.”
내가 대답했습니다.
그들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당신 뒤에서 올가미를 손에 들고 있었소.”
그러자 그중 한 사람이 덧붙였습니다.
“바로 저곳에서 내 아버지가 떨어져 급류에 휩쓸려 갔소. 하지만 당신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소.”
우리는 계속 나아갔습니다.
마침내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터널에 도착했습니다.
어쩌면 오래전에 사라진 거대한 강이 웅장한 바위를 뚫어 만들어 놓은 것인지도 모르고, 이 높은 산들이 형성될 때 일어난 지각의 진동이 만들어 낸 것인지도 모릅니다.
화강암 바위를 깎아 만든 듯한 통로였습니다.
그 안으로 몇 걸음 들어가자 말들은 울퉁불퉁한 돌 위에서 발 디딜 곳을 찾다가 미끄러지기 시작했습니다.
말의 다리가 꺾일 듯 휘청거렸고 쇠로 된 편자 아래에서는 불꽃이 튀었습니다.
나는 몇 번이나 말에서 내던져져 바위 위에 쓰러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 말의 주둥이와 다리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길고 험난하지만 장엄한 길을 계속 나아갔습니다.
그 원시의 거친 숲 한가운데에서 무엇인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기이한 환영처럼 바위 사이에 포근히 안긴 아름다운 작은 초원이 나타났습니다.
맑은 물,
푸른 풀,
들꽃,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
그리고 머리 위의 푸른 하늘.
나뭇잎에 가로막히지 않은 풍성한 햇빛이 그곳으로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우리는 마치 마법의 원 안에 들어선 듯 그곳에서 멈추었습니다.
신성한 장소에 초대받은 손님들 같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그곳에서 참여하게 된 의식은 더욱 신성한 무엇처럼 느껴졌습니다.
목동들이 말에서 내렸습니다.
공터 한가운데에는 마치 어떤 의식을 위해 놓아 둔 것처럼 황소의 두개골 하나가 놓여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말없이 한 명씩 두개골 앞으로 다가가 그 눈구멍 속에 동전과 음식을 넣었습니다.
나 역시 그들과 함께했습니다.
길을 잃은 여행자들, 온갖 피난민들이 그 죽은 황소의 눈구멍에서 빵과 도움을 얻을 수 있도록 마련된 제의였습니다.
그러나 그 잊을 수 없는 의식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내 시골 친구들은 모자를 벗고 기묘한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버려진 두개골 주위를 한쪽 발로 깡충거리며 돌았습니다.
그들보다 먼저 이곳을 지나간 수많은 사람들이 남긴 발자국의 원을 따라 움직였습니다.
헤아릴 수 없는 내 동료들 곁에 서서 나는 어렴풋이 깨달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멀고 고립된 고독 속에서도 이름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는 어떤 연결이 존재한다는 것을.
누군가를 보살피는 마음이 있고,
부름이 있으며,
그 부름에 대한 응답이 있다는 것을.
더 나아가, 오랫동안 나를 조국과 갈라놓게 될 국경에 도착하기 직전, 우리는 밤중에 산맥의 마지막 고개에 이르렀습니다.
갑자기 불빛이 보였습니다.
사람이 있다는 확실한 표시였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반쯤 무너진 건물 몇 채가 있었습니다. 버려진 것처럼 보이는 초라한 오두막들이었습니다.
우리는 그중 하나로 들어갔습니다.
방바닥 한가운데에서는 거대한 나무토막들이 불타고 있었습니다.
밤낮으로 타오르는 거목의 잔해였습니다.
연기는 지붕 틈새를 빠져나가 어둠 속에서 짙푸른 베일처럼 피어올랐습니다.
그 높은 산악지대 사람들이 만든 치즈가 산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불 가까이에는 여러 사람이 마치 자루처럼 웅크리고 누워 있었습니다.
침묵 속에서 기타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 불씨와 어둠 속에서 태어난 노래의 말들이 들려왔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여행에서 처음 만난 인간의 목소리였습니다.
사랑과 먼 거리를 노래하는 노래였습니다.
우리가 떠나온 마을과 멀리 떨어진 봄을 그리워하는 사랑의 외침이었으며, 끝없이 펼쳐지는 삶을 향한 그리움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우리가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우리가 도망치는 중이라는 사실도 몰랐습니다.
내 이름도, 내 시도 들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알고 있었을까요?
어쩌면 우리를 알고 있었을까요?
실제로 일어난 일은 이러했습니다.
우리는 그 불가에서 함께 노래하고 함께 먹었습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소박한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방들 사이로 따뜻한 물줄기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화산에서 솟아난 물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물에 몸을 담갔습니다.
산맥 깊은 곳에서 솟아오른 온기가 우리를 자신의 품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우리는 행복하게 물장구를 쳤습니다.
마치 긴 승마 여행의 무게를 몸에서 파내어 버리듯 씻어 냈습니다.
새롭게 생기를 얻었고,
다시 태어난 듯했으며,
세례를 받은 것 같았습니다.
새벽이 되자 우리는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이제 몇 마일만 더 가면 나는 조국의 시야에서 사라질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노래하며 말을 달렸습니다.
새로운 공기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세계의 넓은 길로 우리를 내던지는 새로운 힘으로 충만했습니다.
나는 한 가지 일을 똑똑히 기억합니다.
노래와 음식과 따뜻한 물과 잠자리, 아니 정확히 말한다면 여행 중 뜻밖에 만난 천상의 피난처에 감사하는 뜻으로 산사람들에게 얼마간의 돈을 주려고 했을 때였습니다.
그들은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그들은 단지 우리를 도왔을 뿐이었습니다.
그뿐이었습니다.
말없는 그 ‘그뿐’ 속에는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숨어 있었습니다.
어쩌면 서로를 알아보는 마음이었을 것이고,
어쩌면 같은 종류의 꿈이었을 것입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나는 책에서 시를 쓰는 방법에 관한 어떤 비법도 배우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나 역시 새로운 시인들에게 이른바 통찰의 한 방울이라도 줄 수 있다는 듯이 방법이나 문체에 관한 충고를 하지는 않겠습니다.
내가 이 연설에서 지나간 사건들을 이야기하고, 그때와 너무나 다른 이곳에서 결코 잊지 못한 일을 다시 살아 보는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나는 살아오는 동안 언제나 어딘가에서 나에게 필요한 도움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나를 기다리고 있던 어떤 공식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내 말 속에서 돌처럼 굳어 버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을 이해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 긴 여행에서 나는 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요소들을 발견했습니다.
그곳에서 나는 대지와 영혼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시가 하나의 행위라고 믿습니다.
순간적인 것이든 장엄한 것이든,
그 안에는 고독과 연대가 동등하게 참여합니다.
감정과 행동,
자기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
인류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
그리고 자연의 은밀한 현현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함께합니다.
또한 나는 이 모든 것,
즉 인간과 그의 그림자,
인간과 그의 행동,
인간과 그의 시를 떠받치는 것은
점점 더 넓어지는 공동체 의식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우리 안에 존재하는 현실과 꿈을 영원히 하나로 결합하려는 노력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런 방식으로 시는 현실과 꿈을 하나로 결합하고 뒤섞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토록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도 나는 알지 못합니다.
두려운 강을 건넜을 때,
황소의 두개골 주위에서 춤추었을 때,
높은 산에서 흘러내린 정화의 물에 몸을 담갔을 때 내가 배운 것들이,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 내 안에서 솟아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요구나 고발처럼 나에게 보내온 메시지였는지 나는 알지 못합니다.
내가 그것을 실제로 경험한 것인지,
아니면 창조한 것인지도 알지 못합니다.
그것이 진실이었는지 시였는지,
순간적인 것이었는지 영원한 것이었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그 순간 내가 살아 낸 시들이었는지,
아니면 훗날 내가 시로 옮긴 경험들이었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친구 여러분,
이 모든 것에서 시인이 다른 사람들을 통해 배워야 할 하나의 깨달음이 생겨납니다.
극복할 수 없는 고독은 없습니다.
모든 길은 하나의 목적지로 향합니다.
우리가 무엇인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
우리는 고독과 어려움을 지나야 합니다.
고립과 침묵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마침내 우리가 서툰 춤을 추고 슬픈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마법의 장소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춤과 노래 속에서 우리 의식의 가장 오래된 의식이 완성됩니다.
우리가 인간이라는 자각,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공통된 운명이 존재한다는 믿음 속에서 말입니다.
사실 어떤 사람들이, 혹은 많은 사람들이 나를 종파적인 사람이라고 여기고 우정과 책임이라는 공동의 식탁에 앉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해도, 나는 나 자신을 변호하고 싶지 않습니다.
고발하는 것도 변호하는 것도 시인의 임무가 아니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결국 어떤 한 시인이 시를 관리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 시인이 다른 동료들을 고발하려 들거나, 또 다른 시인이 정당하거나 부당한 비난에 맞서 자신을 변호하느라 생애를 허비한다면, 우리를 그렇게 잘못된 길로 이끄는 것은 오직 허영뿐이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나는 시의 적이 시를 쓰는 사람들 사이에 있거나 시를 지키는 사람들 사이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시인 자신의 불화와 불일치 속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인에게 가장 큰 적은 자기 시대의 가장 잊히고 착취당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이해시키지 못하는 자기 자신의 무능력뿐입니다.
이것은 모든 시대, 모든 나라에 해당합니다.
시인은 ‘작은 신’이 아닙니다.
아닙니다.
시인은 ‘작은 신’이 아닙니다.
다른 직업과 일을 하는 사람들보다 우월하도록 어떤 신비로운 운명에 의해 선택된 존재도 아닙니다.
나는 가장 훌륭한 시인이 우리의 일용할 빵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자주 말해 왔습니다.
자신을 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우리 동네의 빵집 주인 말입니다.
그는 반죽을 하고,
화덕에 넣고,
황금빛으로 구워,
우리에게 일용할 빵을 건네는 장엄하면서도 소박한 일을 합니다.
그것은 공동체를 향한 하나의 의무입니다.
그리고 시인이 이러한 단순한 의식에 도달할 수 있다면 그것 역시 거대한 활동의 한 요소가 될 것입니다.
단순하거나 복잡한 하나의 구조,
즉 공동체를 건설하고 인간을 둘러싼 조건을 변화시키며 인간이 만들어 낸 것들을 서로에게 건네주는 구조의 일부가 될 것입니다.
빵, 진실, 포도주, 꿈.
시인이 모든 사람의 손에 자신의 몫을 건네기 위한 이 끝나지 않는 투쟁에 참여한다면,
자신의 노력과 애정을 모든 사람의 일상적인 노동에 보탠다면,
시인은 참여해야 합니다.
시인은 땀에 참여하고,
빵에 참여하고,
포도주에 참여하고,
인류의 모든 꿈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평범한 사람이 되는 이 필수적인 길을 통해서만, 시대마다 조금씩 깎여 나간 시의 거대한 폭을 다시 시에게 돌려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자신 역시 시대마다 조금씩 깎여 나갔던 것처럼 말입니다.
나를 상대적인 진실로 이끌었던 오류들과, 다시 반복해서 오류로 나를 돌려보냈던 진실들은 내가 어떤 길을 발견하도록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런 것을 주장한 적도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이끄는 방법,
이른바 창작 과정이라는 것을 알아내는 방법,
그토록 접근하기 어려운 문학의 높은 곳에 도달하는 방법을 나는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깨달았습니다.
우리 자신의 신화 만들기를 통해 영혼들을 불러내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혹은 사용하려는 재료에서 훗날 우리 자신의 발전과 미래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생겨납니다.
우리는 필연적으로 현실과 리얼리즘으로 이끌립니다.
다시 말해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과 변화의 방식들을 간접적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너무 늦었다고 느껴질 무렵, 우리는 지나치게 거대한 장벽을 세웠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삶이 성장하고 꽃피도록 돕는 대신 살아 있는 것을 죽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리얼리즘을 강요합니다.
그 리얼리즘은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의 필수적인 일부라고 여겼던 건물을 세우지도 못한 채 그 건물의 벽돌보다 더 무거운 짐이 되어 버립니다.
반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의 우상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한다면,
혹은 소수의 사람들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의 우상,
배타적이고 비밀스러운 것의 우상을 만들어 낸다면,
그리고 현실과 현실주의의 타락한 형태들을 배제한다면,
우리는 갑자기 불가능한 나라에 둘러싸이게 됩니다.
나뭇잎과 진흙과 구름으로 이루어진 늪지대입니다.
그곳에서 우리의 발은 가라앉고,
소통할 수 없다는 불가능성 때문에 우리는 질식하게 됩니다.
특히 우리처럼 광대하게 펼쳐진 아메리카 대륙의 작가들은 이 거대한 공백을 피와 살을 가진 인간들로 채우라는 부름을 끊임없이 듣습니다.
우리는 그 공백을 채워야 할 의무를 알고 있습니다.
동시에 비어 있으면서도 불의와 형벌과 고통으로 가득한 세계에서 비판적으로 소통해야 한다는 피할 수 없는 과제를 마주합니다.
그리고 폐허가 된 고대 유적의 돌조각상 속에서,
행성처럼 광활한 평원의 거대한 침묵 속에서,
울창한 원시림 속에서,
천둥처럼 포효하는 강물 속에서 잠자고 있는 오래된 꿈들을 다시 깨워야 할 책임도 느낍니다.
우리는 말없는 대륙의 가장 먼 곳까지 말로 채워야 합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만들고 이름을 붙이는 이 작업에 우리는 도취됩니다.
어쩌면 이것이 나 자신의 보잘것없는 경우에 결정적인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나의 과장이나 풍부함이나 수사는 아메리카의 한 사람이 수행하는 일상적인 작업 가운데 가장 단순한 사건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내 시의 구절 하나하나는 만질 수 있는 하나의 사물이 되기를 선택했습니다.
내 시 하나하나는 유용한 작업 도구가 되기를 요구했습니다.
내 노래 하나하나는 서로 교차하는 길들이 만나는 지점을 알리는 공간 속의 표지가 되려 했습니다.
혹은 뒤따라올 누군가가 새로운 표식을 새길 수 있는 돌이나 나무 한 조각이 되려 했습니다.
진실이든 오류이든 시인의 의무를 이러한 극단적인 결론까지 밀고 나가면서, 나는 공동체 안에서 그리고 삶 앞에서 내가 취해야 할 태도는 겸손하게 어느 한편에 서는 것이라고 결정했습니다.
수많은 명예로운 불행,
외로운 승리,
찬란한 패배를 보면서 그렇게 결정했습니다.
아메리카의 투쟁이 벌어지는 한가운데에서 나는 인간으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이 다름 아니라 조직된 민중이라는 광대한 힘에 합류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삶과 영혼으로 고통과 희망에 결합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작가와 민족에게 필요한 변화는 오직 이 거대한 민중의 흐름에서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 태도가 쓰디쓴 반론과 우호적인 반론을 모두 불러일으켰고 지금도 그러하지만, 나는 우리의 광대하고 잔혹한 나라들에서 작가가 걸어야 할 다른 길을 찾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어둠에서 꽃이 피어나기를 바란다면,
우리를 읽는 법은커녕 글 자체를 읽는 법조차 배우지 못한 수백만 명,
아직 글을 쓸 수도, 우리에게 편지를 보낼 수도 없는 수백만 명이 인간으로서 온전해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존엄의 영역에서 편안히 살아가기를 바란다면 말입니다.
우리는 수세기에 걸친 저주의 짐을 뒤에 끌고 가는 민족들의 상처 입은 삶을 물려받았습니다.
낙원과도 같았던 민족들,
가장 순수했던 민족들,
돌과 금속으로 경이로운 탑과 눈부신 보석들을 만들어 냈던 민족들.
그들은 식민주의라는 무서운 시대에 갑자기 모든 것을 빼앗기고 침묵을 강요당했습니다.
그리고 그 식민주의의 흔적은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우리에게 처음부터 길을 밝혀 준 별은 투쟁과 희망입니다.
그러나 홀로 존재하는 투쟁은 없습니다.
홀로 존재하는 희망도 없습니다.
모든 인간 안에는 가장 먼 시대들이 함께 존재합니다.
수동성,
오류,
고통,
우리 시대의 절박한 요구,
그리고 역사의 발걸음이 한 사람 안에 함께 들어 있습니다.
가령 내가 위대한 아메리카 대륙의 봉건적 과거를 유지하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했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랬다면 스웨덴이 내게 베푼 이 영예의 빛을 받으며 어떻게 떳떳이 고개를 들 수 있었겠습니까?
지금 내 조국에 찾아온 변화에 아주 작은 몫이라도 참여했다는 자부심을 느낄 수 없었다면 말입니다.
아메리카의 지도를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찬란한 다양성 앞에 서야 합니다.
우리를 둘러싼 광대한 공간의 우주적인 관대함 앞에 서야 합니다.
그래야 왜 그토록 많은 작가들이 과거의 치욕과 약탈에 동참하기를 거부하는지,
어둠의 신들이 아메리카 민중에게서 빼앗아 간 모든 것에 동참하기를 거부하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나는 책임을 함께 짊어지는 어려운 길을 선택했습니다.
한 개인을 세상의 태양이자 중심으로 숭배하는 일을 반복하기보다는, 때때로 실수를 저지를 수 있지만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며 완고한 시대착오와 독선적인 조급함에 맞서 날마다 싸우는 명예로운 군대에 겸손하게 봉사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나는 시인으로서의 나의 의무가 장미와 균형,
고양된 사랑과 끝없는 그리움만을 벗으로 삼는 데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의무는 내가 내 시 속에 받아들인, 끊임없이 이어지는 인간의 노동과도 우정을 맺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오늘은 정확히 백 년 전, 불행하면서도 찬란했던 한 시인, 절망한 영혼들 가운데 가장 두려울 만큼 강렬했던 한 시인이 다음과 같은 예언을 기록한 날입니다.
“A l’aurore, armés d’une ardente patience,
nous entrerons aux splendides Villes.”
“새벽이 오면, 불타는 인내로 무장한 우리는
찬란한 도시들로 들어가리라.”
나는 선견자 랭보(Rimbaud)의 이 예언을 믿습니다.
나는 어두운 지역에서 왔습니다.
험준한 지형 때문에 다른 모든 땅과 떨어져 있는 나라에서 왔습니다.
나는 가장 고독한 시인이었고,
내 시는 지방적이었으며,
억눌려 있었고,
비에 젖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인간을 믿었습니다.
나는 희망을 잃은 적이 없습니다.
어쩌면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 시와 함께, 그리고 나의 깃발과 함께 지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마지막으로 선의를 가진 사람들에게,
노동자들에게,
시인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미래 전체가 랭보의 이 한 구절 속에 표현되어 있습니다.
오직 불타는 인내를 통해서만 우리는 모든 인류에게 빛과 정의와 존엄을 가져다줄 찬란한 도시를 정복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의 노래는 헛되이 불린 것이 아닐 것입니다.
Nobel Lecture, 13 December 1971
Pablo Neruda — Towards the Splendid City
출전: Nobel Lectures, Literature 1968–1980, 책임편집 Tore Frängsmyr, 편집 Sture Allén, World Scientific Publishing Co., Singapore, 1993.
Copyright © The Nobel Foundation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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