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부경 (陰府經)
고대 중국의 황제(黃帝)가 지었다고 하는 도가 경전의 하나. 음양상승술(陰陽相勝術)에 근거하여 치국(治國)과 용병(用兵)을 말하고 있으며, 인간의 생사문제를 언급하고 있고, 객관적 세계에 대하여 냉정하게 관찰할 것을 말하고 있다. 「삶은 죽음의 근본이요 죽음은 삶의 근본(生者死之根 死者生之根)」이란 말은 음부경에 있는 말이다. 소태산 대종사가 대각후에 참고로 열람한 경전 중의 하나이다.
동경대전 (東經大典)
천도교의 기본 경전. 천도교의 교조 최수운의 한문체로 된 저서인데, 1864년 최수운이 사형당할 때 같이 불태워 졌으나 후계자 최해월이 암송한 부분을 간추려 1880년 처음으로 간행하였다. 중요 내용은 본문과 별집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본문에는 포덕문(布德文)·논학문(論學文)·수덕문(修德文)·불연기연문(不然其然文) 등이 수록되어 있고, 별집에는 축문(祝文)·입춘시(立春詩)·절구(絶句)·강시(降詩)·좌잠(座箴)·화결시(和訣詩) 등이 실려 있다. 소태산 대종사도 대각 후에 이 〈동경대전〉을 보았으며, 최수운을 선지자(先知者)라 높이 평가하였다. 천도교에서는 최수운의 〈동경대전〉과 〈용담유사(龍潭遺詞)〉를 〈천종법경(天宗法經)〉, 2세교주 최해월이 설한 것을 〈도종법경(道宗法經)〉, 3세교주 손병희가 설한 것을 〈교종법경(敎宗法經)〉이라 하며, 이 세가지를 합쳐 〈천도교 경전〉으로 하고 있다.
사서 (四書)
〈대학〉·〈중용〉·〈논어〉·〈맹자〉의 네가지 유교 경서(經書). 대학과 중용은 원래 각각 〈예기〉 속의 한 편이었으나, 유교 교설의 뛰어난 개론으로 주목받아 주자(朱子)가 그것을 빼내어 논어·맹자와 함께 사서라 부르고 사서야말로 공문(孔門)의 사제전수(師弟傳授)의 도통(道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높이 평가하였다.
금강경 (金剛經)
불교의 대표적 경전 중의 하나. 〈능단금강반야바라밀경(能斷金剛般若波羅密經)〉의 약칭. 흔히 〈금강반야바라밀경〉·〈금강반야경〉·〈금강경〉이라 한다. 대반야경 600권 중 제 9회 능단금강분(能斷金剛分)을 번역한 것이다. 서가모니불과 제자 수보리의 문답 형식으로 반야불가득(般若不可得)의 진리를 설하고 있다. 선종에서는 5조 홍인(弘忍) 때부터 금강경을 중요시 했고, 6조 혜능(慧能)이 금강경을 보고 깨쳤다고 해서 이후로 남종선의 소의경전으로 사용되었다. 신수(神秀)의 북종선이 〈능가경〉을 소의경전으로 삼고 있는데 대해 혜능의 제자 하택 신회(荷澤神會)가 금강경을 강조했다. 이후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선승들이 금강경을 연구·주석(註釋)·강설(講說)하게 되었다. 현재 우리나라의 조계종에서도 금강경을 소의경전으로 하고 있다. 금강경은 요진(姚秦)의 구마라습(鳩摩羅什)이 402년에 처음 번역했고, 이후로 509년에 북위(北魏)의 보리유지(菩提流支)가, 562년에 진(陳)의 진제(眞際)가, 590년에 수(隋)의 달마급다(達磨?多)가, 660~663년에 당(唐)의 현장(玄?)이, 703년에 당의 의정(義淨)이 번역한 것 등 6종이 있다. 소태산 대종사도 금강경을 보고 「서가모니불은 진실로 성인들 중의 성인이다. 나의 연원을 서가모니불에게 정한다」고 하였다. 원불교에서 사용하는 금강경은 구마라습이 번역한 것이다. 〈불조요경〉에 금강경을 수록하고 있고, 천도재 때 많이 독송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