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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이청준
작품 읽기
사내의 이야기는 다시 계속되었다.
그 날 주막에서 허 노인은 운에게 술잔을 따라 주고, 그 날 밤으로 운을 줄로 오르라고 했다.
― 줄 끝이 멀리 멀리 보여서는 더욱 안 되지만 가깝고 넓어 보여서도 안 되는 법이다. 그 줄이라는 것이 눈에서 아주 사라져 버리고, 줄에만 올라서면 거기만의 자유로운 세상이 있어야 하는 게야. 제일 위험한 것은 눈과 귀가 열리는 것이다. 줄에서는 눈이 없어야 하고 귀가 열리지 않아야 하고 생각이 땅에 머무르지 않아야 한단 말이다.
노인은 조용조용 당부를 했다. 그 한 마디 한 마디는 마치 노인의 일생을 몇 개로 잘라서 압축해 놓은 듯한 무게와 힘과, 그리고 알 수 없는 깊이를 지니고 있었다. 자기의 전 생애를 운에게 떠넘겨 주려는 듯한 안간힘이 거기에는 있는 것 같았다.
― 아버지, 이젠 줄을 그만두시고 좀 쉬십시오.
운이 말했으나 노인은 조용히 머리를 가로저었다.
― 줄에서 내 발바닥의 기력이 다했다고 다른 곳을 밟고 살겠느냐? 같이 타자.
그 날 밤, 줄에는 두 사람이 함께 올라섰다. 운이 앞을 서고 허 노인이 뒤를 따랐다. 운이 줄을 다 건넜을 때는 객석이 뒤숭숭하니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뒤를 따르던 허 노인이 줄에서 떨어져 이미 운명을 하고 만 뒤였다.
여기까지 듣고 나니, 나는 사내에게 더 이야기를 시켜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허 노인이 운에게 마지막 당부를 할 때 그랬을 법한 컴컴하고 무거운 것이 이 사내에게서 쉴 사이 없이 흘러나왔다. 이 믿어지지 않는 집요한 이야기로써 사내가 나에게 떠맡기려는 것의 무게를 나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 나는 다음날 다시 찾아오겠다고 했다.
“아닙니다, 마저 끝냅시다. 곧 끝납니다.”
사내는 아직도 고집을 세우며 이야기를 이으려고 했다. 그러나 말보다 잦은 사내의 기침 소리를 더 듣고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이내 방을 나와 버렸다. 부엌 방에는 이제 불이 켜 있었으나 역시 사람의 기척은 없었다. 나는 곧장 어제의 여관으로 돌아와 자리로 들었다. 사내의 이야기는 문화부장이 기대한 것과는 성질이 다를지 몰라도 기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도대체 노인의 운명 ― 그 논리 이상으로 정연한 질서는 허 노인이 죽은 지금 그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허 노인은 줄을 지배하지 못하고 줄이 그를 지배했다. 그게 아름다움이라는 것인가. 또, 운은 노인의 무거운 운명을 떠맡아 지고 어떻게 자기 인생을 구축해 갈 수 있었는지. 장의사 사내의 이야기로는 운도 마찬가지로 줄에서 떨어져 죽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 운은 노인의 인생을 배신할 수는 없었던 것일까…… 그것은 또 운에게 무슨 의미를 줄 수 있는가…… 이런저런 생각을 한참 하고 있는데 어젯밤의 여자가 불쑥 문을 들어섰다. 나는 여자가 좀 수상쩍었으나 이것저것 묻기가 귀찮아서 그냥 옆에 눕게 했다. 차라리 잘 되었다 싶었다. 나는 곧 피곤해져서 잠이 들어 버렸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역시 여자는 가고 없었고, 윗주머니의 돈이 꼭 삼백 원이 줄어 있었다. 시계가 열 두 시를 넘고 있었다. 나는 어제와 똑같이 여관을 나와 다릿목으로 해서(다릿목에서는 장의사의 사내가 의미 있는 웃음을 지으며, “아직 떠나지 않으셨군요.” 하고 아는 체를 했다.) 중국집을 들렀다가 어제처럼 입가심을 사들고는 다시 ‘사꾸라 공원’ 중턱의 사내에게로 갔다. 부엌방 문 앞에는 여자 고무신이 어제 그대로인 것처럼 가지런히 놓여 있고, 사내의 방에서는 역시 역한 냄새가 코도 거치지 않고 내장으로 스며들었다. 사내의 숨소리가 어제 처음 왔을 때보다 훨씬 거칠어져 있었다. 사내는 내가 쑥스러워질 만큼 새삼스럽게 반기고는 곧 이야기를 이었다.
“……그러니까 그 뒤로 운이 허 노인의 당부대로 줄을 탔는지는 알 수 없었지요. 하나 확실한 것은 그 역시 전에 허 노인이 당하던 단장의 꾸지람을 고스란히 그대로 물려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꾸지람을 듣고 있을 때까지도 영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멍청히 서 있기만 하곤 했지요. 그런데 나중에는 단장도 그런 운을 늘 나무랄 수만은 없게 되었어요. 활동 사진이라는 것이 갑자기 성하지 않았습니까. 그 쪽에 손님을 다 빼앗기고 나니 우리는 거렁뱅이가 될 판이었습니다. 그런데 단장이 그래도 그 중 나았습니다. 생각생각하다가 짜낸 것이 결국 구경꾼의 흥을 더 돋구어 줘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당연한 이야기지요, 그래 그 방편으로 제일 적합한 것이 운이었습니다. 줄을 그전 때보다 두 배, 세 배로 높이 매달았습니다. 허 노인도 여느 광대보다 높이 줄을 탔기 때문에 가설 극장의 천정 포장을 걷어 내야 했지만 이번에는 거기 비교가 안 될 정도였지요, 우리는 그런 식으로 C읍까지 왔었습니다. 그 땐 가을이었지요.”
C읍에서 ― 어느 날 밤, 운이 줄에서 내려와 보니 그에게 꽃다발이 하나 와 있었다. 꽃다발이라야 그 즈음 산이나 들에 지천으로 피어난 들국화를 몇 송이 꺾어다 종이 리본으로 묶은 것이었지만, 워낙 처음 있는 일이라 부처님 같은 운도 약간 호기심이 들었다. 꽃다발을 가져온 것은 소녀끼를 갓 벗은 여자라고 했다.
― 잘 해 봐라 이 녀석. 총각 귀신은 제사도 없단다.
트럼펫의 사내가 웃으면서 그 꽃다발을 운에게 건네 주었다. 여자는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같은 일을 하고 갔지만, 언제나 운이 줄을 올라간 뒤에 왔다가 줄에서 내려오기 전에 가 버리기 때문에 정작은 얼굴조차 볼 수가 없었다. 매일밤 꽃다발을 맡았다 운에게 전해 주던 트럼펫이 보다 못해 하룻밤은 일을 꾸몄다.
― 공원으로 가 봐라. 거기 여자가 기다리고 있을 게다.
운이 줄에서 내려오자 트럼펫은 운에게 일러 주었다.
“지금 이야기 중의 트럼펫이라는 운의 친구가 바로 노인이시겠지요?”
나는 갑자기 이 사내 자신에 대한 한 가지 의문이 떠올라 그렇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그 때부터 나는 나팔을 불고 나면 조금씩 피를 뱉게 되었는데, 그렇다고 입에서 나팔을 뗄 수는 없었습니다. 나팔을 불지 못하면 진짜로 죽을 것 같았으니까요.”
“노인께서 여길 떠나지 못하고 주저앉은 것도 폐 때문인 것 같은데 그 때 노인께서는 독신이었습니까?”
“그렇습니다. 독신이었는데, 갑자기 각혈이 심해져서…….”
사내는 말끝을 흐렸다.
정말로 그랬을까? 나는 여전히 의문이 사라지질 않았다. 그것은 오히려 누군가를 따라 떠났어야 할 이유도 되지 않는가. 그리고 그런 폐를 가지고 지금까지 살아 있을 수가 없지도 않은가. 그렇다면 ― 이 사내는 혹시 운을 찾아오는 여자에게 사랑을 느낀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러나 사내는 내가 입을 열기 전에 이야기를 서둘러 계속했다.
“하여튼 그렇게 해서 나는 운이 여자를 만나게 해 주었는데, 여자를 만나고 와서도 운은 별로 달라진 게 없더라는 말입니다. 그런 일이 한 주일쯤 계속되었지요. 그런데 갑자기 운이 줄 위에서 재주를 피우기 시작했단 말이에요. 단장이나 구경꾼들은 무척들 좋아했지요. 하지만 나는 옛날 허 노인의 실수를 기억하고 있었던 만큼 그게 불안했습니다. 몇 번씩 그런 재주 같은 동작을 하고 줄을 내려온 운은 유독히 땀을 많이 흘리고 있었고, 단장의 칭찬에도 넋 나간 눈만 하고 있었거든요. 그런 나의 생각이 옳다고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일이 있었어요. 운이 자꾸 귀와 눈을 때리면서 혼자 중얼중얼하는 것이었습니다. 못 견뎌 하는 얼굴이었어요. 허 노인이 운에게 당부했다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함성들을 지르고 좋아들 했거든요. 불행한 일이었지만, 내 생각이 옳았다는 것은 곧 증명이 되었어요. 어느 날 밤, 줄을 타고 내려온 운은 또 공원으로 갔고, 우리는 나머지 순서와 곡예에 곁들인 연극까지 끝내고 났을 때예요…….”
구경꾼이 막 자리를 일어서려는 참에 어디서 나타났는지 운이 사례 인사를 끝내고 섰는 무대 위의 단장 앞으로 나섰다.
“―오늘 밤 한 번 더 줄을 타겠습니다.”
“―아니, 왜?”
단장이 의아해서 운을 쳐다봤다. 그러나 단장은 다시 아무 말도 못하고 운에게서 눈을 피했다. 운의 눈에서는 무서운 불길이 일고 있었다. 그 눈은 단장을 보고 있지도 않은 것 같았다. 단장은 한 번 더 줄을 타겠다는 운의 말이 정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운은 이미 자기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운을 비켜섰다. 운은 그대로 천천히 걸어가서 그 높은 항목을 한 번 눈이 부신 듯이 쳐다보고는 이내 그것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단장은 잠시 고개를 갸웃이 기울이고 운의 거동을 살피고 있다가 갑자기 입술에 침을 바르고 마이크를 힘껏 거머쥐었다.
“―여러분, 앉으십시오. 오늘 밤 여러분의 성원에 감사하기 위해서 우리 서커스 단의 프로 중의 백미를 다시 한 번 여러분께 보여 올리겠습니다. 그것은 즉 보시다시피 인간의 승천(昇天)입니다. 인간의 승천!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입니까! 우리 단(團)이 아니면 보실 수 없는 진귀한 구경거리입니다…….”
“그 날 밤, 운은 떨어져 죽었습니다.”
“한데, 그 날 밤 운은 왜 그렇게 이상한 행동을 했을까요?”
“네, 혹시 그 말씀에 해답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운이 만나던 그 여자의 이야기를 마저 해 드리겠습니다. 그 날 밤 나는 아무래도 공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으리라는 예감이 들었어요. 대강 일이 정리되었을 때 공원으로 올라가 보았습니다. 공원이래야 선생님도 보셨겠지만,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땐 벌써 고목이 다 된 벚나무 사이에 촉수 낮은 전등을 몇 개 매달아 놓고, 군데군데 녹색 페인트 칠을 한 걸상들이 놓여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 걸상 하나에 여자는 내가 올라갔을 때까지 아직 말도 못하고 벌벌 떨고 있었어요. 운이 여자의 목을 졸라 죽이려다 말고 공원을 내려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며칠을 통해 운이 여자에게 한 말을, 여자는 전부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운의 말은 불과 다섯 마디도 되지 못했으니까요. 물론 사랑은 배워서 말로 하는 것만은 아니니까, 배우지 않고도 아는 방법으로만 그는 여자를 사랑했겠지요. 마지막 날 이야기가 이랬다고 합니다. 갑자기 운이 여자를 끌어안고서,
―난 이제 줄을 탈 수가 없다. 넌 나하고 같이 살아야 한다.
운은 마치 줄에서 내려왔을 때처럼 땀을 흘리고 있더랍니다. 그런데 여자는 운이 그렇게 가까이만 있으면 언제나 무서워 말도 할 수가 없었다고 해요,
― 전 당신을 사랑하고 있지 않아요.
―그럼? 그럼?
운은 미친 사람처럼 여자를 안은 팔에 바싹 힘을 주었습니다.
―줄을 타고 계실 때, 그 땐 그런 것 같았는데, 이렇게 옆에만 오시면…… 무서워요.
-아야, 이젠 난 줄을 탈 수가 없는데…….
그러고는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는데, 운의 손이 천천히 여자의 목으로 올라오더니 조금 있다가 그 손은 경련이 난 듯 여자의 가는 목을 조르기 시작하더랍니다. 여자는 별로 반항도 하지 않고 걸상에 쓰러졌는데, 운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또 갑자기 손을 놓아 버리고는 일어서더라는 것이었어요. 그리고는 혼자 중얼중얼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죽이고 다시 줄을 탈 수 있었지만, 아아…… 나는…….
그러다가 운은 산을 내려가 버렸답니다.”
사내는 그것이 자기 자신에 관한 일이었던 것처럼 열심히, 그러고 상상으로는 미치지 못할 자세한 부분까지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는 기침을 하지 않으려고 몸을 오그라뜨리고 힘을 주었다. 그러나 끝까지 이야기를 못하고 기어이 발작을 시작하고 말았다. 나는 사내가 발작을 멎고 나서 다시 이야기를 이으려고 하는 것을 보자, 갑자기 웃음이 터지려고 했다. 이제 사내에게 혼자는 더 말을 시킬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 운은 처음부터 자기가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두 번째 줄로 올라간 거로군요.”
“그렇습니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해 왔습니다.”
“하지만 여자는 왜 운을 사랑할 수가 없었을까요?”
“글쎄 그게 이상합니다만…… 참 이걸 말씀드릴 걸 잊었군요. 그 여자는 한쪽다리를 절고 있었어요. 절름발이였단 말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실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난 자꾸 그 여자가 좋아한 것은 운이 아니라 운의 다리가 아니었나 해요. 여자는 줄 위의 운이 하늘을 날고 있는 학(鶴)으로 생각했더랍니다. 어떻든 그렇게 운이 죽고 나서 얼마가 지나니까, 이곳 사람들은 광대가 승천을 했다고들 말하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그 단장의 말을 빌어서 한 비웃음이었겠지요. 그러나 오랜 시일이 지나다 보니 운은 정말로 승천을 했다고 믿어버리게 되었어요, 아닌게 아니라 나도 아직 운이 줄을 타는 그 곧고 유연한 모습이 잊혀지질 않는데…… 아마 그게 명인(名人)의 풍모가 아닌가 생각될 때가 있어요.”
“그럼 그 절름발이 여자는 어떻게 되었나요?”
“그 여자도 뒤에 죽고 말았습니다.”
사내의 눈동자는 처음 내가 찾아왔을 때처럼 나의 머리 위 허공으로 멀리 떠올라 가 버렸다.
작품의 줄거리
일상에 묶여 무력하게 살아가던 ‘나(남기자)’는 ‘승천(昇天)한 줄광대’에 대한 기사를 취재하라는 부장의 지시에 따라 C읍으로 내려간다. 그 곳에서 ‘나’는 예전에는 서커스단에서 트럼펫을 불었으나 지금은 거의 폐인이 된 사나이로부터 줄광대 ‘운’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운’은 아버지 허 노인으로부터 줄타기를 배운다. 허 노인은 줄타기 한길만을 걸어온 장인(匠人)으로 아들에게 작은 허튼 재주도 용납하지 않는다. 허 노인의 소망대로 운은 마침내 장인의 경지에 오른다. 그런 어느 날, 한 여인이 사랑한 것은 ‘운’ 자신이 아니라 자신의 줄 타는 모습이라는 사실을 알고 줄 위에 올라 최후의 연기를 한 뒤 스스로 떨어져 죽는다.
작품 해제
․ 갈래 : 단편 소설. 예술 소설
․ 구성 : 액자 구성
․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
․ 성격 : 각기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을 대조시킴으로써 주제를 부각시킴
․ 제재 : 줄광대
․ 주제 : 전통적 예인 정신의 퇴조와 그 가치에 대한 새로운 인식
작품 해설
이 작품은 2대에 걸친 줄광대의 삶과 ‘나(남기자)’의 생활을 지성의 눈으로 조명함으로써 삶의 진실이 무엇인지를 깊이 있게 모색하고 있다.
오직 일생을 줄타기에 바친 허 노인, 아버지의 뒤를 이어 장인의 경지에 이르지만 결국 운명 앞에 무너져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아들 운, 그리고 이들의 삶을 취재하는 ‘나’의 냉소적인 태도는 바로 우리가 겪어 온 시대적, 일상적 자기 변모의 모습과 일치한다. 즉, ‘허노인→운→나’로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은 ‘절대 가치→가치에 대한 갈등→가치 상실’의 일직선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는 끝내 가치의 추를 그 누구의 저울 위에도 올려놓지 않는다. 과연 인생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오직 우리 모두가 추구하고 결론 내려야 할 것이라는 지은이의 암시가 있을 뿐이다.
■ “줄”의 등장인물 성격
이 작품은 줄을 대하는 허 노인의 엄격성과 부장의 명령으로 취재를 나온 ‘나’의 대조적인 모습을 통해 주제를 부각시키고 있다. ‘나’는 자신의 일에 큰 의미를 부여하거나 책임감을 절실히 느끼지 못하고 그저 타성적으로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 허 노인은 바로 그런 ‘나’가 잃어버린 소중한 정신을 보여 준 인물이며 그의 아들 허운도 같은 성격의 인물이다. 이들 부자(父子)는 줄을 탈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죽음을 택하는데, 그들을 죽게 한 것은 외부 세력이 아니라 자신들에 대한 엄격함 그 자체이다. 이 엄격함은 곧 장인 정신에서 나온 것인데 이 작품은 바로 이런 정신의 부각에 중점을 두고 있다.
▒ 수행 평가
1. 이 소설은 겹이야기 구성으로 되어 있다. 속이야기의 주제는?
답) 장인으로서의 치열한 삶의 정신
2. 이 작품은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그 거리가 좁아지고 있다. 그 양상을 살펴보자.
답) 처음 문화부장의 지시를 받을 때는, 줄광대에게 기사거리 정도의 흥미도 갖지 않는다. 그리고 C읍에서 와서는 직업적 책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줄광대 이야기에 접근하게 된다. 그러다 트럼펫 사내의 말을 듣는 가운데 허운 부자의 삶에 조금씩 접근해 간다. 자신과 밤을 지냈던 창녀가 트럼펫 사내에게 바치는 뜨거운 애정을 확인하게 되면서 자신의 태도를 깊이 생각하기에 이른다. 그러면서 자신의 허운 부자의 이야기는 그것이 취재거리 이상의 의미로 화자에게 다가온다. 마침내 허운 부자 이야기를 쓸 자격이 없다는 데까지 이르고 있다.
3. 이 작품에서 '창녀'와 '트럼펫 사내'는 결코 부수적 인물에 그치지 않는다. 그들의 삶의 모습이 허운 부자의 그것과 상통하는 점은 무엇인가?
답) 허운 부자가 줄타기에 죽음을 불사한 정도의 열정을 불태웠듯이, 트럼펫 사내는 악사로서의 삶을 진지하게 살았던 인물이다. 트럼펫은 허운 부자의 이야기를 마치 자신의 이야기인 양 혼신의 정열을 다해 말한다. 그것은 지난날의 자신의 삶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의 표현이다. 그만큼 자신이 주체가 된 삶을 살았던 것이다. 이것은 트럼펫을 좋아하는 여자의 뜨거운 인간애 또한 진실을 바치는 아름답고 진중한 가치를 지닌다. 그런 반면 화자는 일에 임하는 태도에 있어서 진지한 성찰을 하지 않는다. 화자의 태도와 상반된 삶의 자리에 허운 부자와 트럼펫, 여자가 있는 것이다.
4. 문화부장이 말한 '문학적 센스'라는 말은 하나의 복선 구실을 한다. 이 말과 주제는 어떤 연관을 지니는지 말해 보라.
답) 문화부장이 말한 '문학적 센스'라는 말은 문학적 기교라는 의미로 쓴 말이다. 허운 부자의 이야기를 독자들이 호기심을 가질 정도로 윤색하여 써 보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글쓰기가 진실의 전달이 아니라, 흥미의 제공이라는 수단적 의미로 보았다는 말이다. 그러나 나중에 화자는 도저히 글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삶에 대한 진실을 드러낼 자격이 없다는 인식 때문이다. 따라서 '문학적 센스'는 글쓰기의 요체가 아님을 말하기 위한 복선이 되는 것이다.
5. 이 작품을 통해 작가가 말하려 하는 진정한 '소설 쓰기'란 어떤 것인지 간단히 적으라.
답) 화자는 진정한 소설 쓰기란 결국 삶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사랑이 전제될 때만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글쓰기는 삶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글쓰기가 하나의 재주와 같은 차원이라면 진정한 감동을 줄 수 없다는 것인데, 소설가인 화자는 그런 인식에 이르면서도 도저히 글을 쓸 수 없을 것 같다는 반성에 이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