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의 ‘볼쇼이’ 상 페테르부르그의 ‘마린스키’ 극장보다 더 큰 규모의 예술극장이
New Siberia라는 뜻을 가진 동토의 도시, 노보시비르스크에 있다는 사실,
그곳의 오페라공연은 볼쇼이나 마린스키의 발레공연 만큼이나 유명하다는 사실,
그곳의 무대는 가수들 호흡도 아주 잘 맞고, 구성도 아주 잘 되어진 무대라는 사실을
그제의 오페라 관람을 통해서 알았습니다.
따라서
그들 사이베리안들의 '카르멘'이 MET나 코벤트 가든의 '카르멘' 보다는 못할거라는
관람전 선입견을 한방에 날려 버린 그런 공연이었습니다.^^
국내 오페라 공연에서 자주 노출되는 조연 가수들이나
임시 동원된 티가 내는 엑스트라들의 불성실한 움직임 같은 것은
추호도 찾아 볼 수 없는 완벽한 공연이었습니다.
1막 초반부에 잠깐 등장하는 CBS어린이 합창단과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연주를 맡은 코리안심포니를 제외한
모든 출연진들과 무대장치, 소품들이 러시아에서 공연하던 그대로 공수 되었고
아직도 소비에트의 잔영이 남은 탓인지
러시아 최고의 연출가라는 ‘스테파뉵’ 중심으로 단원들의 일사불란한 움직임은
크레믈린 광장에 도열한 붉은 군대의 행진처럼 인상이 깊었습니다.^^
제가 보았던 공연의 카르멘역 메조소프라노, ‘아군다 쿨라에바’는
호소력 있는 음색을 가졌습니다만 성량이 부족한 면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원한 마스크, 날씬하지만 볼륨있는 몸매,
무엇보다 탁월한 연기력은 그녀의 결점을 커버하고도 남음이었습니다.
같이 공연한 노보시비르스크 발레 남성단원들의
세기디야, 플라맹꼬의 현란한 춤동작과 식스팩 상반신으로
주연 가수들 만큼이나 주목을 받았습니다.
지난 피가로의 결혼에 이어서 두 번째 들어 보게 되는 코리안 심포니는
그들이 오페라 전속오케스트라의 국가대표임을 보여주는 연주였습니다.
서곡,
서곡의 전반은 세비야의 가장 큰 축제인 투우날, 투우사들의 경쾌한 행진곡으로
서곡사이에 잘 알려진 투우사'에스카미오'에 의한 '토레아도' 주제가 끼어있습니다.
이어서 후반부는 현악기들의 긴장 된 트레몰로로 시작되는
카르멘과 호세의 운명적 죽음이란 주제로 이어집니다.
아래 1988 MET 판 공연에서 보듯이
서곡이 연주 될 때 의례히 1주제와 2주제 사이의 음악이 멈추는 찰나에
서곡이 끝난 줄 아는 관객들의 오발 박수소리에
연주 리듬이 깨지는 것이 일상이었지만
음악적 기량이 높은 우리의 예술의 전당 관객들은
곡의 흐름을 방해하는 중간의 오발 박수는 없더군요.
(하지만 그제 공연이 박수가 좀 짠 공연이었다는거..
심지어는 2막 호세의 '꽃의 노래'에서도 박수가 없었다는거..
그래서 서너 사람만 뻘쭘한 박수를 치다 말았다는거...^^)
제임스 레바인 지휘, MET 의 1988 ‘카르멘’ 공연중 서곡입니다.
1막,
스페인 남부의 대도시 ‘세비야’ 중앙광장의 가장 큰 건물인 국영담배공장 앞입니다.
스페인 북쪽 피레네 산골에서 낳고 자란 미남 시골청년 호세는
내기도박을 벌이다가 상대와 치고 받는 작은 사고를 냈습니다.
그리고는 마을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받자
고향이 싫다며, 몇해전 홀어머니를 두고는 가출을 했습니다.
그리곤 군인으로 출세해보겠다고 하사관 입대를 하였고
첫 근무지로 이 곳 ‘세비야’까지 오게된 겁니다.
세비야 중앙광장의 경비 부대로 배치를 받은 지 얼마 안 된 이유도 있지만
바스크 산골 촌놈 호세에게는 귀족, 장사꾼, 그리고 걸인과 소매치기들로 가득차
항상 소란스러우며 번화한 이 세비야는
그가 자라온 고향산골과는 전혀 다른 낯선 세상입니다.
모름지기 여자는 고향의 자기 어머니나 아님 애인 ‘미카엘라’ 같이
수줍음 가득하고, 항상 예의바르고, 순종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던 호세에게
씨에스타 시간에 우르르 몰려 나와 담배 물고
같이 놀아줄 남자들을 헌팅하는 자유분방한 담배공장의 여공들은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 속에서 항상 모든 남자들의 시선집중을 받지 않으면
하루도 못 견디는 Femme Fatale ‘카르멘’이 나타납니다.
악마적 미녀 카르멘의 눈에 자신에게 시선 한번 주지 않는 호세가 걸려들은 건
다가올 비극적인 운명의 전주곡입니다.
사실, 호세가 카르멘에게 무관심하였던 이유는
고향에 두고 온 애인 미카엘라에 대한 일편단심 때문이 아닙니다.
그도 남자인지라 카르멘의 미모와 매력, 그리고 남성 편력에 대한 소문을
익히 들어 알고 있어 무척 사귀어보고도 싶었을겁니다.
그러나 자신이 겉보기와 달리 얼빵 바스크 촌놈이라는 것이
카르멘에게 밝혀질까 두려운 마음에,
그냥 무관심한 척, 곁눈질만 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나 눈치 빠른 카르멘은
이미 그를 그녀의 욕망의 제단에 바쳐질 제물로 점찍었고
자신의 가슴사이에 묻어 놓았던 장미 한 송이를
호세 발치에 미끼로 던져 놓습니다.
그러자 호세는 누가 볼까 얼른 장미를 주워 자기 품안에 간직합니다.
MET 오페라 하우스에서 ‘아그네스 발차’의 ‘하바네라’입니다.
“사랑은 들판 위에 나는 새, 아무도 길들일 수 없죠.
거절하려고 생각을 하여도, 도저히 거절할 수 없죠...“
(사족: '하바네라'는 안달루시아에서 발생한 춤의 이름입니다.
이어 나오는 '세기디야'도 그렇고요.
카르멘이 춤을 추면서 부르는 노래인지라
춤이름이 노래제목으로 붙어 버렸습니다.^^)
휴식시간이 끝나고 여공들은 담배공장으로 도로 들어갔으나
곧이어 담배공장안에서는 큰 소동이 일어납니다.
싸움의 원인이었던 카르멘에 의하여 소동은 칼부림으로 번지고
광장의 경비대장 주니가의 명령으로 카르멘이 붙잡혀 나옵니다.
이어서 광장으로 쏟아져 나온 여공들이 두 편으로 나누어 싸움을 벌이고
경비대장 주니가는 카르멘의 죄를 추궁합니다.
그러자 카르멘은 대담하게도 노래로 응수를 합니다.
‘테레사 베르간자’의 노래 “트랄 라라”입니다.
“트랄 라라, 나를 처형하세요, 화형에 처하세요.
나는 아무 말도 않겠어요. 난 아무것도 겁나지 않아요.
불이나 칼이나, 천국까지도....
비밀을 지키겠어요.
그리고 나는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죽겠어요.“
이어서 포승줄에 묶인 채로 카르멘은 세기디야 춤을 추며 노래합니다.
그러나 묶은 이와 묶인 이가 뒤바뀌는 형상입니다.^^
호송 도중 카르멘은 호세에게 자기를 도주시켜줄 것을 애원합니다.
호세는 고의로 넘어지면서 카르멘을 도주시키고
탈주를 도와준 죄로 동료 병사들에게 현장에서 체포됩니다.
2006 ROH, 안나 카테리나 안토나치, 요나스 카우프만의 세기디야입니다.
“세비야 성벽 근처 내친구 ‘릴리아스 파스티아’의 선술집에서
세기디아를 추며 만자냐를 마실거에요.
혼자서는 지루해요. 그래서 연인과 갈거에요.
나에겐 한 다스의 애인이 있지만,
오직 그만을 향한 내 마음의 문을 열었어요...“
2막
성문 밖 ‘릴리아스 파스티아’의 선술집
호세가 영창에 갇힌 지 벌써 한 달이 지났습니다.
덕분에 카르멘은 자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고요.
술집에는 많은 집시들, 한 무리의 병사들이 어울려
카르멘의 노래에 맞추어 춤추고 술을 마십니다.
이때 장안에 소문난 투우사 ‘에스카미요’가 나타나서
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그에게 집중됩니다.
그리고 그는 이 오페라에서 가장 유명한 아리아,
“Toreador (투우사의 노래)”를 부릅니다.
가사는 모 별거 없습니다. 그냥 투우에 대한 예찬입니다.
‘카르멘’의 미모에 대한 소문을 듣고 술집에 찾아온 ‘에스카미요’는
카르멘에게 구애를 해 보지만
호세를 향한 마음이 아직 남아있는 카르멘은
그에게 “아직은 때가 아니라."며 돌려 보냅니다.
MET의 전속 바리톤 ‘새뮤얼 레미' 입니다.
카르멘에게 딱지 맞은 ‘에스카미요’는 돌아가고
카르멘과 밀수꾼 두목 '단카이로' 그리고 카르멘의 친구들은
밀수로 한 밑천 잡기위한 모의를 합니다.
때마침, 한 달간의 영창생활을 마치고 졸병으로 강등 당한 호세가
카르멘을 만날 기대로 기쁨에 차서 술집에 들어옵니다.
그러나 꿈에 그리던 카르멘과의 재회도 잠시...
멀리서 귀대를 알리는 나팔소리가 들리고,
호세가 귀대를 서두르려 하자
카르멘은 자신은 한달 동안 호세만을 기다렸는데
호세는 자기보다 군대를 더 사랑하냐고 투정을 부리다 못해
조롱을 해 댑니다.
견디다 못한 호세는 한달전 카르멘이 던져주었던 장미를
영창에서도 간직하고 있었으며
꽃을 보며 당신과의 만남을 기대하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었다는 내용의 “꽃의 노래”를 부릅니다.
MET의 ‘호세 카레라스’입니다.
이때 카르멘에 흑심을 품고 술집을 찾아온 경비대장 주니가와 우연히 만나,
말싸움 끝에 결투를 하다가 카르멘의 동료에 의하여 주니가가 쓰러지고..
그 결과로 인하여 이제 호세는 탈영을 피할 수 없게 되었고,
결국 호세는 카르멘과 함께 밀수패들과 합류하기로 합니다.
간주곡; 각 막의 사이에 간주곡이 있습니다만
고즈넉하고 목가적 선율인 3막전 간주곡이 유명합니다.
제임스 레바인 의 MET 오케스트라 입니다.
3막,
밀수꾼들이 사용하는 한적한 산길 루트,
밀수품들을 옮기다 지친 일행들은 앉아 휴식을 취하고
카르멘의 친구들이 카드 점을 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카르멘의 점괘는 계속 “죽음” 만이 나옵니다.
“다이아몬드 스페이드, 죽음..
내가 먼저고 다음은 그이가..
우리 둘 모두의 죽음을..
쓰라린 운명을 피하려는건 소용없어..
카드는 거짓말을 안해....“
카르멘은 자신과 호세의 죽음은 운명적이라는 내용의
"카드의 노래"를 부릅니다.
놀라셨죠? ^^
지루하실까봐...
힙합가수 ‘비욘세’의 “Cards Never Lie"였습니다.
조금 생소한 쟝르인 "hiphopera" 랍니다.(오페라의 내용을 힙합으로 부르는)
뭐 '조르쥬 비제'의 작곡은 아니지만^^,
같은 이야기이고 가사도 같은 내용입니다.
다시 비제의 음악으로 돌아가 봅니다.^^
헝가리 출신 메조 소프라노 "빅토리아 비진"의 '카드의 아리아'입니다.
이후, 투우사 “에스카미요”가 카르멘을 찾아서 산으로 올라와
카르멘에게 또 구애를 하다가 호세와 싸움을 벌리고,
이어서, 고향의 약혼녀 ‘미카엘라’가 목숨을 걸고 산에 올라와
호세의 어머니가 위독함을 전하자
호세는 이미 '에스카미요'에게 마음이 넘어 간 카르멘에게
꼭 돌아올테니, ‘에스카미요’에게 가지 말라는 경고를 하곤
‘미카엘라’와 함께 하산합니다.
4막,
세비야 투우 경기장 앞.
3막으로 부터 한두달 지난 시점으로 투우경기가 있는 날입니다.
호세의 어머니는 돌아 가셨고
호세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에스카미요'의 정부가 된 '카르멘'을
주시하는 어둠속의 눈동자가 있습니다.
바로 '호세'입니다.
단검을 옷속에 품은 호세는 군중들 속에 숨어 있고
군중 속에 호세를 목격한 카르멘의 친구들이
카르멘에게 호세를 조심하라고 당부합니다.
그러나 간 큰 카르멘은 1막에 이어 다시 한번,
자신은 죽음이 전혀 두렵지 않다고 큰소리 칩니다.
모든 사람들이 투우장으로 들어갔으나
카르멘은 호세에게 마지막 절교를 선언하려고 남아있습니다.
드디어 홀로 남은 카르멘 앞에 호세가 나타납니다.
호세는 멀리 도망쳐, 다시 둘만의 사랑을 시작 하자고 떼를 씁니다.
이에 카르멘은 호세에게 사랑의 징표로 받은 반지를 입으로 빼서
호세 앞 땅바닥에 매치고, (이런이런, 제 명을 아주 제 손으로 재촉합니다.)
이에 열 받은 호세가 품속의 칼을 꺼내 카르멘을 찌르고,
죽어가는 카르멘을 끌어 안은 채 오열하는 호세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리면서 막은 내립니다.
극적인 전개의 4막임에도
서곡에도 삽입된 ‘투우사의 행진’이외에
특기 할 만한 노래는 없습니다.
비제는 ‘카르멘’을 쓰고 나서 3개월 만에 세상을 뜨게 되는데
아마 체력적 한계에 부딪혀
깔끔한 마무리를 못한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하지만 이건 순 제 생각이라는 거...^^)
1875년 발표된 “카르멘”의 무대인 스페인 안달루시아의 세비야는
투우경기와 플랑멩꼬 의 발상지이며
무슬림 무어인 들이 남기고 간 많은 이슬람 문화와
중세 고딕 문화가 혼재한 이국적인 아열대 도시이며
당시 유럽인들에게 휴양지로 첫손을 꼽히던 도시이기도 합니다.
그 동안 많은 오페라 무대의 배경이 되었습니다만
'카르멘' 만큼이나 이 도시의 이국적 색채를
가장 잘 묘사한 작품은 없다 하겠습니다.
반면, 이 오페라에는 비제가 작곡할 당시의 프랑스의 사회상도 비쳐집니다.
프랑스 혁명후 기존질서의 붕괴로 공권력의 약화에 따른
사회 각계각층의 타락과 부패,
그리고 ‘프로이센’과의 전쟁 패전에 따른 제정의 몰락,
'파리코뮨'같은 사회주의 정부의 출현등으로
사회적 격변을 겪고 있던 프랑스 제 3 공화국 시절의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운 파리의 상황이 투영되어 있습니다.
나폴레옹 제정시대의 파리 신흥귀족인 부르주와들은
의례히 애인 한 두명씩 있었고,
그 속에는 ‘카르멘’같은 악녀를 만나
패가망신을 당한 사람들도 덤덤 있었을 터이고,
그래서 ‘프로스페르 메리메’의 이런 선천성 악녀의 소설이
파리에서 크게 히트를 치게 되었나 봅니다.
비제가 첫 발표시 받았다는 관객들의 야유의 이유가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의한 오페라의 선정성이었기 보다는,
거꾸로 원작에 묘사된 선정적 설정의 생략 때문에
실망한 사람들의 야유이었을 거라는 건
지난 프롤로그에서 언급한바 있고..
(이도 순전히 제 생각이라는거...^^)
그러나 첫 발표 이후로는 꾸준히 관객이 몰려
삼개월 후 비제가 지병으로 사망할 때까지 무려 33회의 공연이
'오페라 코미끄'에서 열렸답니다.
첫댓글 열정~^^
대단하십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ㅋㅋ마지막 멘트 팍~^^와닿는~ㅋㅋㅋ)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