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강민 선수의 팬이기에 강민 선수를 대상으로 쓴 글이지만, 사실 이 글에서 "강민"을 "지금까지 계속 꾸준한 모습을 보여주는 다른 올드게이머"로 바꾸어도 상관없을 겁니다. 예컨대 "살아남아줘서 고마워" 정도가 될까요? ^^
#1. 창업(創業)이 어려운가, 수성(守成)이 어려운가
굳이 당태종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창업이냐 수성이냐는 어떤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려는 사람에게 언제나 생각해봄직한 화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타계에서도 마찬가지죠.
우선 창업의 어려움을 보겠습니다.
스타계엔 오랜 불문율과도 같은 법칙이 있습니다. 메이저리그 본선 진출 후 몇 시즌 내에 우승하지 못하면 영원히 하지 못한다는..
긴 공백을 뚫고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각성을 이뤄낸 박태민 선수나 인동초저그 조용호 선수 등 법칙을 깨는 선수들이 종종 나왔지만 아직까지도 꽤나 강력하게 힘을 발휘하고 있는 법칙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이 법칙의 이면에는 다음과 같은 전제가 깔려있죠.
- 선수는 처음 본선 진출 이후 몇시즌간이 전성기이다. - 그 전성기를 지난 후에 다시 예전 포스를 회복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즉, 창업에도 시기가 있으며 그 기회를 놓치면 두 번의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2회, 3회 우승자들은 점점 늘어가는데 새로 우승자 클럽에 가입하는 멤버는 극히 적은 것이겠죠.
이렇게 어렵사리 창업을 이룬 후, 수성은 더 어렵습니다. 특히나 스타리그의 무시무시한 우승자 징크스를 생각해본다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우승"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위해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실패해도 크게 잃을 것 없는 도전자의 위치에서 벗어나 그 꿀맛을 맛본 후 어쩔 수 없이 찾아오는 잠깐의 방심과 나태...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잡아먹을듯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신인들 -이제는 프로리그를 통해 방송경험까지 갖추고 더이상 "명성" 앞에 위축되지않는, 신인답지 않은- 의 공격목표가 되어 패배가 두려워지게 될 때,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한 순간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추락한 후에 재기하는 것은 처음 창업할 때보다 몇배는 더 어려운 일입니다.
개인적으로 창업과 수성, 어느 것이 어려운가는 차치하고, 긴 안목으로 봤을 때 스타판 전체를 위해 더 필요하고 더 중요한 것은 "수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찌되었든 대회가 계속되는 한 "창업"을 이루는 첫 우승자와 스타는 계속 나올 것이나, 그들이 "수성"하지 못한다면 올드팬의 확보도 어렵고, 스토리나 드라마가 만들어지지도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2. 강민은 "수성"하고 있는가?
많은 이들의 착각 가운데 하나가 "박정석은 꾸준하며 강민은 순간포스가 강력했다"라는 명제입니다. 물론 박정석 선수가 꾸준했고 강민 선수의 순간포스가 강력했던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박정석 선수의 순간포스 역시 강력했고 강민 선수의 커리어도 역시 꾸준했다는 사실은 의외로 곧잘 잊혀지곤 합니다.
팬인 저조차도 강민 선수가 기나긴 슬럼프를 극복하고 재기에 성공한 것을 주제로 동영상을 만들거나 글을 쓰기도 했으니까요.
그러나 사실 강민 선수는 늘 잘 했습니다. 항상 일정 수준 이상의 경기력을 유지했고, 많은 리그들 중 한 곳 이상에서 활약하고 있었습니다. 전성기 때의 소위 "미칠 듯한 포스"는 아니라 하더라도 말이죠.
양대 피씨방으로 떨어진 적은 단 한 번도 없고, 총 9차 MSL 중 8회 본선 진출에 우승, 준우승, 3위 2번, 4위, 5위를 했고 10차 MSL 시드까지 받았지요. 개인리그에서 부진했을 때는 프로리그에서 대활약을 보여주기도 했었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런 선입견을 갖는 이유는, 온겜과 엠겜의 차이일 수도 있고, 우승자가 바로 피씨방 예선으로 직행한 것이 강민 선수가 처음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으며, 박정석 선수의 단단한 정석적 이미지와 강민 선수의 아스트랄한 몽상가적 이미지 때문일 수도 있겠죠.
다만 지난 프링글스 2차시즌 8강 당시 김동준 해설의 "프로토스로 이만큼 꾸준하기가 정말 쉽지 않다"는 말에 뭔가 위화감을 느낀 사람이 저 혼자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꾸준함? 강민과 꾸준함은 뭔가 어울리지 않는데...??'
그러나 잠시만 생각해보면 이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 수 있죠.
강민 선수는 분명 수성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요즘 같은 시기에 8강이나 4강권에 꾸준히 든다는 것만으로도 그렇죠. 더구나 저그천하에 프로토스라는 종족을 가지고 말입니다!!! (잠깐 눈물 좀 닦고..)
#3. 강민이 수성 혹은 도전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절대 강민 선수가 다른 선수들에 비해 천재적 능력을 지녀서 그렇다는 주장은 하지 않겠습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팀내에서 가장 연습을 많이 하는 선수"라는 평을 듣는 것을 보면 말이죠. (물론 "노력의 천재"도 천재입니다만..;;)
지치지도 않고 계속 새로운 것을 연구하고 끊임없이 연습한다는 얘긴데, 말이 쉽지 뭔가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다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수성을 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이지만 "수성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론 불가능합니다. 지금까지 이룬 것을 지키려고 마음먹는 순간 어느새 추월당해 버리는 것이 냉정한 경쟁의 세계니까요. "더 앞서가겠다, 최고가 되겠다"는 도전정신이 필요합니다. (결론은 "무한도전"?)
그렇다면 무엇이 그로 하여금 끊임없이 도전하게 만드는 걸까요?
또 한번의 우승에 대한 염원...
GO 시절부터 몸에 밴 연습습관...
입버릇처럼 말하는 팬들에 대한 고마움, 약속...
프로로서의 자존심과 명예...
억대연봉을 받는 직업인으로서 소위 "밥값"은 해야 한다는 책임감...
수없이 눈물을 흘렸던 과거 좌절의 경험...
그리고 그 좌절을 결국은 극복해냈던 기억...
프로토스로 통합본좌가 되기 위한 야심? ;;
모르겠습니다.
이 모두일 수도, 어쩌면 모두가 아닐 수도 있겠죠.
#4. 준우승, 그 이후...
그런 강민 선수도 프링글스 시즌1 결승에서 패한 후 상당히 지친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렇게도 원했던 우승을 허무하게 날려버린 후 회복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겠죠.
그리고 다시 돌아온 프링글스 시즌2 초반, 강민 선수는 패배한 후 곧잘 알 수 없는 미소를 보여주었습니다. 팬들은 분해 죽겠는데 왜 웃냐고..원망을 담아 물어보았더니,
자신은 "패배의 여파가 너무 오래가는 스타일이다. 한번 지고나면 생각이 너무 많아져서 힘들다. 그래서 이제는 져도 그러려니하고 마음을 비워보려고 노력한다"고 하더군요.
승부를 일상다반사로 겪어야 하는 프로로서 롱런하기 위해서는 그런 소위 "해탈한" 자세가 정신건강에 좋겠구나..라고 생각하고 말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게임에 대한 의욕, 독기를 잃은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적어도 듀얼에서 탈락하고 MSL에서 16강 탈락 위기에 몰릴 때까지만해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와일드카드결정전을 통과하면서까지 끈질기게 살아남아 끝끝내 4강을 가는 모습을 보니 참 대단하다 싶더군요. 4강 1경기는 절대 의욕을 잃은 사람의 플레이가 아니었고, 그 경기를 보며 "강민은 절대 이쯤에서 대충 날개를 접을 생각이 없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물론 나머지 경기를 보고는 마본좌의 벽은 너무나 높다는 것을 느꼈...;;)
#5. 최고령 메이저리거, 그리고 <갈매기의 꿈>
어느새 곰TV MSL에서 강민 선수는 최고령 리거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본인 표현대로) "깝깝해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꾸준함에 자랑스러워하고 "최고령 우승자"라는 더없는 영예를 차지할 기회로 생각하길 바랍니다.
우승을 향한 당신의 끝없는 목마름, 쉼없는 도전에 박수를 보냅니다.
가끔은 힘에 부쳐 아슬아슬 저공비행을 하더라도, 가끔은 땀을 식히러 잠시 둥지를 찾더라도,
늘 더 높은 곳을 향해 날아오르고자 자신을 혹독하게 단련하는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처럼 꿈꾸는 것을 멈추지 않기를...
우리의 박수가 당신이 쉬지않고 날 수 있게하는 원동력이 된다면, 당신의 끝없는 도전은 우리 삶의 원동력이 됩니다.
오늘도 그 삶의 한가운데에서 조용히 외쳐봅니다.
광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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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다리1)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__)
마음은 굴뚝같지만 생활에 치여 자주 오프도 못가고 응원글도 못쓰는 못난 팬이, 아직도 먼길 날아야할 강민 선수, 연료 떨어질까봐 (혹은 어린 선수들 사이에서 뻘쭘해하고 있을까봐^^) 미약하나마 미네랄, 가스 좀 보충해주고 싶은 마음에 일하는 사이사이 이렇게 키보드를 두드려 봅니다.
역시 팬들의 응원이 날라를 계속 날게 만드는 가장 큰 힘이겠지요?
뱀다리2) 다들 잘 지내고 계시죠? 이제 완전 잊혀졌을까 두려워하고 있는 민트입니다. 이글은 피지알과 아트토스, 카페, 강민갤러리에 올릴 예정입니다. 지겹다고 화내지 마시길..^^
민트님 글 정말 오랫동안 기다렸습니다. 여기 10대들이 많아 공감대 형성되는 글들이 잘 안올라 오더라구요. 신경써서 읽어지지도 않았구요. 창업이 수성난 에 관한 견해는 정말 스타보면서 저도 많이 했던 생각인데... 이젠 자신의 명예와 팬들을 위해서 우승을 하겠다고 한것. 또한 많은 플토유저들에게 존경받는 플토의 대부 격인 민선수는... 임요환 선수급의 거장으로 서고 있는 중인듯 합니다.
3번 글 공감합니다. 옛날의 강자중에서 지금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프로게이머들은 연습시간의 부족이 아니라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생각을 겸비한 연습이 없다고 생각 합니다. 그런 면에서 강민 선수는 아직도 새로운 트렌드를 이끌어갈 정도의 창의적인 게임을 보여주고 있기에 최고의 게이머중 한명이라 생각 합니다.
첫댓글 정말 멋진 글이었습니다. 몇번을 읽어도 지루하지 않을 만큼 말입니다~ 모두다 공감가는 글들이었어요. 조심스럽게 바래봅니다. 최고의 연장자로서 가지는 강민 선수의 우승을^^
벌써 연장자가 되었나요 -_-;; 동갑인 저로써는 인정하기 싫습니다 ㅠㅠ 이글 읽고 선수님이 힘을 더 낼 수 있겠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
최고령자라는 말.. 정말 어색합니다만 어느새 사실이 되어버렸네요. 강민 선수가 나이를 먹는 것처럼 팬들도 나이를 먹어가고 있지만 영원히 변함없이 잘하는 선수로 남아주시길..^^
지겨울 수가 있나요~ 어느새 최고령자.. 조지명식의평균나이를 듣고 정말 깜짝 했다죠.. 한편으론 좀 씁쓸한 마음이.. 강민 화이팅입니다!
pgr21에서도 읽었습니다. 정말좋은글이네요 ㅎㅎ. 정말 강민선수 계속 활동하셔서 30대프로게이머를 대표하는선수가되셨으면하네요. 저 또한 영원히 강민선수팬이구요 ^^
연장자에서 솔직히 '풋..ㄱ-*'하였지만...그래두 기분은좋은거같아요^^
글 멋있다 ^^ㅋ
그 원동력은 아마도.. '멈추지 않는 쿰'이 아닐런지 ^ ^;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언제나 화이팅이에요!
좋은 글입니다
민트님 글 정말 오랫동안 기다렸습니다. 여기 10대들이 많아 공감대 형성되는 글들이 잘 안올라 오더라구요. 신경써서 읽어지지도 않았구요. 창업이 수성난 에 관한 견해는 정말 스타보면서 저도 많이 했던 생각인데... 이젠 자신의 명예와 팬들을 위해서 우승을 하겠다고 한것. 또한 많은 플토유저들에게 존경받는 플토의 대부 격인 민선수는... 임요환 선수급의 거장으로 서고 있는 중인듯 합니다.
와. 민트님 글. 너무 멋집니다. // 이렇게 멋진 팬의 한결같은 응원을 받는 민선수님은 정말 든든하시겠어요.
와, 정말 멋진 글입니다 ㅠㅠ 필력이 대단하세요~
좋은 글이에요~ 글이 너무 멋져요^^ 좋은 글을 봐서 기분이 좋네요^^
글 너무 좋아요~ 언제나 강민동 화이팅입니다!! ㅋㅋ//
두번다시 회복불가능한건..임요환선수가 가장 큰 예죠...제물이 됬다는 느낌이;;;
글 잘읽고갑니다;ㅅ; 정말 평균나이는 저도 듣고 깜짝놀랐다는-_-; 최연소나이도 아니고 평균이라니 ㅠ_ㅠㄷㄷ 그래도 그 나이까지 거기에 있다는게 더 대단한거!
박정석선수의 꾸준함이 돋보인건 에버때죠..그떄 플토가 박정석 혼나남아갖구 더 그래보였다는 그당시의 박정석선수가 연속4강도 하셧구요
추천한방 눌러주고 싶다는 ㅋㅋ.. 잘 읽었어용 ~
3번 글 공감합니다. 옛날의 강자중에서 지금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프로게이머들은 연습시간의 부족이 아니라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생각을 겸비한 연습이 없다고 생각 합니다. 그런 면에서 강민 선수는 아직도 새로운 트렌드를 이끌어갈 정도의 창의적인 게임을 보여주고 있기에 최고의 게이머중 한명이라 생각 합니다.
추천추천추천추천추천!
저도 추천 꾸욱 너무 멋진글입니다 ㅠㅠ
원동력은 칼로리 ㄳ
멋있네요..ㅋㅋ 강민화이팅입니다!!
너무나도 공감되는 글이네요 ㅡㅠ .. 최연장자이지만 그래서 그런지 더 멋있고 대단해 보이는 강민선수 !! 언제까지나 변함없이 잘 하셨으면 좋겠어요 ^ ^
누가 썼는지 보지도 않고 읽었는데 역시나 민트누님이었다는...^^;;
민트님 말처럼 강민선수에게 강민동의 자그만한 응원이 원동력이 될수 있다면 언제든지 해야죠^^
멋진글이네요
헐 정말 잘쓰셧다 ㄱ-.. 글솜씨가..
잘쓰셨다;ㅋ
쿨럭... 진짜 읽고 감동했다는....백번천번공감하는...글이었네요...넘 멋있으셔랑..^^ 민선수..언제까지나 홧팅입니다!!
[061205]에 작성하신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