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1941년 당대 최고 여가수인 황금심과 결혼하여 남여 듀엣으로 활동하며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한다.
6.25 때는 괴뢰군에 붙잡혀 인민군이 되기도 했으나 국군에 구출되어 군예대에 편입되어 활동했다.
전후 1957년 은퇴 공연 이래 손대는 사업마다 계속 실패하여 어려운 생활을 했다. 아내 황금심이 영화 주제곡을 부르며 생계를 연명하는 사이 고복수는 서적 외판원으로 일해야 했다.
이후 지병으로 투병생활을 하다가 중풍과 식도염으로 1972년 사망했다. 향년 62세였다.
그가 은퇴 후 동화예술학원을 경영할 때 배출한 제자로는 가요계의 여왕 이미자와 대전 부루스의 안정애, 서울 손님의 하춘화, 빨간 구두 아가씨의 오기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