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방에는 흙이 가득 담긴 조그마한 흰 단지가 하나 있다.
그렇다고 화초를 심어놓은 것도 아니고 그저 하얀 단지솎에 당그만이 흙만 담겨져 있는거다.
그 흙이란 다름 아닌 내가 고향을 생각할때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르고,어렸을때 할머니 등에 업혀서 고모님댁엘 다니던, 그리고 젊어서 고생고생 하면서 과수원을 하던 곳의 흙이다.
아직 나이도 별로 먹지 않은 주제에 고향의 흙이네 뭐네하고 그 무슨 궁상을 떨고 있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런지 모르지만, 몇년 전엔가 그 땅이 남의 손에 넘어가기 전에 내 땅으로서는 마지막으로 남어 있을때 너무나도 애착이 가는 땅이였기에 조금 파온거다.
흙이라면 어듸 흙이나 다름이 없을런지도 모르지만 나의 어릴때 추억이 얽히고 설킨 나의 과수원에 대한 집착을 유난히 강한 것이고,또한 고향을 회상할때 떼어 놓을수가 없는것이 과수원터이기에 그곳이 남의 손에 넘어간다는게 무엇보다도 견듸기가 힘이 들었다.
상전벽해라고 옛사람들은 말했지만 그야말로 과수원터가 변해가는걸 보고 있노라면 그말이 절실하게 느껴진다.
어릴때 나는 장손이라고 유난히도 어리광을 피웠고,또 그 어리광을 잘도 받아주시던 할머니는 내가 퍽 컷을때 까지도 업고 다니셨다.
할머니의 등에 업혀서 장등을 넘어서 고모님 댁엘 가던 생각.
국민학교때 과수원 터에 뽕나무를 잔득 심어서 오듸가 새카맣게 익을 때면 이천에 사는 동무들이 오듸를 따 먹으러 10리길을 걸어서 우리집에 와서 오듸를 따 먹으면서 놀다가 석양이 붉에 타는 신작로 길을 "카보이 아리조나 카보이"하며 노래를 불러가며 떼를 지어 뛰어 가는걸 바라보던 생각.
내가 퍽 어릴때 심어 놓은 복숭아 나무에서 천진수밀도라는 옛날 복숭아가 저절로 열려서 익을때면 그걸 따먹던 생각.
고모님댁에 갔다 오다가 빨간 뱀이 있기에 흙덩어리를 던졌더니 그놈이 냅다 쫓아오는 바람에 정신없이 도망을 가던 생각.
어릴때 추석날이 되면 거북이를 만들기 위하여 남의 밭에 들어가서 수수잎을 따가지고 뒷동산에 모여서 거북이를 만들때 우리 밭에는 들어가면 않된다고 소리소리 지르며 돌아다니던 생각.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가장 잊혀지지 않는건 역시 겁도 없이 농사를 지어 보겠다고 농촌에 뛰어 들어가서 과수원을 할때의 생각이 아닌가 한다.
지금생각하면 꿈같이 생각이 되지만 그때는 힘든줄도 모르고 잘도 참어 냈다고 스스로 놀란다.
결국은 도중에 마음이 변해서 농사를 팽개쳐 버리고 이곳 일본까지 와서 살게 되었지만 지금도 그때 찍은 사진들을 볼때마다 고생스럽던 시절을 회상해보곤 한다.
가끔씩 고향이 그리울때마다 고향의 흙이 담긴 단지를 들여다 보거나 냄새를 맡아보곤 한다.
별다른 냄새가 나는것도 아니건만 그래도 나의 코끝에는 고향의 냄새가 물씬나는 듯한 감이 들어 간다.
이젠 고향을 떠나고도 어지간히 세월이 흘러서 잊혀져 갈만도 하건만 세월이 가면 갈수록 더더욱 간절히 생각이 난다.
언제가 될런지는 모르지만 좌우간 때가 되어서 내가 죽어서 땅에 뭍일때가 되면 내땅의 흙을 내 뼈위에 뿌려 달라고 처를 비롯한 가족들에게 부탁을 했다.내가 죽은후에 내 가족들이 과연 나의 마음을 기억하고 나의 바램대로 해 줄지는 모르지만 그래주길 바란다.
첫댓글 바깥에 나가 계시는 분들헌티 가장 우리 것이 잘 보존되 있다는 말을 실제로 여러 사람들은 만나서 보고 느낌서 실감하고 있습니다. 본래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은 그 귀험을 모르개 되거든요... ^^
여행중에 조그만 돌덩어리 하나 주워서 가방안에 넣어왔었는데 그것이 돈주고 사온 기념품보다 더 정이 갑디다...
이국에서의 삶이 늘 이유없이 물기 마르더라는 이야기를 들었읍니다. 잘 사는데도, 행복한데도, 그냥 그러더라는,,, 태어난 곳의 흙냄새 때문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