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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목) |
22일(금) |
23일(토) |
24일(일) |
9시 ~12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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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관계자 활동 준비 |
현지 적응 |
현지물품구입 |
점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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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 ~5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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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관계자 활동 준비 |
MDK와 회의 |
교육원확인 |
저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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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 ~9시 |
알마티 도착 - 밤 9시경 |
환영의 밤 |
도시 구경 시장 구경 |
활동준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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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월) |
26일(화) |
27일(수) |
28일(목) |
29일(금) |
30일(토) |
31일(일) |
9시 ~12시 |
한글교육 - 자기소개 |
한글교육 - 길 찾기 - 탈 만들기 |
- 야유회 - 한글교육 - 한국 노래 야유회 -손수건돌리기 -단체 줄넘기 등 |
한글교육 - 예절 - 음식 |
한글교육 - 탈춤 - 색깔 |
한국의 날 준비 |
휴식 |
점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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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 ~5시 |
티셔츠 만들기 영상물-뉴스 |
전통놀이 - 연 + 태극 - 제기차기 - 윷놀이 등 |
MDK주관 -카작인 만남 |
영상물-역사 강연 포럼 |
한국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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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활동 | |
저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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뷔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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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 |
카작 춤 |
카작 춤 |
카작 춤 |
카작 춤 |
카작 춤 |
클럽 |
짐정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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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일(월) |
8월2일(화) |
8월3일(수) |
8월4일(목) |
9시 ~12시 |
이동 상견례 |
체육대회 |
기록활동 |
알마티 구경 |
점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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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 국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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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 ~5시 |
명소 탐방 |
문화행사 |
물놀이 |
알마티 구경 짐정리 |
저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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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 ~9시 |
행사준비 홈스테이 |
영화상영 디스코 타임 홈스테이 |
알마티 이동 |
밤11시 출국 |
▩7월 21일 카자흐스탄 알마티 국제공항 도착
▩22일~ 23일 알마티에서의 대부분의 일정이 진행될 한국어 교육원을 방문하여 장소 및 시 설 협조를 구하고 카자흐스탄 내에서 한국어 교육원이 가지는 위상과 역할, 그리고 그 곳 분들이 보시는 한국어 교육에 관한 설명을 들음.
현지 파트너인 고려인 청년 협회(MDK) 청년들과의 첫 만남.
고려인 청년 협회의 고려인 사회에서의 역할과 겨레문화 창의단의 파견 목적, 진행 할 프로그램들에 관한 프리젠테이션.
1주일간의 알마티 일정에 관한 협의 회의.
앞으로 진행될 일주일간의 프로그램을 위해서 각 팀별 회의 및 연습
현지 조달 물품 협조 및 구매
▩ 24일 총연습 및 현지 생활 적응을 위해서 시내, 시장등 견학.
▩ 25일~31일 한국어 교육원에서 오전-한국어교육, 오후-전통문화 체험 프로그램 진행
▩ 8월1일~4일 우슈토베일정진행
==>25일부터 4일간의 일정은 팀별 활동내용을 바탕으로 기술하겠다.
팀 별 세부 활동 사항 및 제언
카자흐스탄 팀은 한국어 교육 팀, 미디어 및 기록 팀, 한국 요리 팀, 예산 집행 및 관리 팀으로 이루어 져 있고 각각의 인원은 전공 및 평소의 관심과 사전 활동 경험에 의해서 나누었다.
파견 1달 전부터 전체 회의 및 팀 별 회의 , 모임을 통해서 각 팀의 개별 활동은 팀원들의 책임하에 주도적으로 진행 할 수 있도록 권한과 책임이 부여된 조직인 동시에 팀의 팀장을 기본으로 실제 프로그램을 진행 할 때에는 프로그램의 특성에 따라서 서로 협력하여 함께 진행 할 수 있도록 유연하게 진행 되었다. 그 중 ‘전통 놀이 팀’ , ‘미디어 및 기록 팀’, ‘한국 전통 놀이 팀’ 의 활동세부 사항을
(1) 활동내용 (2)활동의 의의 및 성과 (3) 좋았던 점 (4) 현지인의 반응 (4) 개선할 점으로 나누어 상세히 설명해놓았다.
<전 통 놀 이 팀>
팀원 : 윤시내, 류혜정, 이채린, 이혜미
(1)활동내용
․7월25일 티셔츠 만들기-
하얀 티셔츠 위에 한국에 관한 이미지를 각자의 개성에 따라 표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자유롭게 리폼. 티셔츠에 반드시 자기 이름을 새겨 넣게 함으로써 한글교육의 효과도 누림.
․26일 가오리연 만들기-
야유회 날 한국의 전통놀이인 연날리기와 연싸움을 즐기기 위해, 가오리연을 제작.
우리나라의 정체성을 함축적으로 가장 잘 담아내고 있는 태극기를 연 위에 그려 넣게 함으로써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상징인 태극기를 서툴지만 직접 그려보는 의미 있는 시간을 갖고 한국의 정체성 확인. 꼬리부분에 한글로 소원을 적게 함.
다식 만들기- 한국의 민요․트롯․가요 등 여러 장르에 노래를 들으면서 진달래 차와 다식을 직접 만들고 먹어봄. 간단한 다도를 익힘.
․27일 야유회- 카자흐스탄의 유명호수인 ‘예슥호수’로 야유회를 떠남. 우리가 미리 준비해 온 김밥과 그들이 싸온 그들의 음식을 나눠먹으며 한국의 전통놀이 연싸움과 꼬마야 꼬마야 등 조를 나눠 전통 기념품을 목표로 두고 여러 놀이를 즐김.
알마티 한국교육원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교실을 벗어난 공간에서 재미있는 놀이로서 즐거운 문화 교류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음.
․29일 탈 만들기- 한국의 여러 전통 탈을 소개하는 시간을 갖고, 탈을 만듦. 탈 만들기는 시간이 오래 걸림을 감안하여 2번에 걸쳐 만듦.
대동놀이 연습- 전통문화 교육과 30일 한국의 날 공연을 위해 MDK친구들과 다같이 탈춤을 춰보고, 사물을 가지고 대동놀이를 즐김.
․8월2일 공연- 우슈토베 제르진스키 학교에서 카자흐스탄 전통 춤과 전래놀이 퍼포먼스를 공연. 그들 또한 카자흐스탄 전통 춤과 부채춤 등을 보여줌으로써 쌍방 문화교류 시간을 가짐.
(2) 활동 의의 및 성과
전통놀이 팀은, 겨레문화창의단이라는 슬로건에 걸맞게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를 소개하고 같이 체험해보며 그들이 우리 문화의 뿌리부터 이해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 쌍방의 문화교류를 도모했다.
전통놀이 팀은 주로 알마티한국교육원에서 오전에 한글교육시간 이후 오후 프로그램을 담당했으며, 일방적인 사실전달 교육의 방식이 아닌 같이 즐기고 체험하므로 써 그들의 우리문화수용의 폭을 극대화했다.
(3)좋았던 점
-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를 소개할 수 있었음.
- 한글교육팀과 미디어센터팀의 계획과 맞물려 진행이 가능하여, 전통놀이와 더불어
한번에 두가지 효과를 누릴 수 있었음. 시너지 효과를 기대.
- 한국을 뿌리부터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
- ‘놀이’를 계기로 그들과 더 가깝게 호흡할 수 있는 장을 염.
(4)현지인의 반응
- 우리나라의 전통놀이(전통문화)를 처음 접한 현지인들은 처음엔 다소 신기한 표정으로 호기심을 채우기 위한 소재로만 보는 듯 했으나, 이내 곧 탈춤과 사물놀이 등 흥겨운 우리가락과 우리몸짓에 같이 동참하기 시작했으며 모든 면에서 상당히 흥미로워 했다.
(5)개선해야 할 점
- 한국문화 교류라는 이름 하에 무언가를 같이 만들어보고 직접 체험해본다는 시도는 좋았으나, 실제로 그것이 그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가는지- 단지 유희적인 의미에서 끝나는 것은 아닌지 - 어떻게 느끼는지를 표면적으로 알 수 없음.
그들에게 우리의 활동을 평가하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됨.
- 단기파견의 특성상 짧은 시간 내 할 수 있는 문화교류의 방법이 단순 제작에만 그친다는 것이 아쉬움.
<미디어 팀>
팀원: 조창연(팀장)/최새론/김윤미/김지윤/송수란
(1) 활동내용
미디어 팀은 한류열풍과 맞닿아 있는 현지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개설된 팀이다. 정식명칭은 <미디어센터 팀>이며, 목적은 현지에서 미디어센터를 꾸리는 일이었다. 작게는 미디어센터라는 공간을 얼마나 잘 운영하는가가 관건이었고, 크게는 미디어를 활용하여 현지 친구들에게 얼마나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가, 가 관건이었다. 보름 간의 활동에 있어 크게 ‘알마티에서의 활동’과 ‘우슈토베에서의 활동’으로 나누어 기술하겠다.
-알마티에서의 활동
카자흐스탄의 옛 수도 알마티에서는 약 일주일간의 활동이 있었다. 주 활동지는 알마티한국어교육원이었으며, 소강당 옆 작은 공간이 미디어센터로 활용되었다. 미디어센터를 구성하는 커뮤니케이션 매체들은 크게 영상매체와 인쇄매체로 나뉘었고 이 중 한국 대중가요의 뮤직 비디오 상영이 가장 큰 호응을 얻지 않을까 예상되었다.
예상대로 현지 친구들은 교육원 일정 틈틈이 시간을 내어 미디어센터에 관심을 기울였는데, 한국 드라마나 인쇄매체보다는 뮤직 비디오에 집중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모습이었다. 이와 더불어 대중음악 CD를 제작하여 선물하였다. 한국의 날 행사가 열렸던 고리끼 공원에서는 미디어 센터의 활동이 상대적으로 미약했다.
마지막으로 가장 영향력이 컸던 것은 즉석에서 사진을 현상해 주었던 점이다. 미리 준비한 한국 전통 의상을 입고 찍은 사진들을 소중히 간직하고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겨레문화창의단’의 존재 가치를 새삼 느끼게 되었다.
-우슈토베 에서의 활동
우슈토베에서의 활동 역시 기본적으로는 알마티와 동일하다. 역시 우슈토베 제르진스키 학교 강당 옆 작은 방이 미디어센터로 꾸며졌다. 알마티에서의 반응이 한국 드라마나 인쇄매체보다 뮤직비디오에 크게 쏠렸던 사실을 감안하여, 우슈토베에서는 이를 집중적으로 상영했다. 한편, 크게 각광받은 활동이 있었는데 바로 디스코 타임이었다. 현지인들의 특성 상 음악과 춤을 좋아하는데 이를 착안, 어두운 학교 앞 공터를 활용하여 디스코타임을 가졌고 물론 이곳에서도 사진 현상은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2) 활동의 의의 및 성과
-단기적 의의
단기적으로 볼 때 미디어센터의 활동은 현지 고려인 세대들에게는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과 문화적 감각을 일깨우는 큰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고려인이 아닌 현지 젊은 세대-우슈토베에서는 어린이들에 이르기까지-에게 한국이라는 나라를 알리는 소중한 시간들이 되었다.
-장기적 의의
장기적으로 볼 때 미디어센터의 팀은 당장의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차원에서 나아가, 카자흐스탄 0.9%를 차지하고 있는 고려인들을 비롯, 카자흐스탄 인 모두에게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현지에서 현상해 준 사진들은 우리들이 철수한 다음에도, 아니 향후 몇 십년동안 한국에 관한 관심을 유발할 소지가 되었다고 사유된다.
(3) 좋았던 점
첫째, 뮤직비디오를 통한 한국 대중음악의 전파.
둘째, 한류열풍의 주역인 한국 드라마를 통해 한국 사회에 대한 이해도에 기여.
셋째, 한국 인쇄매체를 통한 한글에 대한 관심 유발.
넷째, 사진 현상을 통한 지속적인 한국에 대한 관심 유도.
다섯째, 음악 CD와 현지 디스코 타임을 통한 한국 음악에 대한 감각 체득.
(4) 현지의 반응
-알마티
알마티에서 주로 함께 활동한 것은 현지 고려인 협회 청년들이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카자흐스탄 사회에서 교육과 문화생활에 있어 중상층 이상의 환경을 가진 이들로, 미디어 장비에 대한 관심은 컸으나, 이것을 한국 전체 사회에 대한 관심으로 이행시키는 데에는 무리가 따랐다고 생각된다.
-우슈토베
반면 우슈토베에서는 저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였고 경제적으로 덜 발전된 지방이었기 때문에 한국의 시골과 마찬가지로 정서적 유대감을 많이 공유할 수 있었다. 호기심 많은 아이들에게 한국 문화는 때론 신비롭기도 하고, 때론 자신과 닮아있기도 함을 느끼게 했던 것처럼 보인다. 현지의 반응은 매우 뜨거웠으며, 그만큼 활동한 우리들의 마음도 뜨거워질 수 있었다.
(5) 개선할 점
첫째, 알마티에서의 활동과 우슈토베에서의 활동의 비율 선정이 잘못되었다.
둘째, 미디어센터인 만큼, 다양하고 수적으로 많은 매체들이 동원되었어야 했다.
셋째, 음악 CD의 제작과 같은 부분은 한국에서 선행될 수 있었던 부분이다.
넷째,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기기가 문제였다.
< 한국 전통 요리 팀>
팀원: 전선형, 정은희
(1) 활 동 내 용
1. 7월 25, 26, 28, 29일
한국어 교육 시간에 한국 과자와 전통차를 간식으로 준비.
==> 국어 교육시간에 제공되었던 간식은 요즘 우리가 먹는 다양한 한국 과자와 한과, 약과, 전병이 있었고 차는 율무차, 유자차, 둥굴레차, 녹차가 있었다. 테이블 마다 차와 과자를 세팅해놓고 수업을 하면서 자유롭게 먹을 수 있도록 하였다.
2. 7월 27일
야유회때 먹을 김밥과 간식 준비.
==> 야유회 장소인 예슥호수 에서 현지 친구들이 김밥을 직접 말아보고 함께 먹으려는 의도였지만, 예슥호수가 음식을 준비하고 정리할만한 수도 시설이 없고, 마땅히 김밥을 말 수 있는 장소가 없고 또 날씨가 매우 더운 관계로 재료가 쉽게 상할 수 있어서 당일 아침 창의단 단원들이 숙소에서 김밥을 말아서 한줄 씩 포장해 가지고 갔다. 김밥뿐만 아니라 과일과 한국에서 가져온 과자들도 많이 가지고 가서 함께 먹었다.
3. 7월 30일
한국의 날 한국음식 코너를 위한 다양한 한국 음식 준비.
==> 한국의 날에는 선형, 은희를 중심으로 4~5명의 여자 단원들이 한쪽에 한국음식 부스를 따로 마련해 천막을 세우고 테이블을 놓고 간판을 달아놓고 음식을 차렸다. 불고기, 떡볶이, 볶음밥, 파전, 김치전, 잡채, 국수와 한국 전통 과자를 전시하였다.
4. 8월 2일
우슈토베 체육대회때 아이들에게 나눠줄 김밥 싸기.
==> 우슈토베 에서도 역시 처음 생각은 김밥을 직접 말아보고 맛보게 하는 것이었으나, 인원이 너무 많고 위생상의 문제도 있어 선형, 은희를 비롯한 5~7명의 창의단원이 체육대회가 끝날 때 까지 학교 한쪽에서 아이들에게 점심으로 나눠줄 김밥을 말았다.
(2) 활동의 의의 및 성과
현지 사람들에게 한국의 전통음식을 선보이고 서로의 마음의 거리를 조금이나 좁히는 데 주력.
음식. 다시말해 미각은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감각으로 서로 말이나 글이 잘 안 통할 때에도 음식을 나누어 먹으면서 서로 많이 가까워 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특히, 우슈토베 일정의 경우에는, 파견되기 전에 한국에서 그곳의 프로그램을 함께 논의 하는 과정에서부터 우슈토베 아이들은 한 번도 한국의 김밥을 먹어본 적이 없지만 막연하게 ‘김밥’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으며 매우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니 함께 만들고 먹어보는 행사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요청을 받을 정도였다. 단순이 맛있는 것을 맛보는 수준을 넘어 함께 하는 하나의 작은 장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했다.
(3) 좋았던 점
비록 말도 안 통할 때도 많았고 문화의 차이가 나서 마음이 안 통해서 답답할 때도 많았다. 그러나 맛있는 한국 전통 음식을 먹을 때 만큼은 서로 너무나 즐거운 분위기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좋은 분위기였다.
그리고 한국에서 미리 레시피 북을 만들어 가서 한국 전통요리에 관심을 보이시는 분들이게 나누어 주었다. 그래서 이번 행사가 one time event로 끝나지 않고 한국의 전통요리에 많은 관심을 보이도록 애를 썼다.
(4) 현지인들의 반응
야유회 때 싼 김밥은 재료를 거의 한국에서 준비해 간 것들로 했기 때문에 한국에서 먹는 김밥과 맛이 거의 똑같았다. 이날 힘든 점이 있었다면 그동안 행사를 진행하느라 많이 지쳐 있었던 창의단원들이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서 2시간정도 김밥을 싸야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원래 우리의 계획대로 현지 친구들이 직접 김밥을 말아보도록 하는 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해서 재료를 조금 남겨서 아이스박스에 담아서 야유회 장소에 가지고 갔었는데 버스에 그걸 두고 내렸다. 결국 우리가 싸가지고 간 김밥을 맛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지만 다들 김밥을 아주 맛있어 해서 기뻤다.
한국의 날에 가장 좋은 반응을 보였던 것이 바로 한국 음식 코너였던 것 같다. 축제를 시작하기 전에 음식을 준비할 때부터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곤란할 지경이었다. 물도 사먹어야 하는 나라에서 공짜로 음식도 나눠주고 마실 것도 주니까 사람들이 엄청 몰려들었다. 우리 의도는 음식들을 전시해 놓고 많은 사람들이 맛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는데 순십간에 몰려든 사람들이 음식들을 다 먹어치워 버려서 몇 시간 동안 음식을 준비했던 우리는 다소 허탈하기까지 했다.
우슈토베 에서도 김밥을 현지 사람들이 직접 말아보게 하려는 것이 처음 우리 의도였다. 하지만 그곳은 가난하고 현지 코이카 단원이 아이들이 식탐을 부리는 것을 막아 팔목에 띠를 매주자고 했던 말이 생각하서 또 우리가 미리 김밥을 말아 나눠주기로 했다. 오전에 체육대회를 하는 동안 우리는 학교 뒤쪽 그늘에 자리를 잡고 김밥을 말았다. 이번에는 한국에서 가져온 재료들이 거의 다 쓰고 없어 현지에서 재료를 구했기 때문에 약간 이국적인 김밥 맛이 났다. 예상보다 사람들이 많이 와서 체육대회가 끝날 때 까지 김밥을 다 마느라 힘들었지만 그곳의 아이들과 어르신들께서 김밥을 굉장히 좋아했다.
(5) 개선할 점
현지 친구들이 직접 김밥을 말아보는 프로그램을 하고 싶다면 수도 시설이 갖춰져 있고 테이블이 있는 실내에서 하는 것이 좋겠다. 그렇지만 인원이 너무 많을 경우는 하지 않는 것이 좋겠고 우리 창의단원이 감당할 수 있는 인원일 때만 가능할 것 같다. 요리 팀은 창의단원들이 요리를 해야 하거나 혹은 우리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사람들과 함께 한국 전통요리를 체험하는 행사를 진행하고 싶어도 마땅한 도구와 시설이 갖추어 지지 않아 행사를 진행하기 위한 물품을 준비하는 데 가장 힘들었던 팀이다. 요리를 하기 위해서 필요한 대부분의 도구들은 한국에서 준비했었지만, 프라이팬, 버너 그릇들, 하수 배수 시설과 같은 모든 것을 한국에서 준비해서 가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파견 전에 미리 확보가 필요한 부분이다.
그리고 한국의 날 우리가 했던 것처럼 불특정 다수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것은 좋지 않은 것 같다. 많은 사람에게 다양한 한국 음식을 맛보게 하려는 의도를 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했던 것처럼 열린 공간에서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축제라면 음식을 나눠줄 때는 적절한 통제가 필요하겠다.
우슈토베 사람들은 알마티 사람들 보다 한국 음식을 더 좋아하고 잘 먹는다. 우슈토베 에서 한국 음식을 맛보는 프로그램을 한다면 재료를 넉넉히 준비하는 것이 좋다. 한국 전통 요리 체험과 같은 행사는 알마티와 같이 다소 부유한(한국의 서울과 같은 곳) 보다는 우슈토베와 같이 한국의 전통에 관해서 관심은 많으나 접해 볼 기회가 별로 없는 곳에서 진행하는 것이 그 의도에도 더 들어맞을 듯 하다.
행사일정 중 두 가지 축제 일정 상세히 소개
카자흐스탄 15일 파견 일정 중 알마티와 우슈토베에서 각각 두 번의 축제시간을 가졌다.
이 행사는 모든 일정중 가장 큰 행사이며 많은 사람들이 함께 참여 할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창의단원들이 활동프로그램들 중에서 주력했던 부분이다.
<한국의 날 >
시간 : 7월 30일
장소 : 카자흐스탄 알마티, 고리끼 파크
첫 번째, 알마티에서의 축제는 ‘한국의 날’ 이라는 이름을 붙였으며, 1중일동안 한국어 교육원에서 진행하였던 행사를 총망라하여 그 성과를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못 한 모든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는 축제의 창인 동시에 카자흐스탄 사회에 ‘고려인’ ‘한국’ 이라는 이미지와 정체성을 심어주기 위해서 기획되었다.
알마티에서 고려인청년단(MDK)과 일주일을 보낸 후, 그들과 함께 카자흐스탄 현지인들에게 직접 다가가 우리 한국을 알리고 소개하는 일을 갖고자 하여, 7월 29일 알마티 고리끼 공원에서 한국의 날 행사를 갖게 되었다.
총 두 번의 공연과 더불어 한국의 전통문화를 소개하는 전시회와 한국음식을 직접 조리하여 맛을 보게 하고 소개하는 부스, 그리고 미디어 부스를 열었다.
공연의 순서는 카자흐스탄 전통 춤을 시작으로 MDK와 함께 한국의 느낌을 담아 제작했던 티셔츠로 개성있는 패션쇼를 열었고, 우리 카자흐스탄 팀이 기획한 한국의 전래놀이 퍼포먼스와 함께 마지막은 탈을 쓰고 탈춤을 추며 카자흐스탄 현지인들과 다함께 어울려 신명나는 사물놀이를 하는 것으로 한국의 날 행사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한국의 날 행사의 의의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못 했던 다른 고려인청년들과도 그 동안의 크고 작은 성과물들을 함께 공유하고, 전시와 공연으로 한국적 정서를 함께 나누는 한 편, 카자흐스탄 사회에 고려인의 정체성을 한 번 더 확인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기 위한 취지로 기획된 축제였다. 축제 때는 한국에서 만들어 간 공예나 사진 작품 뿐 아니라 고려인 청년들이 일 주일동안 만들었던 작품들도 함께 전시했고 사물놀이를 체험할 수 있는 전통음악 체험관, 그리고 한국어 교재 전시와 카드 엽서 쓰기 파트, 그리고 디지털 기술을 체험할 수 있는 미디어 센터를 운영하였다. 뿐만 아니라 한국의 음식으로 정서를 교감하기 위해 15가지 음식을 맛 볼 수 있는 요리 부스도 설치했다. 아울러,두 차례 가졌던 공연에서는 고려인 청년들이 보여준 어설픈 전통춤 춤사위를 시작으로 겨레문화창의단원들이 한국에서부터 준비해 간 탈춤, 전래놀이 퍼포먼스, 사물놀이, 그리고 카자흐스탄 전통춤을 선보이는 일련의 프로그램들로 짜여졌다.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구경만하던 사람들이 사물놀이 공연이 무르익어감에따라 미리 한국에서 준비해간 50여개의 소고들이 모자랄 정도로 함께 어울려서 장단을 두드리고 저마다의 춤을 덩실덩실 추는 모습, 내가 연습하는 장구사위를 보시더니, 돌아가신 어머니가 들고 있던 악기와 꼭 같은 악기를 직접 처음 본다고 눈시울을 붉히시던 고려인 2세 할머니도 잊을 수 없다. 멀리 한국에서 청년들이 낯선 이 곳 까지 온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려서 불편한 몸을 추슬러서 이웃의 할머니들과 무리를 지어 함께 나오신 분들께 대접하는 나의 요리는 때로는 부끄럽기도 했고 단원들의 공연이나 전시가 미흡할 때도 있었지만, 서로 즐기고 소통하는 데에는 말을 뛰어넘는 서로를 위하고 이해하련은 그 느낌 자체가 중요했다고 본다.
<우슈토베 체육대회 및 마을 잔치, 야유회>
시간 : 8월 2일
장소 : 카자흐스탄 유슈토베 제르진스키 쑈콜라(학교) 마당과 학교 전체
==>체육대회 상세 내용
미리 준비해간 4가지 색색의 끈으로 팀(한 팀당 15명 내외)을 구성해 경기를 진행했다.
첫 번째 경기 - 줄다리기
남자들이 많았던 두희팀과 광호팀이 예상대로 결승에 진출했다.
서먹서먹해 하던 카작분들이 하나둘씩 환호성을 지르고 눈을 피해 도망 다니기만 하던
고려인 아이들도 다가와 한국말로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땅!!! 체육선생님의 신호로 결승전을 알리자 학창시절 체육대회 줄다리기 때면 땅을 파고 손에 물집 잡혀가며 악을 쓰던 그 때의 모습을 방불케 하며 모두 하나가되어 줄을 당기기 시작했다. 웃기도 하고 당기는 힘이 부쳐서 힘들어 우는 아이도 있었지만 시합 종료 후 진 것도 모르고 마냥 즐거워 웃는 아이들을 보면서 오늘 하루 진행에 있어서 정말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두 번째 경기 - 카작 이어달리기
한국의 이어달리기와는 달리 선수들이 바턴을 주고받기 위해서는 장애물을 건너야 된다.
역시 유목민의 피를 받고 있는 이 곳 카작인들은 창의단 팀에 비해 월등한 체력을 보였다.
여자들이 많은 우리팀 특성상 다들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만 보고 있었다.
세 번째 경기 - 카작 레슬링
레슬링 선수 출신이셨다는 학교 체육선생님의 지도로 경기가 진행됐다. 카작 아이들의
시범이 끝나자마자 조형옥 선생님께서 우리 한국의 씨름을 가르쳐주겠다하시며 광호와 창연이 다리에 샅바를 매주셨다. 우리 팀의 시범이 끝나자 카작인들과 창의단 팀간에 씨름대회가 벌어졌다. 창연이와 동네 아저씨와의 시합. 마지막까지 가는 설전 끝에 창연이의 승리로 끝났다. 카작 전통 레슬링과 비슷한 경기방식과 진행에 관심을 가진 이 곳 고려인분들은 너도나도 한번 해보겠다며 샅바를 매보곤 했다.
네 번째 경기 - 말타면서 양잡기
이번엔 우리가 참여한 경기는 아니었지만 이 곳 분들이 꼭 보여주고 싶은 것이고 오래 전부터 준비해오셨다면 자신있게 보여주신 게임이었다. 일단 동네에 있던 모든 말들이 동원되었다. 모두 10명의 선수가 들판 한가운데로 간다. 경기장 밖에서 한 사람이 말을 타고 경기장안으로 들어와 미리 잡은 양을 툭 던져놓고 간다. 양이 바닥에 닿자마자 선수들은 작살을 들고 양으로 돌진한다. 30분여간 뺏고뺏기는 공방 후에 결국 한 명이 양을 갖고 경기장 밖으로 나가면서 경기가 종료됐다. 경기 후 선수들은 친히 말을 끌고와 창의단 팀 한명 한 명 태워주는 배려까지 보였다.
==> 우슈토베 야유회
- 출국을 하루 앞둔 우리에게 제르젠스키 학교 분들은 근
교로 야유회를 권유했다.
전 날, 체육대회 때 잡은 양과 닭을 가지고 물놀이를 갔다.
버스를 타고 10여분 정도 가다보니 강을 끼고 여러 채의
유리타가 눈에 들어왔다. 가족 단위로 야유회를 온 카작인
들 사이에서 우리 창의단팀과 고려인 분들은 함께 양고기, 닭고기로 만든 샤슬릭을 만들었고
구석구석에 옹기종기 앉아 빡빡한 일정에 하지 못했던 속내
를 공유했다. 이 곳 분들은 우리에게 정말 들려주고 싶은 얘
기가 많은 것 같았다.
카자흐스탄에서 게다가 외곽에 위치한 이 곳에서 한국의
문화를 이어가며 살고 있는 그들의 말에 한마디한마디 귀기
울이다 보니 시간가는 줄 알 수가 없었다.
너무나 순수한 눈을 가진 아이들이었다. 이 아이들은 한국에
서 본 여느 아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비단 생김새 뿐만 아니라 예의범절을 우리가 부끄러울 정도
였다. 어른들 앞에서 그림자도 밟지 않는 아이들이기에
한국 청년들을 대표한다는 우리가 오히려 배우고 돌아왔을 정도이다.
==> 학교 안 전시회
알마티 한국의 날 행사에 크게 성공한 전시회 품목을 그대로 우슈토베에서도 이용하기로 한 우리팀은 제르진스키 학교 체육관에 전시회를 만들고 한복입고 사진찍기 행사도 마련하였다. 찍은 사진들은 사람들에게 바로 나누어주어 또 하나의 기념품이 되었다.
==> 마을잔치 겸 공연
제르진스키 식당에 마련된 공연장에서 제르진스키와 우리가 준비한 공연을 적절하게 배치해 대략 3시간 30분짜리 공연을 할 수 있었다. 이때 제르진스키쪽에서는 고려인이라는 특성에 맞게 한국 노래에 맞춰 추는 춤 공연도 보여주었는데 이는 우리에게 특별한 인상을 남겼다. 우리의 공연은 한국의 날 했던 카작춤 공연과 전래놀이 퍼포먼스 대동놀이까지로 이어지는데 마지막 공연 역시 대동놀이로 장식해 식당으로부터 학교마당까지 나아가 한밤중에 사물놀이소리가 우슈토베 곳곳에 울려퍼졌다.
현지들의 반응 활동의 의의
현지 온도 섭씨 40도 에어컨 하나 없는 버스 안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하지만 알마티에서의 성공적인 공연으로 한 껏 힘을 얻게 된 우리였기에 5시간 정도는 참을 수 있었다.
도착할 때 즈음엔 이미 가지고 갔던 생수는 뜨겁게 달궈져있었다. 우리 얼굴 역시 빨갛게
달궈져있었음은 두 말할 나위가 없었다. 학교에 들어서자 맨 먼저 우리눈에 들어온 것은
“어서 오십시오” 라는 현수막이었다. 어딘지 모르게
약간은 서툴렀지만 우리 창의단 마음을 움직여 주었다.
버스에서 내리고 이 곳 분들에게 인사를 하는 우리 모
습에선 피곤함이 이미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우리를 보신 이 곳 분들은 오느라 수고했다며
정성스럽게 준비하신 음식을 내어 놓으셨다.
우린 벌써 한국으로 돌아와 외가집에 놀려 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우슈토베 사람들은 그랬다. 좁게는 창의단에 대한 감정, 아니 넓게 한국에 대한 그리움이 우
리가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우슈토베 관광시 경찰들은 우리 버스를 에스코트해주며
시내 모든 교통을 통제해 주었다. 카작인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과 고려인들의 고국의 그림움이 따로 말을 듣지 않아
도 느낄 수가 있었다.
고려인들의 초기정착지같은 유적을 답사하던
중이었다. “한국에서 우리에 대한 관심을
조금만 더 가져주셔으면 한다“ 면서 우슈토베에서의
그 들의 모습을, 그리고 지나간 흔적들을 모두 가지
고 가서 고국의 분들에게 반드시 전해달라는 말을
당부했다.
활동을 마치고 느낀 점 - 우슈토베 활동을 중심으로...
알마티가 한국의 서울이나 부산 정로로 비견할 수 있다면, 우슈토베는 아마 한국 안에서도 이름도 못 들어본 산 골 어디쯤... 50도의 더위속에서 창문도 냉방시설도 없는 낡은 자동차를 타고 비포장 도로를 6시간이나 달려는 동안, 볼 수 있었던 것은 10센치가 안 되는 풀들, 혹은 황무지 언덕들 밖에 없었다. 그 가운데 고려인들의 무덤과 처음 강제이주 당했을 때 정착해서 살았던 동굴들을 볼 수 있었는데, 목이 매이도록 척박함 이라는 단어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이 곳에서 쌀농사를 지어 카자흐스탄 여러 부족 중에서 첫째, 둘째로 잘 사는(그러나 그곳의국민소득은 1500불을 넘지 못한다.) 민족, 고려인이 되기위해서 했던 이주 고려인 1세 2세들의 노력도 눈 앞에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도착해서 딸띠꼬르간 쇼콜라(학교) 의 교직원 선생님들, 그리고 학교의 아이들이 방학임에도 불구하고 멀리 한국에서 온 청년들을 위해서 준비한 환영다식은 아직도 찡한 감동으로 남는다. 한국에서라면 먹지 않을 것 같은 음식들이지만, 그곳에서는 귀한 것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더불어 종교적인 이유로 소고기를 먹지 않는 분들이지만 여독을 풀라고 준비해주신 소고기국(맛은 정말 없었다.)도 잊을 수 없다. ‘올해의 쌀농사 가장 잘 지은 사람’을 시상하고 농사를 잘 짓는 사람이 되는 것을 꿈으로 가진 아이들이 자라나는 그곳은 카자흐스탄에서 유일하게 한국어 교육이 정규교육으로 행해지는 학교이다. 그곳에서 생활은 수도와 화장실과 같은 시설은 모두 공동으로 쓰고 있으며, 게다가 물의 경우에는 시간이 지나면 공급이 되지 않아 차례를 기다려 물을 길어서 쓰기도 했고, 치안, 방범도 거의 되지 않는 곳 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음식중 김밥이 제일 먹고 싶어요’라는 편지를 보낸 아이들이 있던 곳, 한국의 대학생 언니, 오빠들과 함께 운동회를 하고 싶어하는, 그리고 학교에서 배우고 있는 부채춤, 태권도, 민요 노래를 보여주고 싶어서 두달 전부터 연습을 하고 있었다는 아이들이 있는 곳이 였으며,더불어 강제이주 고려인 1세 할머니들은 극심한 가난과 외로움, 건강의 악화 속에서도 꼭 한국에서 온 청년들을 만나보고 싶다는 말씀과 함께 먼길을 걸어서 오신 할머니들 할아버지들과 함께한 마을잔치는 정말 감동의 시간들이였다. 가난하고 시골이라서 알마티의 한국어 교육원에 비하면 극히 불안정한 재정과 시설 속에서도 그 곳의 고려인 1세, 2세 분들 그리고 3세 아이들은 한국 청년들의 봉사에 두 팔 벌려 함께 하고 있었다. 한국 전래 놀이와 카자흐 전통전래놀이로 구성된 운동회와 각 부족의 전통 공연들, 그리고 한국 청년들의 공연들에서 말과 언어는 달랐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타자에서 함께로 인식하는 한 걸음 한걸음을 걸었다고 확신한다.
이번 카자흐스탄 파견은 나에게 낯선 사람들과 교류 정도가 아니라 민족을 다시금 가슴으로 느끼고, 그들의 고유한 정체성을 확인하는 가운데 함께 이야기해 볼 수있는 기회가 되었고 역사를 보는 이 시선은 앞으로도 ‘타자’를 바라보는 나의 인식에 성숙된 전환을 가져올 것이라 믿는다. 흔히들 ‘리더(leader)'라고 하면, 다른 사람들 보다 한 발 앞선 그 무엇으로 다른 사람들을 이끌 수 있는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사실 나도 두 달에 걸친 이 활동을 전개하기 전에는, 더욱 짧게는 카자흐스탄에 직접 다녀오기 이전에는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글로벌 스탠다드에 비추어 볼 때 다소 우수한 경제수준과 문화적 수준으로 잣대로 그 곳으로 떠나기 전, 무언가를 가르치고 전파하고 돌아오리라는 알 수 없는 의무감! 그러나 함께 나누고 소통하는 것이 진정한 교류이며, 따뜻한 마음과 열린 두팔을 가진 ’support‘와 조금 더 노력하는 ’lead‘ 이 둘을 갖춘 사람이야 말로 가슴이 따뜻한 진정한 리더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한국청년들‘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그 곳에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고 너무 보고 싶었다는 강제이주 디아스포라 1세대 할머니 할아버지들, 그 분들의 강인함을 보고 자라 척박한 중앙아시아에서 현재를 너무나 열심히 꾸려나가고 계시는 2세 분들 그리고, 가난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똘망똘망한 눈빛의 3세 아이들은 영원히 나와 함께 이 ’오늘‘을 살아갈 것 이다.
겨레문화 창의단-활동에 대한 전반적인 제언 및 평가
겨레문화창의단의 이름으로 파견된 이번행사에는 참 재능있는 청년들이 많이 모인 것 같았다. 저마다 자신의 “무기”로 불릴만한 장점 혹은 특기를 가지고 있었다. 면접단계에서의 꼼꼼한 검증은 각각의 팀에게 힘을 실어주기에 충분했다고 생각된다. 워크샾 에서의 교육 또한, 창의단의 성공적인 활동에 큰 밑거름이 되었다. 워크샾 당시에는 그리 지루하기만 했던 강의들과 주의사항들... 하지만 현지에 도착해 우리의 예상을 벗어난 돌발적인 상황에서나, 빡빡한 일정으로 심신이 지쳐올 때면 워크샾 에서의 각종 강연들은 우리에게 의욕을 고취시켜주는 좋은 비타민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패기와 열정으로 무장하고 현지에 도착한 우리 창의단은 우리가 가진 “정보” 라는 것이 얼마나 부족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현지통역분의 도움을 받는 것도 그 나름대로 한계가 있었고, 언어적 장벽은 우리에게 커다란 장애물로 다가와, 이는 우리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데에 큰 지장을 주었다. 매일매일 회의를 거듭하면서 통역의 존재가 절실함을 깨달았고, 몇 안 되는 러시아어 사용자들은 다른 단원보다 두, 세배의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자주 일어났다. 현지코디의 확충과 현지언어에 능통한단원의 추가확보가 창의단 2기에게는 꼭 필요한 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젊음으로 밀어붙여 공감대를 형성하기에는 단기팀에게 주어진 시간은 짧았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워크샾 기간의 연장이나 출국이전의 공식전인 만남의 자리가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훌륭하고 즐거웠던 워크샾 이었지만 파견활동에 필요한 것은 정보나 교육뿐만 아니라, 단원간의 유대관계역시 큰 몫을 차지한다는 것을 느끼고 왔기 때문이다. 서로가 한 몸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생각을 공유하고, 활동을 해나가는데 있어 팀웍은 생명이었고, 이 팀웍을 현지에서 다져나가기엔 파견활동기간이 짧았다. 우리는 좀 더 사전에 서로를 알고 출발할 필요가 있었고, 내가 우리팀을 위해, 서로를 위해 어떤 일은 맡아 해야 하는지를 미리 파악하기에는 부족한 워크샾 기간이었다. 팀웍은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언어로써, 이것의 단절되거나 원활하지 않다면 우리는 언어의 장벽을 이중으로 느껴야 하는 절름발이 활동이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것 들은 정말 생각해내고, 짜내서 나온 몇 가지 아쉬운 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이번 파견은 우리에게 행운이었고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다. 통역이 몇 명 더 있었으면 물론 활동이 훨씬 편했겠지만, 그들과 바디랭귀지를 섞어가며 대화해 나가고 서로를 이해해 나가는 시간들은 불편함 보다는 즐거움과 보람, 그리고 추억이었다. 빡빡한 일정에 몸은 지쳤었지만 서로를 달래가며 격려해가며 함께 고민했던 우리 팀 간의 시간들, 각자 위치로 흩어져서 기민하게 움직이는 모습들, 떨어져있던 핏줄들과 함께 울고 웃던 시간들.. 이런 시간들을 보냈으면서 어찌 쉽게 힘든 점.. 아쉬운 점을 이야기 할 수 있을까.
단언컨대 올해 여름은 우리 창의단 청년들 모두에게 정말 잊을 수 없는 시간이었을 것이고, 지금은 다시 헤어져 타지에서 그들의 삶을 살고 있는 한민족 청년들 에게도 분명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찌 보면 정말 짧은 시간이었다 할 수 있지만, 우리 청년들에겐 서로를 느끼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서로의 마음속에 짧지만 굵은 한민족의 길을 터놓고 왔기 때문이다. 잊지 못 할 2005년 여름으로 인해 우리는 언제고 다시 그들과 한민족의 길 위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부디 2.3.4.. 기 계속되는 파견으로 자칫 일상에, 세월에 희미해질 수 있는 “서로에게 통하는 길”을 공고히 했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