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作 노트와 시 다섯 편

[leeys]

詩作노트

시는 설명이 아니라 영감이요, 해설이 아니라 암시다. 내 시가 독자에게 얼마나 생동을 주고 묵시적 감동의 공간을 공유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나는 시를 쓴다. 그래서 수필을 쓸 때는 시 같은 수필을 쓰려고 노력하지만 시를 쓸 때는 수필 같은 시가 되지 않도록 신경을 기울인다.

화원에 가니 조화는 상좌석에 앉아서 만원이요, 생화는 배리배리한 채 흙바닥에 앉아 천원의 꼬리표를 달고 있다. 꽃의 생명은 어디에 있을까? 마땅히 향기에 있을진대 향기는 어디서 수혈될까? 당연히 흙에서 얻어진다. 생화는 자연을 먹은 순리의 향이요, 조화는 가공의 허례 허구의 위선이다. 생명도 향도 없는 석고인 조화가 상좌석 대접 받는 현실, 이것이 오늘날 시세계의 좌표가 아닐까? 프라스틱은 과학문명의 첨병은 될지언정 정신문명의 기수는 될 수 없다.

시의 향기는 무엇일까? 나는 마땅히 사상성이라고 하겠다. 시의 삼요소인 음악성 회화성 사상성(의미성) 중에서, 음악은 운률이요 회화성은 비유요 사상성은 내용 즉, 작가의 철학이며 인생관이다. 이 삼 요소가 잘 조화된 시를 성공한 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중에서 가장 중시할 것은 사상성 즉 의미성에 두어야 한다.
종합예술 가운데는 문학이 중심이요, 문학 가운데는 시가 위주가 되며 시에서는 사상성이 중요하다. 또한 사상성은 시인의 인생관이요 역사관이므로 이것이 결여된 시는 시가 아니라 음악이다.

시인은 역사의식과 철학의식의 자기 색깔이 우선해야 진정한 시가 탄생한다는 ‘엘리옷’의 말은 주지시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칸트'가 말한 ‘내용 없는 사상은 공허하고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이다.’ 라는 철학사상은 시 정신에도 해당하는 사상성의 중요성이다. 즉 주제가 뚜렸해야 하며, 개념 즉 시인의 주관성(사상성)이 결여된 시는 맹목 즉, 껍데기다. 즉, ‘시는 시인이다.’라는 말이 성립해야 진정한 시다.
‘뭐든 인식해야 존재한다.’ 라는 데카르트의 말도 상황논리의 객관화가 아니라 주관논리의 절대성을 강조한 말이 아닐까? 인식이라는 존재론의 절대성도 바로 작가의 철학 즉 시의 사상성을 강조한 말이다.
개인의 정체성은 아이디(I D)이듯이 시의 정체성은 사상성이다. 나는 시의 정체성(正體性)을 가장 중시한다. 독자에게 교시적 기능까지는 아니라도 무언가 던져주어 사고작용의 공간을 주는 시를 쓰려고 노력한다. 물론 서술적 서정시나 감상적 서정시를 통한 순수시의 순화작용의 기능도 중요하지만, 시의 다양성을 꾀하고 진부성을 탈피하기 위해 더러는 패러디나 풍자성 언어 구사도 하고, 현실을 해부하기 위해 쌔타이어나 비약과 암시의 비판적 시풍도 서슴지 않는 주지시 편향이다. 그러다 보니 음악성이나 서정성의 결핍을 자인하는데 이점을 결여보완의 자세로 노력하겠다. 즉 한 방울의 눈물로 진주를 만드는 그런 순수 서정시는 나에게 버거운 숙제로 계속 노력하련다.

나는 오염되고 기형화된 현실의 내면을 까발려 치유하려는 주지적 목적시의 경향도 즐겨 쓴다. 전위적 시풍의 경향보다 절제된 모더니즘 경향의 시풍을 선호해 시인과 독자와의 중용의 거리를 선호한다. 초전위시 경향의 자아독선 도취적 모더니즘으로 고답파적 희열에 도취하는 시는 시의 기능과 사명을 다했다고 하기 어려울 것이다. 즉 시는 시인과 독자가 함께 하는 공간을 만들어 정신문화와 민족혼의 선도자의 구실을 하는 것이 진정한 시의 효용이며 기능일 것이다.
참고로, 시는 객관문학이 아닌 주관문학인고로 자기 세계와 철학과 인생이 있으므로 공감하지 않는 부분이 있을 줄 안다. 그게 바로 색깔이요 다양성이며 주관성의 매력이다.

# 이런 관점에서 쓴 다섯 편의 시를 아래에 게재하오니 지도 감수 부탁 드립니다.
(이 글은 잡지에 게재한 글입니다)


(1), 아이디 카드(I D CARD)
희목 이 양 순

아이디는 정체성(正體性)

그릇 없는 물은
물이 아니며
진리 없는 자유는 방종이다
가슴 없는 머리는
아이디 없는
자폐증 환자다

아이디는 칼날이며 보석(寶石)
비밀번호는 칼집이며 보고(寶庫)다
아이디 잃어버린 자폐증 싸이보그가
비표(秘票) 한 장 달랑 들고
지구봉 위를
삐딱삐딱 걸어간다
- - - - - - - - - - - - - - -

(2) 성형 (이양순)
- - 염라대왕까지 속이다니- - -

어느날
불청객 생글생글 찾아왔다
염라대왕 왈
금시 초면 너 몰라
땅땅 결재하니
약속 위반이라 항변하며 상고한다

온 세상 무섭게 발정(發精)났네
다림이질 땜질에
낡은 천에 생베 붙이기
호박에 장미 접 붙이기
사막에 지하수 때려 박기
웃기는 자가 웃기는 자를 더 웃기니
발광 발정 남매
진짜 웃기는 희한한 세상이다

쯧 쯧 저런!
걸레 백 번 꿰맨들 깃발 될까
까만 걸레가 하얀 걸레를 세탁한다고?
빨간 페인트로 지구봉을 칠한다고 ????

성형? 참 웃기네
- - - - - - - - - - - - - --

(3) 화원에서 (이양순)
---시인과 현실---

립스틱 나무 분칠 한 꽃
에이 구역질 난다
젖나무가 주목 행세하니
소나무들이 긴장한다
찔레 넝쿨은 아폴로장미인 척
양다리 걸치기
패랭이가 민들레 휘덮는가 싶더니
유채꽃이 온 야생화 삼켜버린다
할미꽃이 무덤가에서 피식피식 웃는다

화원, 제 철 만나 한 마당 꽃축제
생화는 야리야리 외로운데
조화가 상좌석에서 활활 불지른다
생화는 천원 조화는 만원이라니
향도 생명도 석고(石膏)
벌나비는 한 마리도 빨지 않는데
뻔지르르한 무골충만 헤까닥하다니
시인은 참시인은
선혈(鮮血) 울컥울컥 토해야 한다
- - - - - - -------- - - - - - - -- -

(4) 허무의 풍경 (이양순)
- - -사막에서- - -

허무는 무안(無岸)의 풍요다
저 고비사막은
하늘
모래
바람
구름이 궁전을 짖는
신의 무안(無岸)의 영지다

허무는 영혼의 풍요다
하얀 영지는 무한의 창조
생이 사요 사가 생이다

허무는 창조의 풍요다
시인의 가슴
작가의 심줄
화가의 오기다

허무와 역사와 창조는
공존의 미학이다
- - - - - - - - - - - - - - -

(5) 계곡물이란?(이양순)

계곡은 아래 있어도
능선을 지배하니
곡신(谷神)이라 했던가
물, 물이 있음이라
연주대 너럭바위도 국기봉 연리지도
불끈불끈 심줄 돋궈 계곡을 연모하다
사춘(思春)이 불룩해지면
미친듯이 내려온다
수컷들은 정력을 마시고 하늘로
부티나게 머리를 곧추 세운다

물은 모여서 운명처럼 달려간다
계곡은 물 다 떠나도 마냥 한가하니
비움은 새로움이요 더 큰 물건 키움이라
산은 계곡을 낳고
골물은 태산을 살찌우니
산과 계곡은 탯줄처럼
궁합이 딱 떨어진다

[활안거사]

詩를 공부하며 익히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詩人이 직접 쓰면서 설명하여 주시니 理解가 쉽습니다. 좋은 글 자주 올려주시기 앙망합니다.

[이순자]

선생님의 詩作노트는 시에 대해 門外漢 인 저에게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시의 삼요소는 음악성 회화성 사상성이라는 것을 알게 된것만도 저로서는 대단한 수확입니다. 감사합니다.

[지헌 구보]

시론을 곁들인 자작시 5편을 잘 보고 감상했습니다. 산문과 운문의 구분과 시작이론을 많이 가르켜 주시어 감사합니다. 습작하곺은 의욕을 복돋아 주셔서 더욱 감사합니다. 詩는 가장 압축시켜 놓은 영혼의 노래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흔히들 '낯설기 작업'을 강조하는데, 그 작업의 의의와 요령을 잘 모르겠습니다. 차후 시간 있으실때 한번 강의하여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건투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