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앙코르와트-
멏 년전 한 여름, 거인의 육신보다 웅장하고 왕족의 영혼보다 눈부시다는 앙코르대제국의 거대한 경전, 앙코르와트로 문화여행을떠났다. 앙코르 왕조의 전성기를 구축했던 수리야바르만 2세가 왕이나 왕족이 죽으면 신과 똑같아진다는 믿음으로 수 만명의 노예들을 동원해서 37간년에 걸쳐 지은, 현존하는 종교 건물로서 가장 방대한 ‘신의 사원’으로 갔다. 신(神)이 살고 있음을 상징하는 다섯 개의 탑과 자그마치 동서로 1키로메타나 되는 넓이 그리고 세상 끝을 뜻하는 성벽 주위를 해자(垓字)가 감싸고 있는, 이 힌두교의 세계관에 따라 건축된 사원을 찾아보려고 비행기에 올랐다. 누가 그랬든가 “세계의 문화유산은 나이 듦의 미덕을 온건히 발휘하지 못하는 여린 존재”라고... 누가 또 예술가는 경험의 축적을 자양분으로 불후의 명작을 남기고 자연은 세월의 흐름과 함께 고매한 빛을 발산하지만 문화유산은 시간이 흐를수록 찬란했던 과거의 영화와 이별뿐이다”라 했든가? 겸허한 마음가짐으로 인류의 역사인 앙코르와트와 마주해야 비로소 과거와 소통하는 현재만이 진정한 의미가 있음을 이번 여행으로 인식할 수 있었다. 한낮 시엠맆(Siemreap)의 한 호텔 현관문을 열고 나오자 현지인들이 자기 자전거를 타라고 손짓을 한다. 웃통을 벋은 채 힘 있게 페달을 밟고 달리는 자전거를 타고 숲 속으로 난 길을 따라 가니 한 줄기 바람이 숲을 흔들고 지나간다. 새들의 지저귐에 숲이 차차 밝아오더니 드디어 숲 사이로 저 멀리 거대한 바위산이 보였다. 그 산은 바위산이 아나라 아코르 예술의 극치이자 힌두신에게 바쳐진 신전, 신화적인 역사의 전당인 앙코르와트였다. 숲속을 나오자 신전은 더욱 가까운 곳에 있었고 더위는 더욱 기승을 부렸다. 자전거에서 내리자 지열이 코를 통해 심장을 누르는 듯 미미한 현기증이 났다. 한낮의 강렬한 햇살은 여지없이 앙코르와트 신전으로 쏟아졌고 태양에 달구어진 석조물이 뿜어내는 열기가 멀리서도 느껴졌다. 신전은 마치 오수(午睡)를 즐기는 공룡처럼 길게 누워 있었다. 열기 때문에 신전에 다가가지 못하고 입구 해자 난간에 걸터 앉아 진회색 빛으로 빛나고 있는 신전을 바라보노라니 한 꼬마 녀석이 아이스크림을 사라고 조른다. 푸른색 얼음과자를 두 개 먹으니 좀 더위가 가셔지는 듯했다. 내친김에 해자 위에 놓은 석조다리를 조심스럽게 한 걸음 한 걸음 건너가지만 고대의 신전으로 향한다는 설렘에 가슴이 띄었다. 한 평 남짓한 돌들이 깔려있는 이 다리가 노예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서 인지 해자의 물색깔도 잔뜩 흐려있었다. 신이 되길 갈망했던 몇 사람들 때문에 흘린 눈물이 아직도 마르지 않고 해조를 이루고 있다니..... 유네스코 지정 유적지이지만 값싼 물가 때문에 여기에 와 앙코르의 폐허 위를 걷는 많은 여행객을 보면서, 이 발길에 폐허는 더더욱 폐허가 되고 또 유적을 달러와 맞바꾸는 가난한 나라의 슬픔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마음이 쓸쓸해졌다. 해자를 건너면 처음 여행객을 맞이하는 곳은, 벽에 부조(浮彫)된 힌두 신화(神話)들이 두루마기 그림처럼 끝없이 펼쳐져 있는 회랑이다. 왕과 종교적인 것 외에도 고기를 잡는 사람들, 축제를 준비하거나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 등 서민들의 생활상을 묘사한 현세(現世)와 지옥과 천당의 모습을 표현한 내세(來世)에 관한 신화들이 회랑 사면(四面)을 가득 채우고 있어 신전 자체가 거대한 경전이었다. 회랑을 따라 걸어보려 하지만 제대로 발 검음이 옮겨지지 않았다. 적어도 이 회랑에서만은 신화 속의 영혼과 여행객의 영혼이 서로 만나 슬프고도 찬란한 이 예술의 미학(美學)을, 그리고 앙코르예술의 극치를 함께 할 때에만 발걸음의 옮김을 허락할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 로마 신화가 이보다 더 실감나고 흥미진진할까를 생각해 본다. 고대 신화에 푹 빠져 회랑을 한바퀴 돌다 보니 어느 듯 어둑어둑해지고 있다. 신전 뒤로 난 높은 계단을 타고 올라 중앙 탑 회랑에 서니 태양은 이 신전을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있다가 서서히 밀림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이 태양처럼 위대했던 앙코르의 문명도 이렇게 석조 건물들만 남기고 저 불가해한 시간 속으로 묻혀갔으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