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5장 18절 /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엡 5:18절에“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인터넷에서 누가 올려놓은 글입니다.
참 재미있게 소주충만과 성령충만의 공통점을 분석해 놓았습니다.
술취함과 성령충만에는 모두 9가지의 공통점이 있답니다.
첫째, 말수가 많아진답니다.
술에 취하면 주정을 부리면서 말이 많이지고, 성령에 충만하면 복음을 전하느라 말이 많아진답니다.
둘째, 노래를 부른답니다.
술에 취하면 유행가를 부르고, 성령에 충만하면 찬양을 부른답니다.
셋째, 자꾸 남에게 권유한답니다.
술에 취하면 자꾸 술 마시라고 권하고, 성령충만하면 예수 믿으라고 권한답니다.
넷째, 운답니다.
술 취하면 인생이 허무해서 울고, 성령충만하면 자신의 죄악 때문에 운답니다.
다섯째, 용감해진답니다.
술 취하면 아무한테나 싸움을 걸고, 성령충만하면 성령의 능력을 힘 입어서 담대하게 아무한테다 복음을 전한답니다.
여섯째로 지배를 당한답니다.
술 취하면 술의 지배를 받고, 성령충만하면 말씀의 지배를 받는답니다.
일곱째, 중독에 걸린답니다.
술 취하면 술 없으면 못살고, 성령충만하면 예수 없이는 못 산답니다.
여덟째, 안주가 필요하답니다.
술 마실 땐 술안주가 있어야 하고, 성령충만하면 말씀의 안주가 있어야 된답니다.
아홉째로 냄새가 난답니다. 술 취하면 역겨운 냄새가 나지만, 성령충만하면 그리스도의 향기가 난답니다.
그럴듯한 재미있는 비교입니다.
오늘 성경에서도 술 취함과 성령 취함을 상호 비교 하고 있습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이 말씀을 하신 하나님의 의도는 똑 같이 자신의 의지를 누군가에게 양보하는 모습 때문을 이렇게 표현한 것 같습니다.
술 취함은 자신을 술에 양보했고, 성령충만한 사람은 자신을 성령님께 양보한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얼마전에 미국에 온 처제가 빈대떡, 부침개가 먹고 싶다고 해서 대흥동 대전예식원 옆에 있는 녹두 빈대떡을 맛있게 부치는 집에 빈대떡을 사러 간 적이 있습니다.
그 집은 막걸리와 녹두전을 전문으로 파는 술집이었습니다. 안을 들여다보니 술꾼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서 서로들 큰 소리로 이야기를 하면서 손짓을 하면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주머니가 부침개를 부쳐주는 동안 식당 입구에서 눈앞에 전개디는 여러 현상들을 주의 깊게 살펴봤습니다.
한 마디로 술이 한잔 두잔 들어가니 술이 사람을 지배하고 삼켜 버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주위의 사람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에 깊게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평소에 하지 못했던 대담한 행동들을 부끄럼 없이 행하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신기한 현상들을 목격했는데, 자세히 보면 술에 취한 모습은 성령의 충만한 모습과 나타나는 현상과 행동들을 비교해보면 비슷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초대교회의 성령충만한 그리스도인들에게 당시 유대인들은 “저들을 봐라 저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라고 이야기를 한 것을 봐서도 술 취함과 성령충만은 비슷한 현상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질 적인 측면에서, 결과적인 차원에서는 술 취함과 성령충만한 삶은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로 하늘과 땅 차이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6월은 성령강림절 절기가 있는 달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충만한 달로 지내야 합니다. 유월이 되니 산하가 푸르다 못해 검푸러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녹음이 짙어지는 것은 모든 나무가 열매를 맺기 위해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열매를 맺는 삶을 위해서는 성령충만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난 한달 동안 성령님에 대한 내용을 함께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성령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3위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생각하고 느끼며 의지를 갖고 행동하시는 인격체이십니다.
그분은 지성적 존재로서 우리를 가르치고 인도하며 지시하는 독립적 존재이십니다.
성경은 우리가 그분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어 슬퍼하시게 만들 수 있다고 말합니다.
또 그분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은사들을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인격적 존재로서의 모든 속성들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성령님은 성경에 영감을 불어넣으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에 사로잡힌 성령충만한 자들에 의하여 긹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성경 말씀을 읽거나 들을 때 그 말씀을 깨닫도록 빛을 비추어주십니다. 또한 우리가 그 말씀을 삶에 적용하도록 도우십니다.
그분은 삼위일체의 한 위(位)이시며, 성부 및 성자와 동등하십니다.
삼위의 사역은 구별되는데, 성부는 계획하시고 성자는 성취하시며 성령은 적용하십니다. 세 분이 각각 자기의 사역을 감당하심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내십니다.
예수님은 “그가(성령님이) 와서 죄에 대하여, 의(義)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 16:8)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시고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하나님의 생명을 주십니다.
우리가 거듭난다는 것은 우리가 성령으로 난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거듭난 사람 안에는 성령님이 거하십니다.
우리가 그분께 순종할 때 그분은 가르치고 지시하며 충만케 하십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엡 5:18)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술을 마시면 술에 취하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술의 유혹에 넘어가 의지적으로 술을 마십니다.
알코올이든 아니면 어떤 종류의 약물이든 간에 그것을 마시거나 먹으면 그것들의 지배와 통제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삶에 대한 통제권을 성령님께 넘겨드리면 우리는 그분으로 충만하여 그분의 통제를 받게 됩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다는 것은 우리가 그분을 더 많이 갖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그분이 우리를 더 많이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인 에베소서 5장 18절 말씀에서 사용된 동사의 시제를 잘 보면 현재 시제입니다.
문장의 형태를 보면 서술문이 아니라 명령문입니다.
명령입니다.
성령충만하지 못한 것도 엄밀히 말하면 죄라는 겁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충만해야 합니다.
성령충만 받아도 좋고, 안 받아도 좋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성령충만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는 말은 “계속적으로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는 말입니다.
성령 충만은 한 번으로 끝나는 일회성이 아닙니다.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 일이 아니라 계속, 계속해서 우리는 항상 성령충만해야 합니다.
뭡니까.
그것은 날마다 우리의 삶에 대한 통제권을 그분께 넘겨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님으로 충만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이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술 취하지 말고 성령으로 충만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죄악이 관영하고 악하여져 가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의 세계로 인도하는데 결정적인 것이 바로 성령충만한 것입니다.
성령충만하지 않으면 마귀, 사단의 유혹과 공격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충만하면 그 것은 내 힘이 아닌 그분의 힘으로 사는 것이기 때문에 항상 능력 있는 삶을,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모쪼록 술에 취하지 말고, 세상으로 향락으로 충만하지 말고 성령의 충만을 받아 성령의 사람으로 승리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금은 성령의 시대, 은혜의 시대입니다.
지금, 성령의 늦은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성령의 단비에 흠뻑 젖고 성령의 충만함을 위해 오늘도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엎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성령님, 사랑합니다.
성령님, 오시옵소서.
성령님, 더 충만하게 임하시옵소서. 더 충만하게, 더 충만이.....